오늘은 한림항(翰林港)으로 가서 올레길 14코스 중 해안길을 가기로 한다.
우리가 들어 간 곳이 한림항(翰林港)은 맞는데 아마도 고깃배들만 드나드는 항구 끝인듯했다.
일단 화장실을 찾는데 화장실 간판은 견고하게 붙어 있는데 막상 화장실은 없다.
그냥 구석에서 해결하라는 뜻일까?
방파제끝까지 둘러봐도 화장실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포기하고 돌아선다.
한림항에서 보이는 "비양도"(飛楊島)
비양도에 잠깐 해가 들어 얼른 찍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이 섬은 고려 목종(穆宗) 5년(1002년)6월에서 10년사이에
바다에서 산이 솟아 용암이 흘러나와 닷새만에 그쳐 섬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섬 양쪽 산위에는 분화구가 있다고 한다.
한림읍(翰林邑)을 파도로부터 막아주는 긴 방파제(防波堤)
한림읍(翰林邑)
올레길은 잠깐 바다를 비껴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 길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순례길과 병행된다.
마침 용수사(龍樹寺)에 공용 화장실이 있다는 표지를 보고 잠깐 들렀다.
"용수보살"(龍樹 菩薩 , Ngrjuna, 150~250)은 "나가르주나"(Nāgārjuna)의 한자식(漢字式)이름으로 인도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가 "아르주나" 나무아래서 그를 낳았다는 것과
"나가"(Naga : 龍)의 인도(引導)로 도를 이루었다는 것에 근거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3세기 "용수"는 "중관불교"(中觀佛敎)의 틀은 유지하는 동시에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를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논리를 창시했기 때문에 "제2의 석가모니"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조용한 동네를 지나면 이내 옹포리 바닷가로 다시 나온다.
방사탑(防邪塔)을 만들 때 그 안에 솥이나 밥주걱을 넣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동안 "비양도"(飛楊島)는 계속 보게 된다.
방사탑(防邪塔)은 마을 양쪽으로 세운다고 한다.
원래 맨 위에 있는 새는 불사조(不死鳥)로 나무로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돌로 만든다고 한다.
세멘트나 기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손기술로 쌓은 돌담.
제주도를 가면 이런 돌담이 많은데 여행기를 쓰다보니 제주도의 돌담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 주신 제주도 분의 글이 있어 옮겨본다.
제주도에서는 돌담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이 돌담은 쌓은 곳에 따라 그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밭에 있는 담은 "밭담", 골목길을 이루는 담은 "올레"(하지만 담의 의미보다는 골목길 전체의 의미),
여기에서 "올레"라는 말은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의 제주 지방의 방언이라고 한다.
바닷가에 쌓으면 "원담"(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게 쌓아 만든 돌담:‘원’은 한자어 원(垣, 담·울타리)에서 비롯한 말이라고 한다),
산과 들의 담은 "산담"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글에 제주도가 고향이신 분이 이 "산담"에 대해 확실한 정리를 해 주셨다.
골목길을 이루는 "담"은 제주에서는 대개 "우엉담", "우잣담", "어귓담" 등으로 표현된다.
"우엉", "우잣" 이란 보통 집안에서 채소 등을 재배하는 일종의 텃밭이나
"눌"(제주 언어로 마소의 먹이인 꼴이나 보릿집 등을 쌓아 놓은 더미를 이르는 말) 등을 설치하는
집안의 일정한 공간을 말하는데 이를 "우엉", "우잣" 이라 하며 여기를 둘르는 울타리가
집 밖에서 보면 골목길을 이루므로 자연히 "올레길"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어귀" 란 골목어귀를 말하는데 제주에서는 골목과 골목이 연결되는 부위의
모서리를 일반적으로 "어귀"라 하므로 "어귓담"이란 용어가 생겨난 듯 하다.
그런데 제일 문제 되는게 "산담"이다.
"산담"은 제주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거의 느꼈을 테지만
제주지역에는 옛부터 묘소에는 반드시 장방형으로 담장을 둘렀다.
이는 방목하는 마소가 봉분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기도 하거니와
제주지역에는 예로부터 "방앳불(방아불)"이라 하여 이른 봄에 농경지나 방목지에
불을 놓아 해충을 제거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 때 불이 번져 산불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묘소에 산담을 설치하여 놓으면
산불이 번져도 묘소를 무사히 넘어가게 되므로 묘소에 방화가 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반드시 묘소에 장방형의 담장을 두르는데 이를 "산담" 이라 한다.
집안마다 "산담"은 집안의 가세에 따라 웅장하게 치장하는 관습이 생겨나서
집안의 위세를 과시하는 관습으로 변모되어 가문마다 치장을 한다.
우선은 신문(神門)이라 하여 남자는 오른쪽에 여자는 왼쪽에
조그만 입구 형태로 담장을 뚫어 놓아 마치 입구처럼 만들고 위에는 긴 암석으로 덮어 놓으며,
오래된 산담은 세월이 지나면서 왜소하고 허물어지기 쉬우므로
지금도 담장의 넓이가 1m에서 1m50cm까지 넓어지는 접담(성곽을 쌓듯이 쌓음)으로
담장을 구축하고 네 귀퉁이는 조금 높게 하여 마치 궁궐이나 사찰 등의
기와집 네모서리가 치켜 올라가듯이 쌓아놓고, 거기에는 담장이 무너짐을 방지하려고
넝쿨 식물을 심어 넣어서 벌초때에는 산담 정리가 묘소 벌초보다 몇배나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런고로 벌초때는 "산담"에 늘어진 잡초를 제거하려면 후손들이 숱한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이밖에도 제주도의 "장묘 문화"는 육지부의 그것과는 여러가지 틀린 부분들이 많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산담"이란 그리 간단치 않은 애환이 깃들은 용어이다.
이곳은 아마도 해녀들의 쉼터같은데 특이하게 만들었다.
지붕은 네 기둥위에 받침판을 설치하고 작은 돌을 깐 다음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었다.
옹포리 포구(瓮浦里 浦口)
저 배는 왜 저리 됐을까?
옹포리 포구(瓮浦里 浦口)에서 보는 "비양도".
옹포리 포구(瓮浦里 浦口) 왼쪽에 있는 방사탑(防邪塔)
2층높이 위에 서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대충 가늠해보니 "비양도"를 보고 있는듯 했다.
이제 협재리(狹才理)로 들어선다.
옛날 마을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는 종4품 무관직으로 "만호"(萬戶)라 불리었다고 한다.
역대 "만호"(萬戶)들을 기리는 "추은비"(追恩碑)가 있는데, 아마도 육지에서 보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와 같을듯하다.
그리고 기념비(紀念碑)가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당월대(堂月臺)
협재리 큰길에서 다시 바닷가로 내려간다.
협재포구에서 보는 비양도.
원래는 이곳으로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파도가 심해서 빙 돌아 왔다.
협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협재 해수욕장.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함일까?
해변을 모두 망사포로 덮어 놓았다.
협재 해수욕장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모래가 좋고 수심도 깊지 않은듯하다.
비양도는 갈수록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협재해수욕장 바로 옆에는 "금릉해수욕장"이 있다.
이 방파제는 파도가 조금씩 넘쳐서 결국 길을 건너서 잔디밭으로 지나야 했다.
"금릉포구"바다 한가운데 특이한 조형물이 있어 카메라를 당겨보았다.
돌하르방이 큰 물고기를 안고 있다.
물속에 암초가 있어 배가 이쪽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 표시인듯하다.
이곳에는 순전히 제주 돌로만 쌓은 담들이 꽤 많이 있다.
금릉포구를 지나면 "단물깍"이란 용천수(湧泉水)가 있다.
그런데 이 "단물깍"의 설명이 좀 애매하다.
-해변에서 "물이 빠져 나가는 만조"에는 소금기가 많아 먹을 수 없지만 간조가 시작되면 단맛이 난단다.
만조(滿潮)를 잘못 설명한듯하다.
"물이 빠져나가는 때가 아니고, 물이 가득 들어 온 때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곳은 일반용수로 쓰고 우측의 작은 샘은 식수로 썼다고 한다.
그 옆에는 옛날 방앗간도 있었던듯하다.
금능포구앞 넓은 마당에서 그물을 말리고 있는 모습.
금능포구 옆 어촌계복지회관.
금능 5길(마을길)담에는 이곳 주민들의 글들이 전시되어 있다.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이 있던 날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저런 이야기가 실감이 날지 모르겠다.
마을길을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길 없음"표지가 있어 당황을 한다.
차량이 지나갈 수 없다는 표지다.
다시 비양도가 보이는 바닷가로 나왔다.
비양도는 이제 꽤 많이 돌아 앉아 있다.
용도가 무엇인지 모를 집쪽을 향해 곧바로 나 있는 길을 간다.
바닷가로 나오니 멀리 해상에 풍력발전기가 여럿 모여 돌아가고 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일성콘도"인듯하다.
이곳에도 "환해장성"(環海長城)이 있다.
고려시대인 1270년경부터 쌓은 성(城)이라고 한다.
콘도를 끼고 해안가를 지나가야 한다.
만일 파도가 거세면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물고기 양식장인듯한 곳을 지나면서는 완전히 바닷가 돌길을 걸어야 한다.
만일 파도가 거세면 애초에 콘도 앞쪽으로 해서 진행해야 할것이다.
여기를 지나다 그만 발을 삐끗했다.
스틱을 짚었는데도 울퉁불퉁한 돌에 발이 걸렸나보다.
통증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걷기가 조금 불편했다.
우리 윤회장님이 바람을 막아주는 움푹 패인 곳을 찾아 쉴 자리를 만들었다.
이곳은 우리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쉬어간듯 하다.
조금 쉬어 기력을 보충한 후 돌밭길을 가는데 "해녀콩"서식지라는 곳이 나온다.
"해녀콩"은 콩과 비슷한데 일본이나 대만의 해안에서 바다를 통해 흘러 들어 온 식물인듯하다.
독성이 강해 콩을 삶아서 낙태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흐린 날씨에 바람이 거세서 걷기에는 좋지 않았다.
조금은 황량한 길에 바람이 거세서 더욱 썰렁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 전역에 걸쳐 있는듯하다.
"월령리" 가까이 오면 "비양도"에 대한 설명이 있는 올레길 표지판이 있다.
즉 반대로 오면 여기서 부터 "비양도"를 보며 걷게 되는 것이다.
이제 월령리(月令里)에 들어 왔다.
첫댓글 새록 새록 멀어져 가던 것이 다시 가까이 닥아오네요
벌써 멀어지다니요? ^^
저는 마음은 아직도 제주도에 있는데,,,,,
같이 동행했는데.....
내가 보지못 했던게 많이 있다는걸 확인 했습니다. 같은 길에서도 서로 다른걸 보면서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해유 ~~~
ㅎㅎ
그건 저역시 똑같을 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