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원 포인트 티칭
“마리아. 이곳이야. 마리아가 원하는 골프. 장비 파는 곳. 골프 웨어하우스 숍이야. 마리아에게 좋은 선물 사 줄게. 마리아 아빠도 내리시지요.”
민재가 마리아와 마리아 아빠를 데리고, 뉴톤에 있는 골프 숍 앞에 도착했다.
“어. 민재. 어서와. 잘 왔네. 민재가 말한 꿈나무 보고 싶어서 기다렸어. 마침, 에리카 언니도 골프 레슨 마치고 챔버린 골프장에서 돌아왔어. 들어가자고.”
엘리가 골프 숍 입구에서 세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민재와 약속한 대로 중간에 다리를 놓아 프로 골퍼 에리카와 꿈나무 골퍼 마리아가 만나는 날.
“오. 엘리. 고마워. 엘리 덕분에 마리아가 빛을 보겠어.”
민재가 엘리와 가볍게 악수했다. 친근한 평소처럼 서로 등을 도닥여 주었다.
“마리아 아빠. 이 분은 엘리라고 해요. 저와 함께 오클랜드 택시회사에 근무중인 매니저세요. 이 골프 숍을 엘리 오빠 부부가 운영하거든요.
오빠 부부는 프로 골퍼예요. 남편 분은 골프 투어에 나갔어요. 아내 분은 이 숍을 보며 골프 티칭을 해요.
엘리가 새 언니 티칭 프로에게 마리아를 소개했어요. 서로 일정을 맞춰보다가, 마침 시간이 나는 오늘 자리를 마련했어요.
마리아도 인사드려. 마리아를 이곳에 안내한 분이셔. 엘리 선생님이 마리아한테 관심이 많거든. 앞으로 마리아를 도와줄 거야. 골프 일이 잘 풀리도록.“
마리아 아빠가 목발 짚은 오른 손을 왼 손으로 바꾸었다. 엘리에게 인사를 하며 오른 손으로 엘리와 악수했다. 마리아도 엘리와 두 손을 꼭 잡았다.
마리아의 안내로 골프 숍에 들어갔다. 마리아가 골프채와 골프 용품에 정신이 팔렸다. 놀라운 표정으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선생님. 이 골프 숍에 정말 좋은 것들이 많아요. 제가 마음속으로 그렸던 것 들이예요. 어쩌면 이렇게도 다 모였지요?”
“응. 마리아는 호기심이 참 많구나.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골프는 죽은 공을 살려내는 거잖아.
어떻게 살릴까 생각하지.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결국엔 그 공을 살려내지.“
그때, 사무실 안에서 엘리의 새 언니, 에리카가 나왔다. 엘리한테 들은 마리아를 단박에 알아본 듯 가까이 다가왔다. 엘리가 마리아를 소개했다.
“에리카 언니. 이 친구가 꿈나무 골퍼 마리아예요. 마리아. 이 분은 에리카 프로골퍼 이셔. 마리아를 지도할 선생님이야.”
프로 골퍼와 꿈나무 골퍼의 만남은 서로 통하는 게 많았다. 이어지는 대화마다 공감과 맞장구가 짝을 이루었다. 지켜보던 마리아 아빠 얼굴이 환해졌다.
“에리카 선생님. 이 골프 숍에 오니까 정신이 아찔해요. 골프하는 두 분을 만나서요. 엘리 선생님. 에리카 선생님.
제가 그리던 골프에 뭔가 이루어질 것 같아요. 벽에 전시된 세계적 선수 소랜스탐 골퍼의 드라이브 샷. 저 자세가 저를 꿈틀거리게 해요.“
골프 숍 내부를 둘러보던 마리아 시선이 소랜스탐에게 푹 빠졌다. 에리카가 그런 마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에리카 선생님. 눈이 번쩍 뜨여요. 정말 좋은 골프채와 장비들을 보니까, 제 가슴이 두근거려요.”
뉴질랜드 골프 웨어하우스. 뉴톤에 자리한 골프 웨어하우스는 규모가 엄청 컸고, 골프 전문점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춘 터라 눈에 확 띠었다.
“마리아. 초등학교 4 학년이라고 했지. 자. 이쪽으로 와서 서봐. 이곳은 골프 레슨 시 자세를 잡아 보고 훈련하는 자리야.
먼저 5번 우드를 잡고 샷을 한 번 날려봐. 저 쪽 그물 망 안으로 쳐 넣어봐. 마리아가 평소 하던 대로.”
마리아가 키에 맞는 5번 우드를 골랐다. 골프 스윙의 첫 단계, 셋업에 들어갔다. 드라이버 샷이라 보폭을 어깨 넓이보다 좀 더 벌렸다.
다음은 우드 클럽을 잡는 어드레스 자세를 취했다. 상체를 숙이면서 엉덩이를 뒤로 약간 뺐다. 무릎을 조금 구부렸다.
마리아가 침착하게 클럽을 잡은 두 팔을 지면에 늘어뜨렸다. 두 손과 몸 사이에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를 유지했다.
민재와 에리카 그리고 엘리와 마리아 아빠가 숨을 죽이고 마리아를 지켜봤다. 마리아가 스윙 준비가 끝나자, 백스윙 단계로 테이크어웨이를 시작했다.
클럽을 지면과 평행을 이루며 뒤로 살살 끌어갔다. 백스윙의 끝인 백스윙 탑을 유연하게 그려나갔다.
마리아가 몸을 최대로 회전하고 왼팔이 굽혀지지 않은 채로. 손목의 꺾임 코킹을 마쳤다. 클럽이 지면과 평행을 이뤘다. 다음은 다운스윙으로 들어갔다.
테이크웨이에서 백스윙 탑까지 올라간 궤적을 반대로 했다. 상체를 회전시켜 만든 꼬임 상태 백스윙에서, 힘을 서서히 빼가며 꼬임을 잘 풀었다.
마리아가 서서히 임팩트 시점으로 움직였다. 오른발에 실려 있던 힘을 왼쪽 발과 몸으로 이동했다.
에리카가 팔짱을 낀 채로 마리아 동작의 순간순간을 예의 주시했다. 마리아가 왼쪽 발로 지면을 누르듯 밟자 그 힘을 그대로 느꼈다.
에리카도 왼발로 지면을 눌렀다. 마리아 하체가 타깃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스윙을 이끌었다. 손목 꺾임, 코킹을 잘 유지했다.
망치로 못을 칠 때, 힘만 쓰면 안 되었다. 손목 스냅을 잘 이용해야 못이 잘 들어갔다. 그 원리대로 했다. 에리카가 팔짱 낀 팔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가 집중한 임팩트 이후 골프공은 그물망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클럽이 지면과 수평을 이루며 타깃 방향으로 가는 팔로우스루가 안정적이었다.
스윙의 마지막 단계인 피니쉬로 접어들었다. 마리아 몸의 왼쪽이 축이 되면서 체중이 왼발에 모두 실렸다.
마리아 오른 발은 발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세워져 피니쉬가 되었다. 체중이 충분히 왼쪽으로 실려진 결과였다.
마리아가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2~3초 가량 피니쉬 자세를 유지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슬로우 비디오 보듯 일련의 마리아 샷을 그려봤다.
처음 어드레스와 다운스윙이 균형감 있게 보였다. 이어지는 임팩트와 피니쉬가 별로 흐트러지니 않은 채, 마무리 되었다. 샷도 힘 있고 통쾌했다.
“짝짝짝!”
“짝짝짝!”
드디어 에리카가 손뼉을 쳤다.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옆에 있던 이들도 에리카를 따라서 반응했다. 힘찬 손뼉에 환한 미소까지.
마리아가 비로소 클럽을 놓았다.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피었다. 에리카가 마리아 손을 잡았다. 이어 퍼팅 연습을 해보라고 시켰다.
마리아가 집중하며 퍼팅에 들어갔다. 평소대로 굽힌 허리(어드레스)에 체중을 앞 쪽에 두었다. 허리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툭 쳤다. 볼이 그만 홀 컵에서 빗나갔다. 마리아가 움찔하며 긴장했다.
에리카가 컷!을 외치는 영화감독처럼, 마리아 퍼팅동작을 잠깐 중지시켰다.
“마리아. 잠깐! 허리를 펴고 볼이 가는 걸 보지 마. 어드레스를 끝까지 유지해야 헤드업을 방지 할 수 있어.
스트로크가 너무 빨라. 볼을 때리지 마. 헤드 무게로 퍼팅해. 쭉 밀어 줘.“
몇 번 더 마리아가 퍼팅 연습을 하면서 비슷한 실수를 했다. 그 상태를 지켜본 에리카가 마리아에게 원 포인트 티칭을 했다.
마리아는 묵묵히 들으면서도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이었다. 어디서 받아보지 못한 생생한 현장 수업이었다.
마리아 혼자 독학하다시피 연습벌레로 익혀온 방식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책에서 보거나 말로 들어서는 자기 것이 잘 안 되는 것. 딱 그랬다.
에리카가 마리아 손 그립을 고쳐주고 허리 각도를 조절해주었다. 머리와 눈 시선을 살펴주었다. 에리카의 원 포인트 티칭이 빛을 발했다.
골프 배움에 목말랐는지 에리카의 한 수 한수 가르침에 마리아가 생수를 마시듯 벌컥벌컥 받아 들이켰다.
“마리아. 잘 못 된 자세를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감각이 좋네. 이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야. 몸에 체화시켜야 해. 어릴 때 고정되어야 큰 자산으로 남아.
자. 오늘 가르침을 정리하는 요점이야. 다시 한번 새겨듣고.“
에리카가 중요하다 싶은 티칭 포인트를 다시 들려주었다. 마리아 머리와 가슴에 화석 문장처럼 새겨졌다.
“드라이버는 쇼이고 퍼터는 돈이야. 골프는 볼을 홀에 넣는 것이 중요해. 골프 경기는 멘탈 경기라고. 볼은 움직이지 않아. 그냥 단순히 기다릴 뿐이야.
드라이브 샷을 아무리 잘하고, 퍼팅으로 마무리 못하면 꽝이야. 샷을 실수해도 마지막에 퍼터로 홀컵에 잘 넣는 게 중요해.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샷 집중해서 볼을 홀컵에 넣는 것이거든. 골프에서 스코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국 퍼터야.
퍼팅은 거리감이 우선이니까. 손목을 안 쓰는 일정한 스트록 연습이 중요해.
속도와 힘이 일정해야 하고. 숏 퍼팅은 볼을 똑바로 굴릴 줄 아는 것이지.“
에리카의 원 포인트 티칭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 여러 이야기를 더 나눴다. 민재와 마리아 아빠 그리고 엘리가 감사의 마음을 에리카에게 전했다.
마리아 아빠가 일어나더니 에리카에게 목례했다.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것. 존 민재 강 선생님이 저희 딸 마리아에게 골프 클럽 사주라고 준 돈입니다. 그동안 마리아는 남한테 받은 옛날 골프채를 썼거든요.
마리아 체형에 맞는 골프 클럽하나 사주려고 제가 평소부터 마음먹었지요. 그걸 사 주려고 제가 밤 운전까지 무리하게 하다 그만 사고를 당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존 선생님이 제 대신 이 돈을 마련해 준 겁니다. 귀한 돈입니다. 5천 달러거든요. 그동안 못 쓰고 오늘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돈 범위 안에서 마리아에게 맞는 골프 클럽을 추천해 주셔요. 다음에 필요한 레슨비는 제가 몸 회복되는 대로 벌어서 갚겠습니다.“
에리카와 엘리가 놀란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던 민재를 쳐다봤다.
‘주말 한국 학교 교사한다는 존에게 저런 제자사랑이 있었구나. 아~하!’
옆에서 듣다말고 마리아가 그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민재가 겸연쩍은 얼굴로 일어나 얼른 손수건을 꺼냈다. 마리아 눈물을 닦아 주었다. 꽃무늬 손수건에 무지개 꽃이 피어났다.
에리카가 골프 숍을 둘러보며 마리아에게 맞는 골프 클럽 한 세트를 골랐다.
올블랙 골프 클럽 제품이었다.
골프 천국 뉴질랜드에서 골프 애호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골프 클럽이었다. 특히나 퍼팅의 치트키라 불리는 올블랙 퍼터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다.
더해서 거실에 깔아두고 연습하라고 퍼팅 매트까지 챙겨 주었다. 엘리가 나서서 이번에는 마리아 골프 웨어를 골랐다.
주니어 대회에서 좋은 성적까지 낸다는 마리아에게 어울리는 골프 유니폼도 필요하다 싶어서였다. 엘리가 자기 지갑을 꺼내 별도로 계산했다.
마리아가 마음에 맞는 골프 유니폼을 입고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엘리가 내친김에 한 수 더 떴다. 신발, 모자, 선그라스, 장갑까지 골라 주었다.
“마리아. 이 엘리 선생님도 민재 선생님과 함께 네 후원자야. 스폰서. 에리카 선생님은 네 골프 감독이고. 이제 우리 꿈나무 골퍼가 세상에 빛을 보겠네. ”
세상에나. 이게 웬일인가? 옆에서 지켜보던 마리아 아빠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더는 못 참았는지. 황소 눈물을 쏟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투박한 그의 손 등으로 훔쳤다. 진한 장미 향기가 뉴톤 골프 웨어 하우스 숍에 가득 퍼져나갔다. *
37화 끝(5,294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