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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택으로 살아가는 인생(2207.2023.9.3)
시65:11-1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은 교회가 교역자의 건강을 보살피고 교역자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주일입니다. 교우들 중에 만나면 ‘목사님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습니다. 교역자, 특히 담임목사의 건강 문제는 교회의 발전 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 따라 그 단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 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매일 새벽기도 후에 북천을 7키로 뛴다든지, 토요일 주일에는 남산을 7키로를 주님 내길 예비하시니 라면서 뛰면서 체력을 길러봅니다. 여러분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은퇴할 때까지 건강하게 목회하다가 은퇴하려고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건강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야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건강할 수 있습니다. 교역자만 그런게 아니라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도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행복하게 사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이 행복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매년 해오는 일이기는 하지만 교역자 보건주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목회자를 위하여 진실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놓고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모든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성령의 큰 권능으로 교회와 성도 여러분과 가정과 자녀들과 기업을 마음껏 축복할 수 있도록 마련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목회자가 건강하여 성도의 가정을 위하여 위 내용처럼 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이 되도록 기도할 수 있다면 행복한 목회자와 행복한 성도가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1.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은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고 믿고 살면 행복합니다.
시65:4절‘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여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 백성들, 곧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해서 목자들을 불러 세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그 직임이 맡겨졌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름 붓는 의식을 통해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직무를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내내 그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성도들의 목자로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받은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소명의식, 즉,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고 친히 세움을 받았다고 하는 자기 스스로의 의식과 더불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에 의해서 공적으로 검증된 절차를 걸쳐서 안수를 받음으로써 그 부르심과 세우심을 확증받게 되는 공적 소명이 가장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이 소명의식이 분명해야만 목회자는 목양을 위해서 생명을 걸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흠도많고 참 부족함이 아주 많은 목사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무엇보다도 소명의식이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목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행복한 목사입니다. 왜냐하면 이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기에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거룩한 목양에 제 생명을 걸수 있으며, 이 거룩한 목양과 맡겨진 양무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소명의식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소명의식이 분명해야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무리인 성도들을 향해서 선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 목숨처럼 여길 수 있게 되고, 그 목양을 위해서 비로소 목숨을 걸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교회 이해는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였습니다. 딤전3:15절‘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엡1:23절‘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이니라’바울은 진실로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골1:24절‘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빌2:17절‘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를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바울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고통스럽고 불편한 감옥 생활이지만 자신보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었습니다.
고후12:14절‘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롬9:1절‘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바울은 감옥에 갇힌 자신보다 교회와 성도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로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감옥에 갇힌 바울의 식사와 마실 물과 옷가지를 챙겨주는 도우미였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바울의 감옥 생활은 참으로 힘들고 불편하고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릎 쓰고 헌신적으로 도와줌으로 좀더 수월한 감옥 생활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자신보다 빌립보 교회가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빌립보로 가서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교회와 성도를 더 사랑하는 목회자 바울의 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히13:17에도 목회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 인 것 같이 하느니라’, 골1:24절‘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목회자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회자는 택함 받았다는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즉 소명 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철저한 소명감이 없으면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가 어렵다고 합니다. 목회를 소명의식이 없이 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소명감을 가지고 하면, 목회가 쉽고, 즐겁고, 귀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자기의 하는 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굶어도 좋다’라고 생각하며 자기 일에 만족합니다. 이 일로 죽어도 영광으로 압니다. 하는 일이 쉽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기르는 것이 어려운 줄 모르고 쉽게 기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힘듭니다. 목회는 쉬운 것입니다. 세우신 분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므로 쉽고 가볍습니다. 목회자는 하는 일이 쉽고 삯꾼은 힘듭니다.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 일 이상 더 큰 행복과 만족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일에서 최고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물론이고, 모든 성도들도 철저하게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면, 일을 해도 귀찮고 힘들고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쉬울 뿐만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하면 건강하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4절‘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다. 주의 집,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겠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이 저는 참 은혜가 되고 좋습니다. 사실 목회자는 주님의 뜰, 주의 성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택함 받은 모든 성도들은 시84:10절‘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은 목회자이던, 택함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이처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시인은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에서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로 살며, 하나님이 맡기신 각자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 나갈 때,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은 주님만을 의지하며 교회를 세워나갈 때 행복합니다.
시65:5절‘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미의 대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한하지 않고,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신 광대한 신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오, 우리가 의지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의지할 것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사랑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길임을 똑똑히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렘17:7절‘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지한다’,‘의뢰한다’는 말은 ‘믿고 맡긴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꾸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을 것이 못됩니다. 왜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더위가 와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디모데라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회자가 된 이면에는 좋은 동역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 받는 교회는 첫째로 목사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좋은 교인을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교회는 훌륭한 목사와 좋은 교인들의 합작 품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믿음의 아들된 디모데라는 신실한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자주 디모데를 ‘신실한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뜻이 통하는 동역 자’이며, ‘오직 주의 일을 구하는 자’였으며,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동역 자’였습니다. 바울이 진실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였다면 디모데는 자식이 아비를 닮듯이 바울을 닮아 함께 주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빌1:23절‘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매를 맞았고, 멸시를 받았고,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영적인 아버지인 바울과 함께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디모데가 열심히 감옥에 갇힌 바울의 뒷바라지하고 있을 때 빌립보로 가라는 바울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가서 빌립보 교회 형편이 어떤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목회자 바울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바울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자식이 아비의 마음을 이해하고 순종하듯이 바울의 분부를 따랐습니다.
대책 없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로마에서 빌립보까지의 거리가 800마일입니다. 우리 칫수로 3천2백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삼천2백리길...상상이나 됩니까? 목회자 바울에게는 오직 순종하는, 대책 없이 함께 수고하는 동역자가 있었기에 승리의 목회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누가 대책 없는 목사님의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겠습니까?
에바브로디도라는 생명 바친 좋은 동역 자도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돌보는 또 다른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요, 나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였습니다. 교회의 대표로 뽑혀서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하여 교회의 헌금을 가지고 로마까지 달려왔습니다. 3천 2백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걸어서, 낙타를 타고, 심신이 지치도록 오직 바울의 쓸 것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에바브로디도는 죽을 각오로 바울을 보살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병이 났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먼 여정이었기에 탈진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바울이 갇혀있는 감옥 근처에 머물면서 바울에게 식사와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병이 들었는데 죽게 되었습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그런데 에바브로디도의 관심은 자신의 지도자 바울이었습니다. 자기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가 근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 자신 때문에 ‘오히려 교회를 근심하게 했다’고 마음 아파하고 심히 근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고 오직 목회자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사는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건진 그에게 다시 빌립보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겨우 몸을 회복하고 일어섰는데....다시 머나먼 여행길에 나서야 했습니다.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강점은 비록 피곤하고 지쳤지만 주님이 하라고 하시면 ‘예’하고 다시 힘을 내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게는 멋있는 동역자들이 여럿이 있었습니다. 롬16장에 보면 뵈뵈는 나의 보호자였다고 했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동역 자들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를 위하여 목회자인 김영윤목사님을 위해 뵈뵈처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처럼 생명까지도 바쳐 함께 주의 일을 하는 동역자가 되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 행복한 성도로 살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십시오.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분명히 아십시오. 세상 것들은 다 변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제대로 주님 주신 일을 할 수 있고, 또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날마다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65:4절‘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 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를 그냥 아무데나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하십니다. 여기서 ‘가까이 오게 하신다’는 것은 지성소를 기준으로 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며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생활을 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생활’을 합니다. 결국 이것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서로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둘째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혼자서만 알기에는 몹시도 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삶의 변화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작은 사랑을 축복하셔서 큰 복과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 점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눌 때, 우리만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 중에 함께하셔서 ‘우리의 부족한 사랑이 열 배도 되게 하시고, 백 배도 되게 하시는’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 중심으로 뭉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 안에서 성령의 생수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불타는 사막을 횡단할 수 있으며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행진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바위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오늘날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려면 이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반드시 생명의 말씀중심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흘러나오는 성령의 은혜가 ‘가족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것’입니다.
시65:5절‘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하나님의 축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로 구원의 축복을 먼저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죄에서 건지는‘이것입니다. 나머지는 그 다음에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이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모두 파괴시켜’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파괴된 세상을 부수어버리고 얼마든지 새로운 세계를 만드실 수도’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아까운 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있는 인간들 중에서 택한 자들을 모두 구원하시기까지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3.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은 받은 복으로 인해 목회자를 돕고 살면 행복합니다.
9-13절은 온 땅에 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하나님이시고, 피조물을 질서 있게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가 모든 사람의 육체적인 삶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무한정으로 이 세상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시65:9절‘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물’입니다. 물만 잘 공급되면, 얼마든지 농사를 많이 지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위에 바로 서기만 하면 무한정 복을 내려주십니다.
여기서 ‘땅을 돌본다’는 것은 땅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나 동식물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ok’하시기만 하면 온 세상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비가 오지 않아서 갈라져 있던 들판이 물바다가 됩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강’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에덴에서 흘러내리던 그 강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축복을 내리시는데 이것이 곧 부흥의 역사입니다.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나면 사회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즉 ‘도둑질하고 술 퍼마시고 패 싸움을 하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사회 교육이나 병원시설 등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강에서 시작된 은혜가 온 세상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된 생수의 강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구약의 성전이 아닙니다. 구약의 성전은 바벨론 군대에게 이미 파괴되었습니다. 즉 새로 새워질 성전은 신약의 성전인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위에 올바로 섰을 때, 그 문지방에서부터 조금씩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즉 예배 중에 조금씩 성령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마음속의 아주 작은 감동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점점 더 커지고, 풍성해지는데, 나중에는 가정도 변하고, 직장도 변합니다. 온 땅에 물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65:10절‘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는 것이나 이랑을 평평하게 하고 단비로 땅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모두 농사를 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직접 농사를 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농사를 지어주시는 이유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못해서 땅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도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못해서 농사를 지을 힘이 없든지, 농사짓는 법을 다 잊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직접 우리의 농사를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만 따라서 하면 됩니다.
시65:11-12절‘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은택’은 은혜와 혜택이라는 뜻입니다.‘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 년 내내 은택을 베풀어주신다는 뜻입니다.‘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려 우리의 한 해를 영광스럽게 꾸며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의 2023년을 은택으로 관 씌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해를 관 씌운다는 것은 일 년 농사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다른 사람들보다 월동하게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또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삭은 흉년이 들었을 때,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소출을 백배나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목축에도 기쁨이 있으니까 어느 곳에 가든지 형통하고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시65:13절‘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그 즐거운 외침과 노랫소리가 저절로, 그리고 힘 있게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듣기만 할 뿐 아니라 여러분이 바로 즐겁게 외치는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3장 ‘기뻐하며 경배하세’이 찬송의 2절은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한다고 노래합니다.
땅과 하늘 만물들이 주의 솜씨 빛내고, 별과 천사 노래 소리 끊임없이 드높아
물과 숲과 산과 골짝 들판이나 바다나, 모든 만물 주의 사랑 기뻐 찬양하여라
그리고 4절은 우리도 그와 같은 찬양을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
새벽별의 노래 따라 힘찬 찬송 부르니, 주의 사랑 줄이 되어 한 맘 되게 하시네
노래하며 행진하여 싸움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높이 불러 주께 영광 돌리세
성도 여러분, 2023년은 찬양하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 새벽기도회 시간, 속회 시간을 기다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 응답하시는 주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 사시기 바랍니다. 성전 중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성전에 자주 출입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들에게 전하기에 힘쓰며 사시기 바랍니다. 창조신앙을 새롭게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택으로 관 씌워주시는 2023년, 일 년 내내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모든 곳에 넘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른 믿음에 굳게 서 있을 때, 한없이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난과 고통을 주실 때는 풍년보다 더 귀한 영적인 축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질적인 풍년이든, 영적인 풍년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올바른 생명의 말씀에 서 있음이 확인이 되면, 축복받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생명의 말씀에만 서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자동적으로 넘치게 될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시128편에‘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성도의 행복이 무엇인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세상의 것들을 많이 얻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주신 복과 평강을 헤아려 보고, 늘 주님을 찬양하며 목회자를 돕고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목회자를 섬기고 돕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직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의 좋은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를 어떻게 도울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귀히 여기고 목회자를 바로 이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고전10: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또 교회나 목회자를 업신여겨서도 안됩니다. 고전11:22‘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를 위하여 좋은 동역자가 되도록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목회자를 위하여 항상 기도해드려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를 섬기시는 성도라면 목사님이 바울과 같은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고 날마다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금식을 해서라도 특별히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주 그의 편지에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 여러분의 기도를 먹고 힘있게 능력 있게 사랑을 가지고 목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히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필요하다면 목회자의 목숨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 자신 있게 일하십시오. 우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합니다. 심적으로 편안하게, 육신이 건강하게,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풍성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골1: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앞으로 더욱 귀하게 쓰임을 받으실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잘 간수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방치하게 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고 합니다. ‘있을 때 잘해’ 하는 노랫말처럼 건강도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합니다. 교역자는 항상 헌신과 희생에 대해 설교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건강을 잘 볼보는 일이 마치 하나님께 죄송한 것처럼 여기고, 오직 사명과 헌신, 희생을 우선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적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지신의 건강을 뒤로 미루고 교회와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는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목회자의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건강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목회자는 목회활동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는 건강에 최대의 적입니다. 딤전5:23에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권면을 합니다. 연소한 디모데가 목회하면서 사역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아서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건강에 대한 생각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육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잘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이 피곤 하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늘 긴장하고 대기하는 삶이 목회자의 삶입니다. 과로에는 휴식 외에 다른 처방이 없습니다. 잠17:22에‘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싸우는 것 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더 힘이 듭니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으면 목회자는 더욱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갈6:6절‘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는 말씀을 듣고 우리 함께 행복한 목회와 행복한 신앙생활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목회자에게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여러분이 주안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은택으로 사는 인생들이라는 믿음을 갖고 저는 행복한 목회자가 되고, 여러분은 행복한 성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택해 주셨다는 확실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해 나갑시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이나 어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삽시다.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평강의 복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주님의 은택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목회자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택으로 인해서 경영하는 사업체마다 번영하게 되고, 속한 직장에서 형통하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복된 결실을 거두어 가는 삶이 되고 우리가 있는 곳에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복을 누리는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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