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내 5일노점장 장면
자유시장을 살리자
(총론)
나는 충주발전을위한 봉사일에 많은 시일을 종사하여 왔다. 이중 대부분이 인터넷을 활용한 지역홍보글과 발전분야에 관한 글들을 해당분야에 올리는 일을 주로하여 왔으나 이밖에도 모든정성과 심신을 다해 봉사했으며 가장힘들었고 그래도 현재는 어느정도 결실을걷었다고 자부하는 분야가 있으니 이가 바로 충주자유시장살리기 일환으로 실시된 자유시장내 5일장 분야 이다.
자유시장5일장 문제는 너무 오랜시일을 소비했고 정성을드려 얻은결실 로는 미약하기 그지없으나 그래도 요즘 5일장이 자유시장내에서 실시되는 광경을 바라볼때 감사하기 그지 없다. 나는 지금 많은시일이 지났지만 그동안 드린 정성과 시일이 너무나 소중하여 5일장을 세우기위해 무엇을 했나? 를 지난과거를 도리키며 적어 볼까 한다.
지금에와서 도리켜 보지만 충주자유시장 아케이트상점가 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5일노점장은 패쇄되어가는 자유시장에 활력소를 불어놓았고 점점 빈점포로 비워가던 시장내점포가 되 살아나는 큰 역활을 하고 있다. 자유시장 상인들은 아케이트상가만 건설되면 시장이 활성화 될까 하는 바램으로 아케이트시장에 목숨을 걸다싶히 했었으나 아케이트시장이 건설된 다음에도 아무런 성과는 보이지않고 소이 앞골목이라는 중심 자유시장이 뒷골목마저도 고객의 이동이 없었음을 상기해 볼때 현재5일노점장은 자유시장에 고객유치를위한 고리역활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렇듯 활력소가 되고있는 5일노점장을 유치하기 까지에는 일 특정인들의 지대한 공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는 상점가 상인들은 모든것들이 자연적으로 발생된 것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으며 자유시장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에 어떤인물이 어떤 고난끝에 성사됐나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한 시장을 살리려고 모든것을 헌신했던 한 사람으로서 무감각한 현실을 바라볼때 안타까움을 느끼는 바이다.
물론 공을 치사받기위한 노력은 아니었지만 일반 상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번영회 지도부라는 인사들은 어느정도 알수도 있는데 년말총회 에서는 공로자시상을 하는등 치례를 하고있으나 진작 시장을 살리고자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한 이들에겐 고맙다는 인사 한마듸 없는 현실을 바라볼때 그동안 누구를 위해 이렇듯 봉사했나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도 마음은 흐믓하다.
자유시장 살리기(1)/노점상(풍물장)을 자유시장으로 옮기자
때는 1998년도 부터이다 당시엔 5일장(일면풍물장)이 예성공원주변에서 실시되고 있었다.
당시 장이서는 곳이 자유시장바로 인근이라 장날이면 모든고객들이 5일장으로 몰리는 바람에 자유시장은 고객찾아 보기가 힘들정도로 시장이 페쇄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자유시장 상인들은 5일장이 서지못하도록 해달라는 건의가 잇딸았다.
당시 자유시장번영회에서는 이문제를 해결하고자 만은고민을 한 결과 ~~ (당시 IMF 로인한 실직자가 노점상으로모여있었슴) 어려운처지의 노점상을 몰아내긴 힘들다 생각하고 1998년 2월 1일 충주시청을찾아 이시종충주시장을 면담하고 문제의 노점상을 자유시장으로 옮겨 함께 상생하도록 하여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에 이시종당시충주시장은 흥쾌히 승낙하고 이 사업을 위해 경제과 계장과 담당직원을 선발하여 적극 도와 주겠노라했다. 그러나 도와줌에는 단서가 븥었다. 어디 까지나 노점상 지도부를 설득하여 합의적으로 실행할 것이며 일을실행함에 있어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자유시장 살리기(2)/ 노점상이전 1차시도 실패로 끝나다
자유시장번영회장 이수일과 나 김광영은 이에 감사를 표하고 자유시장 상인의 바램이 조속히 이행될수 있기를 기 원 했다. 그러나 이일은 처움부터 삐걱 거리기 시작했다. 노점상의 생질을 모른채 목적많을세워 실행 하려 했던 자유시장번영회나 충주시장의 시도 도 마음대로 먹혀 들지가 않았다.
당시의 노점상현황은 예성교를 기점으로 예성공원주변에서 풍물장 이란 이름으로 크게 형성되고 있었으나 자유시장에서도 시장살리기 일환으로 노점상을 유치하고있었음으로 예성교에서 제일로타리와 자유시장 1~2구역에서 충인5일장 이란 이름으로 노점상이 실시되고 있었다.
이시종충주시장의 승낙이 있은후 시청직원들은 풍물5일장에 파견되어 풍물장 지도부와 접속을 했고 이전을 추진 하였으나 추진에는 어려움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풍물장지도부는 장자리를 놓고 많은노점세를 걷어내는가 하면 심지어는 좋은 노점자리를 고액(700만원까지)에 매각하는등 행패가 극심했던 때인지라 노점지도부가 이자리를 옮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으로 옮길시 부정수입이 차단되는것을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
이렇듯 긍정적인 생각으로 추진하려는 자유시장번영회나 충주시청과 부정적 수입을 염두에 둔 풍물장노점상 지도부의 생각이 정 반대의 입장이니 일이 추진될리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약 1년이란 세월이 흘렸고 열심히 노력들은 해었지만 허사가 되었고 심지어는 시청직원이 노점상지도부원에게 포섭되었다는 유머가 나돌기도 했다.
자유시장 살리기(3)/주차장을 만들자
노점상이전 시도가 실패로 마감되자 시청직원들은 원대복귀했고 시청의 힘을빌려 시도했던 번영회의 방안이 아무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후 자유시장번영회는 충인노점상우회와 협력하여 자유시장의 노점을 활성화 시키고 자유시장번영을 코꾀하고자 수많은 노력을 지속하였다.
이에 연결된 시장살리기 다음사업이 시장내 주차장건설 이었다. 재래시장의 주차장문제는 무엇보다도 시급했기 때문 이었다. 나는 이수일번영회장에게 주차장건설사업을 추진하기위한 권고를 했고 이를 추진기위해 충인동내 각단체장 회의를 소집하였다. 당시 번영회는 명분일뿐 사실 이수일번영회장과 김광영재산관리위원장인 2인이 모든일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역활을 하여왔었다.
이런관계로 명분뿐인 번영회로서는 인지도나 자금면에서 취약하여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고 그저 시장을 살리고자하는 의협심에서 일을 하여 왔었던 것이다. 이번 단체장모집도 주관은 번영회가 했으나 자금은 동발전협의회인 "인의회" 에서 부담하기로 하고 추진한 것이었다.
대상은 개발위원장 조범재. 충인새마을금고이사장 임경식. 인의회장 이인제. 번영회장 이수일.재산관리위원장 김광영. 통우회장 이상구. 바르게살기부위원장 한직전 등 이었고 날자는 2000년 8월7일 오후5시 이고 회의장소는 충인새마을금고 이사장실에서 실행됐다. 주제는 지역상가발전을위해 주차장조성사업을 추진할것이며 이를 위해 충주시청에 건의서. 진정서. 단체장과 시장과의 면담 을 추진하고 이래도 부결될시 데모등 절차를 높혀가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조범재 개발위원장은 자신이 동개발위원장이니 우선 동개발위원회에서 추진토록 하여 달라고 했다. 그래도 시행이 않될경우 그후 절차로 시행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제의에 흥쾌히 동의해고 열쇠는 조범재 개발위원장 에게 넘어갔다. 우리의뜻이 목적달성이지 과정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일 저녁식사경비는 임경식이사장이 기븐이 좋다며 금고에서 부담했다.
다음 동개발위원회가 실시됐다. 당시나도 동개발위원이었기에 회의에 참석했다.
약속대로 조범재위원장은 천변을 복개 주차장조성사업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당시 지역시의원인 장희승의원은 즉시 거부의사를 보였다. 내용은 현재 환경련에서 현재 있는 복계도 철거를하자고 하는판인데 본안은 도저히 추진될수 없는 안이니 없는것으로 하는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에 아무도 항의하는이가 없다.
나는 황당했다. 주차장조성사업은 동의 숙원사업이고 동민 모두가 원하는 것인데 시의원의 말한마듸로 시장에게 건의한번 못하고 묵살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 할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발언을 통해 강력히 황의했고 동민 모두의 숙원사업이 한번 건의조차못한체 본 위원회에서 묵살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행위이다 라고 항의했다.
나의 강력한 황의에 본안은 다시재론됐고 회의결과는 우선 동장과 개발위원장.시의원 3인이 먼저 충주시장을 접견하여 본안을 제안하도록 하자는 쪽으로 정리 됐고 회의는 끝났다.
(4)주차장문제 해결을 위한 충주시장 방문
그후 몇일후 였다. 나는 동장과 이웃에있는 시장약국에서 만났다. 시장말이 3인이 만나기전에 시장과 접견할 기회가 있어 내용울 건의 했는데 이시종시장말이 될수 없는 건의라며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건의가 단번에 승낙되리란 생각도 안했지만 좀 허전했다. 그래서 동단체장 회의에서 결의된대로 추진도 불사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을부렵 어느날 이었다.
충주시장과 시청각부처의 국과장들이 동사무소를 방문한것이다. 내용은 건의한 주차장문제며 주민과의 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대화는 충인새마을금과 회의실에서 실시됐다. 시장을비롯한 시청관계자들은 회의전 주민이건의한 주차장조성문제를 살펴보기위해 우리가 제시한 교현천변을 시찰했다.
접견 회의는 오후3시경 실시됐다. 이시종시장은 동민이 추구하는 현황사항을 말해보라했고 이에 주민대표로 조범재 개발위원장이 주민숙원사업으로 주차장문제와 5일장문제를 제의했다.
먼저 주차장문제가 논의됐다. 천변을 복계하여 주차장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에 충주시장은 다음과같은 답변을 했다. 천변에 주차장을 조성할 경우 완전복계는 할수 없고 1/3 정도를 복계하여 건설하여야 하는데 이를경우 주차할 차량수자와 주차장 조성경비를 비교해 볼때 비용과다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환경련의 반대가 극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추진할경우 경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시의회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데 이과정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복계말고 다른대안은 어떠냐고 했다. 즉, 시장주변 주택을 사서 주차장을 조성할 경우 경비절약도 되고 환경련의 반대도 없어 추진하기가 수월 하다는 것이었다.
주민대표들은 이런 대안에 좋다고 합의 했고 주차장부지로는 충인.의동의 중간지점인 천변에 건설하자는데 합의 했다.
(5)풍물시장이전 문제 재론되다.
다음은 풍물시장이전 문제었다. 충주시장은 시에서 노점을 이전하려고 1년간이나 노력 했으나 성사되지못했는데 되겠느냐? 라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결과에대해 잘못됐음을 지적했고 지난번 실시한 노점장이전문제는 잘못 시행 되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 했다. 노점상지도부와 우리의 생각에는 추구하는 생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설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했고 다음과같이 제안했다.
첫 째 : 어떠한 경우에도 노점상지도부와 만나서는 안된다.
둘 째 : 충주시청은 일정한날자와 이전 장소를 알리는 현수막과 유인물을 뿌려 기한내에 이전토록 설득하고 기한내에 이전안할시엔 공격력을 동원 강제 이전시킨다고 해야 한다.
셋 째 : 단, 이전장소는 지정하지말고 기존시장 어느시장도 좋으니 장수는 자유라고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충주시장은 흥쾌히 확답했고 이는 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6)주차장조성문제 장소변경되다.
시장면담후 동개발위원회가 열렸다. 그런데 주차장조성의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거론된 장소는 동 중간지역으로 충일교회 및 천변이었는데 새로변경된 장소는 현대타운뒤 라 는 것이다.
이유는 처움지정된장소는 현재민간주차장이 존재해 있어 큰 시너지효과가 없으나 현대상가뒤 로 할경우 현대상가도 활성화 시키고 주차장효과도 크다는 조범재위원장의 주장 이었다.
나는 그들의 주장에 변경된 안은 충의동주민엔 효과가 있지만 충인동주민들은 이용할수가 없으니 형평상 맞지않는다고 지적하니 조 위원장은 우리동래에 건설되면됐지 아래윗 동래는 왜 따지느냐? 며 짜증을 낸다.
나는 그렇다면 규모는 작지만 충인동주민을 위해 효성교회부지를 인수 주차장으로 함께 건설할것을 주장했다.
개발위원장은 나의의견에 동조하겠노라고 합의하고 회의를 마추었으나 후에 알아보니 내가 제의한 효성교회부지는 제외된채 현대상가뒤편의 부지의 주차장조성 만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유는 한꺼번에 두개의 주차장을 만들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시작은 번영회에서 추진했으나 건설은 자유시장과 멀리 떨어진 뒷편으로 타의에의해 건설되게 된 셈이었다.
이수일번영회장과 나 김광영은 이후에도 효성교회부지를 인수하여 주차장을 만들어 줄것을 충주시청에 수없이 건의했고 충주시장의 동민과의대화 에서도 주차장건설을 주장하는등 각고의 노력을 다했으나 잘 시행되질 않았다 이유는 주차할공간과 택지매입가격을 비교해 볼때 경제적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7)자유시장 살리기/ 노점상이전 2차시도
시장과의면담후 이시종충주시장은 나 김광영이 제의한대로 행동을 개시했다. 예성공원주변에는 노점을옮기라는 현수막이 걸어졌고 유인물을 배포하여 기존시장으로 노점을 옮기라 했다. 한편 충주시의 건장에 따라 자유시장 쪽 에서도 충인교 옆에 "노점상여러분의 오신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그런데 예상은 했던 바이지만 풍물장 지도부의 항의와 발난이 대단했다. 우리쪽에서 내 걸었던 현수막은 풍물장지도부원들에 의해 당일 제거됐고 이런 모든 시행이 자유시장번영회의 시도에서 발생했다고 하여 자유시장을 적대시 했고 노점장소가 이전될시 지금까지 탈취해온 소득의 끈이 끈어진다 생각했던지 발난이 대단했다.
노점상 관리부는 충주시청이 어려운처지의 노점상을 없애려 한다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했고 노점상들을 몰아 충주시청으로 가서 데모를 하는등 난동을 피웠다. 이러다보니 각 언론들이 몰려오고 취재소동이났고 방송에서도 이를 방영하게 되니 풍물노점상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예성공원주변의 노점행위는 더이상 유지 할수 없는 처지에 노이게 됐다.
이런형평에 도달하니 충주시청에서도 어떤방법이든 잘못 시행되던 풍물장을 옮겨야만 했고 이를 강행 하려니 풍물장 상인 지도부의 반항은 점차 심하여만 가고 그렇다하여 강제철거를 시키자니 잘못될시 민심의 요동으로 표를 먹고사는 민선시장 으로서의 입지가 위험해질까 우려도되니 강압을 쓸수도 없는 시청으로서의 입장이 난처해저 갔다.
(8)이시종,충주시장 자유시장상인과의약속 저버리다.
일이 이렇게 되니 충주시도 입장이 난처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이시종시장은 자유시장상인과의 약속(절대로 풍물장지도부와는 만나지않는다) 라는 약속을 저버리고 풍물장지도부와 접견하여 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주제의 문제는 현재의 형편으로는 현재의 노점장소는 더이상 유지할수 없으니 어느곳이러든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풍물장지도부도 이를 인식했는지 시장에게 대안을 내 놓았다. 내용은 자유시장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장소로는 새로 조성된 충의동 주차장 에서 5일장을 할수 있도록 하여 달라 는 내용 이었다.
이시종시장도 더이상 지연시킬수만도 없는 형편이고 하니 이때부터 충주시장은 자유시장번영회와는 외면하고 풍물상인지도부와의 의견절충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형편에서 만들어낸 합의된 대안이
○이전장소는 충의동천변 새로건설된 주차장과 옆도로 를 사용한다.
○이전함에는 풍물상우회와 자유시장내 있는 충인상우회 노점상도 함께 이전한다.
○이전과정과 내용 장소등 풍물장의 이전을 충주시보와 언론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여준다.
등 3개항목 이었다.
충주시청은 긍여지책에서 불가피한 조치었다라 말하고 있지만 자유시장측에선 대단한 배신행위인 것이었다.
혹을떼려다 붙인격이 된셈이다. 시장번영회는 자유시장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5일노점장을 옮겨 달라 요청한 것인데 오히려 지금까지 힘드려 유치해놓은 시장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노점상 까지 모두 몰아내어 풍물장과 합류 시킨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번영회에선 풍물장이 자유시장으로 오지않고 충의주차장 으로 간다 할지라도 어차피 이곳 자유시장에도 충인상우회란 노점이 이미 실시되고 있었기에 시장번영에는 문제가 없다 생각 하였으나 이제는 다르다 충주시청이 적극적으로 풍물장을 돕고 나오니 자유시장으로선 오히려 건드리지 말고 그냥 있는것만도 못한 입장에 서 있다.
(9)자유시장 상인들 충주시청 항의방문 하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충주시청의 행위에 자유시장상인들은 망연자실 하였으며 드디어 우리상인대표들은 충주시청을 방문 이시종시장과의 접견을 요총하게 된다. 번영회는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에 이시종시장과 행동을 함께 하여온 조범재동개발위원장과 함께 시청방문할것을 요청 했는데 조위원장은 가지안으려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끈질긴 설득끝에 함께 가긴하겠지만 단서가 붙었다.
충인상우회를 함께 몰아내는문제는 건의하지만 이전자체를 문제삼지않겠다는 조항이다. 그럴것이 동개발위원장인 자신이 이미 이시종시장과 풍물장 옮기는 문제에 관해 시장상인대표들과는 아무런 상의조차 없이 자신이 충인동대표로 합의해 놓은 상태이었기 때문 이었다. 이시종시장은 이렇듯 상인들을 외면한채 암적진행을 하였으며 이전 자체를 합리화 시켰던 것이었다.
충주시청 시장실에서 시장대표들과 충주시장의 면담이 이뤄졌다. 원탁책상에 시장과 상인대표들이 돌려 앉자 대담은 시작 됐다. 시장을 중심에 두고 주변엔 병풍처럼 국과장들이 둘러 않자 있었다. 시장과의 대화는 주로 나 김광영이 하였는데 나는 이시장에게 우리와의 약속을 깨고 역으로간 이유를 질문 했다.
이에 이시종시장답변은 이러했다.
번영회의 요청대로 일을 추진했으나 풍물장에서 듣지 않이했고 강제 철거를 하려 했으나 이럴경우 법의 조항에 따라야 하는데 노점상을 몰아낼 특단의 법은 없고 단 도로교통법위반을 역어 무단도로점유로 단속을 하여야 하는데 이럴경우 시장내 노점상 까지 모두 함께 적용되어 그들만을 단속할수가 없어 부득히 그들의 말을 들어 줄수 밖에 없었다. 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어째서 시장과 일반상용도로 를 같이 역는다는것은 말이 되지않느냐 수백년째 이어온 시장과 학교주변의 도로를 같이 취급할수 있는 것이냐? 반문하였으나 시장말은 한결같이 같은 대답 뿐이 었다. 즉, 상식적으론 그러하나 상식에의거 단속을 시행할순 없는 일이고 단속을 하려면 법의조항을 따라야 하기 때문 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 었다.
그래서 나는 강수를 썼다. 그렇게 법의 논리만 내세운다면 법대로 노점상 모두를 단속하도록 하라 했다.
그러자 이시장은 버럭 화를 내면서 " 뭐요" 하면서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주변에 앉자있던 국과장들이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마치 군주정치를 보는 늦낌 이었다. 이러한 행동에 질문하던 나도 깜짝 놀랐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후 나는 재차 물었다. 왜 소리는 지르는 것입니까? 하니 이시장 왈 어처구니없는 말을했기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무엇이 어처구니없는냐 시장님께서 법 법 하면서 말도 않되는 답변으로만 대처하고 있기에 그렇게 법을 찾는다면 법대로 하라 한것인데 무엇이 잘못이냐? 라 하니 이시장은 한동안 잠잠 하다.
그러다 한참이 지난뒤 이시장은 경제국장에게 풍물장만 이전시키고 시장내에 있는 충인노점상우회는 존속 시키는 방법을 찾아 보라고 한다. 이에 어렵겠지만 그리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받고서 우리들의 대화는 끝을 맺고 시장으로 돌아왔다.
(10)충인노점상우회의 찬반특표에서 95% 이전안한다.
일이 이쯤 되었으나 모든일이 합리적으로 시행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풍물상우회는 충인노점상을 함께 끌고 가려 했고 유리 번영회는 이들을 붙잡으려는 노려의 한판이 벌어 졌다. 이런가운데에서 충주시와 풍물상우회는 모든것을 들어준다는 약속하에 이전날자가 정해졌다. 날자는 2001년 3월 5일장날을 기해 이전한다는 것이었다.
이전하기 바로 전 장날 2 월25일장 이었다. 자유시장번영회는 충인노점상을 찾아다니며 이전하지 말아줄것을 존용했고 이들은 우리들의 요청에 함께 행동하기로 약속 했다. 그러나 충인지도부 몇명은 풍물상우회에 포섭되어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형평이니 지도부와 상인간의 이견이 있었다.
일이 이쯤되니 충인상우회는 이전문제를 대안으로 목화예식장에서 찬.반 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95%가 이전않겠다는 표이고 이전에 합류하겠다는표는 겨우5%내 즉 풍물상우회에 표섭된 충인상우회지도부 인원 뿐이었다. 이렇게 되니 충인노점지도부에서도 어찌할수 없이 이전을 안하는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를 풍물상우회에 알렸다.
일이 이지경에 이르자 문제는 풍물상우회에서 일어났다. 충인노점상우회가 함께 이전하지 않을경우 풍물상우회만 이전할시 스스로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속 회의를 여는등 분주한 시간을 보낸뒤 충인노점상이이 합류하지않는 홀로의 이전은 할수 없다는 쪽으로 경정을 하고 말았다.
이날오후 2001년 2월28일 이시종 충주시장은 경제국장과경제과장.계장,담당직원을 대동하여 이곳 5일장을 찾았다. 목적은 다음장 3월5일 이전하도록되어있는 현항이 잘 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 이었다. 시청일행은 시장을 거처 풍물상우회 사무실로 들어 갔다 . 일은 여기서 터졌다.
이전추진이 잘되는가 확인차 들린 시청일행에게 풍물상우회측은 충인노점상우회가 함께하여주지 않는관계로 이전을 할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 이다. 시장일행은 2시간이상 이들을 설득하였으나 요지부동이자 이시장은 번저 자리를터났고 이장섭과장과 담당계원은 남아서 계속 설득하였으나 역시 성사되진 않았다.
일이 이쯤되자 화가난 이장섭경제과장은 계원과함께 지업사로 나를 찾아왔다. 장시간 얼마나 시달렸는지 얼굴이 핼숙하였고 찌그러져 있었다. 이과장은 나를보고 못마당한 언사를 토한다. 다된죽에 번영회가 코를 빠 트렸다는 것이다. 이렇게되니 상대언성아 고울리가 없다. 올거니 그르거니 이과장과 나는 언담이 오고갔다.
이장섭과장은 힘들려 겨우 풍물장의 이전을 만들었는데 자유시장에서 망쳤다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화가났다. 과장님! 물론 일이뜻대로 안돼 속상한것은 알겠으나 그렇다하여 우리에게 그럴순 없는것이 아니냐? 시청에선 일추진에 힘들다하여 화를내고 있지만 재래상인에게는 죽느냐 사느냐 의 막다른고비임을 왜? 모르느냐 라고 만문했다. 이렇듯 한동안 옥신각신하다 이과장은 밖으로 나가며 "어디두고보자" 라며 막소리를 하곤 떠나갔다.
(11)시청과 풍물노점상인 파라다이스예식장에서 비밀접속하다.
2001년 3월 2일 오후였다. 자유시장에서 노점을하는 상인들이 금광지업사로 나를보러 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럴것이 이들은 지금쯤 다지역에서 장을보고 있어야 할 분들이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아니 아찌된 일이냐? 고 물으니 이들은 파라다이예식장으로 모여라는 전화를받고 이곳에서 회합을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를보고는 먼저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 라고 반문하니 일인즉, 충주시청에서 전화로 모든노점상인들을 소집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곳 모임에는 풍물상인과 충인노점상인 전부와 시청측에서 김옥중경제국장. 이장섭과장을 위시한 해당계장과 직원등이 참석하였는데 김옥중국장이 왈 충인노점상인들에게 이번이전에 함께 이전하지 않을경우 공격력을 동원하여 장을보지못하도록 쓰러내겠다고 협박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국수를 사주면서 개개인에게 함께 이전하겠다는 확답 사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상인들은 이런형편이어서 어찌할수가 없이 동의를 하였다 한다. 노점상인들은 우리보고 그동안 우리노점상인들에게 참으로 잘해 주시고 하여 이곳에서 계속 노점을 보려 했으나 우리들도 먹고살아야 하고 번영회에서 우리를 도와준다 하였지만 충주시청에서 밀어낸다 하는데 어찌 하겠느냐며 죄송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쩌구나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충주시청에서 이런 꼼수를 쓰다니 그행동이 치졸하고 어처구니 없었으나 이미 모든일은 깨지고 만 현재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힘없는 노점상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모든 것은 힘있는자앞에 힘없는자들은 무너지게 돼 있는 것이 세상사 인것을....
우리 번영회로서는 참으로 비참한 노릇이었으나 어찌 하겠는가. 그래서 찾아주고 미안하다는 노점상인들에게 나닙니다. 그동안 함께 하여주어서 감사했습니다. 하며 노점상인들을 위로해줄수 밖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12)풍물노점상들 이전하던날
2001년 3월 5일 드디어 노점상들이 이전하는 날이왔다. 모두들 이전들을하였고 시장은 어수선한데 그래도 몇몇의 충인상우회 노점상인은 이전을 하지않고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겠다며 그냥 이곳에 장을 펴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웠고 함께 하여준 이들이 감사했다.
그런데 일은 다음장에 터졌다. 나는 모 지역에 거래차 출타를했다 오후 돌아와보니 남아있는 노점상인들이 수난을 격고 있었다. 이전한 노점단속반 이란자들이 이곳에 남아있는 노점상들에게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들의 광주리를 발로 걷어차느가 하면 잔여노점상들에겐 함께 행동하지않았다며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에는 이곳에서 함께 노점을하던 충인지도부요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는 화가 났나 그래서 이들에게 다가와 호통을쳤다 너희들이 사람이냐? 그동안 함께 하여온 세월이 있는데 도와주진 못할 망정 의리를보이며 함께 하겠다는 이들노점상인들에게 행패라니 이럴수 있느냐? 하며 호통을치니 이들은 그냥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이런후에도 남아있는 노점상들은 잘해 보자며 우리와 모든활동을 함께 하여 주었다. 우리번영회에서도 약간은 안도의 숨을쉬었다. 이렇게만 돼도 잘 가꾸고 노력하면 나름대로 장이 성사될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이도 멀리가지 못했다. 어떤날 이들은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이들 노점상들은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으로 옮겨가며 장을 보고 있는데 이곳 충주에선 자유시장번영회에서 돌봐주시어 문제가 없으나 타지역에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노점지도부라는 캉패들이 몰려와 노점상끼리 의리가 없다며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남아있던 노점상마저 모두 이전하고마는 지경에 놓이고 말았다.
(13)이시종시장, 자유시장에사과/숙원사업 들어주겠다며 접근시도
자유시장번영회는 충주시장의 약속만을믿고 5일장이전을 추진했으나 이시종시장의 정치적 계산에서의 약속변경으로 인해 전통시장을 살리려고 몸부림첬던 자유시장번영회의 모든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모든정열을 다솟았던 자유시장번영회는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찌하랴 ~~ 모든것은 강육약식 으로 힘없는 번영회의 현실를 실감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어차피 전통시장으로선 자립할 힘이 없고 충주시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을 언제까지나 지난일을 놓고 하소연만할순 없었다. 그래서 어떤 차원이던 충주시와 협상을하고싶었다.
그런데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충주시청 우창영계장이 자유시장을 찾아 왔다.
찾아온 이유는 이시종충주시장의 협상카드를 가지고 온 것이다. 즉, 이시장은 노점장문제는 유감이며 시장의 입장에선 당면과제를 그리처리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시장은 모든카드를놓고 자유시장지도부와 면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표를먹고사는 민선시장인 이시종시장 으로서도 시장상인들과 등을지고 사는것이 자신에게 좋지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번영회로서도 지난일은 어찌됐던 우리의 입장과 일치하는바가 있어 시장과의 면담을 승낙했고 이시장과의 면담은 즉시 이뤄졌다.
(14)이시종충주시장 번영회에 정식사과
면담약속을한후 이시장과 자유시장지도부와의 면담은 충의동에 있는 신흥식육전식당 에서 이뤄졌다.
자유시장측에선 약10여명의 데표가 참석했으며 이시장은 아무도 대동하지않고 혼자서 참석했다. 이시장은 들어오자마자 첫말로 이유야 어찌됐던 노점상문제로 자유시장에 마음을 아프게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리고는 지난일은 어찌할수 없고 때신 그동안 자유시장으로 부터 협조요청을 받았던 숙원사업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리적어간 자유시장숙원사업을 제시했다.
첫째 : 노점5일장은 시장살리기의 필수사업이다. 자유시장에도 5일장을 별도로 실시하려하니 시장님께서 풍물장에 지원해준만큼 자유시장번영회에도 모든지원을 해달라.
둘째 : 수차래 의례했다 거절당한 충인동주차장문제/ 효성교회 부지를 구입하여 주차장을 건설해 달라.
셋째 : 시내버스주정차장 현재 예성공원앞에서 중파앞으로 옮겨달라
넷째 : 자유시장 활성화 를 위한 이벤트자금을 지원해달라. 등 이었고
강성삼씨가 제주도 재래시장을 다녀온적이 있었는데 아케이트시장이 매우 인상적 이었다. 자유시장에도 아케이트시장을 만들어달라. 라고 제의 했다.
이에 이시장은 답변에서
시장활성화를 위한 이벤트자금은 당정 지원해 주겠다.
주차장문제도 함께 노력하여 되도록 하겠다.
버스승강장문제는 상대성이 있으니 완전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중파앞에 승강장을 설치해 주겠다.
그러나 노점장 지원문제는 풍물장과 약속한 문제도 있고하여 곤난하다. 라고 답변했으며
아케이트설치문제는 시간을두고 함께 노력해 보자는 쪽으로 지원약속을 했다.
이시종시장은 처움들어서면서 제일먼저 번영회에 사과 했으며 만남을 마감하는 자리에서도 거듭 사과 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15)노점장 설치를 위해 외부노점상과 접속
자유시장번영회는 시장활성화를 위한 시장과의 약속사업은 추진하기로 하면서 이만으로는 시장이 살아날수 없다고 단정 타지역에서 노점상들을 영입 하기로 계획하고 이용재 노점상이 제시한 경기도 송탄에서 노점상들을 불러 들이기로 했다. 그역활은 노점상 이용재씨가 맡았다.
이렇게 하여 자유시장에서 실시됐다가 이전된 빈자리엔 타지에서 데려온 노점상들이 자리를잡기 시작 했다.
그리고 시장활성화를 위한 이벤트사업도 실시했다. 그러나 워낙 대세가 풍물장쪽으로 쏠려 있는 형편이어라서 빈자리를 채우기도 어려웠으나 정상적으로 노점5일장이 활성화 하기엔 어려움이 만았다.
이렇듯 번영회는 시장활성화사업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계속 했다. 이럭저럭 시장활성화를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을 부렵이었다. 이전전 이곳에서 지도부역활을하던 이재광씨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애기로는 옮겨간 풍물장내에서 지도부간 갈등이 있어 일부세력들을 대등하여 분산을 하려 한다며 자신과 그세력을 자유시장에서 받아달라고 했다.
이런제안에 번영회 로서는 노점장활성화만 된다면 실 오라기라도 잡을 심정 이었기에 반가운 일이면서도 한편 이미 송탄노점상들에게 전권을 내준 입장이어서 일방적인 영입을 허영할수는 없으나 평택노점상과 합류할 방법을 찾아 보자고 했다. 기런후 양 노점상 지도부에게 현 입장을 말하고 화합을 권유했다.
(16)노점상 화합 깨어지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평택노점상지도부와 이재광씨가 데려온 노점상지도부와의 접견이 금가식당 에서 이뤄졌다. 번영회는 이들의 화합을위해 함께 배석하려 했지만 이들노점 지도부들은 번영회의 배석을 원지않아 노점상끼리의 논의가 시작됐다. 약 30`40분가령 지속된 협의는 두세력이 함께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여 송탄 노점상들이 물러감 으로서 노점은 이재광의 주도하에 실시하게 되었다.
이재광은 송탄노점상들이 물러가자 이를 많이하기 위해 별도로 주변 노점상을 상대로 전단을 배포하는등 노점상 유치를 시도했다. 또한 풍물상우회 노점과 세력다틈에 대비하기 위한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곳노점에도 주먹패 들을 영입하여 이들에게 노점상 회장자리를 마끼게 되니 양쪽 노점상들은 본격적인 힘겨누기에 박차를 다한다.
이재광은 예성목욕탕집 건물인 2층건물을 얻어 이곳에서 노점사무실을 꾸미는등 본격적인 노점유치에 나셨다.
이들 양 노점상지도부들은 상호 세과시를 하기도하면서 제법 노점이 형성될것 같은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이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어느정도 노점이 지탱되고 있을무렵 이곳 노점상 회장을 맞고 있던 사람이 경찰에 쫏기는 형평이 되면서 회장부재상황이 되더니 노점을 주도해 왔던 이재광 역시 도망가는 형편이되니 노점지도부는 자연 와해되고 말았다.
(17)노점이전의 댓가로얻은 지역발전
이시장의 화해만남으로 얻은 약속은 그래도 잘 시행되고 있었으니 중파앞의 버스승강장이 세워졌고 지원금으로 시행된 시장 이벤트는 나름대로 실시됐다. 또한 숙원사업의 하나였던 효성교회부지 주차장사업도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장희승 시의원이 앞장서서 주선에 나셨고 이수일번영회장과 김광영은 이 기회를 놓이지 않으려고 충주시청과 효성교회 건축위원장인 홍춘식씨를 번갈라 만나는등 전력을 다했다.
효성교회부지 인수와 주차장건설건은 우리 자유시장상인의 문제 만이 아니라 효성교회 역시 연수동으로 교회를 신축이전 한뒤 자금력에 시달렸으나 구교회의 매각이 되지않아 큰 문제거리로 되어 있었다. 이런 형편이니 효성교회건축위원장인 홍춘식장로는 우리에게 매 달렸고 이수일번영회장과 나 김광영은 이일의 성사를 위해 온갓 노력을 다했다.
이런 노력은 헛되지않아 충주시와 효성교회는 합의적인 적정가격을 정해 부지매각이 이뤄지게된다. 상호가 얻고자하는 바램이 있었기에 노력한 것이지만 효성교회측은 우리에게 매우고마워 했고 효성교회는 감사의 뜻으로 매각에 공이있었던 인물들을 연수동 충주보삼집 으로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하였다.
이초청에 참석한 인사로는 교회측에서 홍춘식건축위원장. 효성교회목사.가 참석했고 초대받은 인사로는 이시종충주시장. 장희승 시의원. 이수일자유시장번영회장.충인동 재산관리위원장 김광영 등 이었다. 이렇듯 초대받은 참석인사만 보더라도 이수일씨와 나 김광영이 이사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알수 있다.
자유시장을 살리려면 5일노점장을 유치해야 했고 노점장을 유치하기위해 온갓 모든정성과 투지를 불살렸던 "5일노점장" 탈도많았고 고통도 많았던 5일노점장은 자유시장번영회라는 이름하에 이수일씨와 나 김광영이 모든정성을 다해 노력했지만 이렇게 되고 마니 허탈 하기도 하고 씁쓸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러설수만은 없는 것이어서 가진방법과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으며 이런와중에 충주상인연합회장인 이봉상회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나니 다음회장으로 충의상가 장재영 회장이 선정됐고 이수일 번영회장은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자유시장은 추진중이던 아케이트시장이 발주되어 건설하게 되니 시장통은 아케이트건설로 복잡했다.
(18)충주상인연합회의 잘못된 운영
신임 장재영회장이 선정되긴 했으나 선발과정부터 문제가 많아서 인지 상인연합회는 삐것거리기 시작 했다.
그도 그럴것이 회장선발과정을 보면 당시 이봉상회장을 연임시키려 했으나 극구 반려 함으로 타 회장을 선발해려 했지만 적합자가 없었던중 처움참석한 충의상가 장영영 을 농담삼아 추천한것이 본인이 해 보겠다고 승락 함으로서 충주상인연합회 회장으로 선임 됐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든면에서 아는바가 없어 모든 업무는 이수일 사무국장이 맡아 했던 것이다.
일이 이라다 보니 회장행세를 하려는 장재영회장과 실무를 담당하는 이수일국사무장간에 갈등이 생기는등 말성도 많았었다.
여기다 더큰 문제는 사무실의 운영관계었다. 수입이란 각 번영회에서 회비로 받은 돈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나 사무실에는 여 사무원1명을 두고 있어 월급이며 사무실 운영등 모든것들이 취약한 형편이니 운영한다는 자체가 억망일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보니 돈만생긴다면 원칙 보다는 모든일들을 수용하니 바로 이로인한 부작용도 많았다.
충주의 기존재래시장이라하면 자유시장. 공설시장. 중앙시장. 남부시장. 무학시장 등이 있었으나 상인연합회가 생긴이후 충주에는 17개나 되는 재래시장이 탄생하게되니 그 이유인즉 이러했다.
모든재래시장들은 시장활성화의 도움을 받으려면 충주시청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지원금을 얻으려면 충주상인연합회가 승인하는 재래시장이 돼야 했다. 그러나 변두리 상가에서는 나름대로 재래시장명칭을 만들어 충주시청 에서 지원금을 받으려 하니 시청은 연회회로 보내고 상인연합회는 신청만 하면 승인을 하여 줌으로서 이곳 저곳 에서 시장을 구성하여 지원금을 타 내려는 상황이 지속 됐다.
원칙대로 하려면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처 재래시장으로로의 적격 과정을 거친후 인정을 하여 주워야 할 것이나 당시 상인연합회는 운영비에 시달리고 있었던 형편 이었으므로 자격조건 등은 살필 여지조차 없이 누구등 와서 상인연합회에 신청만하면 가입을 시켜 주는 형편 이었다. 그것은 가입시 가입급과 월회비를 징수할수 있었기 때문이 있다.
이렇듯 충주중소상인연합회는 처움 발족시엔 큰 기대속에 설립 되었으나 운영과정에서 경제적 압박과 인적 부재가 되다 보니 상인연합회의 설립은 얻은것 보다는 잃은것이 더많은 셈이 돼 버렸다. 더구나 사무소 장소가 풍물장 주변에 있으니 풍물상우회가 연합회관 운영을 넘겨받아 차지하는 어처구니없는 형평에 빠지고 만다.
(19)자유시장 아케이트시장으로 태어나다
이러러한 어려움에서도 자유시장은 아케이트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드디어 준공하게 된다.
아케이트공사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니 처움엔 전체의 2/1 정도만 우선 인가를 얻어 실행되다가 추후 중기청으로부터 재 지원을 받아 현재의 아케이트상점가를 건설하게 되었으니 여기에도 숨은 공로자들이 많았다.
이 노력에는 아케이트 공사를맡아 추진을했고 운영을 했던 이사진들의 피난 노력도 있었지만 추가 건설비를 타내려는 과정에서 당시 자유시장번영회장이며 상인연합회사무국장 이었던 이수일씨의 노력도 높이 살수 있다.
처움 아케이트를 건설하려면 지원금을 타내야 하고 지원금을 타내기 까지는 목잡한 과정이 많았으니 당시 자유시장 상인들의 노력도 대단했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전체금액의 20%는 상인들이 자부담을 해야 하며 이 전에도 아케이트건설구간 만의 별도 구성체를 만들어 승인된 시장을 만들어야했다.
그래서 자유시장 상인중 아케이트신청 구간의 상인들은 인가된시장을 만들기 위해 몇몇 상인들은 몇백만원씩 의 활달금을 분담하기도 했으며 준공구간만의 별도 시장을 구성하니 일명 자유시장아케이트상점가 라 했고 대표를 상점가 이사장 이라 이름했다.
그리고 건설시 건축책임을 담당한 이는 이사장에 진길두씨 총무에 김명기씨가 맡아 일을했다.
이러한 시장상인들의 집념과 노력으로 모든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준공하게 된다.
그러나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다고 자유시장활성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시작한 아케이트 시장 준공후 자유시장은 두동간이가 되었으니 바로 아케이트구간이 별도 시장으로 독립을 한 것이다.
자유시장번영회는 시장번영이라면 모든 악재를 무릅쓰고 노력했고 시의 지원을 받음에는 시장의 노랑자위라 할수 있는 앞골목 시장통을 우선시했었다. 아케이트시장건설도 이런 명맥에서 앞골목시장통이 우선순위에 들었고 드디어 준공하게 된 것아 별도 구간으로 따로히 구성체가 되니 회비징수며 운영자체를 별도로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 현재는 별도의 시장이 되었고 나머지 구간은 유명무실해저 갔다.
(20)자유시장5일노점장 재점화
일이 이지경이 되어가니 자유시장을 살리려고 노점장을 유치하려던 모든상황은 희미해저 가고 중소상인연합회는 자유시장으로서는 없는것만도 못한 이런 형편으로 굴림하고 말았다. 더구나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던 아케이트시장도 준공은 보았으나 사람이 없으니 시장은 준공 이전만도 못한 형편이 되었다.
명실공이 시장이라함은 고객들이 많이몰려 인파로 북실 거려야 하는데 시장1번지인 앞골목의 인파는 뒷골목만도 못한 형편으로 존립돠고 말았다.
나 김광영은 지난 노력이 헛되히 되는 것에 그냥 이대로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선 자치단체나 중기청으로 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자유시장아케이트상점가조합 이란이름하에 별도 구성체가 되고보니 아케이트상가를 제외한 나머지 자유시장은 존립자체가 없어지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번영회장인 이수일씨도 명분뿐인 회장으로 남게 되니 자유시장은 연합회에 회비를 납부할수 없게됐고 회비를 안내는 재래시장은 존재자체가 없어졌다. 그렇다하여 그냥 바라볼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아케이트시장발족후 많은 상인들의 노점을 바라는 간절한 뜻과는 달리 지도부라하는 몇몇 인사들은 시장내 노점장이 들어오는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시장활성화를 위한 노점장은 점점 어려워저만 갔다.
나는 이런 형편을 그냥 바라만 볼순 없었다. 그렇다하여 자유시장상점가 임원이란 이들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서를 낼수도 없는 일이고 하니 나로서 할수 있는 일은 "충주시에바란다" 에 글을 올리는 일 밖에 없었다. 그것도 개인명으로할시 비중이 낮아질것이고 자유시장지도부가 반대하는 형편에서 번영회 이름으로 올릴수도 없고 하여 자유시장상인일동 이란 이름으로 글을 올렸다.
(21) 당시 충주시청게시판 "충주시에바란다" 올렸던 글의 내용
(아래)
제목 충주시장에 바란다 경제편(재래시장4편 풍물장과 상생하면 경쟁력이 있다)
작성자 정보
작성자 김 광 영
작성일 2004-06-17
게시물 작성 내용
내용
재래시장 풍물장과 상생할적에 경쟁력이 있다 )
재래시장과 5일장(풍물장) 이 상생하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상생할적에 재래시장은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봅니다. 이는 노점상인이나 재래상인 모두가 인정하고 바라는 바입니다.
상생을 하고 경쟁력을 높이려면 풍물장은 장소를 옮겨야 합니다. 장터 본연의 장소인 재래시장 내에서 5일장이 거행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장소는 주차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대형마트들의 공통점은 주차장과 매장과의 비률이 7/3으로 주차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래시장은 주차장이 매우 적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런 형편인데도 풍물장이 주차장 주변을 점유하고 있음으로 주차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재래시장이 살아나려면 5일 노점장은 재래시장으로 합류해야 하며 현 주차장은 더욱 공간을 늘려 100% 주차공간으로서 의 역할을 할적에 노점과 재래시장은 상생 할 수 있는 터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경쟁상대로 있는 한 모두는 견원지간과 같은 상대로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충주시청은 재래시장을 바로 보고 바른 행정을 할 때 경쟁역이 살아납니다.
-자유시장 상인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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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목 충주시장에 바란다 경제편(재래시장 제5편 풍물장은 자유시장으로 옮겨 야한다)
작성자 김 광 영
작성일 2004-06-19
게시물 작성 내용
내용
자유시장은 충주 역사와 경제를 함께 하여온 충주 대표시장이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시장 이었습니다. 예날 우리 조상들은 충주장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 들었으며 엄정장과 더불러 그명성이 대단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풍물장은 자유시장으로 옮겨야 합니다. 상생할적에 경제력도 있고 함께 살수 있습니다. 자유시장은 어머니 같은 시장 입니다. 풍물장이 자유시장으로 합류할시 경쟁력도 생기고 함께 공생할수 있습니다.
충주시청은 재래시장 살리기 운동으로 물질적 도움주는것만이 최선이 아닙니다. 대형마트와 비교할때 매우 약하며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의 생존체 입니다. 뭉치면 살고 흣터지면 죽는다는 교훈과 같이 우리 소상인들은 합류할적에 경쟁력이 생기고 공생할수 있기 때문 입니다.
매 ? 하필 자유시장 이냐 ? 반문 하실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시장이 충주5일장의 모체 이기 때문 입니다. 자유시장의 원조가 5일장 이었으며 자유시장은 5일장의 발전체 입니다.
즉, 자유시장과 풍물장을 떼어놓고 말할수 없으며 시민들도 두단체를 따로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명맥으로 생각 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풍물장을 도와주면 그것이 재래시장을 도와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민뿐만 아니라 충주시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구호와 모든전력을 재래시장살리기에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모르고 무조건 도와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재래시장이나 풍물장 을 무조건 도와만주면 도움이 되는것으로 생각 해서는 않됩니다. 재래시장을 도와주면 풍물장이 상대적으로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반면, 풍물장을 도와줄시 재래시장은 역으로 큰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물장이 자유시장으로 합류하여 상생할시 조금만 도와주더라도 그효과는 배가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합류작업은 상대자들 끼리 합리화를 이루는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재로선 상호 의견이 교합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충주시청이 이작업에 교량역활을 할수 밖에 다른 대안이 없음을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자유시장 상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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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목 충주시장에 바란다 경제편(재래시장 제6편 합류가 않되는 이유? )
작성자 김 광 영
작성일 2004-06-21
게시물 작성 내용
내용
풍물장이 자유시장으로 옮겨 힘을 합할시 아직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행이 않되는 이유는 무엇 일까 ?
시장님은 이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적에 모든 방법은 슬기롭게 풀릴것이며 공생할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전 자유시장에서 5일장이 시행 될적엔 노점상과 지역상가는 한가족같이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옛날부터 충주장은 유명 했고 충주장터는 바로 자유시장 이었던 것입니다.
옛날엔 지도부니 번영회니 하는 단체의 지휘부가 없었습니다. 그저 장날이면 자유롭게 자신의 자리를 정해놓고 장을 보았으며 어느누구의 관섭이나 지휘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근내에 와서 단체에 지도부가 생기고 지도부는 상인들의 생존보다는 단체의 이익을 우선 하다 보니 합류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현실을 바로 인도할수 있는이는 충주시장님의 슬기로운 판단과 시정의 집행 이라고 봅니다.
자유시장과 풍물장은 견우와 직녀 같은 사이 입니다. 충주시장님께서 오작교를 놓아 주십시요. 이일을 못하고 현재와 같이 상호 원망만 하고 있을시 두단체는 모두 죽고 맙니다.
노점상인이야 충주장 않되면 다른장 찾아 옮기면 해결이 되겠으나 지역에 뿌리를 박고 있는 재래상가는 다른 해법이 없는 것입니다. 시장님의 바른 시책이 재래상가(자유시장)을 살릴수 있습니다.
-자유시장 상인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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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장에 바란다 경제편(재래시장 제7편 자유시장과 대화의 광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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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광 영
작성일 200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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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장님은 재래시장살리기 정책으로 2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5일장에 한하여 주차장 요금을 받지않기로 했다. 하나는 5일장에 한하여 노상주차의 단속을 하지 않겠다.
우선 재래시장을 살리기위해 무언가 도와주시고자 노력 하시는 한시장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걸 아십니까 ? 한시장님 께서 주신 선물은 재래시장이 아니고 풍물시장 이라고 정정해야 할 것입니다. 전편의 제안서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풍물시장이 재래시장으로 합류할시 시장님의 선물은 재래시장에 매우 큰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재래시장 주변에서 경쟁상대로 계속될시 풍물시장에 주는 도움은 역으로 재래시장엔 피해의식으로 돌아 온다는 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이번 선물로 풍물상인엔 큰 도움이 되겠으나 재래시장엔 그만큼 피해의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시장님께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풍물장이 자유시장으로 합류할시 시장님의 선물은 배가 될것이나 현재와 같이 경쟁상대로 있는한 상대적으로 자유시장은 피해의식으로 갈수 밖에 없다는 것을 ...
5일장에 관하여는 가장 밀접한관계를 갖고 있는 재래시장은 자유시장 입니다. 재래시장에 도움을 주시려면 대표시장인 자유시장 상인대표단과 대화의 광장을 부탁 드립니다.
풍물시장 대표들만의 요청에 의한 시책은 재래시장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을 점점 어렵게 많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재래시장을 돕는 시책 이라면? 재래시장의 대표격인 자유시장 상인대표들과 대화를 하신뒤 결정하셔야 바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인연합회를 방문하신것은 알고 있으나 연합회는 중립을 고수하는 위치라 본내용을 설명할 위치가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자유시장 상인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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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주시장에 바란다 경제편(재래시장 제9편 공허한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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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0일 충주장날
풍물장이 시행되고 있는 주차장에서 (삶과 예술이 화합하는 축제) 라는 제목으로 대북공연 이벤트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본 행사장에 참석한 충주시장과 충주시의회 의장은 충주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원을 했다고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였습니다.
시장님과 의장님께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숙원하는 모습에 감사와 고마움을 드리는 바입니다.
두 지도자의 마음속에 충주경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데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두분 이거 아십니까 ?
두분의 마음과 관계없이 대북공연이 시연되었던 그 장소와 이벤트의 효과 면에서 과연 재래시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십니까 ?
그 공연은 유감 스럽게도 재래시장 활성화가 아닌 오직 풍물장을 위한 행사임을 말입니다.
풍물장에서 이벤트행사가 열리고 있었던 같은시간 풍물장에 인산 인해가 된방면에 자유시장 엔 한적하고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
공연은 참으로 휼륭했습니다. 그러나 그 공연은 풍물장엔 웃움을 준 방면에 자유시장(재래시장)엔 공허한 이벤트가 되었을 뿐입니다.
본 공영을 주선하기 위해 관계자 분께서 수고 많이 하셨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공영이 현재의 형편이 아닌 풍물장이 자유시장 으로 옮겨 합류한뒤 시행 되었다면 그 효과는 대단했으리라 봅니다.
명분도 좋고요.
그러나 오늘의 공연행사는 재래상인들을 공허하게만든 명분없는 이벤트 일수 밖에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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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주시장에 바란다 경제편(재래시장살리기 제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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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을 살리려고 노력 하시는 시장님과 관계 공무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유시장은 시장경제를 살리려는 상인의 집약된 의지와 시장살리기 에 앞서서 노력 하시는 일부 지도자의 노력으로 그 초점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방법으로 ? 옛 자유시장을 되 찾자는 여망과 의지로 시작된 것은 ?
잃어버린 옛 장터를 복원하는 사업 입니다. 5일장이 시장내에서 시행되지 않고 주변 공영 주차장 주변에서 실시되고 있는 현 실태를 바로잡아 본연의 원 위취인 자유시장내에서 실시되게 함으로서 노점상과 지역 상인이 힘을 합처 상생함으로서 함께 어려움을 헤처 나가자는 것입니다.
예전 자유시장내에서 5일장이 실시 될적에는 노점장의 지도보라는 단체가 없었고 누구나 원하는 노점상은 자유로히 찾아와 자유롭게 장자리를 얻어 장을 보곤 했다.
현세에 와서 누구의 의도로 많들어 졌는지는 모르나 노점장인 풍물장엔 지도부란 단체가 생겨 노점장을 관리 하고 있다.
자유시장엔 아케이트 상가를 조성하는등 시장을 살리려고 국가및 시 보조를 받아 주변 환경이 매우 좋아 젔다.
우천시 보호를 받음은 물론 요즘같이 뜨겁고 무더운 열대어 현상이 잃어나고 있는 형편에서도 자유시장내는 시원한 공기가 돌고 있다.
이런환경에서 고객님께 만족한 메뉴와 다량한 품목이 진열된 모습으로 고객에 최선의 써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 작업을 노점상과 함께 하여 상생하려는 뜻에서 7월15일 부터 자유시장내 5일장 개장을 하였다.
이에 많은 노점상이 동조하여 자유시장의 5일장은 그 빛이 보이기 시작 했다.
찾아오는 고객들도 시원한 환경에서 5일장이 거행됨을 환영하고 있다.
반면, 공용주차장 주변의 노점상 지도부에선 이를 매우 못마당하게 생각하고 있다.
노점상의 분산으로 고객들이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염려했기 때문에 자유시장 은 노점상 모든 분을 자유시장 내로 모시려하고 있습니다.
조건은 없습니다. 옮겨 오기만 하면 노점상의 모든 행질서등 운영은 현 노점상 지도부 에게 마낄것이며 자유시장은 노점상들이 자유시장내 에서 편안하게 장사 할수 있도록 편의만 제공 할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편의를 제공 한다는 데도 풍물장 지도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더 아리숭 한것은 ? 충주시에선 이를 앞장서서 추진하고 안정 시킴이 옳을것 같은데 양 단체 (자유시장과 풍물상 지도부) 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시장과 노점상 지도부" 어떤 이권인지는 모르나 자유시장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다만 고객들이 좋은 환경에서 장을 보게 함으로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도모 하고 자 함입니다. 풍물장 지도부는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않고 반대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유시장 살리기 운동을 온갖 방법으로 방해 하려 합니다.
충주시청은 양 눈치만 보는 방관자 가 되어서는 않됩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도를 유도해야 할것이며 어떻게 하는것이 정도 인가는 시민들의 판단에 맞겨야 할 것 입니다.
모든 시책을 바르게 처결할시 시민의 찬사를 받을 것이나 그렇지 못할시 지탄을 면지 못할 것입니다.
위의내용은 당시 김광영이 충주시청에 올렸던 글의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27)자유시장아케이트상점가 노점상 설치를위한 설문조사
위와같은 게시글을 충주시청에바란다 에 계속 올렸다. 이렇게 충주시청에 글을 올리니 충주시청은 본 내용을 자유시장상점가 진길두회장에 진의를 밝혔고 김광영이 충주시청에 글을올렸다는 자체도 모르고있었던 진길두회장은 회장인 자신도 모르는글을 개인이 임이대로 올렸다며 나에게 항의를 했다.
이에 나는 진길두회장에게 당위성을 설명했다. 자유시장이 사는길은 노점장이 들어오는것 밖에 없으나 지도부에선 조금도 움직이자않고 있고 누군가가 나서서 노점장을 유치해야 하는데 그 안이 충주시청에 글을 올리는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실행한 것이다. 또한 글올림에도 상가번영회 이름으로 올린것이 아니고 자유시장상인일동 이란 명으로 올렸는데 무순 문제가 되느냐? 라고 반문했다.
이러자 진길두회장은 상인의뜻을 알아보자며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방법은 자유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노점장을 유치하는것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묻는 내용 이었다. 조사결과는 노점장을 유치해야 한다는 찬성에 95% 반대한다는 반대표에 약5% 로 나타남으로서 지도부몇명만 빼고는 모든 상가회원들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이 이쯤되니 번영회지도부에서도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직하고 즉시 방법을 바꾸워 노점장 유치에 나서게 된다. 시장에는 노점장을 세우자는 현수막이 붙었고 풍물장을 상대로 교섭에 나섰다. 장을 세우기위한 지역 대표인사들의 회합을 하는등 적극적으로 행동이 시작 됐다.
(28)아무성과없이 1년이란 세월은 가고
당시 본돈주민자치위원장인 성동훈 씨가 주선하는 회합도 갖었다. 회합에 참석한 인사로는 자유시장아케이트상점가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과 문제발단의 주인공인 김광여. 점번영회장인 이수일씨 등이 참석하였다.
이런회합은 2회정도 실시 됐으며 회합결과 여러의견이 나왔으나 최종 정리를 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장을 유치하데 까지는 보편적으로 합의를 보았으나 성동훈주민자치위원장은 아케이트시장은 현대화시장으로 꾸미고 노점장은 아케이트를 제외한 주변으로 실시하자 는 것이다. 배동희통장등 대부분은 반대를 하였으나 선 위원장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으며 자신의 뜻대로 시행하지 않을경우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장이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은 방해를 놓겠다는 뜻이니 큰 틀에서 생각 할때 위원장의 뜻대로 할수 바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 김광영은 성 위원장의 추진대로 하는것에 동의를 했고 반대하는 상인들을 설득 시키기로 했다. 반대하던 쪽에서도 나의말을 듣고는 성 위원장이 하자는 대로 말미를 주기로 했다.
자신에게 마껴주면 반드시 노점장을 유치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성동훈위원장은 이런저런 핑계만 대며 노점장유치에 추진을 하는지 않하는지 일은 추진되지않고 세월만 흐르고 있었다. 이럭저럭 1년이 지났다. 일은 추진되지않고 그렇다하여 그냥 보고만 있을수도 없었다.
(29)구세주 김태식씨의 등장
이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김태식 노인이다. 김태식씨를 소개하자면 현재 한나라당의 고문이란 직분을 갖고 있었는데 이분은 본래 서울에서 주먹패로 성장 하였는데 성장하면서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을 돕는 일을 하였다한다. 즉, 정치인들의 방패역활을 한듯 십다.
중앙정치인들을 돕는 활동을 하여서인지 김태식씨는 중앙의 정치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내게 보여준 그림이지만 한때 이해찬의원의 방패를 하던 신문에실린사진을 보기도했었다. 이렇듯 김태식씨는 여 야를 막론하고 큰 정치인들과 생활을 함께 하면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아던것 같다.
추측이지만 김태식씨가 학식만 있었다면 정치권에서 성장할수도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김태식씨는 학교마당을 밟지못한 무학으로서 무식층이 었다. 그래서 정상적인 정치활동은 하지못하고 주변에서 도움역활만 열심히 한것같다. 이런연고로 김태식씨가 이곳 충주로 내려올때에 당시 몸을 담고 있었던 한나라 중앙당에서는 김태식씨에게 당고문이라는 직분을 얻어 내려온 것이었다.
이런관계로 김태식씨는 한때 한창희전시장을 도와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정당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나라당 고문 이란는 자심감 때문인지는 모르나 김씨는 충인동 뒷골목시장에서 서울식품이란 건강식품가계를 운영 하면서 주변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노점상들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었다.
김태식씨는 무식하긴 하지만 의리의 사나이었다. 김씨는 노점장이 시장내에서 시행되지않고 변두리 주차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노점장을 자유시장으로 이전 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면서 힘없는 노점상들 에게는 여름에는 햇빛차단막을 처 주기도 했고 겨울엔 노점상들에게 커피며 라면을 자비로 사서 나누워 주기도 했다. 또한 난로를 피워 따듯하게 하여 주었었다. 이런관계로 김태식씨는 노점상들에게는 우상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30)5일노점장 추진은 계속되고
이런 김태식씨의 견해와 나 김광영의 뜻이 일치되고 보니 나는 노점장유치에 김태식씨는 필수 인물 이었다.
이런관계로 김태식씨와 나는 매일 교감을 나누게 되었으며 김태식씨는 나를 좋아했고 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주었다. 나역시 김태식씨가 무식하여 정상적인 신사도는 발휘하지 못하나 나름대로 원칙이 있고 정도를 걷는 사람 이며 과거 주먹패출신이서인진 모르나 깡패나 정치권 인사들에게도 굽히지 않는 용맹성이 있어 험악한 노점장들과의 역활에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 이었다.
이런 김태식씨는 어느 번영회지도부나 주민자치위원장 보다도 필요한 인물 이다. 김태식씨는 이런 성품때문일까 보통사람들은 꺼려하는 소위 깡패들에게도 당당했고 하고싶은 일들은 무엇이든 참견했었기에 노점상 지도부들도 김노인에겐 함부로 하지 못했고 이분에게 아버님 이라는 존칭을 쓰며 행동이 통했다. 그래서 김씨는 풍물장지도부와 우리와의 고리역활도 잘 해 주었다.
이러던중 김태식씨는 풍물노점장 회장인 김종호와 나 김광영과의 대화의 자리를 주선해 주기도 했었다.
이런 김씨의 주선으로 나 김광영과 김태식씨와 풍물장 김종호회장과 3인은 가계앞식당인 소머리곰탕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풍물장을 자유시장으로 옮기는 문제를 상의하였다. 이런자리에서의 나온 말 이었지만 알고보니 성동훈 주민자치위원장은 큰소리와는 달리 풍물장을 옮기겠다고 한사람이 풍물장회장과 한번도 만난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성 위원장은 큰소리만 처 놓고 세월만 보낸셈이 된 것이다.
이렇게 김태식씨의 중계로 풍물장 김종호회장과의 만남으로 진전이 있는듯 싶었다. 김종호 회장은 풍물장지도부와 자유시장지도부간 만남을 추진해 주었다. 김종호회장은 자신의 입자은 자유시장으로의 이전을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으나 일부 가 적극 반대를 하는 입장이라 상호 교섭을 하여 봐야 알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어려운 만남의 자리까지 갖었으나 역시 어려운 문제여서 성사 되진 못했다.
이렇듯 나에겐 구세주역활을 했던 김택식씨의 등장은 자유시장엔 잊을수없는 공로자인 것이다.
당시 나는 이런 김태식씨에게 조금이라도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충주시에바란다에 이분을 찬양하는 글을 올렸고 지금도 검색해 보면 그글 을 볼수 있다.
아래글은 충주시청게시판에서옮긴글 입니다
(31)
지역발전과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온몸으로 투신봉사하는 의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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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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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과 밝은사회를 위해서라면 온몸받처 열심히 봉사하는 김태식님을 소개합니다.
충인동에서 서울식품을 경영하고 계시는 김태식님은 자신이 추구하는 옳은일이라고 생각될시 모든것(몸과 마음)을 받처 봉사하는 요즘세상에선 보기드믄 어른 입니다.
김태식님이 실행하고 계시는 봉사라 할까 업적이라 할까요 하시는 일을 간추려 본다면 몇년전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봉사를 꾸준히 실행하고 계신데요 목적은 시장발전과 번영을 위한 일로서 자유시장을 살리려면 현재 주차장 주변에서 실행되는 5일장을 자유시장으로 옮기고 주차장은 본연의 주차장 역활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5일장의 장소이전을 위해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일을 다하시는 분으로 넉넉치못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들려 봉사활동을 하심은 물론 험한일도 마다하지않고 70의 노인임에도 힘에는 힘. 정에는 정으로 온몸으로 지역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김태식님의 업적을 살펴본다면 현재 자유시장내 아케이트시장엔 장날이면 나름대로 많은 소 노점상들이 모여들어 장을 형성하고 있는 데요 비록그 규모는 미약하나 이일을 추진하기위해 시장번영회및 자치위원회, 기타 지역인사들이 노력했으나 한치의 업적도 이르지 못한일을 김태식님이 이뤄냈다는 사실 입니다.
이분이 이런일을 성사하기 까지는 말할수 없는 노력과 정력을 다 하였으니 이분께서 어려운 노점상을위해 실행한 업적을 살펴본다면
노점상인에게 점심때 라면제공하고 커피를 타주었으며 . 추운겨울엔 난로를 나누워주어 불을 피워줌으로 노점을보러오는 많은 노점상으로부터 은인이라는 인정을 받고 계십니다. 또 이분은 약초로 건강식품을 제조하는 분인데요 식품제조후 발생하는 약초분(거름)을 무상으로 수백푸대를 농민들에게 나눠줌으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분입니다.
김태식님이 이러한 옳고 좋은일들을 수년째하고 계심에도 주변으로부터 많은 적을 두고 계신데요 이는 지역인사및 시장이나 국회의원 이라도 자신이 생각하여 옳지못한 일을한다고 인정될시 아무 꺼리김없이 직접 맛대놓고 충고하고 질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분은 정식과정의 학업을 수료하지못하였고 성품이 과격성을 띠우고 있어 상대(지역인사)와 대화시 말을 부두럽고 매끄럽지못해 과격하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 입니다. 이런 관계로 모든인사들이 이분을 피하고 꺼려하며 멀리하려는 이런 분입니다.
이분의 약력을 살펴보면 젊은시절 중앙 정치권에서 몸받처 봉사한관계로 비록배우지못해 무식하다는 인상은받고있으나 정치권 에선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모정당의 고문이라는 직함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이유로 그직함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정치권의 높고낮음을 가리지않고 맛대놓고 질타를 하는 이런분입니다.
또한 이분의 속내를 살펴보면 매우순수하며 자신이 하는일에 댓가를 원하지않고 오직 지역발전과 국가를 위해 옳다고 생각되고 모든인사들이 직무를 소흘하다 여길시 그상대가 경찰서장, 검사장, 시장, 국회의원 등 높고 낮음을 가리지않고 따지고 충고하는 못말리는 의인이기 때문 입니다.
김태식님은 말합니다. 나는 무식해서 말을 이쁘게하진 못하나 내가하는 일은 국가나 지역발전에 옳다고 생각되기에 나는 내가할수 있는 일을 내힘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할 것이나 다만 함께 동참하는이들이 없어 힘이들 뿐이라고...
필자가 이분을 충주시민에게 소개하고자함은 세상에는 오직 자신의 출세와 영익을 위해 거짓 공약이 난무하고 이익이있는곳엔 수많은인파가 몰려드나 자신에 이익이 없다생각될시 친분을 헌걸래 버리듯하는 현세대에 이런한 순수한분도 있다는 표본이기에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감사합니다
(32)노점장추진을 위한 김태식씨와의 교분은 계속되고
이렇듯 아무이권없이 옳다고 생각하는일엔 무조건 몸바쳐 봉사하는 김태식씨가 어느 잘난척하는 유지보다 낳고 휼륭했다. 그래서 나는 김태식씨에게 모든 친절을 다했고 이권도 배부해 주었다. 이권이라함은 금전적 혜택이 아니라 연수동에 내가 관리하고있는 1400여평의 과수원과 밭이 있는데 이를 무상으로 농작물을 짖게하여 주었다. 이런저런 관계로 김태식씨는 나의 말이라면 모든것을 따라 주었고 힘이되어 주었다.
김태식씨의 주선으로 마련한 풍물장이전 문제는 이렇듯 아무성과 없이 끝나 버렸으며 앞으로 풍물장을 송두리채 이전이 불가능 하다면 나름대로 다른방법을 찾아 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그러던중 노점 풍물장은 자신들만의 입지를 튼튼히 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충주시청과의 교섭과 유대를 튼튼히 하는 방면 자유시장활성화 사업으로 추진해오던 사업을 차단하는 반면 시장내의 풍물장과 별도로 시행되고 있는 세비를 받지못하는 기타모든 노점상들을 자신들이 세비를 받고있는 테두리내로 옮기는 작전이 시작 됐다. 풍물장은 충주시와 연대하여 노점장 합류를 공식화 했고 드디어 결정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대가미다리 에서 중앙병원쪽의 하천변에서 실시되고 있는 노점장과 주변노점장을 일정날자를 정해 일체 정리하고 모든노점상을 풍물장으로 합류 시킨다는 정보었다.
나 김광영은 바로 때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김태식씨 에게 단속당하는 모든 노점상들을 상대로 포섭하여 단속장부터 모든 노점상을 자유시장 아케이트내로 옮기자고 했고 김태식씨는 나의말을 따라 그들노점상들을 포섭 드디어 그날을 기점으로 주변 모든노점상들을 일제히 자유시장 아케이트내로 옮기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실행한 자유시장 노점5일장은 이날부터 점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요즘 장날이면 제법 많은 노점들이 시장을 채웠으며 턴비었던 시장톤은 제법 고객들의 붐빈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볼때 비록 우리가 원했던 모든노점장을 송두리채 옮기진 못했으나 그래도 시장다운 시장으로 제 역활을 해가고 있는 아케이트시장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5일노점장은 자유시장에 활력을 불어 주고 있어 흐믓하다.
이렇듯 오랜세월을두고 오직 자유시장을 살리겠다는 일염으로 시작해서 모진고통과 억압을 격으면서 결국은 작은 열매를 맺은 지금 해냈구나 하는 보람도 크지만 그동안 함께 많은 고생을 하였던 자유시장 유지분들 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특히 많은세월을 헌신했던 이수일 전번영회장과 결정적 효과를 갖어다준 김태식 씨에게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또 한번의 시도
어렵고 힘든 자유시장살리기 사업은 이렇듯 모진 세파를 거치며 모드들 중간에서 포기한 5일노점장 세우기 사업은 처움시도했던 모든 5일장을 자유시장내로 종전대로 옮기려는 꿈을 성사 시키지 못한채 자연 활성화를 기대 하곤 있지만 이런 나의 소망이 이뤄 질지는 아득 하기만 했다.
그러던중 어처구니 없는 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현재 풍물장이 서고 있는 주차장 옆길에 노점상을 위한 맘모스 천막을 부막이로 설치해 준 것이었다. 물론 현재의 풍물장이 정상의 자리를 잡아 안착한다면 이런 시설도 어려운 사람들의 편의시설 이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노점풍물장은 어려움에 처해있는 전통시장을 망가트리는 악재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못할 지라도 언젠가는 자유시장통으로 모든 노점상들이 합류하여 전통시장 상인들과 함께 상생하며 힘을 길러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도 살아 남을수 있는 이런 시장을 꿈꿔던 나로서는 현재의 풍물상을 위한 천막건설은 이들을 이자리에 안착감을 주어 전통시장으로서의 합류가 점점 어려워 질 것이 당연하니 이번 맘모스천막 선심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잘못된 현실을 지적하며 충주시청에 항의 게시글을 올렸다. 그러자 충주시청에서는 내가 올린 게시글 내용을 가지고 자유시장상점가 강성삼회장에게 글 내용을 설명하는등 주변 시장과 풍물장상인들을 상대로 뜻을 문의하였던것 같았다. 시청에 글을 올린지 얼마가 흘렀을까 시천게시판엔 내글의 답변글이 올랐다.
내용인즉 본 내용을 가지고 자유시장번영회에 문의 하였으나 번영회 측의 대답인즉 현재 자유시장에는 장이 실시되고 있고 더이상의 합류도 원하지 않는다 라는 답변을 들었으며 풍물장 역시 현장소에서 이전할 의양이 없다는 답을 받았다는 내용의 답변 글이었다.
이런답변을 받은나는 주변 함께 장을 옮기는데 힘을 합처 주었던 현재 이사인 잉꼬주방백화점 오영수씨에게 그의 내용을 설명하고 어떻게 생각 하느냐? 고 물었더니 오이사말인즉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도 몰랐고 노점장합류는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강성삼회장은 나의 글에 대하여 이사들과 상의도 없이 자신의 즉각적인 생각을 표현한 것 같았다.
이후 인의회 날이었다. 안식준 아케이트 이사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내용은 충주시천에 글올렸다는 것과 현재 이정도로도 만족하지 않겠느냐 라는 뜻 이었다. 그러자 옆에있던 강성삼회장이 나에게 정색으로 항의를 한다 글을 올리려면 회장인 나에게 상의를한다음 올려야지 개인이 회장 승락도 없이 글을 올려도 되느냐? 는 것이다.
또한 맘모스천막도 왕강히 저항 하였으나 풍물장 지도부에서 다름곳에선 모두 찬성을 하는데 왜 자유시장에서만 반대를 하느냐며 거센항의가 있었다는것이다. 그래서 어찌할수 없이 승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기로는 예전 진길두회장과 조금도 다른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강건한 말투었다.
이에 나는 현집행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 나로서 할수 있는 일이 시청에 글올리는 것 밖에 없었고 현재의 장으로서는 자유시장이 번영할수 없고 전통시장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5일장이 합류해야 한다며 또한 현재 5일장이 서고있다 했지만 이 노점장이 누구때문에 이정도라도 활성화 되었느냐며 5일장 건설에 누가 노력했는가를 되물었다.
이말에 강회장은 누가 했던간 이정도면 장도실행되고 더 이상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각자의 생각들이 다르니 더이상은 실행되기도 어렵고 이이상 혼자 추진한다는 한계도 있고 하여 이제는 모든추진을 그만드고 현재 이정도로 활성화 된것에 만족하며 마무리를 하는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또한 이제 나도 나이가 이제 69세이니 더이상 추진할 힘도 없다 그냥 이나마 실행되고 있는 자유시장 5일장이 활성화 되어 자유시장에 꽃이필날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아래는 당시올렸던 글내용과 시청의 답변 을 소개해 본다.
배가 산으로 가는것 같아~~
게시물 작성 내용
내용
배가 산으로 가는것 같아.. 충주재래시장 이대론 않된다.
잘못 시행되는 것을 "배가 산으로 간다"라고들 한다. 오랜만에 전통재래시장활성화 시책에 관하여 충주시의 진의를 묻고자 한다.
요즘 충의동주차장(일명 풍물시장)에 가보면 맘모스천막을 충주시에서 설치하여 준 것을 볼수 있다. 이런 시책이 과연 재래시장활성화에 도움이되는 걸까? 하는 것이다.
물론 풍물시장상인이나 고객편의를 위해선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상대적으로 재래시장활성화에 저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 할런지 묻고 싶다.
현재 풍물장이 실행되고 있는 지역이 어딥니까? 이지역은 자유시장에서 시장을 찾는 고객편의를 위해 설치된 주차장 이다.
이런주차장이 전직시장의 안일무사주의시정으로 풍물시장이 되었다. 이런 잘못된 시정은 충주전통시장의 고객들을 주차장으로 쏠리게하는 잘못된 전통시장 정책이 되었다.
이런 잘못된 시책으로 주차장안에선 장이서고 전통시장 내엔 주차장이 되는 이상한 현실이 되었고 현재 도로옆길을 주차장하여 주차에 큰도움을 주곤 있지만 장날이면 혼잡하기가 말이 아니다.
이런현실로 정통시장은 날로 어려워만 간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자유시장번영회와 필자는 수십차례 진언을 들인바 있다. 풍물장은 시장안에서 실행돼야하고 주차장내엔 고객을 위한 주차공간으로만 전용돼야 한다고본다.
그러나 이런 진언은 충주시의 잘못된 안일무사주의식 시책으로 지금까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상대적 이권이 개입된 관계로 양쪽의 협의를 얻기란 매우 어렵운 것이다. 이런관계로 충주시도 여러차례 실행하려 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여기에 충주시책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함은 큰틀에서 실행하질 못하고 사적이익에 억매여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충주장의 본틀은 자유시장인 것이다. 자유시장은 수백년전부터 충주장으로인해 만들어진 전통시장 이다.
현재의 풍물장은 기초가 없는 떠돌이 장 이다. 풍물상인의 집합체는 전국을 무대로 떠도는 상인체 이다. 현재 충주풍물장은 많이 정비가되어 지역인이 주관을 하곤 있지만 대부분의 경제 이익은 타지역으로 분배되어 충주시민과는 무관하다.
이런 실체를 알고 있다면 충주시는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풀물장은 자유시장안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처움엔 어려움이 있겠지만 옮겨 자리만 잡힌다면 쌍방 모두에게 큰 이익이 있고 충주시는 큰 고통을 덜개 될 것이다.
요즘 전통시장은 아케이트 건설등 여건이 매우 좋아 젔다. 풍물장이 전통시장으로 옮길경우 풍물상인이나 고객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함에도 풍물상이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 소수의 개인이익 때문인 것 이다.
현재 자유시장에서는 시장상인들의 노력으로 점차로 5일장이활성화 되어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풍물장은 점차로 세력이 약화되고있다. 즉, 장서는지역이 넓혀짐으로 풍물상인들의 입지도 좁혀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러한 양 진영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하여 충주시는 풍물장이 자유시장내로 옮겨 통합함으로 풍물상인도 살고 시장도 활성화 될수 있도록 역활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지금같이 흐터져 있는 가운데 풍물장에 맘모스천막을 처준다는등 의 충주시의 행동은 그러지안아도 대형마트에 시달리는 전통시장을 더욱 어렵게 하는 잘못된 지원임을 지적 하고자 한다.
"뭉치면살고 흣터지면 죽는다" 라는 격언을 명심하기 바란다. 현재의 충주시 전통시장활성화 정책은 배가 산으로 가는것 같아 염려가 된다. 잘못된 충주시책이 전통시장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바른시행을 촉구 하는 바이다.
추가정보 담당부서 경제과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충주시청 경제과 전통시장 담당자 입니다 항상 충주시 전통시장에 애정과 관심을 주신점 감사드립니다 김영광님께서 "충주시에 바란다"에 의견을 주셔서 자유시장 상인회, 풍물시장 상인회와 논의를 하였습니다
먼저 자유시장 상인회의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자유시장내에서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자유시장 아케이드 내에서 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품목이 1차식품으로 전문 상인이 아닌 농민으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지고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가지고 나오셔서 장사를 하고 계십니다 자유시장 상인회와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협의하여 5일장이 열리는 날에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이 끝나면 청소까지 하고 가지만 점포앞 청소 및 정리는 자유시장 각 점포주께서 하고 있습니다. 서로 합의하에 아무런 문제없이 5일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만약 자유시장내에서 풍물시장이 5장을 하게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될 것입니다 이에 자유시장 상인회에서는 풍물시장이 자유시장에서 열리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풍물시장 상인회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 풍물시장이 자유시장내에서 장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시장과 풍물시장 사이에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자유시장에서 5일장을 하지 못하고 다른곳으로 이동하여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현재의 5일장이 열리는 곳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풍물시장 입장에서 자유시장내에서 장사를 못하게 되어 다른곳으로 옮겼는데 다시 자유시장으로 간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며 풍물시장 상인회 에서도 자유시장으로 가는 것은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풍물시장은 현재 300여명의 회원이며 외주 거주회원은 약 40여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광영님께서 우려하신 경제이익이 타지역으로 분배되는 이익은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주변교통혼잡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 교통혼잡문제에 대하여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기와 같이 자유시장 및 풍물시장에서 김광영님께서 말씀하신 점에대하여 반대를 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다시한번 충주시 전통시장에 대하여 관심주신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김광영님이 지적하신점 고려하여 충주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참고하겠습니다
더 궁금하신점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락처 : 충주시청 경제과 안봉덕(850-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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