㊲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
유대인들은 예수에게 ‘죽을 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들었다.
두 손이 묶여 있었을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또 예수의 얼굴을 가린 뒤 주먹으로 때리고 말했다.
누가 때렸는지 맞혀 보라고.
거기에는 신의 아들이라면 그 정도는 맞혀야 하지 않느냐는 조롱이 깔려 있었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시종들도 예수의 뺨을 때렸다.”(14장 65절)라고 기록돼 있다.
그렇게 예수는 구타를 당했다.
‘만들어진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말 그대로 ‘죽일 놈’이었다.
베드로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두 손으로 불을 쬐고 곁눈질하며 예수의 고초를 목격하고 있었으리라.
그때 카야파의 하녀가 안뜰 아래쪽에 있던 베드로에게 다가왔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마태오 복음서 26장 69절)
베드로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드로가 대문까지 갔을 때 다른 하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서 베드로는 겁이 났다.
자칫하면 사람들에게 잡혀 예수처럼 심문을 당할 수도 있었다.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고 예수를 부인했다.
갈릴래아 지방은 이스라엘의 북쪽이다.
남쪽인 예루살렘과 달리 갈릴래아 특유의 억양이 있었다.
갈릴래아 어부 출신인 베드로는 사투리를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가령 서울 한복판에서 심한 전라도 사투리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식이지 않았을까.
베드로의 ‘갈릴래아 악센트’는 주위 사람들의 눈에 확 띄었다.
베드로 뒤에 선 사람들이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마태오 복음서 26장 73절)라면서 다가섰다.
베드로는 본능적으로 부인했다.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며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잡아뗐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다. ‘꼬끼오!’
그제야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 말이 생각난 베드로는 어땠을까.
복음서에는
“베드로는 (…)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오 복음서 26장 75절)고 기록돼 있다.
예수가 안에서 매질을 당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밖에서 슬픔에 겨워 울었다.
그것이 ‘베드로의 슬픔’이다.
나는 그 장면을 묵상했다.
우리 모두 그런 베드로를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내 안의 예수, 신의 속성’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도
‘제2의 베드로’
‘제3의 베드로’가 아닐까.
“나는 그를 모릅니다, 나는 예수를 모릅니다,
나는 신의 속성을 모릅니다.”
그렇게 부인하다가 결국 닭 울음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베드로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되고, 어느덧 우리의 슬픔이 된다.
나는 베드로 통곡 교회를 찾아갔다.
예루살렘 성의 남쪽 출입구에서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불과 5분 거리였다.
입구에 팻말이 있었다.
팻말 위에 그려진 닭 한 마리가 눈길을 끌었다.
팻말뿐이 아니었다.
교회 지붕에는 십자가가 있고,
그 십자가 위에 황금빛 조각이 하나 붙어 있었다.
황금빛 닭이었다.
베드로 통곡 교회의 곳곳에 ‘닭 울음’의 메시지가 울리고 있었다.
교회 안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1월이었지만 예루살렘에 내리쬐는 한낮의 볕은 꽤 강렬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에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와 베드로, 그리고 제자들이었다.
예수는 왼손의 세 손가락을 펴고 있고,
베드로는 그런 예수를 보고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 있다.
그 뒤에는 붉은 볏을 단 닭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교회 안은 아담했다.
가운데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십자가,
맨 위에는 유대 최고 의회에서 심문받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밧줄에 두 손이 묶인 예수를 향해 유대인들이 아우성치는 광경이었다.
베드로는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는 혹독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채
“나는 그를 모르오”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우리도 베드로와 마찬가지다.
평화의 땅,
안식의 땅,
자유의 땅에서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예수를 향해 우리는 그저 손만 내젓고 있는지 모른다.
예루살렘 구시가의 호텔 숙소에 있을 때도 새벽에 닭이 울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2000년 전 베드로가 들었던 닭 울음도 이런 소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 쪽으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예루살렘 성곽과 올리브산이 빤히 보였다.
푸르스름한 여명을 뚫고 ‘꼬끼오!’ 하는 닭 울음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다소 의외였다.
‘이런 도심에서도 새벽에 닭이 울다니….’
잠시 후에 깨달았다.
그 울음이 우리의 가슴을 콕콕 쪼고 있음을 말이다.
신의 속성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콕콕 찌르고 있음을 말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결박해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갔다.
[출처:중앙일보] 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