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33. 까를라·피탈코라 석굴
隊商들의 ‘오아시스’ 석굴사원
<까를라 석굴의 전경>
인도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던 2002년 3월7일. 로나블라 레인보우 호텔에서 눈을 떴다. 밖에선 새들이 지저귀고, 해는 벌써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어제 본 바쟈 석굴과 그저께 답사한 칸헤리 석굴을 떠올렸다. 상념은 자연스레 “데칸고원 서부 지역에 석굴이 많이 개착된 이유가 무엇일까”로 이어졌다.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떠올랐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우기에도 수행하기 좋다”는 점도 고려됐으리라. 그러나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잡념을 접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카레를 제법 맛있게 먹고 석굴 답사에 나섰다. 오늘 가야할 곳은 부근에 있는 로나블라의 ‘까를라(karla) 석굴’과 아우랑가바드 근방에 위치한 ‘피탈코라(Pitalkhora) 석굴’. 아침이라 대지의 공기는 선선했다. 도로변엔 일하러 가는 인도인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다. 평지를 한 참 달리던 차가 갑자기 경사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까를라 석굴에 가까이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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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라 석굴의 차이탸굴 입구> |
차에서 내려 계단을 30분 정도 올랐다. 우리나라의 팔공산 갓바위로 올라가는 계단과 흡사했다. 매표소를 지나 석굴 앞에 서니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산 중턱에 운동장터로 쓰일만한 공터가 있고, 그 뒤로 석굴들의 입구가 보였다. 까를라 석굴이라고 안내인이 설명했다. 무엇 때문에 궁벽한 듯 보이는 이곳에 석굴이 조성됐을까. 산중턱에 석굴을 조성할 수 있도록 누가 재물을 보시했을까. 의문이 들면 해소해야 하는 법.
미술사가들과 불교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석굴들이 조성된 곳은 거의 예외 없이 옛날의 교역로와 연결돼 있다. 마투라 등 중·서인도에서 사타바하나 왕조 초기 수도 프라쉬타나에 가기 위해서는 마히슈마티를 지나 ‘아잔타’·‘피탈코라’·‘아우랑가바드’를 거쳐야한다. 피탈코라는 ‘나시크’를 경유하여 스팔라항으로 통하며, 다른 큰 항구도시인 카르야나에서 출발해 ‘칸헤리’ ‘준나르’를 지나면 프라쉬타나로 이어진다. 카르야나 → ‘까를라’ → ‘테르’를 거치면 안드라 지방으로 갈 수도 있고, 도시들은 다시 종횡의 교역로로 서로 이어져 있다. 그러면 ‘까를라’ ‘피탈코라’ 등 교역로 상에 불교석굴들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휴식 취하며 설법듣고 보시
〈마하박가〉에 의하면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머물 정사(精舍)를 지을 때 “도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을 선택했다. 명상과 수행에 필요한 조용한 분위기, 신자들의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위치 등을 고려하면 ‘도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 적당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데칸고원 서부에 흩어져 있는 불교석굴들이 교역로 상에 있는 것도 이런 이유(수행과 보시)와 무관치 않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석굴에서 스님들은 수행하기 좋았고, 교역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석굴에 보시(布施)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결국, 데칸고원을 지나 아라비아 바다에 연한 항구도시(스팔라항 등)로 가던 대상들과 신자들은 석굴 사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석굴 사원이 ‘교역상인들의 휴게소’ 역할까지 했던 것. 뜨거운 대지를 걸어온 상인과 신자들은 석굴의 시원한 그늘에서 피로를 풀고, ‘스님의 설법’(법시)을 들으며 올바른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마음을 정화했으리라. 스님들이 베푸는 법시(法施)에 대한 보답으로 상인과 신자들은 재물을 보시(재시)했을 테고. 나아가 석굴에서 신자들은 공덕(功德)까지 쌓았다고 학자들은 파악한다. 석굴 주변에서 발견되는 명문(銘文)들을 보면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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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탈코라 석굴 기둥에 그려진 불화> |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명문들을 보면 대개 “공덕을 위해” “과거 현재 미래의 가족의 이익을 위해” “일체중생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부모, 가족, 나아가 중생을 위해라는 점은 ‘공덕의 회향’(回向)과 연결된다. 결국 교역로 상에 위치한, 데칸고원 서부지역 석굴들은 ‘상인과 신자들의 휴게소’이자, 공덕을 쌓게 해주는 ‘복전(福田)의 역할’까지 했던 것이다. 상인들이 보시한 공덕으로 석굴은 점차 규모가 커지고, 커진 석굴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했으리라. 불교가 인도에서 큰 영향력을 떨쳤던 9세기까지 이런 보완관계는 계속됐다.
까를라 석굴 앞으로 나아갔다. 매표소 부근 석굴은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입구는 다 부서지고, 벽면엔 검게 탄 그을음이 즐비했다. 짙은 그을음이 부처님이 조각 부분에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계단을 따라 2층·3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훼손이 심했다. 내려와 데칸고원 일대 석굴 중, ‘균형 잡힌 힘’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차이탸굴(예배당)로 향했다. 차이탸굴 앞에는 힌두교 사원이 제멋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 석굴사원 앞에 힌두교 사원이 세워졌는지 모르지만, 상당한 역사를 가진 사원이라고 안내인은 설명했다.
초기의 소박함에서 화려함으로
힌두교 수행자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지만 무시하고 차이타굴로 들어갔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불상과 마찬가지로 석굴 내부 장식도 변천과정을 밟는다. ‘소박하고 힘찬’ 초기의 장식은 ‘세련된 기교와 박력’을 가진 중기(中期) 양식에 자리를 내주고, 세련된 기교는 결국 화려함의 과시로 이어져 ‘퇴폐적인 경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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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탈코라 석굴의 훼손된 조각들> |
그러나 까를라의 차이탸굴은 균형 잡힌 힘과 아름다움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둥근 천정에 조형된 서까래와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들은 훌륭한 조화를 이뤄, 굴 안의 분위기를 한층 엄숙하게 만들고 있었다. 측랑(側廊)과 내실을 구분하는 좌우 15개씩의 기둥 역시 굴 안의 장엄함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굴 깊숙한 곳에 있는 스투파는 간결하면서도 엄정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수행한 스님들 모두가 절도 있게 생활했음을 은연중 느낄 수 있었다. 아쉬움을 달랜 채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피탈코라 석굴로 달려갔다. 엘로라 석굴을 지나 넓은 평원을 달리길 1시간. 깊은 협곡을 간직할 법한 산들이 저 멀리 보였다. 차에서 내려 이번에는 30분 정도 내려갔다. 협곡이 보였다.
차이탸굴 기둥마다 그려진 불화 황홀
기원전 1세기 초엽부터 개착되기 시작한 피탈코라 석굴은 모두 13개. 남향의 계곡에 차아탸굴과 8개의 비하라굴이 있고, 북향의 벼랑에 스투파를 모신 작은 석굴 4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철제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보고 있는 석굴 쪽으로 갔다. 몇몇 비하라굴을 지나 차이탸굴에 도달했다. ‘넓은 중앙 홀’과 ‘주변의 작은 측랑’을 구분하는 기둥들엔 부처님을 그린 불화가 가득했다. 황홀했다.
손을 내밀어 만지려 하니 관리인이 제지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나간 것이다. 불화에 정신을 뺏겨 모르고 있었는데, 천장을 보는 순간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거대한 석청(石淸)이 군데군데 있었다. 수많은 벌들이 빽빽하게 석청에 붙어 작업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디선가 웽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했더니 석청에서 나는 소리였다. 벌들이 마치 떨어질 듯 붙어있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차이탸굴을 빠져나와 정면을 보니 석굴 위 계곡에도 적지 않은 석청들이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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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탈코라 석굴의 차이탸굴> |
계곡을 따라 밑으로 갔다. 마지막 석굴을 보고 북쪽으로 향한 계곡에 있는 석굴 쪽으로 건너갔다. 그곳엔 작은 석굴들이 있었는데, 굴 안엔 스투파들로만 가득했다. 밖에서 스투파를 보고 예배하기 좋은 그런 구조였다. 양쪽 계곡에 산재한 석굴들을 둘러보고, 계곡 웅덩이 옆에 앉았다. 웅덩이 옆에서 다시 석굴들을 바라보았다. 입구는 다 부서지고, 입구에 붙어있었을 장식들 역시 대부분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피탈코라 석굴들은 다른 굴에 비해 파괴가 심했다. 건기와 우기를 겪는 사이 바위에 자연적으로 금이 생기고, 그것이 심해 파손된 것 같았다. 일하는 인부들도 돌이 떨어질까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떨어진 석굴 조각을 유심히 보았다. 마치 쇠잔한 인도불교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이방인이고, 떠나야만 하는 나그네. “어떻게 해야만 인도불교가 살아날 수 있을까” 피탈코라 석굴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듯했다.
인도 = 조병활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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