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VERSARY
-앤디 플리즈!
간호사가 앤디를 호출했다. 맨 앞에 앉아 기다리던 앤디가 왼쪽 다리를 약간 절며 간호사를 따라 들어갔다. 남은 대기 자들이 듬성듬성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로스 메디컬센터도 코로나 록다운 2단계 지침에 따라 치료 중이었다. 간호사가 앤디의 왼쪽 발목 붕대를 풀었다. 거즈도 벗겨내고 환부를 만져보며 물었다.
-어떠세요? 이번이 세 번째 치료지요. 아직도 붓기가 좀 있군요.
-예. 많이 좋아졌어요. 첫날은 걸음걸이가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좀 걷잖아요.
나이든 키위 간호사가 정성껏 치료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약품이 배인 네모난 거즈를 발등 위에 붙였다. 도톰한 면포를 여러 겹 덮어씌웠다. 마지막으로 압박 붕대로 칭칭 감았다. 이제 거의 치료가 다됐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시간이 최상의 의사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쓴 웃음이 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한달 전, 회사 일을 마치고 서둘러 나오다가 그만 발목을 접 질렀다. 좀 아파도 걸을만했다. 집에 와서 왼쪽 발목부위를 주물렀다. 발목 부위가 시렸다. 핫팩이 좋을 듯싶었다. 핫팩 물 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집어넣어 발등에 올렸다. 통증이 다소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발목 속의 시려 운 기운은 여전했다. 급기야 족 욕까지 하게 되었다. 족 욕기에 물이 팔팔 끓었다. 두 발을 뜨거운 물 속에 집어넣었다. 욱신거리며 시원했다. 아픈 부위가 다 녹아 들어갔다. 좀 살 것 같았다. 목욕탕에 가보면 뜨거운 탕 속에서 나이든 어른들이 아~ 시원하다!고 말하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앤디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한참을 나르시스에 젖었다.
세상은 코로나 록다운 시기였다. 병원 가기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집에서 나름 자연치료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여겼다. 컴퓨터 책상아래 족 욕기를 놓고 족 욕하면서 눈은 세계테마기행을 따라 다녔다. 해질녘 아프리카 사막을 거니는 낙타들에 푹 빠졌다. 인적이라곤 아예 흔적도 안 보였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모래 사막이었다. 작열하는 태양빛을 등에 받으며 종일 걷는 낙타의 선한 눈망울엔 구도자의 고뇌와 평온이 가득했다. 코로나 정국에 비대면 세상살이가 낙타의 발걸음처럼 묵직한 수행 길이었다. 테마기행이 끝날 때까지 몰입하다 스마트 폰 소리에 족 욕기에서 발을 뺐다. 아뿔싸! 복숭아 씨 부분 피부가 벗겨져있었다. 너무 뜨겁게 있다 보니 익어버렸나?
문제는 그 게 다가 아니었다. 웬걸, 족 욕을 한 뒤로 발등이 찐빵처럼 더 부풀어 올랐다. 염증이 가증된 상태였다. 복숭아 씨 부분 피부 데인 곳은 물집이 건빵크기로 커져갔다. 걸음걸이가 뒤뚱거릴 정도였다. 다음 날 회사에서 가까스로 일했다. 퇴근하며 스탭에게 보여주며 다음날 병가를 신청했다. GP한테 진료를 받고자 전화를 했다. 다음주부터 대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할 수없이 24시간 진료 가능한 곳을 찾아보았다. 화이트크로스 메디컬 센터였다. 간호사와 의사가 그동안 정황을 듣고 차분하게 치료에 들어갔다.
X-Ray를 찍고 분석했다. 이상무. 염증부분을 소독했다. 건빵크기 물집을 따서 물을 빼냈다. 약을 고루 발랐다. 촉촉히 약이 배인 거즈를 붙여주었다. 그 위에 마른 면포를 여러 겹 포갰다. 전체를 면 테이프로 붙였다. 압박 붕대로 칭칭 싸맸다. 탄력 있는 통 붕대를 뒤집어 씌웠다. 3일에 한번씩 치료받으러 오라고 했다. 약은 하루 세 번 두 알씩 복용하라며 항생제 처방을 해주었다. 의사는 4일간 근무 쉬는 게 좋겠다는 소견서도 끊어주었다. 다음 다음 이틀이 비번 날이라 이틀간 병가가 허락되었다. 의사 소견대로 4일을 집에서 쉬면서 재활 치료에 들어갔다. 앉아서 발을 앞으로 펼치고 그 아래 높은 베개를 고였다. 발바닥 끝을 폈다 오므렸다 반복했다. 눈만 껌뻑 껌뻑 하며 낙타의 수행모드로 들어갔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코로나 정국을 맞으면서 대하는 세상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다.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이야기였다. 햇살 창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옆쪽 의자 위에 높은 베개를 올리고 그 위에 왼 발을 올렸다. 시선은 바깥 팜트리를 향했다. 가만히 그렇게 반 시간쯤 바라만 봤다. 새들이 날아들었다. 온갖 노래를 다 불렀다. 빨간 색 꼬마 우체부차가 들어왔다. 옆집 우리 집 또 윗집 우편함에 꾸러미를 집어넣었다. 강아지가 한 바탕 짖었다. 파란 하늘에 양털 구름이 서서히 흘러갔다. 대낮에 새로운 풍경을 대면하니 생소했다. 백지 위에 글씨가 재봉틀처럼 수를 놓기 시작했다.
열흘이 흘러갔다. 오늘은 마침 비번 날이었다. 코로나 녹다운 레벨도 2로 바뀌었다. 단체 인원 제한 내에서 일상이 가능해졌다. 회이트크로스 메디컬 센터에 들러 마지막 치료를 받았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헤어 컷도 했다. 순번을 정해 한 명씩 깎아 주었다. 보는 이나 하는 이나 시원스러웠다. 오랜만에 나누는 이야기도 정겨웠다. 글렌필드 몰에 들렀다. 컴퓨터 잉크를 교체해줘야 해서 스테이셔너리에 갔다. 검정색 두 팩, 칼러 색 한 팩을 샀다. A4용지도 한 단 샀다. 몰을 나오다 푸드코트 옆을 지나게 되었다. 음식 향이 코를 자극했다. 써니와 가끔 들러 먹었던 메뉴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혼자 나온 김에 혼자 먹기는 그랬다. 테니크어웨이하기로했다. 미디엄 콘테이너에 여러 음식을 담았다. 여러 형태의 닭 요리가 주류였다. 수프처럼 촉촉한 것, 탕수육 강정 같은 것, 튀긴 것, 구운 것, 찜처럼 익은 것 등등… . 충분하다 싶었다.
새 한 마리가 밖에 나왔다가 좋은 먹이를 보고 한 몸짓이 떠올랐다. 한 달전, 휴식시간에 도시락을 먹는데 앞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나도 입 있는데요~. 알았어 임마. 옙다. 큰 덩이지. 충분할거야. 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그 자리서 먹지 않았다. 그 걸 물고서 날아갔다. 남아있는 식구에게 가져다 주려고 물고 가는 그림이 클로드업되었다. 그렇게 물고 날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가볍고 뿌듯했을까?
앤디가 딱 그 마음이었다. 어젯밤 아내 써니는 늦게야 잠이 들었다. 깎뚜기 열무김치 담느라 그랬다. 앤디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앤디는 노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막 잠이 들려는데 뜨거운 핫팩을 옆구리에 밀어 넣었다. 겨울 밤이라 좀 추운데 배위에 올려놓고 자니 숙면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말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하나씩 몸짓으로도 통하는 나이가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앤디와 써니가 만나 가정을 이룬지 서른 일곱 해 날이었다. Anniversary 였다. *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37편) 뉴질랜드타임즈. 22/5/2020
첫댓글 뉴질랜드가
5월 9일부터
정상화 됐네요.
코로나 정국에서
일상으로 왔어요.
지난 이야기 회고~
평범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건안하시길 빕니다.
해외의 생활은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저도 점점 익어 가겠지요^^
그러게요.
교감이 선물이네요.
나이들어가며
세월의 깊이를
맛봅니다.
늘 건안하셔요.
총리가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더군요.
참 다행입니다. 그래도 항상 건강 주의하세요~
고국도 속히
마무라되길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