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에는 예비 신입생을 대상으로 ‘비포 스쿨’이라는 행사를 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는 대학 입시에 대한 안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배들과의 만남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각오를 다지고,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비포 스쿨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비포 스쿨이라고 하면 영어 선생님들이나 영어 원어민도 그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영어의 ‘before’는 주로 시간을 나타내는 전치사인데 뒤에 주로 장소를 나타내는 ‘school’이 오니까 의미가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before의 반대말이 ‘after’이니까 before school은 after school의 반대말로 인식된다. after school이 방과 후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before school은 방과 전으로 이해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냥 우리말로 ‘신입생 예비 학교’ 정도로 하면 무엇을 하는 행사인지 의미도 명확하고 말하기도 쉬운데 굳이 영어로, 그것도 그렇게 합당해 보이지 않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상당히 비교육적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대구교육청의 역점 사업 중 하나였던 ‘디베이트’ 교육이다. 대입 수시 면접에서 대구 학생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세웠던 디베이트는 사실 그냥 ‘토론’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굳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 디베이트라고 한 것은 이론적인 수업 모형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100분 토론’과 같은 프로그램은 주제가 “자유학기제 어떻게 볼 것인가?”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한가?”와 같은 물음의 형태로 되어 있다. 주제가 이렇게 물음의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은 협력을 통해 합의점에 도달해 가는 것을 지향하거나,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토론이 아니라 토의라고 할 수 있으며, 영어로는 discuss에 가깝다.
일상에서는 토의나 토론을 잘 구분해서 쓰지 않지만, 화법 이론가들이 말하는 토론은 주제가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와 같은 명제와 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자기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어의 debate라는 말의 의미와 유사하다.
대구교육청에서는 디베이트 교육을 강조하면서 각종 디베이트 대회, 디베이트 리그를 만들어서 대구교육청의 특색 사업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지만 이름만 다를 뿐이었지 그 내용은 이전에 서울교육청에서 실시하던 토론 대회와 크게 차별성은 없었다. 결정적으로 디베이트라는 것은 논리 경쟁이라는 특성상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기 때문에 디베이트 교육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는 큰 관심사였을지 몰라도 교육적 효과는 미미했다. 작년부터 대구 교육의 목표에서 디베이트라는 말을 버리고, ‘토의, 토론’으로 대체를 한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많은 교사들이 비포 스쿨이나 디베이트와 같은 말을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생소한 용어를 교육청이나 학교 경영자들이 고수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학교 간 경쟁 결과에 따라 교사들 성과급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각 학교들은 학교 특색 사업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다. 교육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더라도 뭔가 그럴 듯하게 이름을 지어 학교 특색 사업으로 내세우려 한다.
우리말을 두고 상황에 맞지 않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비교육적인 일이지만, 말의 포장을 통해 교육적 효과를 과장하는 것은 더 비교육적인 일이다.
능인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