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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자원개발, 분쟁과 테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할 것인가 GS건설 플랜트해외영업팀 Sub-Saharan Africa 담당 김용빈 부장 2013년 4월에는 한국가스공사가 운영하는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에 무장 괴한이 난입, 현지인 직원 2명이 피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인 한국가스공사는 국제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가뜩이나 재무상황도 우려섞인 시선이 많은데,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가스전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안정감을 주지 못한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한국인이었으면 그 영향은 일파만파로 더 커졌을지 모른다. 신이 인간에게 천연자원을 주면서 그 위에 국경선을 긋도록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정말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세계지도를 잘 들여다보면 유독 국경에 걸쳐 천연자원이 분포하면서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가 됨을 볼 수 있다. 민족도 많고, 자원도 많고, 국경 – 그것도 인위적인 냄새를 너무도 풍기는 직선 국경 - 도 많은 아프리카는 더욱 심하다. 자원과 관련된 분쟁은 자원개발을 위해 아프리카로 향하는 많은 이들을 주저하게 만들기 마련인데, 분쟁의 내막과 논리를 알아야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되, 막연한 두려움으로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프리카 자원을 둘러싼 분쟁의 내막을 남수단을 예로 살펴보고, 실제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알제리 사례로 같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일단, 아프리카 자원을 둘러싼 전형적 분쟁의 내막을 살펴보기 위해 2011년 남, 북으로 갈라선 수단의 예를 보자. 북쪽 아랍계 무슬림과 남쪽 흑인계 기독교 세력간의 갈등으로 정리되는 수단 분쟁은 영국이 식민통치를 정리하면서 그때까지 분리하여 (북수단은 이집트를 통하여, 남수단은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와 묶어서 영국령 동아프리카로) 통치해오던 수단을 한 덩어리로 독립시키면서 발발한다. 북수단이 종교도 인종도 다른 남수단과 결별하려고 하다가 돌변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쥐고 있으려고 고집했던 주된 이유는 주로 남수단에 속하게 되는 유전 때문이었다. 현재 남, 북 수단간 국경선 부근에 산재하는 유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3/4이 남수단 것이다. 이 유전지대에는 독립 전에 꽤 황당하고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북수단군에 밀려 고전하던 남수단군이 북상하여 전선을 회복하면서 중간에 있는 유전지대에 돌입하자, 유전을 개발중이던 외국인들을 모아놓고 거기서 유독 중국인 기술자들만 따로 골라내서 사살했던 것이다. 중국 언론은 분개했고, 아프리카 언론들도 남수단군의 노골적 외국인 적대행위에 당황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전에 수단에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내전에서는 세력균형이 붕괴할 때 학살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었는데, 유엔이 90년대초에 르완다와 자이르(구 민주콩고)에서는 개입 타이밍을 놓쳐 수백만이 죽는 대량학살이 발생했고, 그 직후 앙골라에서는 이를 교훈삼아 적기에 진입하여 학살만은 막을 수 있었다. 북수단이 대규모 남진을 계획하고 있을 때, 이를 사전에 감지한 유엔에서는 학살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유엔군 - 평화유지 목적의 Peace-Keeping Operations (PKO)가 아니라, 6.25때처럼 분쟁에 책임있는 일방을 제압하는 Peace-Keeping Forces (PKF)– 을 파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파병을 결의하려 소집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내전불간섭’ 원칙을 표방한 중국의 반대로 파병은 무산되었다. 여기에는 수단 유전개발권을 노린 중국정부가 북수단 알 바시르 정권에 유엔군 파병을 막아주는 대가로 서방 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던 유전을 넘겨받는다는 모종의 비밀 합의가 있었다는 의혹이 짙었다. 어쨌거나 그 ‘불행한 시나리오’대로 유엔군은 수단에 들어가지 못했고, 북수단군은 마음껏 남수단을 유린했으며, 국제사회는 무기력을 반성하는 대신 시선을 돌리고 침묵하면서 잊어갔다. 그사이 Total이나 Petronas같은 외국 기업들은 개발하고 있던 유전에서 쫓겨났고, 그 자리를 중국 국영기업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들이야 잘 모르거나 잊을 수 있어도, 가족이 학살당한 당사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전력을 회복한 남수단군이 전선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또 하나의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 관심은 중국 수뇌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유전 개발을 하겠다고 내전중인 수단에 들어가 수고하다, 비명횡사한 그 중국인 기술자들과 그들을 그 곳으로 보낸 자원개발 기업의 관점으로 상황을 살펴보자. 누가 수단과 중국 사이에 그런 거래가 있었는지 알려줬을까? 남수단군이 자신들에게 품고 있을 증오를 상상이나 했을까?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전황을 기술자들이 알고 있었을까? 위험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도달하는지 알았을까? 만약, 위험이 도를 넘으면 어떤 루트를 통해 안전지대로 피신해야 할 지 계획이 있었을까? 혹은, 이 모든 물음이 정녕 답을 알 수 없던 것들일까… 우리에게 보다 실질적인 교훈을 찾아서 두번째 사례를 보자. 2013년 벽두에 일본 산업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알제리에서 발생했다. 북부 말리에서 국경을 넘은 과격이슬람단체 MUJAO가 국경에서 가까운 알제리 가스전 개발현장을 습격해 외국인 근로자들을 납치,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십명이 사망했고, 그중에서도 JGC사의 기술자로 파견나왔던 일본인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극도 그저 불가항력으로만 돌리고 운명을 탓하면 될 것인가? 혹시 자원개발 현장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을 너무 나몰라라 했던 것은 아닐까? 
사고 일주일 전, 말리의 확전사태를 막고자 프랑스는 영국, 미국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를 두고 말리 반군 지도자는 프랑스가 ‘지옥문을 열었다’면서 복수를 공언했다. 프랑스에서 직접 날아온 전투기가 말리 북부를 공습하였고, MUJAO는 같은 무슬림 국가이면서도 프랑스 공군에게 길을 터 준 알제리를 맹비난하였다. 이 당시 말리 반군세력인 MUJAO와 안사르딘은 알제리에 터를 잡고 있는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인 AQIM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었고, 서방에서도 이미 이 정도는 파악을 하고 있었다. 북부 말리의 주요 거점을 폭격당한 후, 이들 반군세력이 복수를 위해 타격할만한 목표가 주변에 어디 있었을까? 그들은 보유한 전투력으로 타격 가능한 거리에 있으면서, 서방, 특히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직접 물려있고, 대외적으로 충격이 될만한 타격 목표를 찾았을 것이다. 사하라 사막은 외지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말리 반군의 주축세력인 투아레그족 중심의 안사르딘과 알제리 토착세력인 AQIM에게는 그저 척박한 생활환경일 뿐이다. 리비아와 인접한 사하라 사막 구석에 별다른 경비도 없이 우뚝 솟은 인아메마스 가스전 생산설비들, 그 사이로 오가는 외국인 기술자들, 거기서 생산되는 가스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북부 지중해 해안에 도착하면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로 수출된다. 이보다 더 좋은 타겟이 어디 있겠는가? 당시 관계자들은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지 못했다. 아니, 프랑스의 개입만으로 사태가 금새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중론이었음에도,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도 처절한 것이었다. 가스전 개발사들은 알제리 정부에 적절한 보안조치를 요구했어야 했고, 그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상화된 무장경비 회사를 동원해서라도 그런 결정적 시기를 대비했어야 한다. 가스전에 난입한 반군세력의 규모를 감안하면 충분히 방어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소한 인명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대피할 수 있는 소개(evacuation) 계획조차 없었다고 한다. 해상개발에 비해 육상가스전이 가지는 개발원가상의 이점이 상쇄될 만큼 보안(security) 비용이 컸을까? 어느 나라나 전쟁을 겪은 후에는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아직도 많은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여전히 6.25 전쟁에서 회복되지 않은, 언제라도 내전이 다시 발발할 수 있는 국가로 비춰지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Korea Discount의 가장 궁극적인 원인이지 않은가? 하물며, 전대륙이 수십년간 내전과 국제전, 학살과 기아에 몸살을 앓아온 아프리카는 더더욱 그 그늘이 깊다.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하였나? 중국처럼 자원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자원개발 경쟁이 전쟁이라 불리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진 지금, 분쟁과 테러의 실체를 모르는 채로 막연히 두려워만 하면서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은 무모하게 전쟁의 포화 속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르완다 얘기를 하면 94년도에 끝난 대학살 얘기만 하고 있고, 앙골라를 언급하면 2002년에 완전 종식된 내전만 떠올리고 있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있는게 없지 않은가?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무작정 용감하게 나서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인지 아닌지, 어떻게 하면 완화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겁만 내고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간, 정치세력간, 종교간, 민족간 분쟁의 역사와 그 논리와 정확한 현황을 알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적절하게 평가하고, 여러 단계에 거쳐서 유효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실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극한의 리스크로 인식되던 아프리카의 정치, 군사적 위험 하에서도 조심스럽지만 적절한 분석과 대응책을 가지고 자원개발에 나서는 일. 그것이 아프리카 자원을 개발하고자 하는 자의 자격이다. ※ 이 원고는 MEKA 전문필진이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