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사 큰법당 대웅전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용어로 헤아릴 수 없는 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러한 무구 속에서 그대와 나의 만남에 대한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쉽게 백사장, 그 많은 모래알 속에서 서로가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곁에 있음이 모두에게 감사한 시간. 그러한 "같이"라는 시간 속에서 선지식을 만나 담소도 하고 식사도 하는 호사야말로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의 한 페이지가 아닐까?
2017년 8월25일, 오전10시 경기도 남양주시 광릉수목원 옆, 봉선사 월운, 밀운스님 접견.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法印國師)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종, 교종, 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라고 하였다. 이후 6.25 한국전쟁당시 완전 전소된 것을 1970년에 운허(耘虛)스님이 큰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부터 월운, 밀운스님 등이 부속 건물 중창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선사 조실 월운 큰스님
◎ 월운 큰스님
1929년 11월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용산리에서 출생하시어, 15세에 국교를 졸업하시고, 재당숙 김계(金桂)씨에게 한학을 수학하고, 21세에 단옷날 화방사에서 운허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여 법명을 해룡으로 받으시고 망운암에 올라가셨다. 28세에 합천 해인사 강원에서 운허스님 강석에서 대교과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29세 8월에 대교과를 졸업하시고, 12월에 통도사 강사를 맡으셨다. 30세 7월에 임시승적을 봉선사(奉先寺)로 바로잡으시고, 1959년 4월 운허스님께 입실, 월운(月雲)이라 당호를 받으셨다. 1964년 4월 10일 동국역경원이 개설되고, 운허스님께서 원장소임을 맡으시면서, 그해 12월부터 역경(譯經)을 시작하셨다. 1970년 처음으로 본인의 노력으로 대반야경을 출판하셨다.
1976년부터 1994년 10월까지 봉선사 본사 주지소임역임 하셨고, 1979년부터 1993년 12월까지 중앙승가대학교 교수도 역임하시고, 1993년 11월부터 2009년까지 4대 동국역경원장을 역임하시면서 1996년부터 2016년까지 봉선사 능엄학림 학장을 역임하셨다. 1965년 10월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으로 시작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83종의 경(經)을 역출 하셨으며, 주요번역으로는 『사분율』, 『장아함경』, 『대반야바라밀다경』, 『대승기신론』, 『경덕전등록』, 『선문염송집』, 『조당집』등 있고, 주요저서로는 『원각경주해』, 『금강경강화』, 『삼화행도집』, 『삼화표월지』, 『대승기신론강화』, 『석가여래행적송』, 『선문염송·염송설화』등 저서가 있다.
2000년 9월 은사스님이신 운허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이어서 한글대장경 전318권 완간을 하셨다.
그 공덕으로 한글학회 외솔상(2001년), 대통령 은관문화훈장(2005년)을 받으셨고, 현재 봉선사 조실스님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계신다.
▲봉선사 회주 밀운 큰스님을 접견하고.
◎ 밀운 큰스님 법문말씀
밀운 스님은 접견 법문에서 불교 신도가 3백만 이상이나 감소하고 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했다. 승, 재가자 모두, 오계(五戒)만이라도 잘 지켜, 모범된 바른 삶을 산다면 대중 모두, 그 것을 본받아 그들은 부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오계를 지키며 사는 삶을 주문하셨다.
★지켜야할 오계(五戒)
① 불살생계(不殺生戒) :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마라.
② 불투도계(不偸盜戒) :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③ 불사음계(不邪婬戒) : 음란한 짓을 하지 마라.
④ 불망어계 (不妄語戒): 거짓말하지 마라.
⑤ 불음주계(不飮酒戒) : 과도하여 본분을 망각하게 술을 마시지 마라.
◎밀운 큰스님은...
밀운(密耘) 스님은 속명이 변희준(邊熙峻)으로 1934년 10월 29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출생했다. 황해도 금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백천중학교 4년 재학 중 한국전쟁으로 월남했다. 서울시 중구로 본적을 등재하고 제일자동차기술전문학교를 졸업했다.1954년 3월 15일 경북 영주 초암사 대오(大悟)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으며 1972년 10월 30일 봉선사에서 운허 스님을 법사로 건당 입실하고 밀운(密耘)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2004년 5월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 받았다.
1981년 서울 봉은사 주지, 총무원 재무부장, 총무부장, 부원장, 대한불교신문사 주간, 법규위원장, 광동학원 이사, 1997년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를 역임했다. 특히 스님은 봉은사 주지 재임시절 봉은사 토지 2만 평을 되찾는데 기여한 공로가 크다. 현재 봉선사 회주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계신다.
▲모든 것을 내려 놓아라! 방하착에 대하여.
2017.8.26 기록 등재, 백암 박용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