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레일이 없는 비슷한 길이의 계단, 필요한 시설물로 인식 된다.~
역사의 디오라마로 향한다. 모노레일부터 약 800m 거리이다. 11:59
디오라마 카페 입구
여기서 도시락을 먹었다. 12:20
모노레일, 산리협동조합, 역사의 디오라마를 해설 하시는 '이학준' 건축문화해설사님~
디오라마 카페 옥상에서~
열쇠를 거는 곳인데 홍보가 덜된 것인지 용두산 공원과는 달리 썰렁하다.
조망대
조망공간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자리가 없는 관계로~
'부산농협 사진동우회'
충혼탑을 향하여~
충혼탑 가는 길목 동아아파트의 약 13층 높이의 아찔한 옹벽,
왠지 철망이 약해 보인다~
시민아파트, 아마 영주동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 일 것이다~
충혼탑 가는 오르막길~ 13:24
충혼탑 입구. 이 공원은 지난 1970년 9월 '대청공원'이라는 명칭으로
공원구역으로 고시되었고, 1983년 9월 7일 공원조성이 완료되었다.
1986년 공원의 명칭이 '중앙공원'으로 변경 지정되었으나
아직도 '대청공원이란 단어에 더 익숙해 있다.
충혼탑의 규모는 탑의 높이가 70m중 탑신이 39m, 상륜부가 31m이며, 영령실 30평,
광장 840평, 연못 45㎡, 양수장 1개소, 충혼비 1기, 상징물 1기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설계는 김중업씨가 맡았고, 글은 이주홍씨가 짓고, 글씨는 한형식씨,
명각에는 장상만씨가 담당하였다는 '이진애' 건축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이다.
김중업(金重業, 1922 ~ 1988)
서구의 모더니즘을 한국 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이며,
자기만의 독특한 건축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서양 건축의 한국화 혹은 한국 건축의
현대화를 이룬,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건축가.
평양에서 태어나서, 1952년 한국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프랑스의 '코르뷔지에'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수업하고 귀국,
이후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하면서 자신의 창조성을 보다 확대하고
미래를 향한 거대한 세계를 펼치는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꼿꼿한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성격, 비타협적인 작가의식 때문에
군사정권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1년 11월
거의 반강제적으로 출국,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였다.
1978년 11월 영구 귀국 했고 1988년 5월 11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 프랑스 공인건축가, 하버드 객원교수 등을 거치면서
필그림 홀 계획안(56년), 부산대학교 본관(현재 인문관) 및 유수 대학의 건물들,
주한 프랑스 대사관(59년), UN묘지(현재 UN공원) 정문(66년), 부산 충혼탑(80년),
서울올림픽 기념비(85년) 등 국내 외에 대략 200여개의 프로젝트와 작품을 남겼다.
<참고:앤비블로그>
9개의 기둥은 수직이 아닌 윗쪽이 넓은 사다리꼴 모양이나
착시현상으로 수직처럼 보이도록 설계하였단다.
뭔가 불비례한 것 처럼 보이는 건 당초 설계와는 달리 예산 등으로
첨답을 약 40~50m 나 적게 시공해서 생긴 것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오히려 렌즈가 왜곡되게 보여준다. 13:45
해군, 경촬, 공군, 재일학도의용군, 육군
충혼탑 모노레일 안에서~ 13:57
첫댓글 13층 높이의 옹벽 아찔합니다. 충혼탑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처음 세울 때 대단히 높은 건물이 올라가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