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고 무딤
“나는 아빠랑 왜 달라”
어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제목이다. 나무 위에 집을 잘 짓는 다른 원숭이와는 달리 무너지지 않는 땅굴을 파서 집을 지을 줄 아는 남다른 원승이 이야기로 두더지에게 입양된 아기 원숭이 얘기다.
JTBC 뉴스룸은 강릉에서 올라온 열한 남매 엄마 윤정희 씨가 말문을 여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열세 식구가 한 달에 쌀 40킬로그램, 간식으로 라면 한 상자를 거뜬히 해치운단다. 윤정희 씨는 아이를 여러 번 유산을 하다가 하는 수 없이 가슴으로 낳았는데, 아이 하나하나에 이끌리다보니 거듭 아이들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스물다섯 살 난 큰딸 지윤이는 엄마같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서, 지윤이와 함께 꿈을 이룰 멋진 남자를 찾는다면서 공개 구혼을 했다. 베트남 엄마에게서 태어난 요한이는 처음엔 제 이름도 쓰지 못해 쩔쩔매던 아이가 이제는 수재 소리를 듣는데 커서 외교관이 되겠단다. 수영선수인 하민이는 강원체전에 나가서 동메달 네 개나 땄고, 다니엘과 사랑이, 한결이는 강원도 쇼트트랙 대표 선수란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힘들고 속상한 일도 많지만 함께 다투고 울며 토닥이다 보면 어느새 다들 웃고 있더란다. 왁자하게 울고 웃다보니 웃음이 닮아서 붕어빵 가족이 됐다는 윤정희 씨 가정에 다사로움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스승이 우리나라 아이들 해외입양을 오래도록 마음 아파하셨기에 입양의날이 생긴 것을 기뻐하고 취재를 해 글도 몇 편 올렸는데 어제가 입양의날인 줄 까맣게 몰랐다. 민망하나마 애써 변명하며 한숨 돌렸다면, 공교롭게도 어제 올린 글이 ‘다 달라’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달라서 설레고 끌리면서 서로 기대고 서로 부추기고 북돋우며 어울려 살아간다. 사실 다름과 닮음은 한 뿌리에서 왔다. 다름은 차이를 도드라지게 한 말씀이고, 닮음은 비슷한 것을 더 드러낸 말씀일 뿐이다. 다름과 다름이 어우렁더우렁 어울리려면 서로 사이에 겨를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숨쉬기이다. 숨쉬기, 왜 숨이라고만 하지 않고 쉬기를 붙였을까? 들숨과 날숨 사이 쉼에서 목숨이 논다. 그런데 들숨날숨이 꼭 붙어있으면 목숨이 없기 때문이다. 사이 쉼이 바로 목숨이다.
글쓰기에도 마침표보다는 쉼표가 글을 헤아리는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고, 소리가락에서 음표 가운데 없어서는 가락이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쉼표이다. 이 쉼, 겨를이 글을 글답게 음악을 음악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살려낸다. 그런데 바로 쉼, 겨를은 숨 가쁘게 몰아치던 글을, 음을, 삶을, 더디 가도록 만든다. 쉼이란 더디고 무딤이다.
다름, 다른 이와 섞여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래야 해’,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돼!’하는 날카로움보다는, 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놔두는 ‘무딤’이다. 무딤이란 더디더라도 기다리고 한참을 더 기다리며 숨을 길게 가다듬으며 너를 헤아리고 또 헤아리는 것이다.
살가움과 토다움은 기다려주며 보듬어 안는 더디고 무딘데서 온다. 오늘 글은 다른 때와는 달리 쉼표를 찍는데 골몰했다.
사진은 엊그제 시청쪽으로 가는 길 스레기를 줍다가 잠시 쉬는 장갑과 집게 그리고 쓰레기 담는 망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