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오일장에서 ―김지윤(1980∼ )
매일 비워졌다 또 밀물 차오르는 모래톱처럼
닷새마다 꼬박꼬박 열리는 오일장
가을감자 파는 좌판 할머니 앞에서
한 푼, 두 푼 버릇처럼 감자 값을 깎다
하영 주쿠다(많이 줄게요), 하며 감자 자루 내미는
부르튼 손 검은 흙 낀 손톱 보며
할머니 텃밭 감자 위로 하영 쏟아졌을
뙤약볕처럼 사뭇 낯 뜨거워져
바람이 차요, 남은 것 제가 다 사드리면 집에 가 쉬실래요?
응, 응, 경허믄 고맙수다게(그러면 고맙지요)
할머니 말씀에 그만 감자를 한 무더기나 사서
한 바퀴 돌다 집에 가는 길
아까 그 자리 그대로
한 무더기 감자를 또 그만큼 앞에 내놓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할머니
할머니의 좌판에 놓인 감자를 정녕
내가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믿다니!
늘 그만큼의 부피와 무게가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게, 삶이라고
좌판에 앉은 할머니 나를 조용히 꾸짖는 듯하다
그날 저녁 소반 가득 찐 감자를 내놓고
자꾸 먹어도 허기지다
한 입씩 베어 문 듯 자꾸 비워지는 초승달처럼,
어둠이 살라먹은 자리 다시금 채워지는 만월(滿月)처럼. 그래도 텃밭에서 거둔 작물을 장터에 들고 나오신 할머니는 낫게 느껴진다. 다 해야 3만 원어치 될까 싶은 자질구레한 물건을 놓고 육교나 지하도에 쪼그려 앉았거나, 깊은 밤에 작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품을 모으는 노인을 볼 때면 소설가 강석경이 한 시인에 대해 쓴 글의 서글픈 구절이 떠오른다. ‘생활력이 없어도 생활비는 필요하다.’ 소년소녀가장은 물론이고 노동시장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익힐 기회가 없었던 모자가정의 어머니, 청장년이지만 체력도 요령도 없어 육체노동 현장도 넘보지 못하는 이 등,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통시장에서의 깎는 재미, 물건마다 정가가 붙어 있는 대형마트에서는 맛볼 수 없다. ‘버릇처럼’ 푼돈을 깎던 화자는 ‘값을 깎지는 마라. 그 대신’ 많이 주겠다며 ‘감자 자루 내미는/부르튼 손 검은 흙 낀 손톱 보고’ 낯이 뜨거워진다. 할머니가 여름내 ‘하영 쏟아졌을/뙤약볕’ 밑에서 가꾼 감자를 재미로 깎다니. 화자는 감자를 전부 샀단다. 죄송하기도 했고, 날도 찬데 좌판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를 어서 쉬게 해 드리고 싶었던 것.
그런 자신의 선심을 무효로 만든 할머니를 보며 화자는 거듭 반성한다. ‘내가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믿다니!’ 따뜻한 마음은 상대방 처지를 상상하고 이해하는 지적 능력에서 나온다. 냉혹한 사람은 아둔한 사람이기 쉽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