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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정역을 7시10분에 출발한 산악회 미라클관광버스는 지난 회차때 (큰재-지기재)
산행시 하산한적이 있는 지기재에 10시 정각 도착, 신의터재를 향해 바로 산행한다.
도로같은 농로를 따라 가다 오른쪽 야산길로 접어든다.
지기재에서 신의터재까지는 거의 평지길이라 뛰다시피하여 1시간후인 11시 신의터재 도착한다.
첫번째 대간때(신의터재-화령재) 신의터재에서 출발직전 모습
신의터재(280m)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 이라 불리었고 김준신이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년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 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 무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 여기서 막걸리 한병을 비우고 잠시 쉬었다 간다.
무지개산 오르기 전 삼거리(12:40)도착한다.
무지개산은 대간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들렀다 간다.
12시50분 무지개산 도착(지기재 출발 2시간 50분, 신의터재출발 1시간50분 경과)
<첫번째 대간때 무지개산에서> 신의터재출발 1시간50분후
무지개산에서 하산하여 윤지미산으로 가는길에 넓고 평평한 장소에서 식사(13:00-13:40)
날씨가 워낙 더워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옷도 말리고 충분히 쉬었다 간다.
14시50분 윤지미산 도착(지기재 출발 4시간50분 경과), 고생끝!! 이제 하산길만 남았다.
하지만 하산길은 급경사길이며 몇개의 나즈막한 산을 오르내려야 한다.
윤지미산(538m)은 화동면 판곡리(板谷里) 마륜(말구리)마을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신의터재에서
화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11.3km 구간에서 주봉역할을 하고 있는 산으로 화동면 판곡리와 내서면
서원리의 경게를 이루는 산으로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윤’은 판곡리 마륜 (말구리)에서 유래
했으며 ‘지’는 고개를 뜻하고 ‘미’는 산을 뜻한다고 전해지고 있다(옮겨온글)
<첫번째대간때 윤지미산에서>
<화령정에 잘 기술되어있는 화령재의 내용>
옛 상주를 기록한 상산지에 본주의 산은 상령 물은 낙강 이라 했다. 백두에서 태백을 거처 소백에
이르는 큰 줄기의 맥은 상산을 애워싸고 있는데 문장대와 이곳 봉황산은 험준하지만 수려한
기암으로 구름위에 높이 솟아 정기로 뭉친 영산이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상주의 서편은 곧 화령이고 령의 서편은 충청도 보은이며 화령은 소제(蘇薺) 盧守愼의 향리이며 달천의
운계서원과 미산의 봉무서당이 있어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처럼 화령은 문향으로
산수가 기절한 곳이 많은 산간의 정풍어린 곳이다. 신라시대 건비군(建匕君) 영달비헌 (苓達匕縣)으로 그 후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개명해 고려까지 이어오다 조선 태종 13년 화령현으로 상주목에
속했고 고종32년 (1896)에 상주군 화서면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남북의 십자도로가 트여 중화지역의 행정 경제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충지이며 산악이
천연요새로서 사산과 국사당 봉수를 중심으로 국사봉과 율림의 노고산성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백제 군사를 물리친 백화산의 금돌성 병영의 야망을 키운 장암과 하송의
병영성(城山山城) 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전지였다.
임진왜란을 당하여는 정기룡 장군이 북강하는 왜군을 용화지구 전투에서 물리치고 청계사는
창의군의 항쟁의 근거지였다. 또한 6.25동란 때는 괴뢰군 15사단 병력 일천 명을 사살한 반공전선의 유적인 화령장 지구 전적기념비가 있는 등 옛 부터 국방의 요충지였다. 여기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나들며 상주를 방문하거나 이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상령 또는 화령이란 이름을 지닌 화령재
산마루에 옛빛이 찬란한 연륜을 자랑하고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자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1990년 6월 상주군수
<첫번째대간때 화령재에서>
윤지미산에서 화령재에 이르는 길은 급경사로 밧줄에 의지하여 하산한다. 내려 말구리 (마륜)마을을
좌측으로 감싸고 길게 내려서니 376봉을 넘어 임도가 나타난다. 마륜 (말구리) 마을은 화동면 판곡리
(板谷里)에 있는 마을로 예년에는 관청의 말을 사육하던 곳으로 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입주한 것이
이 마을의 시초라고 한다. 산골 마을이지만 큰 마을이었는데 판곡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되어 지금은
20여 호만 남아 있다고 한다. 말구리로 연결되는 임도에서 무명봉을 지나 당진 영덕간 고속도로 터널 위를 지나서 고개 몇개를 넘어서 16시 화령재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지기재 출발 6시간 경과)
17시에 버스는 출발한다고 하니 1시간이나 남는다. 먼저온 대원들은 정자에서 막걸리 파티를 하고 있다. 목도 마르고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매점도 없어 돈이 있어도 구입할수가 없다. (이럴때는 돈이
있어도 무용지물?) 적당한 장소에서 땀을 딱고 옷을 갈아 입은후 그늘을 찾아 숲속으로 들어가니
가고파에서 대간을 같이 하셨던 동료 한분이 집에서 담근술(생강나무술)을 들고 쉬고 계셨다. 남은
진달래술을 같이 나누어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낸다. 생강나무술이 그런대로 맛이 괜찮다.
담번에는 생강나무술을 한번 담아 봐야지!!!
16시40분 화령재를 출발한 버스는 19시50분 양재역 도착한다. 기사분이 깜박하여 복정으로 오지 않고 양재로 가벼렸다. 전철로 이동하여 가락시장역 하차한다. 간단한 식사(물회)후 귀가, 오늘도 무더운
날씨에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며 동행하신분들 감사합니다. 13일(월)지리산
산행계획은 태풍으로 입산통제 되어 취소한다. 도락산과 월악산으로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다.
2015년 7월 12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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