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4:19-22절
벌써 몇날이 지나면 이제 24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고 25년이 시작됩니다. 기차를 타면 마을도 지나고 들도 지나고 산천도 지나갑니다. 사실은 기차가 가는 것이지 마을은 그냥 거기에 그대로 있습니다. 시간도 늘 그대로 거기에 있고 가는 것은 인생이 갑니다. 그래서 천년이 하루이고 하루가 천년인 이유가 그것이라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딤후서를 끝내면서 24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서신을 끝내면서 디모데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각처에 흩어진 동역자들에게도 문안하라고 명하고 또 형제들에게도 문안을 전해 줍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문안하고 문안을 받으면서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바램은 심령에 주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고 그곳에 주의 은혜가 함께 있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주로 말미암아 사는 자이며 주의 은혜로 사는 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19절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아굴라 : Aquila” 초대교회의 신자인 브리스길라의 남편으로 이름의 뜻은 ‘독수리’이며, 소아시아 본도 출신 유대인이었습니다(행18:2). 그는 천막을 제조하는 사람이었으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행18:3). 아굴라는 글라우디오의 박해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이주해 갔으며 거기서 바울을 만나 같은 직업인 천막을 제조하는 일을 하면서 바울과 함께 사역도 돕게 되었습니다(행18:1-3).
또한 아굴라는 자신의 집을 예배처로 사용하게 했으며(고전16:19),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는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행18:24-26). 그런 아굴라를 바울은 로마서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자신의 동역자라고 소개했습니다(롬16:3). 그러면서 4절에서 소개하기를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겐 둘도 없는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생명을 걸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네시보로 : Onesiphorus” "유익한 자"이익과 유익을 가져다 주는 자란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두 번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바울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던 에베소 교회의 성도입니다(딤후 1:16-18). 아마도 바울에게 오네시보로는 오아시스같은 믿음의 선배였습니다. 모두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떠나간 홀로 남아 있는 바울을 끝까지 섬겼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옥중에 있는 바울을 찾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딤후 1:17), 이러한 그의 행동은 바울이 필요로 할 때에 그를 버렸던 다른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현저하게 대조되었습니다(딤후 1:15). 바울이 디모데에게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딤후1:18)고 한 것을 보면 디모데 또한 오네시보로의 봉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쓰인 ‘잘’이라는 부사는 사실 최상급 표현인 ‘가장 잘’을 의미합니다(“… 그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새번역에는 “그대는 그가 에베소에서 얼마나 많이 봉사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두 단락에서 공통적으로 오네시보로의 ‘집’을 언급하였습니다(딤후 1:16; 4:19). 이는 그의 가정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그의 가정교회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요15: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고”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그의 행적을 남기고 오늘우리에게도 전하여지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0:24절“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했습니다. 힘들 때...오네시보로처럼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이가 있는 자는 행복자입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에라스도 : Erastus” 1.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에 의해 디모데와 함께 마게도냐로 보내져 사역하게 되었습니다(행19:22).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딤후4:20)라고 한 데에서, 그가 고린도에서도 전도사역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2.고린도 시의 재무관으로, 바울은 그에게 안부 인사를 했습니다(롬 16:23).1과 2의 에라스도를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드로비모 : Trophimus” 바울의 3차 여행 때 드로아에서부터 밀레도, 수리아, 예루살렘에까지 바울과 함께 했던 신자입니다(행 20:4). 에베소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아라스다고와 함께 에베소 교회의 구제금을 가지고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동행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고후 8:18-19 참고).
예루살렘 성에서 드로비모와 함께 성내에 있었던 바울은 유대인의 뜰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와 성전을 더럽힌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고(행 21:29) 그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행 21:30).
드로비모가 밀레도에 남겨진 이유는 드로비모가 병들었을 때 바울은 그를 밀레도에 남겨두었는데(딤후 4:20). 밀레도의 고향인 에베소의 외항으로 약 45km의 거리에 있었고 이 해안 도시는 에베소보다 그의 병 치료에 더 좋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병은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병이었을 것입니다.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의불로의 이름의 뜻은 ‘좋은 위로자, 분별있는 자’뜻이며 부데는 ‘검소한’이라는 뜻이고, 이는 베드로의 복음증거때 개종한 원로원에 의원이기도 합니다.
또 리노는 ‘아마 빛깔의 머리를 한자’란 뜻을 가진 자로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베드로 사후에 로마교회에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끝으로 글라우디아는 ‘절름발이’라는 뜻을 가진 여성명사로 리노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곳에서는 볼수 없는 이름들이고 교회사에 전승을 통해서만 찾을수 있습니다. 이들 외에도 모든 형제가 문안한다고 한 것을 보면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안부를 빠뜨리지 않고 전했습니다.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새번역은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하시기를 빌며,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문장의 주체가 ‘주님’‘은혜’입니다. 핍박과 어둠속에 남겨지는 디모데에게 남기고 싶은 이 말은 디모데의 마음속에 그의 영에 그 은혜를 담아 두기를 바라는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믿음을 지킬수 있는 신앙의 원리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롬12:절에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빌2:5절“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땅히 ‘주님’과 ‘은혜’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남기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이것을 통해 큰 사도는 가고 또 다른 성도가 그의 뒤를 이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우리에게 왔습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레이스를 계속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바통을 넘겨 주어야 합니다.
바울과 함께 동역하여 사도의 상을 받을 믿음의 사람들을 이 끝문장에서 보았습니다.
특별히 드로비모의 병에 대해 신유의 은사가 출중한 바울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치지 않고 밀레도에 남겨두고 쉬게 하는 배려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복음을 위해 박해와 죽음을 무릎쓰고 충성을 다한 바울사도의 믿음의 친구이자 동역자들을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렇구나!!
때론 육체의 병이나 바울의 창자를 뚫는듯한 고통(?) 사단의 가시를 둔 것이 자고치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로 알게 하시듯 참 은혜는 질병이나 사단의 가시에도 불구하고 "네 은혜가 네게 족함"을 알아가게 합니다.
마치려 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축복기도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의 마지막 말이며 기원이 여러분에게 모두 현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주님
나에게 오는 여러 가지 마음속에 이는 풍랑들 생활속에서 격는 어려움, 여러 대인관계와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는 자가 아닌 "믿음 있는자"로 받아주시고
우리의 간구를 적절히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주를 찬양합니다.
우리도 말씀들을 심령에 세기고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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