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좌.우가 따로 있나?
-글 홍다구-
處暑를 앞둔 마지막 더위의 주말 휴가를 냈다. 장마가 다시 오는지 빗줄기가 연일 오락가락하지만 이미 바람은 후덥지근하던 열기를 다 몰고 가버렸나 보다. 모처럼 마음에 여유를 찾고 TV채널을 돌리다가 '리영희‘ 교수와 몇 명의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열변을 토하는 시사토크 프로가 나왔다.
’리영희‘ 교수! 그가 누구던가?
한때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한양대 신방과 교수를 지냈고, <전환시대의 논리〉로 운동권의 우상이 되었으며(1974), 〈우상과 이성〉(1977), 〈8억인과의 대화〉(1977), 〈베트남 전쟁〉(1985),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등의 저서로 기성체제에 합류하지 않은 비 기득권층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유명한 분 아니던가.
나는 그가 주장해온 유명한 몇 가지 말들을 대충 기억한다. ‘지식과 시대정신-무지와 폭력에 대한 자유와 이성으로서의 지식인’ 이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지성사(知性史)의 측면에서 보는 인류의 역사는 어느 시대나 그 시대 특유의 무지·편견·야만·억압·폭력의 지배와 그에 대항하는 지식·관용·문화·평화·자유의 투쟁의 역사이다. 전자의 제 요소는 결합되어 '권위'를 구성해 '복종'을 요구하고, 후자는 결합해 '진보'와 '자유'를 추진한다. 권위는 현상유지를 미덕으로 삼고 자유는 변혁을 요구한다. 전자의 속성은 '힘'이고 후자의 속성은 '이성'이다.」
이 글에서 보면 정말이지 ‘힘과 이성’이라는 절묘한 이분법적 분석으로 시대정신을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TV에서 두어 번 들었던 그의 몇 마디 감성적인 말에서 그 역시 말과 글이 상충되는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정말 짜증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우측날개로만 날아왔다. 이제는 좌측이 우측을 콱 찍어 눌러 완전히 힘을 못쓰게 한 다음 서서히 좌우 양 날개가 균형을 잡아가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는 급하지 않고 차분하며 매우 이성적으로서 좋은 사회이다. 하지만 미국이 오늘날 지탄을 받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과 배부르고 가진 자들의 힘의 논리가 세계를 비탄에 빠뜨리고 있다.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마진좋은 무기산업을 일으키는 등 가진 자들을 더욱 살찌게 만들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적 문제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어찌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사적, 비 기득권적 입장에서 사회정의를 부르짖음으로써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온 그의 말에서 정말이지 중요한 것이 늘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바로 북한문제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굶어죽는 인민들이 즐비하고 또한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목적으로 탈북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작금 북으로 가는 길에는 쌀가마를 실은 대형트럭과 금강산행 관광버스가 끊일 날이 없다. 이제는 짜장면값 절약하여 개성공단에 전기까지 공급을 하겠다는 마당이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북에서는 굶어죽는 인민들이 속출한다는 소식이 여전하다. 도대체 지금까지 들어간 쌀과 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힘과 권력을 가진 북한 정권은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탈북자들을 잡아다가 정치범인양 속박을 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공개 총살하는 장면까지 뉴스에 보도가 되는 이런 시점에서 과연 ‘리영희’ 교수의 말을 어디까지 해석하여 머릿속에 주워 담아야 할 것인가?
북한정권의 현실을 들여다보자면 ‘리영희’ 교수가 지적하는 무지·편견·야만·억압·폭력의 지배만이 존재한다. 그 절대적 ‘힘’에 대항하는 지식·관용·문화·평화·자유의 ‘이성’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리영희’ 교수의 말대로 진보적 사회주의의 이상사회라고 지금까지 선전해오고 있는 북한이 과연 힘과 권력에 대항하는 이성적 정권을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묻고자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의 권력은 절대적으로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제국주의적 惡으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북한정권은 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이성적 사회주의 정권이란 말인가?
‘리영희’ 교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권력과 힘을 탓하기 이전에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한 인권말살과 핵문제에 대하여 먼저 비판을 해야 함이 순서다. 미국이 오늘날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왜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지에 대하여 지식인으로서의 이성적 비판을 먼저 해야 함이 옳지 않은가. TV 에 나와서 미국의 힘을 비판하고 지나간 우리 과거만을 꾸짖으면서, 진보라고 자칭하는 현 정권이 지금까지 비행의 버팀목이던 우측날개를 아예 꺾어버리고 몸에서 떨어져 나가게 해주도록 한껏 부축이고 있다. 현 정권에게 좌측날개로만 한번 날아보자고 별스럽게 아첨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연민의 정을 느끼게도 한다.
잠시 지금까지의 역사를 뒤돌아보자. 좌측이든 우측이든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무지·편견·야만·억압·폭력들이 자의든 타의든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과 중공 등, 좌측을 대표했던 과거 공산주의 체제는 과연 이성적인 사회였음을 이야기하고자 함인가?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붕괴된 이유는 왜 이야기하지 않나? 지식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글을 씀에 있어서, 좌우날개가 공평해야 평화로이 높이 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어째서 한마디씩 하는 말마다 편을 가르다 못해 우측 죽이기에 앞장을 서고 있는가?
내가 고명하신 ‘리영희’ 교수님을 비판할 수준은 아니지만, 초지일관 거의 막말과 반말로써 시청자들에게 현 정권의 무지로 인한 편가르기를 한 수 가르치듯 하는 오만한 자세를 보자 하니 당신은 민주화 시절의 그 ‘리영희’가 절대로 아니었음이다.
그런 전제하에 당해 TV프로를 보면서 무진장 열 받으신 시청자들을 대신하여 한 말씀 해 본 것이니 곡해 없으시기 바란다. 아무리 현 정권 이하 막말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지식인마저 그러면 쓰겠는가?
또한 KBS, MBC를 보노라면, 커다란 사회주의 혁명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연신 내보내는 요즈음의 프로그램들에서 전두환 정권시절의 살벌했던 언론플레이 못지않다는 섬찟함을 느끼게 한다. ‘권력은 짧고 인생을 길다.’라는 말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 아닌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따라서 변신을 해야만 하는 게 언론이란 걸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이제는 홀로 독립하여 한 목소리 한다는 그 언론인 출신 지식인들마저 그토록 비겁한 변명을 밥 먹듯 늘어놓아서야 쓰겠냐는 말이다. 이 한 여름에 참으로 밥맛없는 세상을 탓하노라.
권력의 힘에 휘둘리는 이성적 언론들이여, 자칭 지식인들이여 그리고 ‘리영희’ 교수여!
제발 정신들 좀 차릴 지어다!
hspkmyss@hanmail.net
-홍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