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울리는 천도법문
자료 제공; 박남주 교무 취재- 장지해 기자
원광 2013년(원기 98년) 10월호
박남주 교무가 영산 정관평 책임자로 근무할 때 이야기다.
당시 영산선원 산업부 숙소가 불편해 거처를 옮기는 일이 있었다.
이사를 간 곳은 교단 초창 당시 대종사님과 인연이 많았던 범현동 이씨 제각 옆,
삼산 종사의 딸이자 정귀원 교무의 어머니가 살던 집이 비어 있어
간단한 수리를 하고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 박 교무는 밤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범현동이 산골이라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했지만, 집이 오랫동안 비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문득문득 대종사님이
“귀신을 보려면 그것은 쉽다. 시골이나 산중에 빈집들이 많이 있지 않느냐?
그 빈집에 귀신들이 ‘여기가 내 집이다.’하고 살고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밤마다 ‘천도법문’을 외기 시작했다.
학생 때부터 익히 외우던 법문이라, 공부 삼아 외다가 잠이 오면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정관평 농사일이 많고 힘이 들다 보니,
어느 날 하루는 너무나 피곤해 천도법문을 생략하고 잠이 들었다.
‘오늘 하루쯤이야 괜찮겠지….’한 것이다.
곤하게 얼마쯤 잤을까?
그는 누군가 온몸을 누르고 목을 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평소 가위눌림을 믿지 않고 살아오던 박 교무였기에 더욱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법신청정 본무애…’ 하며 청정주를 외우기 시작했고,
어렵게 가위눌림에서 풀려나 눈을 떴다.
그런데 눈앞에 검정색과 회색 옷을 입은 여러 남자 영가들이
박 교무를 빙 둘러싸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이후 며칠 동안은 불을 켜 놓아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비슷한 일화 하나.
박 교무가 하섬에 근무하던 시절,
그는 원광대 5급 별정직으로 원광대 부설 임해수련원 관리를 겸직하고 있었다.
그곳은 여름 성수기가 되면 수시로 이용객이 드나들던 곳이라,
매번 하섬에서 왕래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변산교당 근처에 빈집을 얻어 한 달여를 지내게 되었다. 빈집이었기에 역시나 밤마다 천도법문을 몇 독씩 외우고 잠을 자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역시 천도법문을 생략하고 잠이 든 날 밤, 가위에 또 눌리고 말았다.
청정주를 외고 어렵게 풀려나 보니
영가 몇 명이 빙 둘러앉아 박 교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워 있는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박 교무는 이러한 두 번의 가위눌림 경험 이후, 빈집에서 머무르는 경우에는
아무리 낮 업무가 힘이 들어도 천도법문 외는 것은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천도법문은 대종사님이 친필해 발표한 것인 만큼 그 위력이 크게 담겨 있으므로 천도받기 위해 천도법문 듣기를 기다리는 영가들이 많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