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볼품없지 않았다. 다만 특색이 없었다. 그것도 아주 형편없을 정도로. 어쨌든 서울은 대단히 화려한 도시였다. 너무 화려해서, 딱 영화 속 장면 같았다. 실은 낯설었다.
정말 저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맞는가. 마블이 일 년 전 서울에서 찍어간 장면들은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영화 촬영에 대한 우리의 불편 감수가 컸던 만큼 어쩌면 아무리 많이 나와도 부족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게다가 영화 속에는 하도 많은 ‘도시’들이 등장해서, 어쩌면 한국인들만 눈이 빠지게 열심히 들여다보았을 뿐 서울이 스쳐지나가는 단순한 배경으로 보일 소지는 많다.
한국인이 아닌 관객들에게는 기억에조차 남지 않는 ‘그래픽 영상’ 수준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글로벌시티로서의 서울의 위용은, 마천루의 숲과 번쩍이는 유리 벽면들 그리고 웅장한 다리가 대변했다. 한국인들이 세계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어쩌면 유일한 근대의 수식어 ‘한강의 기적’을 제대로 아주 제대로 짚어낸 장면들이었다.
경찰들의 통제 상황까지 다 담겨 있었다. 빈 공간 하나 없어 보이는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추격신은,
그 복잡성 때문에 사소한 액션에도 다 부서져 나갔고 파괴의 효과는 극대화 되었다. 영화 속 서울은 파괴를 일삼는 허세 영웅들의 난동에 아주 적합한 도시였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황홀하게 지루했다. 하도 부수고 소란을 피워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졸렸다. 엇비슷한 플롯 속에서 그저 도시들만 바꾸어가며 부수고 또 부수는 방식은 그 엄청난 물량공세에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 작품의 특성상 영웅들은 그저 빈둥대는 건달들처럼 어슬렁거렸고, 선과 악의 개념마저 모호해지면서 작품은 메시지조차 주지 못했다.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은 사실 세상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사라져 줘야 할 존재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조용히 은둔하는 것만이 진정 ‘생명’을 위하는 길처럼 보였다.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숱한 잡음과 전쟁들이 볼썽사나울 지경이었다. 물론 가까스로 ‘파멸’만은 막는다. 헐리웃 대작다운 결론이었다.
그러나 다른 블록버스터와 달리 심각할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졌다. 그들이 강한 것은 그저 원래부터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강한 것이 그런 이유이듯이. 새로운 창조물로 등장한 울트론이나 비전이 강한 힘을 갖게 된 필연적 이유를 찾지 못했다. 떼로 등장해서 정신없이 싸워대는 게 <어벤져스> 시리즈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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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조스 웨덴 감독, 2015. |
이런 영화의 장르적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화가 난다. 한국인에게 <어벤져스2>는 그저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2년째 시달리고 있는 어떤 신기루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실제 생활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미국 회사의 영화 촬영 협조에 대해, 이 나라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국가 브랜드’의 이름으로 신신당부한 것이 바로 지난해 3월20일이었다.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그 영화로 생길 수익을 생각해 일어날 불편을 최소화 하라는 당부를 했다.
정 국무총리는 우리의 국가 브랜드 상승과 경제적 효과 제고는 물론 관광산업 진흥, 고부가가치 관련 산업 성장,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국내 영화산업 발전을 이끌 기회라고 말했다.
<어벤져스2> 한 편에 거는 대한민국의 기대는 커도 너무 컸다. 발전된 위상과 모습을 세계에 알릴 계기라며, 정부는 국민들을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예상뿐인 효과를 마치 기정사실처럼 언급하곤 했다.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영화 개봉 후 2조원의 가치 상승 추산이 가능하다는 확실한 수치들까지 일제히 보도 됐다.
일부에서는 뉴질랜드처럼 ‘프로도 효과’(Frodo Economy)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였던 뉴질랜드에 방문객이 급증한 사례를 든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장엄하며 신비로웠던 신화적 이야기와 딱 들어맞았던 영화 속 뉴질랜드의 풍광을 우리가 ‘수익 모델’로 끼워 맞춘 것에 시민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개봉된 영화를 봤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어벤져스2>의 공간은 어쩌면 한국인들을 일차적 관객으로 예약하는 고도의 전략이었을까. 한국인들은 과연 서울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했다. 마블의 선택은 주효했다.
<어벤져스>는 2012년 595억 원을 기록했다. 이번 속편은 곧 한국에서만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 2주 동안 적어도 천만 이상의 시민들이 고스란히 불편을 감내한 결과로, 우리는 마블의 최대 고객이 되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한 ‘투자’는, 고스란히 우리 주머니에서 지불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영화들을 몰아내고, 극장을 싹쓸이 중이다.
영화 속에서 괴물 울트론은 말한다. “누구나 자신이 두려워하는 걸 만들지. 평화주의자들은 전쟁무기를 만들고, 침략자들은 어벤져스를 만들고.” 파괴와 낭비의 길고 심각한 대행진 뒤에 남는 것은 허탈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오직 환상에 바탕한 계산법의 실체를 말이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 2)
김원 /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