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독후감
<무소유>라는 작은 수필집은 법정스님이 1970년대에 쓴 글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은 꾸준히 팔리는 소리 없는 베스트셀러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책을 양서로 추천한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요즘에도 마음이 산란해질 때에는 가끔 펼쳐본다.
나는 교양과목으로서 환경과학이라는 과목을 매년 가르치고 있다. 교양과목이기 때문에 다양한 학과의 학생이 신청하는데, 학생 수가 많아 보통 100명이 넘으며 가장 많게는 250명까지 수강한 적도 있다. 나는 이 강의의 세 번째 주에 어김없이 “<무소유>를 읽고 독후감을 세 장 이상으로 써오라”는 과제를 내준다. 독후감을 낸 사람은 5점을 준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5점은 큰 점수이므로 환경과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무소유>를 읽지 않을 수 없다.
대학교수로서 내가 누리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학생들이 써낸 독후감을 읽는 일이다. 독후감은 요즘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좋은 수단이며, 또한 학생들의 기발한 표현들에 웃음을 짓는 경우도 많다. 나는 독후감 읽는 일이 너무도 재미있기 때문에 독후감을 걷은 날은 만사 제쳐놓고 독후감을 먼저 읽는다.
학생들이 쓴 <무소유>독후감을 읽어 보면, 몇 가지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첫째로 많은 것은 기독교 학생들의 노골적인 불만이다. “왜 교회를 나간다는 교수님이 스님이 쓴 책을 읽으라고 하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종교간의 불화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서로 다른 종교로 인하여 피흘려 싸운 부끄러운 세계 역사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종교 간의 대화는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독후감의 끝에 가면 “이제는 알 것 같다”는 말로 변한다. <무소유>중의 ‘진리는 하나인데’라는 글을 읽은 후에 이러한 오해가 풀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학생들의 의문은 “환경과학과 스님의 수필집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환경과학은 대기오염이 어떻고, 수질오염이 어떻고, 쓰레기가 넘치고, 등등 환경오염을 공부하는 과목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교양과목인 환경과학에서 어떻게 하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환경오염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무소유>에서 제시하는 ‘욕심을 줄이고 소박하게 사는 생활’에 있다. 내 서가에 꽂혀 있는 환경에 관한 수백 권의 전문서적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환경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은 겨우 136면에 불과한 <무소유>책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세 번째로 많이 나오는 독후감의 결론은 “무소유란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산속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은 실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열심히 뛰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맞지 않는 한낱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나도 약간은 동감한다. 산속에서 수행하며 사는 스님들이야 자동차와 에어컨 없이도 살 수 있겠지만, 나처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자녀를 교육시켜야 하는 평범한 생활인이 무소유를 실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소유>에서 주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뭐라고 할까, 삶의 목표를 ‘많은 소유’에 둘 것이 아니라 욕심을 줄여 ‘중간 소유’ 정도로 만족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독후감을 읽다 보면 내가 도달한 결론과 비슷한 내용이 간혹 나와서 나는 매우 흐뭇하다.
요즘 학생들도 감정이 풍부하기는 마찬가지. 특히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하다.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독후감이 가끔 있는데 대개 여학생이 쓴 것이다. 그밖에도 냉전 중이던 남자친구와 화해했다는 독후감도 더러 있고, 싸우고 헤어진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는 독후감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그밖에 “얇은 책이라서 단숨에 읽을 줄 알았는데 만만치 않았다”든가, “자꾸 책읽기가 중단되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라는 독후감도 있다. 법정스님이 말하는 양서의 정의는 ‘읽다가 자꾸 책장이 덮여지는 책’인데, 그 자신이 쓴 <무소유>는 양서임이 분명하다.
그밖에도 기억에 남는 독후감은 어느 여학생의 것인데, 자기가 읽고 감동을 받은 후 마침 여행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주었단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딸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딸아, 고맙다. 참 좋은 책이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독후감은 수학과 학생이 쓴 것인데, 무소유란 공집합이라는 것. 공집합은 원소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원소를 포함할 수 있다나. 무슨 말인지 알 듯 모를 듯, 수학적인 용어로도 무소유가 설명될 수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밖에도 무소유 독후감을 통하여 내가 확인한 것은 요즘 대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다. 대학 들어온 후 전공서적 빼고는 처음으로 읽은 교양서적이다라고 고백하는 독후감은 대개 남학생들의 것이다. 예상했지만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책을 안 읽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어느 남학생의 독후감에서는 “보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터미네이터 투(미국의 폭력 영화)를 한 번 보는데 6천 원인데,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이렇게 좋은 책의 가격이 겨우 1천 원 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이다”라고 쓴 것이 있었다. 약간은 아부성이 있지만 기억에 남는 독후감 중의 하나이다.
내가 처음에 <무소유>를 읽게 하기 시작할 때 책값은 1천 원이었다. 그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책값이 올라 이제는 2천 원이 되었다. 그러나 단돈 2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양서는 <무소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1995.12.)
첫댓글 2010년에 <무소유>를 사서 어느 분에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출판사는 범우사로 변하지 않았으나, 책 가격은 8000원으로 올랐습니다.
문고판은 양장판으로 바뀌었고, 면수도 159쪽으로 늘었습니다.
작은 종이띠를 둘렀는데 세 사람의 짧은 서평이 써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썼습니다.
도올 김용옥은 "칠보공덕이 못 미치는 지혜. 법정 스님의 명언을 빌어 설파되는 무소유 지혜"라고 썼습니다.
윤구병 교수는 "무소유는 공동 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 한 그루 베어내어 아깝지 않은 책"이라고 썼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저는 우리 총장님께서는 독서가 취미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총장님께서는 요즘 여러가지로 마음이 산란하실텐데,
이번 가을에 우리나라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무소유>를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구자님이야말로 총장님을 위하는 충신입니다.
박태덕 교수와는 종류가 다른, 진정으로 총장님을 위하는 총신 중의 충신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