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엑스마키나, 자의식과 공감 이야기
신년을 맞아 볼 만한 개봉영화가 없다! 그래서 뒤적거리다 작년 신년초에 개봉한 영화 '엑스마키나'를 집에서 봤다. 당시 극장 몇 군데에서 몇 번 상영하고는 내려진 영화라고 한다. 대박영화나 베스트셀러는 대중을 위한 작품이지 좋은 작품은 아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화려함에 비할 바 아니지만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블레이드러너'에 뒤지지 않는다. (스포 분명히 있음)
이 영화는 구글급 검색회사 회장의, 세상과 단절된 오지에 있는 비밀연구소를 무대로 한다. 회장 네이든은 거기서 A.I, 즉 인공지능로봇을 완성한다. 그리고는 자기 회사의 유능한 프로그래머 칼렙을 휴가권 당첨 형식으로 끌어들여 인공지능로봇 에이바에게 자의식이 있는지를 테스트하게 한다. 하지만 네이든의 숨은 테스트 목적은 한단계 뛰어넘어 인공지능로봇 에이바가 인간인 칼렙을 과연 유혹할 수 있는가에 두고있다.
영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네이든은 관찰하고, 에이바는 (자신의 탈출을 위해) 칼렙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칼렙은 점차 정체성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칼렙은 면도칼로 자기 팔뚝을 그어 자기도 로봇이 아닌지 확인하기도 한다.
칼렙에게 "자네에 대한 에이바의 감정은 뭘까?"를 묻던 네이든은 후반부에는 한 발 더 나간다. "에이바는 자넬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자넬 좋아하는 척 하는걸까?"
칼렙은 네이든에게 따진다. 검색을 이용해서 자기 취향을 알아내 에이바에게 적용한 것 아니냐는 거다. 그리고 에이바로 하여금 자기를 유혹하도록 프로그래밍한 것 아니냐는 거다. 네이든은 말한다. 칼렙에게 인간 또한 우발적인 과정이긴 하지만 프로그래밍되는 존재라고. 인간은 자연과 부모에 의해 사실상 프로그래밍되며, 인간의 정체성이란 살아가면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 축적된 여러가지 외부 자극이 각인된 결과라고. 벽에 걸려있는 잭슨 폴락의 '작품6'가 우발적인 행위에 의해 완성되었듯이 인간 또한 우발성에 의해 프로그래밍되는 존재라고.
이 시점 이후 영화의 흐름은 우발성, 혼돈, 반전으로 이어진다. 단순 가사도우미로 만들어진 A.I 쿄교는 서서히 우발적으로(!) 자의식이 생겨나고, 칼렙은 에이바의 탈출을 도우며, 그래도 인간은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네이든은 칼렙에게 배신당한 꼴이 된다. 네이든은 통제된 방에서 나온 에이바를 제압하려다가 에이바와 쿄교에 의해 살해된다. 에이바는 (자기 종족은 믿지않고 인공지능을 믿은) 칼렙을 방에 가둬 죽게 하고 비밀연구소를 떠난다.
네이든은 에이바에게 미로에 갇힌 쥐 신세임과 탈출 방법을 사전에 알려줬다. 에이바가 탈출에 성공하려면 자의식, 상상력, 통제력, 섹시함, 공감능력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보고, 네이든은 에이바가 칼렙에게 하는 행동을 통해 인공지능의 완성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에이바는 그 다섯가지 항목을 전부 이용할 줄 알았다. 정작 네이든은 공감력이 약했다. 칼렙, 에이바, 심지어 쿄교에게 배신당한 것이 그 때문이다. 칼렙에게는 자의식이 약했다.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자의식마저 약했다. 인간을 배신하고 인공지능로봇을 도운 이유이다. 네이든의 공감력 부족에 칼렙의 자의식 부족이 더해져 재앙을 부른 것이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인간관계가 파편화한 현대사회에서 공감력 부족이야 일상화한 사실이다. 문제는 칼렙같이 자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공감능력이 있을 때이다. 자의식이란 통일된 주체로서의 의식이다. 사회에서 자의식없는 공감은 비탈의 눈덩이를 굴리는 힘이다. 긍정적인 힘을 키우는 공감이라면 좋으련만 세상에 어디 그런가? 태반이 부정적인 힘을 키우는 공감이니 문제다.
첫댓글 자의식 또한 공감력 부족만큼 부족한 이 현대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자의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네요. 적어도 칼렙은 되지 않겠지요^^ ㅋㅋ
정체성이나 자의식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딘가에 휩쓸리지 않도록 저만의 자의식, 정체성을 바로세우겠습니다.
자의식과 공감력...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채워나가야지요..
자의식과 공감력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비극을 극단적으로 나타낸 영화인 것 같네요.
a.i.가 인간보다 인간적인 것도 충격입니다.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인 것 같아요.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