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픽션]
물 위의 기억들
어둠 속에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끌어안은 듯 그저 거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침묵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혹은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나직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파도의 리듬을 타고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어디선가 오래도록 억눌려온 것들의 잔해였다. 그 잔해들은 한때 사람들의 몸이었다가, 이름이었다가, 이제는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사라는 그 소리를 듣는다. 아니, 그녀는 항상 들어왔었다. 이제 그 소리가 몸에 스며드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건 마치 그녀 자신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이기도 하다. 파도 소리가 아니라 망각의 소리. 그녀는 그 속에 무언가가 깃들어 있음을 알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그날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도시는 기억을 지우고, 지운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을 쌓는 법을 배웠다. 과거는 언제나 먼 곳의 이야기처럼 여겨졌고, 그 속에서 목소리를 잃은 자들은 흩어진 그림자가 되어 도시의 공기 속에 부유했다. 사라는 공기 속에서 그 그림자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닫는다. 도시는 그 입을 열지 않기를 원했고, 그녀도 그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사라는 알고 있었다. 도시는 쉬이 잊으려는 몸부림 속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역사적 트라우마는 다 잊힌 듯 묻혔지만, 그것은 그녀의 꿈속에 매일 밤 피어오르는 진실이었다. 마치 죽은 자들이 잠에서 깨어나 그녀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자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 밤, 그녀는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오래된 나무로 지어진 부두는 부서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위에 서서 몸을 기울였다.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몸을 낮췄다. 차갑고 검은 물이 그녀의 손끝을 스쳤다. 그 순간, 바닷속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잡았다. 그것은 손이었으나, 동시에 손이 아니었다. 사라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몸속에서 일렁이는 무언가가 그 손에 이끌려 나아갔다. 그녀의 정신은 물속으로 깊이 잠겼다.
"우리는 잊혀졌다." 바닷속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 목소리는 바다의 바닥에서 울려 나왔지만,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억눌려온 영혼들의 절규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땅을 밟았던 자들이었고, 이곳에서 사라져간 자들이었다. 그들은 땅 위의 사람들, 산 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더 이상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라는 물속에서 떠오르는 얼굴들을 본다. 얼굴들은 선명하지 않다. 그것들은 그저 한때 인간이었음을 암시할 뿐이다. 그들은 왜 이곳에 머무는가? 왜 그들은 도시의 망각 속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는가?
"우리는 이 땅에 얽매여 있다. 우리의 몸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았다."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사라는 그들이 묻고 있는 질문을 느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잊혀지기를 거부하는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사라는 더 깊이 그 속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을 더듬어 찾아가는 동안 그녀의 호흡은 멎었고, 심장은 느릿하게 멎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기억을 껴안았다.
이제 그녀는 알고 있다. 죽은 자들은 단지 그들이 과거의 것이라서 잊혀져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여전히 산 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 속에서 산 자들조차 자신의 삶을 지배당하고 있음을. 그들이 붙잡고 있는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인간의 삶의 연약함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 연약함 속에서 서로를 잃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지배하고 억압하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라는 그 사실을 뼛속 깊이 체감했다. 그날 밤 그녀는 물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다음 날 부두에서 발견되었다. 그녀의 눈은 뜨여 있었지만,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라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바다와 도시를 따라 흐른다. 바람은 그녀의 숨결을, 파도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해준다. 그 목소리는 "우리를 잊지 마라"는 간청일 수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 간에, 사라는 이제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을 가르는 경계를 넘었다.
그녀의 발자국은 물속 깊이 잠겼지만, 그 발자국은 여전히 이 세계 어딘가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 발자국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자신이 숨기고, 잊고, 그러나 결코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