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ttps://youtube.com/live/2i_jXBkj6UI
# 설교 본문 및 요약 스크립트 다운로드 #
나의 안에 거하라(37)_하나님의 음성과 내 생각을 구별하는 방법(1)_평강과 말씀(요10:1-6,골3:15)
요한복음 10장입니다. 10장 1절에서 6절 콜로세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야 뭐 10장 1절에서 6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여 강도며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거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 거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로 투망하느니라 계속해서 이 비유로 저에게 말씀하셨으니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고르세스 3장 15절 제가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느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오늘은 하나님의 음성과 내 생각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악의적인 속살거림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내 안에 내가 소리를 치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이 내 안에서 소리를 내시는 것과 마귀의 속살거림이 어떻게 다른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면 큰 일이 생깁니다. 그렇죠? 잘못하면 아주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똑바로 들은 것 같은데, 아닌 경우가 많죠. 있지 않던가요? 아 잠잠 골방 교재 그다음에 사랑방 교재 말 수만 해서 교재를 통해서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아니면 간접적으로 많이 듣게 됩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말씀을 읽을 때 나를 감동하는 게 가장 일반적입니다. 그건 절대로 틀릴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혼자 알아서 듣고 알아서 행하는데 결과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갈 때가 많죠. 그런 것들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조용한 새벽에 기도하는 중에 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죠? 음성이 들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그게 내 것인가? 아닌가? 하나님의 것인가? 어떻게 아는가?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머릿속에서 그냥 나온 생각인가? 하나님이 떠올려주신 생각인가?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제법 있죠. 잘되나요? 예 너무 간단 명료합니다.
여러분 간단 명료한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게 긴가민가 할 때가 많이 있죠. 그걸 알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죠. 그런가요? 주님의 인도암을 받아 사는 인생에 대해서 그 드라마틱하고 멋진 인생을 생각해 보셨나요? 만물에 나고 없어짐. 이 땅의 시작과 끝까지 다 아시는 분의 음성을 듣는다라는 게 그냥 보통 일입니까? 지나가는 개 짖는 소리하고는 다릅니다. 여러분. 그렇죠? 하나님의 음성과 생각, 내 생각을 구별하는 방법. 여러분들 엄청 궁금하죠? 모르면 평생 헷갈릴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믿음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믿음의 근거는 말씀이 있죠. 말씀이 없는 내 믿음을 발휘한다. 그건 공허한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유효합니다. 그렇죠?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라 했을 때 이렇게 할 줄 알고 믿음을 발휘하죠. 맞나요? 아멘 그렇게 말 안 했는데도 내가 알아서 바라보고 믿음을 발휘해서 뭔가 원하는 대로 취하려고 해봤죠. 한두 번 했을까요? 수십 년 지금까지 했을 텐데요. 되던가요? 믿음이 발휘되던가요? 못 취했죠?
믿음이 없었어요. 믿음이 왜 없죠? 아니요. 믿음 내기 원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발휘해도 취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안 됐던 거죠. 발휘해서 취할 수 있었으면 뭐하러? 여기까지 오셨겠어요? 집에 앉아서 그냥 취하고 말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유효합니다. 말씀하지 않은 걸 내가 억지로 만들어내서 한번 기도로 밀고 나가보자. 믿음을 한번 발휘해보자. 내가 원하는 걸 그림을 그려놓고 주야로 바라보면서 한번 내 걸로 만들어 보자. 그래서 믿음을 발휘해 보자.
그러면 믿음은 그 바라는 게 내 안에 이루어지는 거다. 이렇게 딱 입력을 하고 최면을 걸죠. 체면입니다. 그건 그냥 체면에 불과한 거예요.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건 장난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실까요? 안 원하실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할 때 우리가 알아들을까요? 못 알아들을까요? 오늘 본문에 잘 보세요.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양은 들을 수 있나니가 아니고 듣나니 또 양의 주인은 양의 이름을 각각 알고 불러요. 부르는 소리 들었어요? 미자야 들었어요. 저한테는 바우라 안 불러요. 하노나 옛날 이름을 불러. 자꾸 아직 덜 됐다는 뜻이죠. 바뀌었는데 주님 그래도 또 미자야. 그러고 있죠. 미자가 누군지 아세요? 모르세요. 큰일 났네. 우리 마누라 이름이 미자예요. 그걸 모르셨어요.
아직도 10년이 됐는데 아직도 미자약을 맞을 거다. 이름을 각각 불러낸대요. 사절에 보세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거로 따라간다고요. 여러분은 양이죠. 듣고 그냥 따르는 게 아니까 이게 주님의 음성인지 아니까 따라가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는 여러분은 반드시 들어야 하고 알고 따라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가요? 못 듣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는다는 이야기가 있냐고요. 그리고 여러분 안 들으려고 하는 거예요? 거부하는 거예요. 길을 막고 있는 거죠.
그냥 듣는다고 그냥 그렇죠. 그런데 들리긴 많이 들리죠. 이게 그놈의 소리인가 이놈 저놈의 소리인가? 그게 헷갈리죠. 듣기는 많이 듣습니다. 얼마나 많이 듣는지 몰라요. 속살거리는 소리처럼 우리의 생각이 너무 복잡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생각, 두려움의 생각, 걱정하는 생각, 불안하는 생각, 또 강한 자존심부터 시기, 질투, 혈기 이런 것들이 각각 자기 목소리가 있어요. 두려움이 소리를 칩니다. 나 지금 두려워 죽겠다. 나 지금 너무 걱정된다.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속에서 안 그러던가요?
그렇죠? 혈기가 막 소리 지르죠. 분노가. 왜죠? 분을 내라. 분을 내라. 안 해도 알아서 내버리죠. 그게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서 내는 소리들이에요. 그게 그것들도 영이라는 거예요. 영이에요. 하나님의 영과는 다르지만 살아있잖아요. 안 그런가요? 살아서 운동력을 가지고 있죠. 0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염려를 하게 되잖아요. 그런 거예요.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라 하죠. 그런데 속에서는 자꾸 염려를 해야 될 것 같죠. 염려하지 말라 이런 말이 들어오면 이게 내 말인가 하나님의 말인가 분별돼요. 당연히 분별되지 하나님이 염려하라고 하던가요?
하나님이 염려하지 말라 하던가요? 염려하라던가요? 이럴 때는 꼭 염려해라 하던가요? 단적인 예를 그냥 말씀을 드린 겁니다. 각각이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내 안에서 소리를 쳐요. 속살거린다고요.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요. 아침에 앉아 있으면 끊임없이 소리가 생각이 소리가 올라오죠. 지나가다가 들은 노래가 막 그렇죠? 확 올라오고 그거는 얼마나 잘 박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깐 우리 설교한 걸 틀려놓고 TV를 틀면 그게 바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채널을 몇 번 이렇게 돌려 나오잖아요. 그런데 한번 돌려다가 잠깐 여기서 부르는 사이에 노래가 나와. 노래가.
아 그러면은 설교를 2시간 듣는 것보다 그 노래가 얼마나 강력한지 아침에 일어나면은 소리가 막 올라오지 않던가요? 그 정도로 우리 안에 잡음이 강한 거예요. 그런 것만 있나요? 또 하나님의 말씀도 비슷하게 흉내를 내기도 해요. 이건 낭패죠. 아닌가요? 마귀가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 도전하잖아요. 뛰어내리라 이런 것들 다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하고 편안한 가운데 듣기가 쉬운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요한복음 13을 잘 보시면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원하셔요 더 원하셔요 왜 그럴까요? 이 땅에 이리들이 잔뜩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언약을 하셨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인도하기 원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말을 하길 원하고 음성을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더 원하시는 거예요. 간절히 원하시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고린던스 1장에 우리를 불러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불렀다고 그랬죠. 그 하나님은 믿으시죠?
하나님의 믿음으로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 안에 심어놓고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믿음으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우리를 불러서 교제하기 위해서요. 남녀 간에 교제하면 어떻게 합니까? 둘 다 이렇게 하고 하루 종일 다닙니까? 벚꽃구경 갔다 왔어요? 혼자 갔어요. 누구랑 갔어요? 가족들이랑 벚꽃구경 갈 때 어떻게 갔어요? 진짜 멋지지 않니? 한잔할까? 오늘 벚꽃 구경하고 한잔할까? 이러면서 왔다 갔다 대화를 하고 왔다 갔다 하죠. 하루 종일 말도 안 하고 꽃만 이렇게 보고 다녔어요. 그건 아니죠. 아니래. 아니래. 우리를 왜 불렀다고요?
그러니까 뭔가 대화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거든요.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교제가 돼요. 예수님만 말하면 교제가 돼요. 예수님만 열나게 말하는데 안 듣고 멍하니 있으면 교제가 돼요. 아니면 나만 잡소리를 막 하면 교제가 돼요. 안되죠. 여기 분명히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양을 각각 불러낸다고 이름을 부르면서 이름만 부르겠어요. 순희야 그러고 가만히 있겠어요? 이리 오느라 저리 가거라 밥 먹어라 물 마시라 그러겠죠? 안 그러겠어요? 그거는 정해진 사실이고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단지 내가 못 듣든지 잘못 듣든지 이래서 똑바로 듣고 행하지 못할 뿐이에요. 분명히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것과 음성이 하나님 음성인지 내 소리인지 내 생각인지 분별하는 가장 핵심은 평안이에요. 평안.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이미. 그렇죠? 평안. 이 평안은 뭔가요? 평안 하늘에서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요한 봄 14장 1427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이게 하나님의 음성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제일 첫 번째가 평안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두려움이 없어요. 평안의 반대말 반대라고 하기엔 힘들지만 불안이에요. 불안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절대로 불안한 마음이 안 와요. 그런데 분명히 내가 아침에 음성을 듣기 위해서 이렇게 잠잠하고 하나님 말씀하시옵소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뭔가 음성이 들어왔는데 이게 불안하다든지 왠지 찝찝하다든지 이러면 아닐 확률이 많아요. 거의 아니에요.
이 평화는 아무리 시끄럽고 아무리 뭔가 환경이 요동하고 눈앞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사건이 일어나고 변해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평안이에요. 그래서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했죠. 그런데 우리의 생각으로 들려오는 음성은 어떤가? 나를 불안하게 해요. 6에 속한 거기 때문에 6에 속한 것은 자주 변하죠. 아주 손바닥 뒤집듯이 하죠. 그러니까 환경이 조금만 변하면 내 생각이 막 손바닥 엎어지는 것처럼 막 불안하다가 좋았다가 불안하다가 좋았다가 막 이러면 그건 아닐 확률이 무지하게 많아요.
주변이 아무리 시끄럽고 혼란스러워도 마음 깊은 곳에 평안을 느낄 수가 있어요. 거친 바다를 잠잠할지어다 하는 것처럼 그런데 우리 생각은 정반대예요. 밤에 잠도 못 자게 할 정도로 안절부절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계속 걱정하게 만들고 그래서 유기에 속한 것은 특징을 잘 아시죠? 육체에 이런 현자니 이런 거에 보면은 시기질투, 염려근심, 불안, 초조 이런 게 거기 다 들어가 있거든요. 6에 속한 거니까 하나님의 음성은 0이잖아요. 달라요. 영이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그 영은 환경과 상관없어요.
환경이 소리 지르는 것과 환경이 막 바뀌면 내게 소리를 지르죠. 안 질러요. 환경이 바뀌기만 하고 여러분 무덤덤하게 가만히 있어요. 남편이 밤늦게 술 한잔 이빠이 되어서 야 이리 오너라 하고 오면은 여러분이 아무런 반응이 안 나죠. 전혀 뭐 이렇게 감정이 없죠? 있나요? 어떤 감정이 있어요? 이 화상이 또 오늘 술 xx 하고 왔구나. 뒤질 이러면서 속에서 올라오죠. 입원을 못하고 입원을 했다가 바로 뒤지니까 내가 그러죠.
그래서 환경이 소리 지는 게 그거예요. 남편이 뭐라고 안 해도 일단 술을 먹고 비틀거리면서 들어오면 옥희 씨 어때요? 저 화상이 또 그 아까운 돈을 술 퍼먹는 데 썼구나 속에서 올라오죠. 이미 그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반응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 남편이 이렇게 하는 게 말하는 거예요. 그게 환경이 말하는 거예요. 그럼 여기에서 반응이 올라오죠. 그게 내 안에서 나오는 음성이 소리죠. 그렇죠? 그런가요? 그래서 잠 못 이루고 계속 걱정하게 만들고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까지 만리장성을 쐈죠. 그렇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벌써 저 자식하고 살아야 되나?
내가 밤새 고민을 하다가 어떻게 도장을 찍어야 잘 찍지? 어떻게 해야 내가 더 많이 바꿔주고 보내버리지 밤새 고민하면서 안에서 소리 지르잖아요. 그게 소리예요. 내 안에서 나는 내 소리죠. 그게 저놈하고 다시는 살면 안 되겠다. 이런 소리가 올라오죠. 할렐루야 그게 내 소리예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선물 보따리를 이만큼 들고 그렇죠? 금쪼가리를 이만한 거 하나 들고 이렇게 술 똑같이 술 취해서 들어오면 어때요? 그래도 저놈하고 안 살아야 되겠다. 소리가 올라와요. 오 저놈 제법이네요. 괜찮다. 더 살아도 되겠다. 이런 소리가 올라오죠.
그러면 여러분 6에 속한 것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6이 너무 강해서요. 그래서 내 속에 올라오는 소리를 분별하기가 아쉬워요. 하나님의 음성인가 아닌가? 대부분 내 생각, 내 음성은 내 원하는 대로 들려요. 내원하는 그의 육신이 육이 강하기 때문에 내 원하는 대로 생각을 하고 내 원하는 대로 들리잖아요.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듯 선물 보따리를 잔뜩 안고 들어오던 내 안에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게 그게 평강이에요. 흔들리지 않는 평안. 그게 평안이에요. 이해가시나요?
저 남편이 얼마나 힘들겠니? 불쌍히 여겨라 이런 말씀이 기도하는데 들려왔어요. 그러면 이게 진짠가? 가짠가? 그걸 이제 두 번째에다가 다시 합쳐볼까요? 술 먹고 들어와서 할 때도 속에서 불쌍히 여겨라. 이게 올라오면 진짜예요.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야 돼요. 꽃다발 들고 올 때도 저 남편 불쌍히 여겨라. 마음이 계속 있으면서 평안해야 돼요. 그런데 꼬장 부리면서 오면 벌써 평안하지 않아. 가증스럽고 막 열받아. 그러면 아닐 확률도 있는 거예요.
그건 안 변해요. 여러분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건 안 변해요. 평안해요. 계속 편광을 환경과 상관없이 편광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음성이에요. 그게 이해갑니까? 오늘은 불쌍하게 보였다가 내일은 안 불쌍하게 보였다가 이건 뭔가 아닐 확률이 많아요.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오늘은 술 먹고 들어왔을 때 야 가서 문 열고 확 밀어버려라 이런 음성이 들려온다. 그러면 내 소리예요. 그럼 꽃다발 들고 올 때도 밀어버리라 하겠어요? 환경이 변했는데? 아니죠. 꽃 받고 밀어버려. 음성을 잘 듣네요.
정말 잘 듣네요. 이런 것들이 계속 내 안에서 소리를 질러요. 전화해라. 평생 원수같이 지내던 사람에게 전화해라 하면 여러분 어떻게 분별하겠어요? 그 전화해라 라는 게 내가 해야 되겠다. 왜냐하면, 오늘 이 설교를 들고 가서 그런지 몰라도 그 소리가 날 수 있어요. 꿀물타라.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소리가 들려올 수가 있거든요. 원수 같은 자에게 전화해라 이러면 이게 맞나 아닌가 고민을 하다가 또 전화해라 이런 감동이 와요.
그러면은 마음이 불안하거나 왠지 전화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거나 이런 불안함이 오면 그건 아닐 확률이 많아요. 그런데 전화해라, 원수 같은 놈한테 전화해라 하는데 마음은 계속 그 사람과의 있었던 관계에서 내게 피해를 끼치고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게 했던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이 있어서 생각이 나는데도 마음은 왠지 잔잔한 물결 같아요. 그러면 진짜예요. 여러분 그럼 전화해야 돼요. 전화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즉시 마음이 도저히 불안하고 막 이러면 아닐 확률이 많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잘 살펴봐야 돼요. 내가 원래부터 전화하기 싫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일부러 싫어하는 마음을 자꾸 일으키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곤란해요. 그렇게 일으켜도 일으키고 나서 좀 있으면 또 마음이 잔잔하면서 전화해라 이렇게 또 들려올 거예요. 감동이 오든지 이해 가시나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편안해요. 엄청 편안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성 자체가 화평이거든요. 원수 맺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우리는 원수가 영원히 원수로 있으면 좋겠죠. 나에게 너무 큰 피해를 줬기 때문에 저놈하고는 내가 다시는 얼굴을 안 보면 좋겠는데 전화해라, 화해해라 이렇게 하면은 그것만큼 싫은 게 없잖아요. 내 육적인 감정 생각은 절대 아니죠.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은 거의 내 육적인 생각과 감정과의 거의 반대되는 경우가 많아요. 굳이 그렇게까지 전화 안 해도 사는 데 지장 없잖아요. Hallelujah 없잖아요. 굳이 나에게 그렇게 속을 썩인 놈한테 굳이 전화 안 해도 사는데 너무 편하고 좋잖아요. 지상도 없고 만나면 왠지 더 골치 아플 것 같고, 그런데 우리 생각이에요.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압니까? 그것 때문에 내 안에 뭔가 거대한 벽을 치고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는 걸 막게 되고 이런 걸 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하라는 거거든요. 내 생각은 안 했으면 딱 좋겠죠. 그런 거예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거의 반대되는 경우가 많아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명령의 소역은 육신의 소역을 서로 반대되죠. 그러니까 여러분 내가 딱 원하는 대로 음성이 들려온다. 이건 거의 아닐 확률이 많아요. 성령은 내 원한과 반대되는 경우가 거스르는 경우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리를 듣고 합니다. 왜요? 너무 원하는 거거든요.
너무 원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백지가 될 때까지 먼저 기도하라고 계속 말씀을 드린 이유가 그런 것 때문에 그래요. 내가 내 소리를 듣고 행하면 하나님 거기에 역사를 안 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내가 원하는 것과 너무 다른데 그대로 순종해서 하면 하나님이 그 환경을 만지는 게 보여요. 아시겠어요? 정확하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 음성은 그래서 지속적으로 내 안에서 편강을 유지해요.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편강을 유지한다니까요. 환경이 변해도 상관없이요. 그런 것들을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돼요. 하나님은 고립논서 14장 33절에 보면 혼동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그랬죠. 화평의 하나님이라고.
그걸 아셔야 돼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가 훨씬 평안하고 안전한 느낌을 받습니다. 육적으로도 그걸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 부분을 아셔야 돼요. 그런데 반대 소리도 계속 내 안에서 올라오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게 잠잠하게 되는 걸 알게 돼요. 그런 것들을 아셔야 돼요. 엘리야 선지자를 한번 보세요. 그 발 선지자들을 한 방에 고꾸라뜨리고 나서 그다음에 엘리야가 어떻게 되겠어요? 도망가죠. 도망가면서 이제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이제 나는 끝인가 보다. 그래서 죽어야 되겠다. 이러고 있었죠. 그 소리를 들은 거예요. 나는 끝인가 보다. 이제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죽기를 구하죠. 그렇죠?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어떻던가요? 강한 바람이 불고 바위가 터지고 번개가 치는 듯하고 그래도 하나님은 그 안에 안 계시죠. 그런데 그 후에 고요함이 밀려올 때 그때 세묘한 음성이 들려와요. 가요. 그런데 그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다시는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해하시나요? 두려움도 없어져 버렸고, 조급함도 없어져 버렸고, 불안한 것, 초조한 것이 없어져 버렸어요. 오직 그 고요한 속에 평각만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야가 다시 일어납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음성을 들을 때는 그래요. 마음의 평안이 쫙 밀려들어요. 성령님이 임제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완벽한 평안함을 경험하게 돼요. 그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에요.
만약에 성령님의 임자 안에서 내 음성을 들었다. 그래도 평안이 아니요. 없어요. 내 음성을 들으면 이게 될까? 이게 맞을까? 계속 번민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반복해서 올라와요. 제가 집회 같은 것도 인도할 때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보면 제 안에서 먼저 평강이 이렇게 쫙 있어요. 평안함이 이렇게 고요함이 쫙 있으면서 어떤 음성이 들려온다든지 이런 게 와요. 정신없이 하고 있을 때는 못 들려요? 안 들려요? 그럴 때는 막 내가 정신이 없다라는 것은 집중을 못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 그럴 때는 내가 현상을 보고 막 하려고 하는 그런 그게 내 안의 소리죠.
더 크게 선포해야 되겠다. 이런 자기 혼자 감동되는 거죠.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나겠어요. 막 뒹굴고 있으면 어떻게 더 하면 될 것 같은 이런 거 올라오죠. 그거 해봐야 소용없어요. 그런 거예요. 마치. 그 어떤 음성이 들려올 때는 평강이 너무 강하게 쫙 자리를 그러면 뭔가 일이 일어나요. 그런 것들이 그냥 평강만 있어도 치유가 일어나고 뭔가 뒤집어지고 난리가 나고 이런 것들이에요. 일어나요. 그래서 하나님의 평강이 있고 나면 초자연적인 현상이 또 일어나기도 하고 이렇게 돼요.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평안합니다.
여러분 평안의 임재. 그래서 그 임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음성을 들 확률이 훨씬 더 높죠. 그렇다고 이 복잡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지속적으로 달려들잖아요. 우리에게. 그런데 그 안에서도 우리가 평강을 누릴 수가 있어요. 그게 하나님의 평화예요. 스스로에게 이제 음성을 들으면 질문을 해보세요. 생각이나 이 음성이나 이 말씀이 들려온 후에 내가 평안한가 불안한가 그걸 점검해 보세요. 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대로 평화를 유지하는가? 이런 것들을 알아야 돼요. 그거를 모르면 이게 답이 없어요. 찾기 힘들어. 계속 헷갈려요. 해도 될까 말아도 될까?
계속 헷갈려요. 그러면은 시간 다 지나가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하나님의 음성인데 불순종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점점 더 힘들어지거든요. 그런 경우예요. 그다음에 첫 번째는 평안이고 두 번째는 뭔가 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 말씀과 일치해요. 절대로 안 벗어납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은 성경 말씀과 많이 다르죠. 아주 종종 그렇죠? 분명히 성경 말씀은 쟤를 용서하라, 쟤를 사랑으로 품어주라 이런 건데 어떤 환경을 맞닥뜨릴 때마다 쟤는 미워해야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당연히 미워해야지. 요추님 그건 말하나? 마나죠? 자 보세요.
우리가 지금 사랑방 교제를 하는데 그게 진짜 최우선이에요. 사실은 이 성경의 저자는 누구예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된 거라고 그랬죠. 그럼 이 저자는 성령님이에요. 모든 성경은 그래요. 그래서 이 성경 말씀의 저자가 성령님이기 때문에 말씀의 영이 성령님이에요. 그래서 성령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계시합니다. 지시합니다. 알게 합니다. 들려줍니다. 말씀을 가지고 사역해요. MSS 6장에 보면 전신갑주 마지막에 성령의 검이 나오죠. 성령의 검이 말씀이잖아요. 그 칼 가지고 뭘 하겠어요?
전쟁도 하지만 찔러 내 안에 있는 영들을 찔러 쪼개잖아요. 그래서 분별하게 하거든요. 말씀으로요. 정확하게 말씀을 가지고 계시를 해줘. 1장에 보면 지혜의 영과 계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배하신 그 엄청난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달라고 지혜의 영, 계시의 영이 임하면 그걸 알게 하는 거거든요. 그거를 보게 하고 알게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성령 하나님은 자신과 모순되면 안 되죠. 우리는 표리부동하죠. 아주 자주 하지만 성령님은 아니에요. 자기가 우리에게 들려준 음성과 성경에 나오는 말씀과 반대되는 경우는 있으면 어떻게 돼요? 자기가 쓴 책인데 자기가 하는 말과 다르다.
그건 말도 안 되죠. 성령님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거든요. 절대로 자기 자신의 모순 되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죠? 성룡님의 음성은 그래서 이미 주신 이 말씀을 벗어나지 않아요. 여기 안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얼마나 많은 말씀들이 있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일생을 겪고도 남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여기 다 들어있거든요. 그러면 성경을 잃고 묵상하면 금방 이게 하나님 말씀인지 아닌지 금방 압니다. 금방 알아요. 헷갈리는 경우는 6이 너무 강해서 이게 헷갈리는 거예요.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겨를이 없어서 이것들이 잘 안 들릴 수가 있고 그래요.
성경의 음성을 구별하는 가장 핵심,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는 핵심은 말씀입니다. 만약에 내 안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들이 성경 말씀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인도한다 그러면 절대 아니에요. 그 원수를 가서 죽여버려라. 기도하는데 그런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 극단적인 이해죠? 그거는 뭐 분별할 수 있죠. 그렇죠? 오늘 한 번만 용서해라. 그런 건 너무 쉽죠 꿀물 타라 분별해야죠. 이건 맨날 꿀물 타면 버릇이 나빠지잖아요.
때로는 꿀물 타지 말고 엎어버려라 할 수도 있어요. 진짜 억울해요. 정말요 저는 그런 걸 가끔 듣게 합니다. 그렇게 행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성경 말씀과 부합하지 않으면 여러분 이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말씀만 해서 교제하는 게 엄청나게 중요해요. 가장 핵심이고 최우선이에요. 제 삶도 성경을 읽을 때 감동 주신 대로 행해서 응답을 받고 행했던 게 거의 99%였어요. 이미 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굳이 속삭속삭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단지 어떤 지금 순간의 결정 이런 거하고는 다르죠. 그럴 때도 성경의 말씀이 떠오를 수가 있어요. 그걸 결정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그게 떠올라. 그런 경우가 있죠. 히브리스 사상 12절 다 기억나죠?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자외, 날숨, 금보다 예리하죠. 그게 뭐예요? 우리를 찔러 쪼개기도 하고 남을 찔러 쪼개기도 하고 환경을 찔러 쪼개기도 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안에 떠오르는 말씀이 이게 하나님에게부터 온 건지 내 안에서부터 온 건지 마귀로부터 온 건지 예리하게 찔러 쪼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말씀을 죄야로 묵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금방 분별이 돼요. 금방 안다고요.
그런데 금방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느냐. 도대체 말씀도 안 읽고 기도도 안 하고 가끔 이렇게 앉아서 이러고 있는데, 뭐가 음성이 들렸다 그러면 아닐 확률이 수없이 많아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막 고민을 자꾸 해 긴 것 같기도 해 그러면 아닐 확률이 많아요. 말씀의 기반이 되어 있으면 그런 것들을 분별 금방할 수가 있습니다. 진짜로 그렇게 돼요. 원하는 거에서 큰 거에서 나온 생각이나 음성은 내 마음에 원함을 쫓게 되어 있어요. 거의 대부분이. 그래서 내 마음에 원하는 것하고 잘 맞아요.
그래서 말씀을 갖다 대보면 아닌 경우가 무지무지하게 많아요. 로마스 6장 12절 다 기억하죠? 제 세력이 뭘 자극한다고요? 뭘 지배한다고요? 우리 몸, 육체, 육신을 지배해서 몸의 사욕을 쫓게 하죠. 그러니까 몸의 사욕을 쫓으려면 먼저 생각이 올라올 거 아니에요. 생각대로 할 거 아닌가요? 그런 거예요. 악한 것이 내 생각을 조정하는 거죠. 하나님의 예술인을 팔 생각을 넣는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보세요. 그 가령 유다에게는 은삼십량과 예수님을 어떤 거에 더 이제 예수님이 슬슬 죽으러 간다. 그러니까 필요 없잖아요. 이전에는 돈이 됐는데 죽으러 간다.
죽으러 간다고 그러고 있으니까 이제 은삼십냥이 마귀가 은삼십냥에 팔아라 하니까 이게 내 생각인지 아닌지 고민도 안 하고 바로바로 생각을 넣었으니까 우리도 생각이 올라오잖아요. 아무래도 전화해야 될 것 같아. 이런 생각이 올라오죠. 육감도 있고 촉감도 있고 영감도 있고 많잖아요. 영감도 있고 단감도 있고 이게 올라오는데 막 네가 주는 생각인지 아닌지 안 쉽거든요. 그 당시 가로운 유다에게는 자기 마음과 딱 맞았던 거예요. 이게. 아이고 어차피 돈 안 되는 거 팔아먹어버리자. 차라리 파라머리뱅어는 팔려가면서 기적을 일으켜서 확 없애버릴 거야. 이렇게 생각한 거죠. 이해가시나요?
그 생각이 순식간에 장악해버리는 거죠. 그게 육신의 소용이잖아요. 마기가 생각을 장악하고 생각을 집어넣어서 장난한 거잖아요. 우리에게는 그런 게 안 보일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안 올 것 같아요. 지나가다가 쇼핑센터 지나가다가 보면은 바로 가서 질러버려야 되잖아요. 10개월 할부로 바로 돈도 없는데 보면은 아 이거 주님 어떻게 하나 사도 될까요? 하기 전에 이미 질르고 나서 후회도 안 해. 자기를 위로해. 오랫동안 안 했으니까 주님이 허락하실 거야. 이렇게 합니다. 딱딱 두드리면서 이렇게 합니다. 그렇지? 여보. 그렇지? 이러면서 이렇게 합니다. 들을 생각도 안 해요.
여러분은 분별할 생각도 안 하죠. 사실은 고민 안 하죠. 고민합니까? 거의 고민 안 하죠. 그럼 내가 이거 설교 괜히 하는 거야. 지금 어차피 고민도 안 할 거 제멋대로 하고 그다음에 후회할 거. 나중에 카드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요? 남편이 실직해버려. 갑자기 카드 이제 돌려막아야 돼. 이 카드. 저 카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예를 들면요. 그런데 집에 와서 옷을 입어보니까 아이고 한쪽 팔이 짧아 왔네 가게 문을 닫았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진짜로 그런다니까요. 이 버스 타라 옛날에 말씀을 한번 드렸잖아요. 나는 이 버스 탈 때가 아니야.
지금 분명히 내 소역으로는 버스가 아니고 택시를 타야 될 판이여. 그렇죠? 그래서 내 소욕대로 택시를 탔으면 빨리 가다가 사고가 났어. 버스는 안 정거장 가면 쉬었다 가잖아요. 뒤에 따라오는 버스는 앞에 사고 난 택시를 이렇게 보고 있네. 그런 거예요. 나는 빨리 가야 되니까. 얼른 택시를 타고 가고 싶은데 그런거죠. 내 안에서 택시를 타라 아니고 버스를 타라 했는데 굳이 고민 안 하죠. 그런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이 에베스 4장 12절 말씀이 그 말씀이 모든 걸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이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분이 아니에요.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이 이건 아니라 한 것에 대해서 축복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잘못했다 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뒤집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게 말씀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더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고 이렇게 진행이 돼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뭔가 일어날 거라는 그런 어떤 마음의 감동이 오고 마음이 부풀어지고 막 이런 것들이 온다고요. 진짜로 그래요. 사회적인 분위기나 그다음에 주변 환경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우리 생각은 계속 요동치죠.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은 절대로 안 그래요. 우리는 조변석이잖아요. 오늘 영원히 할 것이다. 해놓고, 내일 이제 그만하랍니다. 오늘 월 이만큼 하기가 사람이 갑자기 많으니까 안 되겠다. 계약을 파기하고 이렇게 하랍니다. 하루에 한 번씩 이렇게 바뀌더라고. 성령이 저쪽에 있을 때 그거는 개소리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성령염성이에요? 개소리죠.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거는 그렇게 바뀌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거 안 바뀌더라고. 평생을 따라다니는 거예요. 평생을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상황이 바뀌면 좀 이제 그래. 너는 네 처지에 무슨 사람 낳는 어부가 되겠냐?
휴지나 추워라 이렇게 하면 그런 음성이 들려와야 될 것 같은데, 안 해. 절대로 내가 목사 될 환경이 아닌데 계속 그 음성은 안 변해요. 안 변한다니까요. 확고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들은 음성은 어떤지 아세요? 6에 속했기 때문에 이 6은 환경이 그대로 직격탄을 맞잖아요. 눈에 보이는 대로 곧바로 생각이 팍팍 돌아서 팍팍 금방 변하잖아요. 저기 있던 사람처럼 손가락 뒤집듯이 금방금방 변해버리잖아요. 방금 전화해라 했는데 아맨 했다가 그래 맞아 하나님이 음성 그렇게 해서 화해해야 맞지? 이렇게 해서 아렐루야 했는데 갑자기 옛날에 생각나면서 내가 왜 내가 전화해? 이런 거 이게 내 생각이에요. 그럼 그거가 내 생각이 아니에요. 이해하시나요? 용서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이 떠올랐다가 갑자기 옛날에 막 그런 게 생각이 나면서 내가 원한을 품는 것이 지극히 정당하지. 당연히 내 안에서 그렇게 막 그런 식으로 막 왔다 갔다 해요. 그러니까 음성이 들리면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안 하고 있으면 계속 올라옵니다. 계속 올라와요. 이해하시나요? 계속 올라와요. 지속적으로 올라온다니까요. 어떡하면 좋아요. 그래서 흔들리지 않아요. 하나의 음성은 환경에 지배를 당하지 않아요. 절대로 그런 걸 알아야 돼요. 누가 마음속에 미움을 품어라 이런 말이 올라오겠어요. 내 마음은 당연히 미움을 품고 저주를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성령은 언제나 진리형이에요.
예수님께서 광야에 시험 받을 때 보세요. 사단이 거짓으로 유혹하죠. 그랬더니, 예수님이 뭘로 분별하던가요? 말씀으로 가라사대 하면서 말씀으로 정확하게 갈라내버려요. 택도 없어. 이 자식. 그래서 안 망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오늘 그렇게 계약서 내버려놓고 환경이 바뀌니까 밤새 고민한 거거든. 혼자서도 이러면 또 쟤가 더 많이 그럴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안 되겠다. 계약서를 새로 써라. 이 마음이 또 음성이 또 들려오는 거지. 그러면 또 성녀님께서 계약서를 다시 쓰라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또 메시지가 와요. 성녀님이 그런 개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에요. 그럼 말씀으로 분별해야 돼요.
여러분 그래서 칼같이 찔러 쪽에서 분별하셔야 돼요. 말씀을 벗어나면 여러분 미혹당합니다. 진짜로 그래요. 그분의 음성은 말씀의 빛 아래 조명이 되게 되어 있어요. 딱 부합하게 되어 있어요. 절대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패하는 이유는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들이 우리의 간절한 원함이 성경 말씀을 내 원하는 대로 가공해요. 그런 경우 많죠. 그럴 때는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나 내 생각을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막 억지로 끼워 맞춰서 끼워 맞춰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 거 안 해봤어요?
많이 해보셨을 거예요. 아마 입 다물고 계셔서 그렇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에 딱 맞춰서 진리를 변동시키지 않아요. 절대로 아닙니다. 절대 착각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죽어도 깨어나도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분별하는 두 번째 기준 이 생각이 이 음성이 하나님의 성경, 하나님이 주신 성경 말씀과 과연 일치하는가? 그걸 보셔야 돼요. 그래서 요소 1장 8절, 9절, 10편 1편에 보면 주야로 묵상을 하고 그러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다음 형통 평탄 그렇죠. 그게 뭐던가요? 진리의 말씀이 내 목자가 되어서 나를 인도하는 상태를 형통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죄야로 말씀을 묵상하면 형통하다 라는 게 그 묵상한 말씀이 나를 목자가 되어서 인도하는 거라고 그래서 올라오는 음성들이 그런 음성들이 정확하게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이 목자가 되어서 인도하는 거라고요. 시편 119편 105절 다 아시죠? 저의 말씀은 내 발등이요. 길의 진리야. 그 말씀이 발에 등이고 내 길을 비추는 말씀이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주야 할 형은 묵상하면 형통하다고 분명히 나와 있어요. 그리고 말씀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신비를 쫓아서 게을러서 게을러서 말씀을 읽기는 싫고 인도를 받아야 되긴 하겠고 큰 결정 앞에서 이 부동산을 지금 매입해야 되냐 말아야 돼. 이 큰 결정이잖아요.
한 평짜리면 몰라도. 그렇죠? 그런 결정은 안 합니다. 저는 살 돈이 없으니까 걱정할 이유가 없지 돈이 많으시니까 이제 걱정할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 이제 평소에는 말씀을 묵상 안 하다가 이걸 이제 주님 살까요? 말까요? 기도를 합니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주변 시세가 요즘 막 올라. 난리야. 뉴스를 들어보니까 오피스텔라 노다지래. 노다지. 앞으로 노다지가 될 거래. 그리고 내가 찍어놓은 그 지역은 불패야. 불패. 그러면서 기도하고, 있으면 살아 이렇게 올라옵니다. 그러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서 질러버립니다. 그랬더니, 다음날 뉴스가 나왔네.
1가구 2주택 중과세를 때리겠습니다. 팔려니까 또 소득세를 이빠이 내게 하겠습니다. 이래서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하나님의 음성은 그런 게 아니에요. 지나가다가 한번 봐도 이렇게 괜찮아 보이는데 그런데 주변이 완전히 개판이야. 이거 샀다가 100% 쫄딱 망하기 딱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아침에 기도하는데 가서 그거 사라. 그거 사라. 그런데 아니 주님 그 지역이 지금 망하고 있는 중인데 거기 왜 사라고 합니까? 예르미아에게 밭을 사라고 그랬잖아요. 아니 다 끌려가서 지금 70여 명 가서 종살이 하다가 이게 예루살이 멸망할 건데 왜 밭을 사라고?
난리입니까? 추님 그러죠 마치 그런 것처럼 지나가는데 그거 사라 사라 하는 거예요. 이거는 삼척 동자도 안 살 땅이오 사면 무조건 망하는 것이야. 이거 다 폐허로 변하고 있을 지경인데 지금 그런데 떡 사 놨네. 사라 했는데 환경은 아니잖아요. 도대체 이게 답이 없는데 사라고 하니까 뭐야? 도대체 주님. 그런데 마음이 너무 편한 거야. 그런데 환경은 도저히 사면 안 될 것 같은데, 가만히 보니까 계속 사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자꾸 오는 거예요.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저건 사면 안 될 것 같아. 불거덩이로 들어가는 거야. 그냥. 자꾸 사야 될 것 같아. 그것도 오늘 안에 사야 될 것 같아. 내일 가면 분명히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오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음은 이상하게 편안해 그래서 가서 샀어요. 그랬더니, 다음 날 어떻게 됐겠어요? 재개발 확정이 나서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그렇다고 그것만 들으려고 땅 보러 다니지 마시고 돈도 없으면서 그런 거예요. 이해 가시죠? 마음이 편안하다고요. 아멘 여러분 이번에 차 산 사건 아시죠? 그 차 어떻게 산지 아세요? 말을 안 해드렸나? 제가 어떤 분이 계를 탔대요. 몇 년 동안 부어서 계를 계를 탔잖아요.
계를 탔는데 목사님 자살아 자살한테 내라 그렇게 하더래요. 그래서 잘못 들었겠다. 그랬는데 다음날 또 헌금해라. 차 사는데 헌금해라. 그래서 맘 소리가 있는데, 또 그런 거예요. 아 그런데 그거 얼마나 소중하게 들어부은 거잖아. 몇 년 동안 막 이렇게 해서 그래서 이거 쓸 때 다 정해놨는데 이미 아 그런데 자 살아 그래서 냈어요.
그랬더니, 그게 불씨가 돼 가지고 도미노처럼 번졌어 옆으로 번지고 번지고 번지고 그래서 어떤 나무 어떤 분은 금붙여 넣어 놓은 거 그것도 팔아. 계속 팔라고 안 팔고는 도저히 못 견디게 만드는 거야. 속에서 자꾸 꽁꽁 숨겨놓고 놔두려고 했는데 그래서 팔았어. 그런 분만 있어요. 어떤 분은 또 어디 돈 생길 일이 생겼어. 돈 쓸 돈도 거의 많지 않은 분이야. 그런데 돈 쓸 일이 생겼어. 그랬더니, 아우 해야 되겠다고 소리가 들려서 또 했어. 그래도 많이 좀 부족하네 여러분이 또 했어요.
여러분이 그리고 그래도 부족해 그래서 어느 날 아침에 제가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너도 참여해라. 저한테 일어나자마자 앉기도 전에 너도 참여해라 그러는 거예요. 얼마나 참여할까요? 그랬더니, 내라. 나 혼자 내면 또 두들겨 맞을까? 봐 사모님한테 나한테 내라 한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게 나왔디야 큰 의향료 가서 들이붙는 거잖아요. 그럼 알았다. 그럼 내가 낼게. 그래서 냈어. 그랬더니, 거의 딱 맞았어요.
그래서 가서 샀어요. 산 게 바로 저 차예요. 조금만 더 모여서 이야기할 때는 그것보다 좀 더 비싼 거 사도 되겠다. 이렇게 서로 회의 결과가 그렇게 됐는데 억지로 당겨서 그거 샀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차 머리에 이고 다닐 뻔했어요. 우리 제가 사는 곳이 저하 없는 분들이 사는 곳이라 비싼 차가 들어가면 바로 아웃돼요. 바로 아웃돼. 그래서 차를 가지고 등록을 하러 갔더니, 초과요.
초과했는데 조금 초과됐어 그래서 이러고 있었지 속으로 성령님 차이고 다녀야 되네요. 어떡해요? 그리고 가만히 있었어 그랬더니, 그 관리사무소 과장이 자꾸 왔다 갔다 하더라고. 종이 들면서 자꾸 왔다 갔다 하더라고. 머리 긁으면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더니, 써주더라고. 차값을 자기 마음대로 낮춰가지고 써주더라고. 제가 뭔 말씀을 드리는지 아세요? 감동을 받으면 환경이 이렇게 그 환경까지 하나님은 계산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끼리 회의할 때 아 이 차 사면은 좋겠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하셔야죠. 이렇게 해서 이제 사려고 결정을 어느 정도 하고 그 차를 기다리고 안 나오는 거야. 안 나오는 거야. 아시겠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는 거야.
올해 연말이나 돼야 나올 것 같아. 그거 어떻게 하지? 그때까지 기다려 있는 돈 다 써버리면 안 되잖아. 그래서 어느 날 일어났는데 갑자기 다른 차를 보고 싶은 생각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차를 보게 되고 됐는데 그 차가 나왔대. 그래서 그 다음 날로 바로 가서 봤어. 그랬더니, 이거다. 이거 딱 오더라고. 벌써. 딱 오더라고. 색깔도 이미 봤디야? 나 말고 저 미자가 색깔도 이미 봤디야. 하얀색이 들어오는 걸 봤디야. 그 가니까 하얀색만 있어. 이거다 이거 딱이다. 이거 딱 이거 딱 오더라고. 벌써 그래서 맞췄어요. 억지로 맞춘 게 아니라 성냥님이 그것까지 차 등록할 것까지 싹 다 이미 계산을 해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 내 고집대로 나갔으면 큰일 날 뻔해.
그렇게 됐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음소가 이럽니다. 그래서 제가 너도 내라. 아이고 주님 나까지 내라고 그래요. 돈도 많이 돈도 별로 없는데 잔소리하지 말고 내라는 거죠. 그러니까 너도 내라. 그 마음이 거의 아까운데 이런 생각이 전혀 안 오는 거예요. 당연히 나도 내야지 주님이 하라 하시면 내야죠. 이렇게. 그래서 거의 맞춰졌어요. 등록비만 여러분들이 많이 내시는 현금으로 그중에 일부러 등록을 한 거예요. 그렇게 된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하나님 주시는 생각들은 여러분 틀림이 없어요. 그래서 말씀을 하고 나면은 그걸 환경을 봐야 돼요.
어떤 마음이 편광이 온다든지 반복되어서 그런 음성이 들리면은 바로 행하셔야 돼요. 제가 얼마든지는 나눠드린 거 있죠. CS 루이스. 거기 보면은 10시간 기도하고, 1초 만에 결정한다고 그랬죠. 1초 만에 제멋대로 결정. 10시간 기도하고, 나서 1초 만에 제멋대로 결정해서 해버린다고. 그런데 음성이 들려와도 1초 안에 행하지 않으면 3초 지나면 벌써 타협합니다. 예를 들어서 너도 참여하라고 그러는데 제가 몇 년 몇 년 해도 이거 안 되거든요. 저는 남는 게 없거든요. 몇 년 남아도 그만큼 못 하거든요. 남아 있는 게 그거 내라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 아니 이러고 이런 환경에서 마음의 편광이 쫙 밀려들어요.
당연히 해야 되겠죠. 주님 그런 마음이 온다고요. 그런 마음이 오는 거예요. 진짜로. 그럴 때는 이게 달이 없어요. 그런데 안 그러고 내 생각대로 하고 나면은 이게 환경이 짜여져서 이렇게 안 돌아간다니까요. 하나님의 일에는 틀림이 없어요. 여러분 1.1에게 오차도 없어요. 정확합니다. 놀라워요. 우리는 성경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간절한 원함, 그걸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부합하는 음성이 들려오기를 마음으로 간절하게 소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소리를 듣게 되는 거예요. 거의 대부분이 그래요. 위험한 거예요. 그걸 잘 하셔야 돼요. 그래서 사단은 그걸 가지고 교묘하게 속여요.
가련유다가 돈 밝히는 걸 알고 30년에 팔도록 생각을 혹 넣어버려. 이제 있어봐야 곧 죽고 뭐 필요 있니? 그냥 팔아버려 그러면 자기 마음하고 딱 맞잖아요. 그냥 죽는 것보다 30냥이라도 건지잖아요. 암매 자기 마음하고 맞죠? 그런 거죠. 예를 들면 이제 마무리를 하죠. 말씀이 두 번째 아까 평강이면 같이 갑니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성령이 이미 음성으로 한 말이죠. 이건 성령이 우리에게 음성으로 한 말이거든요. 그러면 기록된 성경을 묵상하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순종하려고 생각한다. 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기록된 성경이 먼저예요. 이미 다 기록되어 있잖아요. 이미 하신 말씀이잖아요. 이 말씀을 보면서 순종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 음성을 들으려고 앉아 있어 보세요. 내 생각이 올라와. 마귀가. 아까운 걸 뭘 가서 늘 참여하려고 그래? 그냥 헌금도 있는데, 그냥 써. 이렇게 오는 거예요. 타협을 하게 돼요. 내 생각과 타협을 해야 돼. 이런 게 여러분 악한 영 내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들이에요.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것은 이 말씀을 무시하는 상태에서는 생각도 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우리가 다 순종합니까? 그러진 않잖아요. 못하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함을 받으려고 애쓰는 상태에서 그런 건 당연히 하나님께서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오죠. 그래서 평소에 말씀만 해서 교제를 지속적으로 하는 게 음성을 듣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제가 가장 많이 그래서 실수함이 없었고 가장 많이 들려왔던 게 그런 것들이에요. 옛날에 저쪽에 있을 때 어떤 목사님이 그런 말을 했어요. 자기는 하나님과의 직통 개시를 매일 한대. 매 순간 한대. 그래서 성경을 왜 읽냐고. 멍청하게 직통 개시를 하는데 왜 성경을 읽냐고. 그럼 모 목사님이 있었다니까요. 내가 뒤집어주겠더라고. 그러면 성경에 주야로 묵상하라고 주야로 읽고 묵상하라고 돼 있잖아. 그러면 그거 뭐예요?
그럼 여러분도 혹시 신령해서 신령에서 주야로 말씀을 잘 듣고 그래서 말씀은 안 읽어도 나는 상관없어. 다 아는데 뭐 하나님이 가르쳐주고 다 가르쳐주고 다 아는데 혹시 그런 분 없죠? 있어요? 가르켜줘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어요. 진짜 조심해야 돼요. 여러분 말씀이 최우선이에요. 시편에 보세요. 눈이 막 감겨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고. 그렇죠? 괜히 그런 줄 아세요? 그래서 다이어스 일생일대에 보면 치러 올라갈 거예요.
이런 거죠.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안 물어보네. 저 여자를 가서 범해버릴까요? 안 물어봐. 이 자식이 제멋대로 해버려. 그런 탈이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 빨가벗은 거 보고 주님 내가 올라갈까요? 이렇게 하면 당연히 올라가라 하겠어요. 그런데 그 여자를 통해서 솔로몬이 나네요. 다 이유가 있는 거이기도 해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간에 그렇게 내 멋대로 저기 올라가야 생각이 확 올라오잖아요. 그러면 자기 원하는 거 딱 맞잖아요. 그럼 레츠 고 하는 거죠. 아시겠어요? 그럴 때는 안 물어봐요.
여러분 쇼핑센터 지나가다가 안 물어본다니까요. 주님 들어갈까요? 안 물어본다니까요. 일단 들어가서 한번 구경이나 해보지 뭐 그러다가 안 사면 상관없잖아. 이러고 들어가요. 안 물어봐. 그래서 당겨 저지르고 나서 주님 못 받겠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우리의 본성이에요. 본성 여러분 안 물어보죠. 괜히 이슬교 하는 것 같아. 지금 나 물어보는 한 분을 위해서 제가 하는 겁니다. 지난번에 제가 기초공사 113번 할 때 글로세스 3장 15대를 한 거 기억나죠? 난다 하세요. 제발 난다 하세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 주장하게 하라. 그게 뭔 뜻이라고요?
심판관이 되게 하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이걸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심판관이 된다. 이 야구 야구군기에 심판관이 있잖아요. 심판관이 이 세이프 아웃 할 때 심판관이 하잖아요. 공이 애매하게 들어왔어. 그러면 누가 심판해요? 심판관이 이건 아웃이야. 이렇게 하잖아요.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심판한다고요? 그리스도의 평강이요. 내 안에 평강이 있으면 그게 인 없으면 아웃 이렇게 되는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너무 간단하죠? 골레스 3장 15절이라고. 그게 그러니까 평강과 마음의 설렘을 혼동하지 말라고 그랬죠.
지나가다가 마음이 설레잖아. 그러다 보니까 편안한 것 같기도 해. 왠지 좋은 것 같기도 해. 이게 속는 거라고. 아시겠어요? 그리스도의 평강은 절대로 안 그래요. 여러분 내 생각과 반대로 오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고요. 내 원하는 대로 하는 경우는 여러분은 편안한 거지 편강이 아니에요. 편안한 거는 지속적이지 못해요. 환경이 조금만 변하면 불안으로 변해요. 불안으로 편안해서 불안으로 변해요. 그런데 평강은 조금만 변해도 더 평안해져. 더 평안해져. 아시겠어요? 그게 바로 지렛대여라. 영적인 편광이라는 거예요. 육적인 편안과 마음의 설레임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그 독 가져와서 물 담아오라 하니까 그 순종하겠어요? 팔딱난 물 가지고 포도주 달라는데 왜 이걸 가지고 난리야 순종하겠냐고 내 생각으로는 이걸 가지고 뭐 하려고 치니 발은 이미 다 닦았고 물도 이미 다 마셨는데 그걸 그냥 아멘하고 갖다 놨어요. 그런데 그때 물 떠라 그러면 마음이 이걸 왜 또 와? 그런 생각이 오는데도 내 마음은 왠지 또 와야 될 것 같아. 편안해. 뭔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해. 그리고 또 오니까 바로 포도주 돼버렸잖아요. 이런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가려고 할 때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지난번에 했죠? 마음이 자꾸 불편하게 안에서 주님이 불편하도록 신호를 보내요. 우리는 어때요? 지나가면서 불편한데도 쓱 들어가지죠. 불편한데도 괜히 들어가지죠? 안 그래요? 그러죠? 그런 거예요. 그 불편함이 오면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가면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져 버려요. 아시겠어요? 무너졌잖아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요. 내 조급함이 본능적으로 앞서가서 큰 일을 당하는 거예요.
속에는 들어가려고 하면 불안한 게 자꾸 생기는데 자꾸 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 버스 타지 말라고 하는데 자꾸 그런 거하고 똑같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돼요? 멈춰야 돼요. 멈춰야 돼. 그거 멈추라는 신호예요. 마음의 불안함. 그런데 여기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꾸 속에서 들어가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마음이 편안한 거예요. 들어가라는 마음이 자꾸 오는 거예요. 그럼 들어가야 돼. 그럼 들어가면 100만 원짜리 5만 원에 팔고 있는 거예요. 얼른 쓸어와야 돼. 그럼. 내가 그토록 원했던 거 100만 원 생전에 못 구했는데 돈이 없어서 어린이날 따라 가니까 한 장만 5만 원에 파네. 그게 나요. 가서 얼른 당첨돼 버린 거잖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가봐야 소용없잖아. 돈도 없고 성질만 나고. 그런데 지나가다가도 그림의 떡 안 가려고 하는데 속에서 자꾸 발이 가라고 끌려가네요. 그러면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환경과 말씀과 생각이 평안이 박자가 딱 맞아지는 거예요. 딱 맞아지면서 이게 일이 쫙 펼쳐져요. 그래서 제가 이 평강을 심판관으로 이용하라고 그랬죠.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요? 주님 내가 말을 해도 생각을 해도 음성을 들으려고 해도 안 들려와. 그럼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요? 지금 순간적으로 결정을 해야 되는데 어떡하라고 그랬어요? 주님 내가 이걸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만약에 주님이 원하시는 게 맞다면 제 마음에 편안함을 주소서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불안불안 찝찝하게 하소서 이렇게라도 하라고요.
왜냐하면, 그건 주님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못 들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내가 이래야 될지 저래야 될지 모르겠는데 지금 당장 선택은 해야 되겠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럴 때 어떻게 이래가지고 이렇게 하지 말고 제발 SH주님 음성도 안 들려주는 건 난 지금 모르겠다고 말씀에 비춰봐도 도저히 이거 모르겠고 그럼 주님 내가 이거 하려고 합니다. 지금 내가 이거 안 하려고 합니다. 안 하려고 하는데 마음이 편하면 안 해야 되고 마음이 불편하면 하라는 거잖아요.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만약에 주님의 뜻이 맞으면 내 마음이 편안하게 해주세요. 그게 심판이잖아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심판이 되게 하라 했으니까 그럼 심판이 되게 할 기회를 드려야죠.
심판한테 내가 보기에는 이거 세이프인데 왜 난리야? 이러면 안 되죠. 그래서 지 혼자 걸어가면 안 되잖아요. 스트라이크 아웃인데 포볼이야 이거 혼자 걸어가면 되겠어요? 안 되잖아. 그런가요? 그래서 그때 물어봐야죠. 심판관한테 심판이 뭐예요? 누구예요? 심판이 평안함이잖아. 평안함. 그래서 이거를 하려고 하는데 심판관님 맞으면 마음이 평안함을 주소서 평안함이 심판관이잖아요. 그 마음이 불안하면 찝찝하면 안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속이 너무 강렬하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강렬하면 심판관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탁 하다가 많이 벗어난 것 같은데, 그래서 자기 보니까 이거 포벌이야. 그래서 무조건 막 뛰어나가잖아요. 야구할 때 그런 거 안 봤어요. 그냥 방망이 던지고 무조건 뛰어나가잖아요. 자기가 옳다고. 그런데 저 가고 있으면 아웃 이런 거하고 똑같아요. 너무 강하면 자기가 알아서 가버린 거예요. 자기가 심판관이 돼서 이건 맞아. 확실해. 확 가버려. 그러면 쪽팔림을 당하는거죠. 우리 인생이 그럽니다. 정확하게 깨달으시고 평강이 하나님의 음성이 지렛대가 잣대가 빛이 길이 되게 하셔서 그대로 걸어가셔야 돼요. 내 생각을 절대로 내세우지. 마시고 내 원하는 대로 달려가지 마시고 그렇게 해서 일평생 수고한 슬픔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고요.
하나님의 그 생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평강히 내 삶을 주장하게 하셔야 돼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과 믿음의 근거
1-1. 하나님의 음성과 그의 이름, 양의 의미
-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부름
-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름에 순종하며, 주인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음
- 양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함
- (중요) 양의 이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필요한 것
- 양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과 믿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음
1-2. 믿음의 발휘와 그 중요성
- (중요) 믿음은 나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 믿음이 없으면 나의 행동은 비논리적이며 불합리해짐
-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믿음은 발휘되기 어려움
- 믿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취함
- 믿음이 발휘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
1-3.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 구별하기
- 생각과 감정이 소리로 나타나며, 이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구별되어야 함
- 속살거림과 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음성과 구별되어야 함
- 하나님의 음성은 염려와 분별력 없이 듣기 쉬움
- (중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믿음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여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발휘임
2. 내 음성 구별하기
2-1. 하나님의 음성 듣기
-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예수님임을 기억해야 함
- 하나님의 믿음으로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음
- 우리가 대화하고 교제하기 위해 불러진 것임
-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여 대화해야 함
-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불안해하거나 거절하면 안 됨
2-2. 평안의 중요성
- 하나님의 음성은 평안을 주심
- (중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하나님의 음성임
- 하나님의 음성은 불안과 달리 시끄럽지 않고 지속적임
- 6에 속한 것들은 시끄럽고 변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영의 음성임
- 하나님의 음성은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음
2-3. 내 음성 구별하기
- 내 생각과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리면 안 됨
-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내 음성)를 분별해야 함
- 불쌍히 여겨라는 말씀은 진짠가의 음성인지, 내 음성인지 구별해야 함
- 술 먹고 들어오는 남편에 대한 불쌍히 여겨라는 말씀은 진짠가의 음성임
- 환경이 변하더라도 편안하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함
3. 하나님의 음성 듣기
3-1. 마음 분별하는 음성 듣기
- 내 마음이 불안해짐, 음성을 잘 듣는게 중요함
- 전화해라라는 말에 음성이 담긴 듯한 느낌이 들림
- 과거에 원수였던 사람에게 전화하라는 생각에 불안함이 옴
- 마음이 편안해지면 음성이 들리는데, 불안할 때는 잘 들리지 않음
- 원수였던 사람에게 전화해도, 마음이 잔잔해져서 해야 함
3-2. 원수 같던 사람에게 전화하라
- 원수 같던 사람에게 전화하라는 건 나에게 큰 피해를 준 데 대한 화해를 구하는 것임
- (중요) 나에게는 원수였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나에게도 적용되어야 함
- 마음이 불안할 때, 편안해질 때 음성이 들림
- 하나님의 음성은 내 생각과 달라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되는 경우가 많음
- 많은 사람이 자기 소리를 듣고, 원하는 대로 음성을 들음
3-3. 평강을 경험하는 음성 듣기
- 엘리야가 두려움과 조급함에서 벗어나 고요한 평강을 경험함
- 음성을 들었을 때, 마음이 평안해지고, 성령님이 함께할 때 완벽한 평안함을 경험함
- 평강을 누리면 음성을 듣는 데 확률이 높아짐
- 복잡한 현실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음성을 들으며 평안함을 점검해야 함
-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 말씀과 일치하며,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음
4. 성경 말씀과 분별
4-1. 성령과 성경 말씀
- 성경의 저자 성령은 성령님으로,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계시고 지시하고 알게 하며 들려줌
- MSS 6장에서 성령의 검은 성경을 의미함
- 성령은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분별하게 하심
- (중요) 성령은 자기 자신과 모순되면 안 되며, 거짓말할 수 없음
- 성령의 음성은 이미 주어진 말씀을 벗어나지 않음
4-2. 성경 말씀의 중요성
-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겨를이 없으면, 헷갈리게 됨
- 성경의 음성을 구별하는 핵심은 말씀임
- 성경 말씀과 부합하지 않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님
- 성경 말씀을 통해 분별하고,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이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지 판단해야 함
- 성경 말씀을 갖다 대보면, 내 마음에 원하는 것과 잘 맞아 무지무지하게 될 수 있음
4-3. 말씀과 삶의 분별
- 유다의 죄악으로 인해 그가 아끼는 생각을 고민함
- 유다는 자신이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악한 것이 자신의 생각을 조정한다고 생각함
-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악한 생각을 쫓는 대신, 본래 생각을 넣어야 함
- 육신의 소용인 마귀는 자신의 생각을 넣어 장난하고, 생각을 쫓게 함
- 고민하지 않고, 후회할 것만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임
5. 음성 분별
5-1. 음성 판단 기준
- 본인이 믿는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은 일관성이 없음
- 하나님은 한 절대적인 기준으로 일관성 있게 말씀하심
- 절대 잘못했다고 하신 말씀은 다시 뒤집히지 않음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알게 됨
-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감동과 깨달음은 일상생활의 변화로 이어짐
5-2. 성령의 음성
- 성령은 인간에게 평생을 지켜다니는 분임
- 인간은 항상 변하려고 하지만, 성령은 항상 진리를 가르쳐 주심
- 성령의 음성은 언제나 진리이며, 말씀과 일치함
- 말씀을 묵상하면 형통하게 됨
- (중요) 말씀을 주야 할 형통은 묵상에서 나옴
5-3. 하나님의 음성 분별
-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은 진리임
- 말씀을 통해 분별해야 함
-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려 하면 안 됨
- 성령의 음성은 우리의 감정에 맞춰서 가르쳐 주지 않음
- 하나님의 음성은 변동하지 않으며, 진리를 인도함
6. 내 마음을 방해하는 것들
6-1. 내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리는 이유
- 내 마음이 편광되는 이유는 주변 환경 때문임
- 내 생각이 올라오는 건 마귀의 속임일 뿐임
- (중요) 기록된 성경을 먼저 해야 함
- (중요) 내 생각과 타협하지 말고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함
- (중요) 내가 순종하려고 생각하면 악한 영이 들려옴
6-2. 내 마음을 순종시키는 방법
- 내 생각이 올라오는 건 환경이 짜여서 그런 음성이 들림
- (중요)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해야 함
- (중요)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함을 받으면 음성을 들을 수 있음
- (중요) 말씀을 묵상하고,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순종이 가능함
-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 나쁜 생각이 들리지 않음
6-3.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됨
- (중요)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내 생각과 타협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함
- (중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선 기록된 성경을 먼저 해야 함
-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내 마음과 맞춰 행해야 함
- (중요) 내 마음을 방해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해야 함
7. 마음의 평강
7-1. 묵상의 중요성
- 본인이 묵상할 때 성경을 읽어도 됨
- 묵상이 중요함을 강조함
- (중요) 강사가 묵상 방법을 설명함
-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함을 강조함
- 조심해야 할 점을 언급함
7-2. 신앙인의 태도
- 묵상과 묵상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함
-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신앙인의 태도에 대해 언급함
- 믿음이 결정적인 순간에 조심해야 함을 강조함
- 솔로몬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함
-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을 주의해야 함을 강조함
7-3. 평강과 마음의 심판관
- 골레스서 3장 15절을 인용함
-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의 심판관이 되어야 함을 강조함
- 내 생각과 반대로 오는 경우가 많음을 설명함
- 평강은 지속적이지 못하고, 환경 변화에 따라 불안정해짐을 강조함
- 마음의 불편함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길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함
- 평강을 심판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