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虎圖 부분 1枚 96.4X44cm, 종이에채색, 1900년대초 일본인 개인소장
유교적 권위에 의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전통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동방예의지국은 조선의 유교적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닌 고대 한국의 도가(道家)적 사회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공자가 사용 했던 말로서 중국 공자의 7대 손인 공빈이 약 2300년전에 쓴 동이열전에 나온다. 동이라는 나라에 단군이라는 사람을 아홉 개 부족이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모셨다. 동이족인 순(舜)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가르쳤다. 동이(고조선)는 나라가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선가(仙家)의 자부선인(紫府仙人)에게서 중국의 황제(皇帝)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임금이 되어 중국백성들에게 생활방법을 가르쳤다. 동이족인 순(舜)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뒤를 이어 중국백성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가르쳤다.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던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서로 미루며...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동방예의지국)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공자는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樂圖 8幅屛風 各 91.5cm x 38.5m 한지에 채색. 1800년대 초 한국운향미술관소장
고구려의 관제(管制)에서 형(兄)의 의미는 무술과 학문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관직의 호칭이다. 지금의 나이순서가 아닌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존칭이며 이러한 문화는 고조선의 전통을 이은 고구려가 국권을 강력하게 키울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 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공자가 이러한 고조선문화를 지칭한 것이다. 옛 양반들은 오히려 신분이나 나이가 낮아도 ‘그리하소’ 식의 평 높임말을 사용하였으나 지금의 언어문화는 막말이나 낮춤말을 쓰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 한국의 잘못된 예의문화로 굳어져 버렸고 각 사회 구성원의 싸움과 불화(不和)의 발단을 제공하고 있다. 고구려와 고려의 선불(仙佛)적 사상 속에서 발전 하였던 언어문화는 조선에 이르러 나이에 의한 급격한 언어 분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남존여비 등의 성차별적 사고와 더불어 깨달음과 능력에 관계없는 나이차별적 사상이 미술계에도 없지 않다. 이러한 언어문화와 밥그릇 수 에 의한 계급문화가 오히려 화실(畵室)이나 학교에서 선생들이나 선배들의 그림스타일을 도제식으로 배워 개성 없는 류 파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역할에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취미 문인화가나 도화서 그림들은 그 작가가 누군지 그림만을 보고서는 한국화를 전공한 필자 또한 알아보기가 힘들다. 자세한 필법과 세부를 관심있게 봐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불가에서는 먼저 깨달은 이와 승가에 먼저 들어온 이가 존경받으며 나이와 직위에 대한 분별심을 멀리한다. 전통한국화의 미관은 화론에 의한 분별심이 아닌 직관(直觀)에 의한 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직관은 현대 미학자들이 말하는 최고의 미학적 근거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99%의 그림수요를 그려 국민들의 가정에 걸게끔 충족 시켰던 조선 프로하가들의 그림들은 지금까지도 유교적 중국화론에 의한 이론적 근거가 없는 별 볼일 없는 그림들로 한국미술이론가들과 한국화가들 스스로가 무관심속에 전통한국화를 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술학계의 한국화라는 이론적 의미는 조선에 있어서 프로 화가들의 그림이 아닌 조선의 취미문인화가들과 공무원화가들의 그림을 의미한다.
樂圖 8幅屛風 各 91.5cm x 38.5cm 부분. 종이에 채색 1800년대 초 한국 운향미술관소장
정통한국화 古圖 8幅屛風 各 50cm x 31.6cm 부분 .종이에 채색 1800년대 말 일본인 개인소장
영어에서는 존대와 막말의 구분이 거의 없는 평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드셔요 잡수세요 먹어라’ 등의 언어들은 eat으로 통일된다. 사람의 존엄성과 불성(佛性)을 분별하는 것으로서 분쟁을 야기한다. 어른들은 물론 청소년들의 싸움의 대부분 발단이 이러한 언어상, 호칭상의 문제에서 나오며 한국 교수들의 강의에서는 학생들과의 사이에 친구처럼 비평(critic)과 토의식 강의가 잘 안되고 주입식 강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언어의 벽이 크기 때문이다. 언어체계에 있어서는 한국어보가 영어가 도가의 사상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인 한 30대 미술유학생과의 대화에서 S대 미대에 잘 아는 친구(friend)가 있다고 하여서 누구냐고 불어 봤더니 60살이 넘은 서양화과 교수였다. 유교적인 나이체계에 의한 한국어 문화체계의 현실은 쌍방향 소통의 교육이 아닌 주입식교육의 현상에 대한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미술교육에 있어서도 3강5륜 등의 유교적 윤리를 그린 삼강행실도, 4군자 드의 그림의 소재는 유교적 화론과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조선 프로 화가들의 그림은 뽄 그림이라하여 지금까지도 미술 이론 계에서 천시 받고 있으나 17~18세기에 이르러 뽄 그림의 단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많이 있었다. 예시그림을 보자.. 1번 그림은 조선시대에 볼 수 없는 거친 갈필 터치를 사용한 대나무를 그리고 있으며 2, 3번 그림에서는 초가지붕의 좌측과 정면에서 본 모습과 책상위에서 본모습과 옆에서 본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입체적 기법을 볼 수 있다. 4번에서는 개성 넘치는 소나무의 표현방법과 함께 번개모양의 투명한 산과 산을 통하여 비치는 성곽의 외곽을 그리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1800년대에 이러한 뽄 그림을 본적이 있는가? 단계를 벗어난 조선의 프로 화가들의 그림은 이러한 자유를 그림 속에서 만끽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화를 이끌어 가는 우리 중진작가들이 이러한 취지에 의한 한국화의 새로운 정립과 현대적 계승 발전을 모색해야 될 시기가 왔다고 사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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