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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장: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1-3절]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40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야곱은 요셉의 초청으로 130세에 애굽에 와서(창 47:9) 17년 동안 산 후 147세에 애굽의 고센 땅에서 죽었다(창 47:28; 49:33). 요셉은 울며 아버지의 얼굴에 입맞추었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방부(防腐)처리하게 했다. 미라로 만든다고 말하는 방부처리의 방식은 몸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가득 채워 시체를 건조시킨 후 향유에 적신 천으로 묶고 전체를 싸는 방식이라고 한다(NBD).
[4-9절]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떼와 소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애곡하는 기한이 지나자 요셉은 바로의 궁에 말을 전하였다. 아직 장례의 기간이므로 그가 직접 바로를 알현하지 않은 것 같다. 바로는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고 허락하였다. 많은 고난의 세월을 지났던 야곱의 장례식은 영광스러웠다.
[10-11절]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7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그들은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소리내어 울며 애통했다. 아벨미스라임은 ‘애굽인들의 곡함’이라는 뜻이다. 그 땅은 요단강 건너편이었다. 본문에 두 번 나오는 ‘요단강 건너편’이라는 원어(아쉐르 베에베르 하야르덴)는 창세기를 쓴 저자 모세의 서술 위치가 요단강 동쪽임을 보인다.
[12-14절]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父命)을 좇아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모든 사람]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이 야곱을 장사한 굴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었다(창 23:16-19).
[15-18절]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듣고 운 것은 자신의 고생스러웠던 과거의 일들이 기억났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기이하고 컸음을 감사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19-21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그들을 위로했고 그들의 마음에 말하였더라](원문직역).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말했다. 사람을 선악간에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심판과 보응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로마서 12:19,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요셉은 또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했다. 형들이 요셉을 해하려 하고 그를 애굽에 종으로 판 것은 큰 악이었다. 사람이 선과 악을 분간하고 판단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일을 바꾸셔서 그의 부모와 형제들과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선한 일이 되게 하셨다.
또 요셉은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요셉은 그 후 54년간 애굽에 살면서 형제들과 그 자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본문은 요셉이 형들을 진심으로 위로하였다고 말한다.
[22-23절]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110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은 그 아버지의 가족들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110세를 살았다. 야곱이 죽었을 때 요셉은 56세쯤이었으므로 그 후에도 54년간 더 산 것이다. 그는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겪었던 요셉에게 즐거움과 위로의 긴 세월을 은혜로 주셨다.
[24-26절]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권고하[돌아보]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권고하[돌아보]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뼈들]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110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말했다.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돌아보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뼈들을 메고 올라가겠다고 말하라.” 요셉은 110세에 죽었고 그의 몸은 방부처리되어 입관되었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야곱은 147세에 죽었고 요셉은 110세에 죽었다. 창세기는 첫 사람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어 이스라엘의 선조 야곱과 요셉의 죽음으로 끝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존재이며 지금도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어느 날 우리에게 올 죽음을 생각하고 지금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의 날에 후회할 것이 없는 자가 되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었고 형들을 용서하였고 위로하였다. 그는 형들에게 보복하려 하지 않았다. 물론 형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고 회개했다고 본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보낸 것이 하나님의 하신 일임을 믿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상대를 용서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적 섭리를 믿고 우리의 우리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계명과 교훈을 행해야 한다.
셋째로, 야곱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였고 자신을 그 땅에 장사하라고 맹세시켰고 또 요셉도 그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때 자신의 뼈들을 그 곳으로 메고 올라가라고 맹세시켰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였다. 그것은 천국 소망을 예표한다. 우리는 멸망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천국을 소망해야 한다(벧후 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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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The World Book Encyclopedia, vol. 4, 709, 711.
2) 공기는 질소 78퍼센트, 산소 21퍼센트, 아르곤 가스 등 기타 1퍼센트로 구성되었고, 매우 적은 양의 공기는 지상 1,600킬로미터까지 있다고 한다.
3) (1) 대류권(Troposphere)(8-16km), (2) 성층권(Stratosphere)(16-50km) --이 중 오존층(Ozonosphere)(20-50km)은 생물체에 해로운 태양광선(자외선, 우주선, 감마선 등)을 차단해준다, (3) 중간권(Mesosphere)(50-80km), (4) 열권(Thermosphere)(80km 이상). 중간권과 열권 중 지상에서 발사하는 전파를 반사하는 층인 전리층(Ionosphere)(약 60-1000km)이 있다. 김영길 외 26인, 자연과학, 수정판 (서울: 생능, 1991), 83-85쪽.
4) 김영길, 자연과학, 97쪽.
5) 위의 책, 100쪽.
6) 지하 8-40km는 지각(Crust)층이고, 지하 2,900km까지는 맨틀(Mantle)층이고, 그 다음에는 중심핵이라고 한다.
7) 김영길, 자연과학, 96쪽.
8) 본 강해의 과학적 자료들은 The World Book Encyclopedia와 김영길 외 26인, 자연과학, 수정판 (서울: 생능, 1991)을 참고한 것이다.
9) ‘하나님’(엘로힘)이라는 말은 2,570회 사용되었고, ‘여호와’(예호와)라는 말은 약 6,823회 사용되었다. 그 외에 ‘하나님’(엘)은 217회, ‘하나님’(엘로아흐)은 57회 사용되었다(BDB).
10) 창세기 7:16; 17:1, 3과 출애굽기 3:4 등에는 두 명칭이 함께 나온다.
11) 마소라 본문(라켄)은 ‘그러므로’이며(KJV, NASB) ‘가인의 살인죄에 대한 벌이 이러하므로’라는 뜻일 것이나, 고대 역본들(LXX, Syr, 시마쿠스역, 데오도션역, Vg)은 ‘그렇지 않다’(로 켄)로 읽었다(NIV).
12) ‘자손의 계보’라는 원어(톨레도스)는 창세기에 10번 나오는데, ‘대략’(2:4; 36:1, 9), ‘계보’(5:1), ‘사적’(6:9), ‘후예’(10:1; 11:10, 27; 25:12), ‘약전’(37:1) 등으로 번역되었다.
13) 본장과 창세기 11장과 28장, 출애굽기 12:40, 열왕기상 6:1 등을 참고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연대는 대략 주전 약 4115년이 된다. J. B. 페인(Payne)은 창세기 11:32의 해석의 차이로 창조 연대를 주전 약 4175년으로 본다.
14) ‘낳다’는 원어(얄라드의 히필형)는 ‘낳게 한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된다’는 의미이다. 칼형은 주로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남자에게도 22회나 사용되었고 히필형은 170회 이상 사용되었다.
15) 원문은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뜻이며, 이후의 절들에서도 그러함.
16) 고대역본들은 야돈이라는 원문을 야두르라고 읽었다.
17) Gleason L. 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p. 210.
18) 히브리어 사전(BDB)에 의하면, 구약성경에 사람 이름이나 땅을 가리키는 ‘가나안’이라는 말이 90회 나온다.
19) 이 말은 헬라어 70인역(LXX)에서는 글로싸 glw'ssa로 번역되었고, 이것은 신약성경에 ‘방언’(글로싸 glw'ssa)이 ‘언어’임을 잘 증거한다.
20) The World Book Encyclopedia, x, 64.
21) 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pp. 49-50.
22) 데라가 70세에 아브람을 낳았다면(창 11:26), 75세에 하란을 떠난(창 12:4) 아브람은 데라가 145세에 즉 그가 죽기 전에 하란을 떠난 것이다.
23) 모세는 후에 이스마엘의 죽음을 언급한 후 이삭에 대해(창 25:17, 20), 또 이삭의 죽음을 언급한 후 야곱에 대해 서술하였다(창 35:28; 37:2).
24) 염해는 크기가 남북이 78킬로미터, 동서 18킬로미터로 제주도의 절반 넓이 정도이며 지중해 해면보다 400미터 낮은 곳으로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계곡이라고 한다. 이찬영, 성경지리총람 (서울: 소망사, 1993), 198쪽.
25) R. D. Wilson, Is the Higher Criticism Scholarly?, p. 20.
26) 카일과 델리취는 여기의 단이 신명기 34:1에 나오는 길르앗의 단이거나 사무엘하 24:6의 다냐안(야안의 단)을 가리킬 것이라고 본다. C. F. Keil and F.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 Pentateuch (1864), I, 206.
27) 시 7:17; 9:2; 18:13; 21:7; 46:4; 47:2; 50:14; 57:2; 73:11; 77:10; 78:17, 35, 56; 82:6; 83:18; 87:5; 91:1, 9; 92:1; 97:9; 107:11; 단 3:26; 4:2, 17, 24, 25, 32, 34; 5:18, 21; 7:18, 22, 25, 25, 27.
28) 히브리어 원어성경의 마소라 액센트가 그러하다. NASB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29) 히브리어 학자들은 아브라함이라는 말이 ‘우두머리’(아비르)라는 말과 ‘많은 무리’(함)라는 말의 복합어라고 추측한다(BDB).
30) 마소라 학자들은 본절의 ‘내 주여’를 아도나-이라고 읽었고 창세기 19:2의 ‘내 주여’라는 말은 사람을 향한 존칭어인 아도나이라고 읽었다. KJV는 본절의 ‘내 주여’를 "my Lord"라고 번역하였다.
31) 이것을 티쿠네 소페림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구절이나 하나님께 대해 무례하다고 본 구절들 등 18개의 구절을 수정하였다고 한다(Gleason Archer, A Survery of O. T. Introduction, p. 61).
32) 이찬영, 성경지리총람 (서울: 소망사, 1993), 198-199쪽.
33) 마카비하 7:27에는 한 여인이 자기 아들을 3년 동안 젖을 먹였다는 말이 나온다.
34)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창 17:17) 이삭은 40세에 결혼했다(창 25:20). 또 사라는 127세에 죽었고(창 23:1)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 차이가 열 살이다(창 17:17).
35) ‘하란’을 가리키는 말로서 창세기에 10번이나 나온다(창 25:20; 28:2, 5, 6, 7; 31:18; 33:18; 35:9, 26; 46:15).
36) 원문에는 베가드 (by good fortune)[행운이로다]라고 쓰여져 있으나(케팁, LXX, Vg, NASB, NIV), 바 가드 (Good fortune has come) [행운이 왔도다]로 읽으라고 제안되어 있다(케레, Syr, Targ, KJV).
37) 대략적으로, 30킬로미터는 합정동에서 수원까지의 직선거리이며, 45킬로미터는 수원에서 거의 천안까지의 직선거리이다.
38) ‘온천’이라는 원어(예밈)는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로 성경 히브리어 학자들은 그 뜻을 정확히 모른다고 말한다(BDB). 옛날 영어성경은 ‘노새들’(mules)이라고 번역하였고(KJV) 근래의 영어성경들은 ‘온천’이라고 번역하였다(NASB, NIV). ‘온천’이라는 번역은 고대의 라틴어 벌게이트역을 따른 것이다. 고대 시리아어역은 ‘물’이라고 번역하였다.
39) 헬라어 70인역 욥기 끝에, 욥은 시리아어 책에서 이두매와 아라비아 국경지역의 아우시스(Ausis) 땅에 살았으며 그의 이름이 요밥이고 에서의 아들인 자레의 아들이었다고 묘사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40) 요세프스는 요셉이 애굽의 힉소스 왕조 때 총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힉소스는 셈족 배경을 가진 침입자들로서 애굽의 제15, 16왕조를 세웠고 약 150년간(주전 1730-1580년경) 통치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인들을 멸시하고 목축을 가증히 여겼다는 성경의 증거(창 43:32; 46:34)에 맞지 않는다. 요셉 때의 바로는 애굽의 중왕국시대 제12왕조(주전 2000-1780년) 센우스레트 3세(주전 1888-1852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41)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밋타[침상]라고 읽으며 어떤 영어성경들(KJV, NASB)과 한글개역성경이 그것을 따르지만, 고대 헬라어 70인역, 옛 라틴어역, 수리아어역, 근래의 어떤 영어역(NIV)은 맛테 [지팡이]라고 읽는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21은 헬라어 70인역을 인용한 것 같다. 본래의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