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전 1: 4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 벧전 1: 6 여러 가지 시험으로
벧전 1: 4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성도는 거듭남으로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이었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죄 씻음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산 소망인 것이다.
세상의 것들은 다 썩고 더러워지고 낡아진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02: 26에서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라고 말하였다. 또 이사야 40: 6-7은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성도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기업, 즉 천국은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거룩하고 선하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나라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천국을 유업으로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 롬 8: 17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기업'(클레로노미안)에 대해 구약성경에서는 '거룩하게 구별된 소유물'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현재에 이미 누리는 소유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ort).
그러나 '클레로노미안'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정리해 보면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하나님 나라
* 마 25: 34 -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 엡 5: 5 -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2) 영생
* 마 19: 29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 막 10: 17 -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눅 10: 25 -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3) 구원
* 히 1: 14 -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4) 약속
* 히 6: 12 -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5) 축복(3: 9).
이러한 기업은 '산 소망'과 연결된 것으로(3절)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Michaels, Blum). 따라서 본 절의 '기업'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서 현재에 누리는 것이 아니다.
* 롬 8: 18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갈 4: 7 -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미래에 주어질 것을 가리키며 이때 성령은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
* 롬 8: 11, 18-23 - ⑪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⑱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⑲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⑳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 엡 1: 14 -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이러한 기업의 온전함에 대해 부정접두어 '아'로 시작하는 세 단어, 즉 '아프다르톤'(썩지 않고), '아미안톤'(더럽지 않고), '아마란톤'(쇠하지 아니하는)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하게 될 '기업'이 지상의 것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Robertson).
2]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에'는 복음서에서 '하늘나라'와 연관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특정한 말씀과 연결된다.
* 마 5: 12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마 6: 19, 20 - ⑲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⑳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눅 12: 33 -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기업이 영원할 뿐만 아니라 전혀 손상되지 않으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시사한다(Lenski, Robertson).
'간직하신 것이라'(테테레메넨)은 완료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업을 마련해 두셨음을 시사한다(Blum).
벧전 1: 5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란 앞 절에 말한 천국을 가리킨다. '말세에 나타낸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성도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죽었던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되어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다.
또 성도들은 이 놀라운 구원 곧 영광의 천국을 얻기 위해 지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있다.
요한복음 10: 27-28에 보면,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디모데후서 1: 12에서도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이를[이 복음을]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구원과 영생]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하였다.
1]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세에'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곧 파루시아를 가리킨다.
* 롬 8: 18-25 - ⑱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⑲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⑳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 빌 3: 20-21 - ⑳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골 3: 4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요일 3: 2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파루시아 때 성취되는 '구원'은 앞서 언급된 '산 소망'(3절), '기업'(4절)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얻어 향유하고 있는 구원의 실현 혹은 종말론적 차원의 완성을 의미한다(Stibbs, Blum)
2]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보호하심을 입었나니'(프루루메누스)는 '프루레오'의 수동태 분사 현재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프루루메누스'는 본래 군사 용어로서 순례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사단을 막아주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낸다(Stibbs, Leighton).
종말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완성 될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므로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하며,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누릴 수 있게 된다(Michaels, Stibbs).
벧전 1: 6 여러 가지 시험으로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하나님의 구원과 그 능력의 보호하심이 확실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당하며 잠깐 근심하게 될지라도 도리어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시련은 금의 제련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없어질 순금도 용광로 속에서 제련함으로써 나온다.
성도들은 환난과 시험을 통하여 인격의 단련을 받아 거룩하고 겸손하고 믿음 있는 인격자가 된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행들을 많이 함으로써 장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칭찬을 듣고 천국과 영생의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로마서 5: 3-4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하였다.
1]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시험을 인하여)
'시험'(페이라스모이스)는 외부에서 다가오는 시험으로 상위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시련(test)을 의미한다(Bigg, Michaels).
* 약 1: 2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런데 베드로가 언급한 '여러 가지 시험'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암시하는가에 대하여 혹자는 '포이킬로이스'(여러 가지)가 고전 헬라어에는 나타나지 않고 마카비 시대와 신약 시대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마카비 시대에 일어났던 고난이나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멸망(A. D.70)을 예고한 듯하다.'고 주장한다(Selwyn, Hor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이 정확한 지는 분명하지 않다(Michaels).
시험(Test)은 성도가 믿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혹은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특별한 사람, 환경, 질병 등이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험하다’ 혹은 ‘유혹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나사’(nasah)이며, 이 단어에서 ‘시험’이라는 명사 ‘맛사’(massah)가 나왔다.
이 명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했던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며
* 출 17: 7 -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 신 6: 16 –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 신 9: 22 –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 신 33: 8 -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 시 95: 8-9 –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병기를 시험한 경우에도 사용되었다.
* 삼상 17: 39 -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알아보시려고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심으로써 그를 시험하셨다.
* 창 22: 1 -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시려고 바벨론의 사신을 그에게 보내 시험하셨다.
* 대하 32: 31 –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또한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시험하는 것도 있다.
* 왕상 10: 1 -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 대하 9: 1 –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매우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 단 1: 12, 14 –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시험(Temptation)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눅 11: 4)의 '시험'은 원어 '페이라스모스'로 '유혹'(temptation, NIV)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는 성도의 신앙을 꺾으려는 외적인 시련과 죄를 범할 수 있는 내적 유혹을 함축적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시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주체가 하나님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나 약 1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 약 1: 2-8, 12-15 –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때로는 그분의 선한 뜻을 펴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본문은 성도가 시험에 부딪쳤을 때 굴복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이다.
* 눅 4: 1-12 –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욥 1: 12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 가니라.
이것은 마 6: 13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마태복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송영구가 있으나 권위 있는 마태복음 사본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어 이것이 본래적인(original)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 13).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Test)한 것은 구약성경의 언급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사탄과 같은 시험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돕기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시다.
위의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 시험도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고후 12: 8-9) 다른 한편으로 그 가시는 사탄의 사자였다고 설명하고 있다(고후 12: 7).
* 고후 12: 7-9 –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신 6: 16 –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에 바칠 재산의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거짓말한 것은 바로 주의 영을 시험하는 일이었으며 그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 행 5: 9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또한 초대교회에서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할례)을 강요하여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운 것도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 행 5: 10 -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기드온이 행한 양털시험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 삿 6: 17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이러한 일은 모세가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확인된다.
* 출 4: 3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고전 10: 13)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공생애의 사역을 앞두고 사탄이 시험하였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 3).
궁극적으로 십자가 또한 시험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오히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 18)고 말한다.
2]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개역 성경에는 '엔 호'(이 가운데)가 생략되어 있다.
'앤 호'는 '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5절, Blum, Michaels)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암시한다. 비록 현재에 고난을 당하여 근심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러한 고난은 '잠시 동안만' 있을 것이다.
그 후 종말론적 구원이 완성되는 파루시아 때에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업이 기다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