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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은 회중의 반응을 살피며 메시지를 흥정하지 않습니다.
전령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달콤한 사탕발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전령은 오직 자신을 파송한 왕의 권위만을 힘입어 선포할 뿐입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설 때, 그는 인간적인 자격이나 사견을 말하러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의 선언을 들으십시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ὡς λόγια θεοῦ(hos logia theou), 곧 '하나님의 거룩한 신탁을 대언하듯' 서야 합니다. 현대 설교자들이 청중의 눈치를 보고, 대중의 구미에 맞춰 설교를 마케팅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이유는 자신이 만왕의 왕의 어명을 위임받은 κῆρυξ(Keryx)라는 영적 정체성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강단은 청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타협의 장소가 아니라, 하늘의 칙령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며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심판과 은혜의 자리입니다.
3. 설교는 최고 형태의 목양(Pastoral Care)이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행전 6:4)
관주: 사도행전 20:26-28, 에베소서 4:11-12, 골로새서 1:28
수많은 목회자가 '설교(Preaching)'와 '목양/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을 별개의 사역으로 분리하는 치명적인 이원론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공적인 웅변술로 치부하고, 진정한 양 떼 돌봄은 개인적인 심방이나 상담실의 1대1 치유 사역에서 이루어진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똑똑히 들으십시오. 참된 성경적 설교야말로 목양의 절대적인 최고봉(The Highest Form of Pastoral Work)입니다!
의사가 수많은 환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미봉책의 진통제만 놓아주는 것은 참된 치료가 아닙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온전한 강해 설교는, 성령의 조명 아래 전 회중의 심령에 숨겨진 죄악의 종양을 한꺼번에 도려내는 거룩한 집단 외과 수술입니다.
골로새서 1장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울은 '전파함(설교)'을 통해 '각 사람(πάντα ἄνθρωπον)'을 권하고 치료하여 온전케 세운다고 선언합니다. 주일 강단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 십자가의 구속과 성령의 주권이라는 위대한 교리의 체계가 웅장하게 선포될 때, 성도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질병, 재정적 파탄, 가정의 갈등, 영적 침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그 거대한 진리의 빛 안에서 스스로 깨닫고 해석하게 됩니다.
설교가 빈약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사소한 문제마다 목회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상담실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뼈와 골수를 쪼개어 영적 면역력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목회자가 백날 심방을 다니고 상담을 해보아야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합니다.
4. 구원의 절대적 수단: 전도의 미련한 것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21)
관주: 로마서 10:17, 고린도전서 1:18, 베드로전서 1:23-25
세상 사람들은 강단에 올라 죄와 심판,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설교 행위를 가리켜 '시대에 뒤떨어진 독단'이며 '미련한 방식'이라고 비웃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지식인 목회자들 역시 세상의 이러한 조롱에 주눅이 들어, 설교의 형태를 토크쇼나 영상 미디어, 문화 공연으로 바꾸려 발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 21절의 엄중한 선언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διὰ τῆς μωρίας τοῦ κηρύγματος)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여기서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전도 행위뿐 아니라, 선포되는 설교의 내용과 그 선포 방식 자체(The foolishness of the proclamation)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화려한 웅변이나 첨단 미디어가 아니라, 세상 눈에 지극히 미련해 보이는 '말씀의 선포(설교)'를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통로로 지정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열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섭니다. 인간의 어떠한 문화적 대안도, 세련된 조직력도 영혼을 회심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사역자가 강단에서 토해내는 불붙는 복음의 선포만이 죄인의 심장을 박살 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강단으로 돌아오십시오!
사역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잔심부름꾼으로 분주했던 모든 헛된 발걸음을 멈추십시오. 교회를 기업처럼 경영하려 했던 인본주의적 죄악을 회개하고, 강단을 엔터테인먼트의 무대로 내어준 배교의 도구들을 제단에서 불태워버리십시오.
우리는 만왕의 왕의 엄명을 위임받은 거룩한 전령 κῆρυξ(Keryx)들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어전을 대면하십시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명령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피 묻은 십자가 복음만을 강단에서 사자처럼 포효하십시오. 설교가 다시 교회의 절대적인 중심이자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오를 때, 무너졌던 강단이 살아나고, 기갈에 허덕이던 양 떼가 살아나며, 이 땅의 교회가 다시금 음부의 권세를 뒤흔드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군대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