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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령의 열정: 아나데마 에이나이 (ἀνάθεμα εἶναι,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바울은 차갑고 피도 눈물도 없는 교리주의자가 아닙니다! 로마서 8장에서 그토록 찬란한 승리를 노래했던 사도의 심장이 9장 시작과 동시에 찢어질 듯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Odynē: 산고의 고통)'으로 피를 흘립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를 몰라보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출애굽기 32장의 모세처럼 부르짖습니다! "내 동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아나데마(Anathema: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가장 끔찍한 저주)가 되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나는 좋습니다!" 영혼을 향해 창자가 끊어지는 이 사랑 없이 예정론을 논하는 것은 이단적 폭력일 뿐입니다.
II.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야곱과 에서의 대조 (9:6-13)
(롬 9:6-8, 11-13)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참된 이스라엘의 정의: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났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인 '이삭'만이 씨로 인정받았습니다.
선택의 절대적 시점과 근거: 엨클로겐 (ἐκλογὴν, 택하심을 따라)
바울은 더 강력한 쐐기를 박기 위해 이삭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를 법정에 세웁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이 무릎을 꿇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절대 심장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무슨 근거로 야곱을 선택(Eklogēn)하셨습니까? "그 자식들이 아직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단 1%도 행하기 전(Before they had done anything good or bad)에!" * 구원의 조건은 내 행위, 내 믿음의 결단, 내 의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부르시는 이(The Caller, 주권자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야곱은 창세 전에 사랑받기로 선택되었고, 에서는 미움을 받았습니다(유기). 우리의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의 산물입니다!
III. 긍휼과 주권: 인간의 달음박질을 비웃다 (9:14-18)
(롬 9:14-16, 18)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불의하신가? 메 게노이토 (μὴ γένοιτο, 결단코 그럴 수 없느니라)
인간의 얄팍한 이성이 즉각 반발합니다! "선악을 행하기도 전에 지옥과 천국을 정해놓으셨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독재자 아닙니까?"
바울은 사자후를 토합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며, 모두가 지옥에 가는 것이 완벽한 공의(공평)다! 하나님이 그 지옥 갈 자들 중에서 야곱을 구원해 내신 것은 '불의'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인 **'긍휼(Eleēso)'**일 뿐이다!"
구원의 유일한 근거: 달음박질의 무효화
아더 핑크(A.W. Pink)는 이 구절에서 인간의 모든 공로주의를 박살 냅니다! 구원은 내가 구원받기를 '원한다고(Thelontos: 인간의 자유의지)' 되는 것도 아니요, 내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종교적으로 **'달음박질(Trechontos: 인간의 노력과 열심)'**한다고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애굽 왕 바로를 완악하게 하신 것도, 모세를 부르신 것도 철저한 조물주의 고유 권한입니다.
IV. 토기장이의 비유: 피조물의 오만한 입술을 꿰매다 (9:19-24)
(롬 9:19-21)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피조물의 궤변과 거룩한 호통: 메눈게 오 안드로페 (Μενοῦνγε, ὦ ἄνθρωπε,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인간은 끝까지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하나님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면, 왜 바로에게 책임을 묻고 심판하십니까? 다 하나님 책임 아닙니까!"
이 오만한 반항 앞에 바울은 철학적 논증을 포기하고 신적 권위의 벼락을 내리꽂습니다! "이 사람아!(O Anthrōpe: 한낱 흙먼지에 불과한 피조물아!) 네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창조주 하나님께 반문(Antapokrinomenos: 말대꾸하며 대적하다)하느냐!" * 케라메우스 (κεραμεὺς, 토기장이의 절대 권한)
**'토기장이(Kerameus)'**가 똑같은 진흙(타락한 인류) 한 덩어리로, 하나는 왕의 식탁에 올라갈 귀한 그릇으로, 하나는 오물을 담는 천한 그릇으로 만들 절대적인 **'권한(Exousian: 합법적 주권)'**이 없느냐!
하나님이 심판받아 마땅한 '진노의 그릇'들에게 오래 참으심으로 진노를 보여주시고, 창세 전에 준비하신 우리들(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긍휼의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부어주시는 것은 토기장이의 완벽하고도 거룩한 자유입니다!
V. 부딪히는 돌과 이방인의 구원 (9:25-33)
(롬 9:30-3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구속사의 대역전: 부딪히는 돌 (십자가)
바울은 이제 결론을 내립니다. 유대인들이 멸망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의 '행위주의'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종교적 열심(행위)으로 구원을 따내려다가 시온에 두신 **'부딪히는 돌(Proskommatos: 걸림돌, 곧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처참하게 걸려 넘어져 대가리가 깨진 것입니다.
반면, 율법도 모르고 방황하던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영적 파산을 인정하고 오직 '믿음에서 난 의(십자가)'를 의지하였기에, 수치를 당하지 않고 구원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쟁취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