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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30)
어떤 죄가 성령님을 가장 깊이 탄식하시게 합니까? 바울이 이 명령 전후로 열거한 죄의 목록을 보면 매우 놀랍습니다. 그것은 살인이나 우상숭배 같은 거창한 죄가 아니라, 거짓말, 분냄, 도둑질, 더러운 말, 악독과 노함, 비방(엡 4:25-31) 등 철저하게 '공동체의 연합을 파괴하는 관계적인 죄악들'입니다.
성령은 '거룩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 됨의 영(Spirit of Unity)'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 되게 하신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를 시기하고 물어뜯을 때,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가장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시며 탄식하십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은 영적 모순이며 기만입니다.
3. 성령을 소멸하는 치명적 영적 나태 (데살로니가전서 5:19)
성령을 향한 또 하나의 치명적인 범죄는 바로 성령의 불을 '끄는' 행위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데살로니가전서 5:19-20)
'소멸하다(Quench)'는 단어는 본래 활활 타오르는 불에 찬물을 끼얹어 꺼버린다는 뜻입니다. 프랜시스 챈은 『잊혀진 성령』에서 현대 교회가 성령의 불을 끄는 가장 흔한 방법은 '이단적 교리'가 아니라 '영적 무관심과 말씀에 대한 경멸'이라고 지적합니다.
성령님은 강단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예언)으로 우리 심령에 거룩한 감동과 찔림의 불을 지피십니다. 그러나 "기도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는 그 뜨거운 내면의 촉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세상의 염려와 육신의 안일함(찬물)을 선택할 때 성령의 불길은 급격히 사그라듭니다. 감동에 대한 지연된 순종은 곧 불순종이며, 성령을 소멸하는 행위입니다.
4. 로마서 8장의 역설: 우리를 위한 성령의 탄식
그러나 성령의 탄식은 정죄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 개혁주의 성령론의 가장 눈물겨운 은혜의 역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우리가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영적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었을 때, 성령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령님은 우리의 그 비참한 연약함을 끌어안고,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버지를 향해 '말할 수 없는 탄식(Groaning)'으로 중보하십니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내 의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위해 피 눈물로 간구하시는 이 보혜사 성령님의 절대적 사랑과 탄식 때문입니다.
5. 제36강 결론: 회개, 영혼의 산소를 공급하는 호흡
목사님, 아름다운교회 강단에서 선포되어야 할 영적 생존의 원칙은 명확합니다. 성령의 불이 꺼져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난로의 불을 다시 살리려면 재를 긁어내고 산소를 공급해야 하듯, 우리 심령의 성령의 불길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즉각적이고 철저한 회개'입니다. 회개는 영혼의 재를 긁어내는 작업이며, 십자가의 은혜라는 산소를 공급받는 거룩한 호흡입니다. 성령을 근심하시게 했던 나의 모든 쓴 뿌리와 영적 나태를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통곡할 때, 성령의 불은 다시 우리의 심령과 교회를 태우는 압도적인 권능으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제37강 예고: 성령의 능력을 상실한 이 시대를 향한 가장 뼈아픈 진단! '제37강: 잊혀진 성령 - 현대 교회의 영적 능력 상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으로 영적 대각성의 나팔을 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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