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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원성천 물길축제 시화전 원고】
【권두시】
포켓 속의 詩集
발행인 / 최기복
우울한 날에는 탱고를 추고
눈부신 날에는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냇물 속에서 헤엄치는 송사리 떼
내 포켓 속에서 미소 짓는다
폐부를 깊숙하게 자극하는 공기
손에서 놓여나지 않는 詩인생
세상에서 제일 작은 시집 한 권
원성동 물길축제의 옥동자
恨에 젖어 목줄이 당길 때도
환호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 때도
두 눈 조용히 감고 읊조릴
시구(詩句)가 숨 쉬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포켓 시집
축제의 노래
천변의 사랑
1. 사랑의 정의 23 -꿈속의 사랑-
溥根/ 최기복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인지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하여
꿈을 꿀 수가 있고
꿈속에서 만난 호박마차를 탄 유리공주는
사랑을 고백한다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
자리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잠을 청한다
유리공주 대신
샤일록이 나타나 심장을 도려 달라고 성화다
차라리 깨지나 말 것을
꿈속의 사랑도 사랑인지라
나는 꿈을 꾸고 산다
천사 보다 만사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녀는
내 꿈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2. 사랑의 정의 24
溥根/ 최기복
꽃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꽃이 되지 못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랑꾼
사랑을 사랑한 것이 죄가 된 사연
혈맥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은
회한의 시간을 번아웃 한다
꽃은 져야만 꽃이고
사랑은 맺어져야 사랑이어늘
꽃은 지화(紙花)가 되어
표정을 잃었고
사랑은 떠돌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길을 잃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바람을 타고 흐르는 미세먼지만도 못한
내 사랑을
3. 벚꽃 시즌의 원성천
여산 / 홍성도
벚꽃 사랑에
눈물짓는 냇물
사랑을 사랑하다
사랑에 맺힌 恨(한)
恨이 恨되어
흐르다 소리를 낸다
가다가 멈추면 웃음지울 수 있을까
4월이 가면 져야 할 벚꽃 사랑에
몸져누운 시간
탐방객들의 미간에 그려진 꽃잎
사랑도 사람의 일
때를 만나지 못하면
피워내지 못한다
때를 잃어버리면
슬픈 냇가의 원성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며 소리를 낸다
4. 사랑은 광땡이다
여산 / 홍성도
하늘을 본다
말려오는 먹색 구름조차
보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운 밤
눈에 비치는 광도
투전판 화투장에 그려진
벚꽃도 공산명월도
눈자위 눈꺼풀의 잔주름일 뿐
사랑꾼의 노랫말 속에
젖어드는 아니리다
광 잡고 땡잡는 일
놓치면 깨는 꿈같은 것
깨지 말고 가자
사랑은 광땡이다
5. 원성천변에 벚꽃이 움틀 때
해옥/ 염성옥
얼어붙은 심장에 볕이 닿으면
볕은 물이 되고
물이 된 물이 고여 원성천을 이룬다
응고된 사랑에 종이배를 띄우고
응어리의 마디에 새겨진
연분홍 사연을 꽃으로 피워낸다
사월의 하늘에 흐드러진 사랑
꽃이 필 때는 질 때가 두려워 숨죽이고
꽃이 질 때는 다시 필 날을 기다리며
안타까움에 몸져눕는다
세월아 가지 마라
시간아 멈추어 다오
바람이 바람을 피우면
천변에 흩뿌려질 분신들
밟히는 아픔보다
이별의 아픔이 크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다 안다.
사랑아! 내 사랑아!
6. 겨울 가운데에 서서
중안/ 조상진
창밖을 본다
나신들의 열병
도열해 있는 군상들
어제의 기억들에 가을은 숨을 죽이고
연녹색 가지들의 춤사위는 사위어 갔다
숫눈을 기다리는 버진의 여윈 가슴 안고
얼어붙은 빙판 위에 서서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유년의 꿈이 퇴색되고
소년의 응어리진 낭만도 윤색되고
되돌아보면
을씨년스럽기만 한 청년의 문턱에서
기다림의 의미마저 나들이 간 내 장년
겨울은 봄을 시샘하고
봄은 창밖에서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
아직은 식지 않은 가슴에
내 청춘은 용광로다
겨울아 비켜 다오
내가 간다
7. 천변의 요람
성당(聖堂) / 이기성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다면
나는 원성천변에 산다고 대답한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원성천에는
전설이 숨 쉬고
옛이야기가 도란거리는 태조산 줄기에
마르지 않는 냇물과 만날 수 있어서라고
철모르는 송사리 떼 꼬리를 흔들고
원앙오리 물질하는 냇물
내가 산 70년 시간
물마를 날 없었던 기억 저편에
또랑치고 미꾸라지 잡던 소년이 웃고 있다
떠날 수 없는 숙명
산다는 이치는 그만그만해도
어디에 사느냐는
행복의 잣대로 재단될 수 있기에
고단한 여정의 휴식처가 된다
4월의 언덕 위에 흩뿌려질 눈꽃
벚꽃의 연가(戀歌)를 목 놓아 부르련다
* 이기성
원성1동 주민자치회장
8. 그리움
효원 / 진은정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은 가고
봄이 찾아왔다.
얼마나 기다렸나
그리움이다
님이 멀리 있어도
그리움은 산처럼 높아만 간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너는 알고 있니?
봄 아지랑이 같이
피어오른 사랑
님아!
저 꽃잎에
내 마음 담아
바람에 띄워 보낸 편지
너는 보았니?
내 님아
사랑하는 님아
봄처녀
애태우는 가슴
저 동백 꽃잎처럼
붉게 물들었다.
사랑은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이다.
저 물결처럼
넓은 바다로 나가
너와 함께
한없이 춤을 추고
싶다~
9. 수레바퀴
효원/진은정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
둥근 바퀴 안에 접는다.
구르면서 꾸는 꿈
연녹색 꿈이다.
얼마나 더 굴러야
별빛을 아우르고
얼마나 더 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을지
주인의 눈치조차 모른 채
삶의 끝을 향한
땅 위의 존재
육중한 몸체 위에
실려있는 덫
나는 수레바퀴다.
10. 싱그러움 녹음
호원 / 유순희
콧등을 스치는 달큰한 향기
희망을 노래하는
재잘대는 새들의 노랫소리
파릇파릇 나풀거리는 풀잎들이 춤을 춘다
아가는 먹고 자고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얼굴이 새빨갛게 용을 쓰며 자라고
깍꿍하면 까르르 웃는 모습에 세상을 얻는다
옆에 있어 소중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기에
빈 가슴에 끈끈한 정을 채우며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간다
오늘도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 한 스푼 타서
유월의 싱그러운 녹음을
차 한 잔에 담아 본다.
11. 좋은 친구
호원 / 유순희
눈으로 말할 수 있다
마음과 마음사이
자유와 평화가 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도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우리 마음 같아라
생각을 존중하고
물 흐르듯 배려하고
존재를 인정하고
세월이 비에 젖는 낙엽이 되어가도
함께 있는 공간에서 느끼고 사랑하는
좋은 친구는 별이 되고 달이 되는구나
12. 손주야
김종열
먼 데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지는
시간의 서서
기원의 손길을 모으고
기다리는 경건(傾虔)을 담아
기다려온 보람
손주야!
네가 세상에 문을 여는 순간
평생을 살아온 할애비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일고
찬란한 햇빛이 눈부시구나
기다림의 의미가
이토록 숭고(崇高)할 줄이야
이제 네가 있어 내가 살 수 있고
네가 있어 행복할 수 있단다
어서 오려무나
양팔 벌리고 너를 안으마
고단한 여정에 아름다운 결실 이란다
13. 고향의 강
平心 / 홍원표
어릴 때 뛰놀던 시냇가
봄기운 맞아 버들강아지
꽃망울 터트리고
조약돌 사이 흐르는 시냇물
물장구치며 놀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동구 밖 당산나무 동산에
철없이 뛰어놀던 아이들의
홍조 띤 얼굴 어루만지고
시 새워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 귓전 가득 들려오는
가슴속에 흐르는 고향의 강
향수에 눈시울 젖을 때
길마중 나온 어머니
선바람 모습으로 반겨줄 재
눈가에 진주 방울 맺히고
포근한 어머니 품에 안겨
고향 하늘 바라보니
파란 하늘 새털구름 흐르고
산새들 노랫소리 들리는 고향의 강
어머니 품속같이 평안하네
14. 벚꽃 낙화
平心 / 홍 원 표
솜털 같은 꽃잎들
그리움이 온몸으로
하얗게 퍼져갈 때
오가는 춘우(春友)들
환한 꽃 등불 밝혀주고
황홀한 꽃길 되어주더니
심술궂은 봄비 내려
이제 흐드러지게 핀 꽃
어느새 충충 떠나는 그대여
안녕이란 말 한마디 못 하고
시린 세월을 보낸 후
이듬해 찾아온다고 떠난 그대
하얀 꽃잎 길섭에 휘날리며
그대를 보내는 아쉬움
가눌 길 없어
보고 싶은 그리움에
애타는 맘 달래며
꽃비 맞으며 그대 보내 드리리라
15. 봄밤의 서정
손해진
푸른 달빛에
수줍은 꽃잎
빛들의 향연이
무르녹는다
귓가에 흐르는
선율은
향기 따라 날아오르는
나비
고혹스런 빛깔로
물드는 여린 잎
빛의 춤사위에
신이 난
춘월의 바람은
너와 나의 가슴을
너울질한다
오가는 인파에
마음 설레고
서로의 인연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원성천 따라 이어진
긴 걸음엔
정겨움 한가득
봄밤
꽃비 나린다
16. 원성천에서 걷다
나영순
새가 물고 온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이 길 위에
벌써 하얗게 봄을 쌓아놓고
물수제비를 뜨는 바람들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이 오후가
너를 생각하는 가장 깊은 마음
빛이 잠들지 않는 거리
너와 함께 하는 발걸음이 앞선다
가장 아름다울 때와 가장 아름답고 싶을 때를
너의 두 눈에서 읽는다
잠시 쫓다 멈춘 구름들
봄 꿈을 꾸는 이파리들을 들어 올리듯
낯빛이 물가를 휘돈다
내가 가장 사랑할 때
네 눈빛에서 걸었던 그 길
원성천을 걸은 기억마다
네 얼굴이 채워지는 두 눈이 붉게 슬퍼진다
너를 맞잡았던 손가락이
고요히 물길을 재우는 저녁놀 속에서
새장을 날아온 새들이 물고 왔던
휘파람처럼
17. 알람
나영순
너무 늦게 깨웠다
물총새보다 빠르게 새벽을 휘어잡는
절제된 몸동작
스스로는 절대 죽지 않는 분수처럼
제 분수도 모르고 마음대로 휘젓는다
저 어이없이 상기된 얼굴에서
어제까지 이어졌던 모든 움직임이
숨 가쁘게 부서져 나뒹군다
불쑥 튀어 오르는
멋쩍은 액정이 분침과 초침 사이를
마구 동그랗게 휘감는다
한 번도 끓어 넘치지 못한 내 동공이
사납게 쭈그러진 벽을 응시하다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소리 쪽으로 기운다
갈 길이 다른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어쩔 수 없는 악몽이
이미 중독된 귀를 마구 할퀸다
방금 깨운 햇귀가 물끄러미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나를 너무 늦게 깨웠다
18. 지금 나는
명불허전 / 이은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떠 본다
기지개를 켤 시간도 없이
간절한 명령에도 굴복하지 않는 분침은 요란하게 내달린다
핸디캡 짝눈은 덕칠덕칠 작품이 되고
거무티티 잡티들은 화사한 분내로 가득 차다
기분에 따라 옷자락은 제멋대로 춤을 춘다
상사의 호통 저 너머에는
점심 메뉴 생각으로 시름을 놓는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던 숨 가쁜 시곗바늘도 어느덧 뉘엿뉘엿 퇴근을 성내며
세상 어떤 죄명도 무죄로 판결 날 것 같은 자비로움으로
아침과 저녁의 격세지감은 오늘도 내일도 시계 분침처럼 흐르고 있다
오롯이 눈을 감아본다
아주 천천히 눈을 떠 본다
아주 천천히 눈을 떠 본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매일의 시각들
아주 천천히 내 눈 안에 있더라
나의 진심이 실망으로 이이진 순간들도
내 눈 안에 행복으로 있더이다
나는 지금 철저히 살아있더라
나는 지금 놓친 시각을 찾으며 숨 쉬고 있더라
19. 막걸리 한잔
명불허전 / 이은순
가시 돋친 뼈 있는 말 한마디로
덩그러니 내버려져
깔떡깔떡 거칠어진 숨 고개를 넘는다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마음의 치유가 되는 세상이라면
내 전 재산 다 버릴 수 있으련만...
해는 뉘엿뉘엿 스산한 기온만 남긴 채 숨어버렸다
그렇게 실컷 헤매다보니
여기가 어딘지...
행색이 어쭙잖았는지 동냥하듯 툭 건넨
낯선 이의 막걸리 한잔에
이유 모를 눈물이 난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배가 고팠다
마음도 고프고
미움도 고프고
사랑도 고프고
비로소 나는 막걸리 한잔에 취해버렸다
막걸리 한잔에 뜨거운 눈물이 난다
빨갛게 피가 돈다.
20. The Moment
影園 / 김인희
냇물을 희살 짓는
석양의 유혹이 절정에 이르면
윤기 잃은 갈대의 원성
하늘을 찌르고 땅이 진동한다
별을 휘감는 바람의 허밍
바람은 별이 되고
별은 바람이 되는 The Moment
벚나무 가지마다 맺힌 그리움
겉옷을 찢고
연분홍 속살로 상춘객을 유혹한다
21. 달의 탄원
影園 / 김인희
일 년 삼백예순날
태양을 따라 도는 궤도에 박제된 운명
실낱같은 그리움은 초승달이 되고
가슴에 반달을 천형으로 새긴 짐승이 되어
천칭저울에 사랑과 증오의 무게를 잰다
성긴 가지로 가릴 수 없는 만월(滿月)
반을 그리움으로 채우고
나머지 반은 원망으로 채운다
비워내는 원망의 크기만큼
그리움도 작아져서 그믐달이 된다
태양은 변덕이 심하다고 푸념하고
달은 몸부림치며 탄원한다
태양이 준 빛만큼 보이는 달
날마다 달라지는 달의 모습이
누구의 변덕 때문인지
장본인 태양은 모르고 있는가
22. 나그네의 꿈
우공/ 허욱
한 끼니의 식욕에 시를 팔고
싸구려 시구에 통곡해야 하는 거스를 수 없는 팔자
고칠 수도 없고 고쳐 봤자
별 볼 일 없는 그림자의 그림자
뒤축 무너진 가죽구두에 물기가 스미면
질컥거리는 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소음도 시가 될 수 있다는 늙은 시인의 절규에
고개를 갸웃했던 내 젊음은 간다
정처를 잃어버린 고목이 되어
지팡이조차 필요 없는 나그네 되어 찾는 곳
고향이 없기에 더 그리운 고향을 향해
눈길을 돌려 본다
보이는 것은 허한 하늘의 허기뿐
의식 저변에서 맴도는 꿈조차 허망하기만 하다
궁남지에 심어놓은 연꽃을 그리워하다
원성천변을 유랑하는 나그네 되어
바꿀 수 없는 세상 이치 때문에
스스로를 바꾸어야 하는 모진 운명
어차피
인생은 방황하는 나그네
망상 같은 꿈의 노에
23. 반창고 사랑
천희 / 김경희
상처가 아물어
반창고를 떼어 내면
햇볕 받지 못해
하얗게 탈색된 피부가
얼굴을 내민다
거리에 회색빛 장막이 드리워지면
사랑은 덫난 상처가 되어 반창고를 찾는다
책임질 수 없는 불시착의 반복
여진은 언제 멈추어지려나
밤새워 통곡을 해도
대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눌변의 항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도
상하로 끄덕거려 봐도
보이는 것은 반창고 떼어낸 자리
그리움의 텃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둔
접착제가 마르면 내 사랑도 말라질까
24. 캐러멜 마키아또의 사랑
천희 / 김경희
첫사랑의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다
그 달달한 맛에 취했던
내 버진이여
숨넘어갈 것 같은 전율은
초정월의 햇살아래
먼 산의 아지랑이를 부른다
이제는
물거품이 되어버린 거품 키스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것인가
강가에 앉아 봄을 기다리는
봄나물의 풋풋함이 사라져 가는
계절의 그루터기에 앉아
아직도 마끼아또 사랑을 꿈꾼다
입가에 남아 있는
거품의 달달함이여
기억의 강이여
25. 벚꽃 피는 날에
예진당 / 황해숙
겨울 밤하늘
별 하나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심술궂은 바람이
꽁꽁 언 구름을 불러오고 협박 합니다
천변에 서 있는 벚나무
성긴 가지마다 살갗을 찢고 진통 합니다
상처마다 맺힌 꽃봉오리
팝콘처럼 팡팡 폭발하는 밤이 오면
별 하나 하늘에서 내려와
꽃가지에 앉아 밤새도록 사랑노래 부릅니다
26. 계절과 계절 사이에 내리는 비 (수필) -중에서-
예진당 / 황해숙
나는 밤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서 빗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빗소리는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하늘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봄이 떠나가는 시기에 내리는 비는
더운 기운을 데리고 왔다.
비가 그친 후에 가로수 나뭇잎의 색은
더 짙은 초록색으로 변할 것이다.
봄에 꽃을 피웠던 가녀린 줄기는
도톰하고 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대지는 여름 꽃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여전히 나비와 꿀벌에게 손짓을 할 것이다.
27. 시절인연
海霧 / 신영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친
여섯 살 꼬마의 인생은 슬픔으로 시작되고
사춘기를 분탕질하고
초병의 노래를 부르던 청춘도 아득하다
운명의 덫에 치어
쥘부채 하나 들고 외줄을 걷는 아나키스트
불볕더위에 이가 시린 고독에 떨고
한겨울 신열에 온몸이 흥건하게 젖는다
옹이 박힌 고목 한 그루
연분홍 꽃을 피우고 부르는 연가
사랑아!
내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코냑 다이아몬드 별이 빛나는 밤
원성천에는 세레나데가 울려 퍼진다
28. 오월의 눈꽃
海霧 / 신영
푸른색 주발에
고봉으로 담긴 흰쌀밥이 꽃이 된 사연
유년시절
허리띠 졸라매고
힘이 부치게 넘었던 보릿고개
순이 엄니는
나물 캐러 산으로 가고
철수 아버지는
소나무 껍질 벗기러 가고
배가 보름달만큼 불러도
허기지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를 넘던 샛별 같은 소년
석양을 닮은 사내가 되어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트림을 한다
29. 냇가의 기억
송일호
미나리 밭에 살던 미꾸라지가
내 소쿠리가 저희 집인 줄로
착각하고
특유의 몸짓으로 꿈틀 댄다
양쪽으로 난 성긴 수염은
서양신사의 카이젤 수염을 닮았지만
내손에 잡혀 온 이상
녀석의 소유권은 나에게 귀속되어 있다
성년의 추어탕 집에 와서
늘 후회를 한다
왜 그들을 냇가에 버렸을까
생존을 되돌려준 나에게 감사할 줄도 모른다
먹는 것 줄이고 입는 것 아껴서 모은 재산
죽을 때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에게 다 넘겨주고 나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것 같아서
멍 때리고 있다 보니
주머니에 찬바람이 돌고
사람들은 멀리 떠난다
가난은 천형(天刑) 같은 것인데도
천변에 다시 던져 넣었던 미꾸라지 생각이 난다
상속보다는
미나리 깡 사서 미꾸라지나 키우고 살 것을
30. 벚꽃
단해 / 김영규
어느 봄날
갑작스레
파스텔 톤 숨결 다가와
폐부에 달라붙는 느낌
겨우내 메말랐던
모세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
주체할 수 없는 전율
긴 기다림 뒤 연정 같아
차마 참을 수가 없어서
한없이 꽃 울음
터뜨립니다
그대 앞에
31. 원성천의 봄
누꼬 / 이수경
무심히 걷던 천변 길
은빛 윤슬에 물고기 숨바꼭질하고
바람이 휘파람을 불면
늦잠 자던 개구리
화들짝 놀라 눈을 뜬다
가늘게 실눈 뜬
아지랑이 속삭이면
눈망울 또로록
겨우내 꽁꽁 싸매고 움츠렸던
원성천이 기지개를 켠다
인고의 시간
수줍은 몸짓으로
속살 붉게 물들이면
집 나간 청춘 돌아올까
목 길게 빼고 원성천을 걷는다
32. 매일 마주하는 원성천변
품앗이 / 이선영
아침 출근길
지나가는 원성천변을 바라본다
나무들이 양쪽으로 서로
마주하면 산책하는 사람을 반긴다
매일 사람들과 마주하면
소통하는 천변은
물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시민들에 발걸음을 쉬어가는
벤치는 항상 누구를 기다리는 듯
자리를 내어준다
오늘도 오고 가는 발걸음
천변 함께 삶의 발자취를 걷는다
33. 벚꽃의 노래
품앗이/ 이선영
한때의 정열이 천변의 낙화가 된다
피고 지는 윤회의 틀에 앉아
벚나무는 무엇을 직조하고 있을까
사랑이 피고
사랑이 져가는 모습에서
이름 모를 슬픔은 연민의 흔적으로 남고
나락의 전설이 된 삶은
버킷리스트의 순위를 잃어버린다
행복이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지우지 않는 것이다
시절 인연의 소중함에
봄은 숙연하기만 하다
34. 상선약수(上善若水)
여미현
골골이 맺힌 차가운 한숨이
냇물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고향을 묻지 마라
생일도 묻지 마라
갈 곳은 정해져 있지만
정처는 없다
가다가 벼랑을 만나면 폭포가 되고
깨진 질그릇에 담겨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
누구와 살을 섞어도
금방 한 몸이 되고
비비고 섞이면서
정제되어 가는 일상
강을 이루고 바다가 되어
하늘의 구름이 되어 윤회를 배운다
갈증에 갈라지는 대지에
비를 뿌려 주며
때로는 눈빛 고운 눈송이가 되고
봄이 오면 천변의 꽃이 된다
내 이름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물(水)이다
물처럼 살아 내자
註/ 상선약수(上善若水) ;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 물은 최상의 선이다.
35. 진달래꽃
강석희
산길 걷노라니
나무 틈새로 은은히 드리운
수줍은 봄의 미소
첫사랑 소녀의 여린 떨림인 듯
발그스레 말없이
어린 마음에 심기운 그리움은
풋풋한 여운 남기어
인생길 걷노라니
나무 틈새로 잔잔히 설레는
아련한 봄의 속삭임
36. 벚꽃 생일
聖泉/ 김성수
사람과 사람 사이
어제도
오늘도
생일 축하 시를 쓰는 시인
겨울이 꼬리를 거둔 원성천
물살을 희살 짓는 태양이 빛난다
한 계절을 피고 지는 꽃
벚꽃 생일 축하 속에
봄날은 간다
37. 서각을 새기면서
윤창기
나무 위에 새긴 글씨
조각도를 대고 망치로 때린다
둔탁하게 도려내고
예리하게 새길 때
양각과 음각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
삶의 고단한 여정을 따라
칠 부 능선에 서서 저녁노을을 본다
내 인생 굽이굽이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었지
음각이 있어 양각이 빛날 수 있듯
산골짜기 높낮이가 연출하는 나의 인생
서각을 새기는 일은
내 인생을 조탁하는 위대한 일이다
38. 시인의 꿈
김종천
철없던 시절 요람을 떠나
망망대해를 유영하며 청춘을 보내고
마천루에 앉아 전성기를 누렸다
늦깎이 시인이 되어
시제를 끌어안고 밤을 지새우다
태양이 노크하는 창문 소리에 까무러친다
요람을 향한 회귀의 몸짓
강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고 혼절하는 연어의 꿈
군산에 가서
자음과 모음의 편린 모아
별을 노래하고 빛나는 시를 쓰리라
39. 사랑의 밀어
동천 / 김선희
하고 싶은 말
가슴속에 감추어 두고
캄캄한 하늘을 헤집고
우두망찰 별 하나 찾는다
그대의 빛
그대의 향기
닿을 수 없는 그대와 나
봄을 데리고 온 바람의 손길
감추었던 사랑의 밀어
벚나무 가지마다 꽃등으로 빛난다
40. 포화가 피워낸 붉은 장미[중편] - 끝부분-
소설가 / 노인기
상흔의 흔적들이 가득한 느티나무에 바람이 분다.
노파의 구부러진 발걸음처럼 힘겨워 보였다.
떼가 반쯤 떨어져 나간 어느 초라한 무덤 앞에
파란 눈의 노신사가 묵념하듯 서 있다.
나이는 많이 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어딘가 고매한 기품이 풍겨 나왔다.
신사는 누구와 얘기하듯 제법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의 마음속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그 이름!
그가 잠든 무덤 앞에서도 끝내 소리 내어 불러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신사가 다녀간 이름 없는 무덤 앞에
지금까지 한 번도 놓인 적이 없는 붉은 장미꽃이 놓여있었다.
41. 우크라이나의 봄 [단편소설] -중 일부-
소설가 / 노인기
오늘도 그는 격전지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짧은 머리와 수염을 그대로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티브이 앞에 섰다.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놓인 시민들을 독려하고
세계를 향해 도움의 손길도 잊지 않았다.
강력하고 신속한 무기들을 지원해 줄 것과
난리 통에 어디서 식량과 의료 물품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원과 물질의 도움을 강력하게 촉구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 대신 총성이,
아카시아 향긋한 꽃 냄새 대신 자욱한 화약 연기만이 온산을 진동했다.
우크라는 봄을 잊은 지 오래다.
42. 박사 보다 밥사
나정집
아버지가 실종된 가정
운동장이 기우뚱 흔들리는 학교
사람이 사람이기를 거절한 현실
두 다리 뻗고 앉아 통곡한다
실종된 효를 찾아서
잃어버린 인성을 찾아서
산 넘고 물을 건너는 나그네
사람과 사람 사이
텅 빈 가슴
멍 든 생각
웃음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사람들아!
박사 보다 밥사가 되어라
날마다
좋은 글을 퍼 나르며
세상을 정화하는 행복전도사
43. 취암산 불꽃 일출
해솔 안창옥
대지를 밝히는 瑞氣
천안 취암산 정상을 뚫고
불이 해가 되어 떠오른다
용트림 하는 청룡의 기상이다
독립기념관의 精氣와
천하대안의 염원을 담아
동방의 찬란한 등불이 된다
세계에 웅비하는
대한민국을 밝힌다
일출의 영롱한 광채
불꽃같이 영접의 새날을 밝히시라
44. 무아(無我)
흥산 / 최응열
누가 나를 찾다가
잃어버린 길!
길 위에 울고 있는
가을 뱁새의 눈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여 사랑을 잃어버린 멍
내가 내가 아닌 또 하나의 나!
찾자!! 존재의 의미를 향한 기도
45. 곡우[穀雨] 날
흥산 / 최응열
초췌한 겨울의 고뇌가
빗물에 떠밀려가고
얼굴을 내미는
푸른빛에 잠긴 하루가
살아온 날의
책갈피 속에서 웃고 있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풍년을 약속하고
어디에 간들
이만한 삶이 있으랴!
오늘은 먹물을 듬뿍 묻혀
휘호[揮毫] 하나 써보리라!
이름하여 안빈낙도[安貧樂道]
46. 열애
금정 / 이상신
손주를 안고
그와 하루를 보낸다
한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함께 갔다 온 후
그녀는 말문이 열렸다
외디푸스의 콤플렉스에 감염된 네 살짜리 여자
그녀는 80살이 가까워지는 할아버지와 열애를 한다
축사를 하고 진행을 돕는 할아버지 모습에 취하여
수저마이크를 입에 대고 MC가 되어 할아버지 흉내를 낸다
뭐 하는 거야?
할머니! 그 할아버지 멋있다.
그녀의 버진은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더 자라면 저 녀석은 무엇이 될까?
47. 비 오는 날의 커피 향
운산 / 최의상
커피 향이
계곡의 빗줄을 튕기며
앞산 비구름 벗 삼아
하늘로 젖어든다
가을비 타고 온
향기로운 빗방울
댓돌을 퉁기는 장중함이
땅으로 젖어든다
커피 향은 바로 내 영혼처럼 저 앞산을 치달아
하늘로 젖어들고
잠시 후 그 향은 빗방울로 내게 가까이 와
소리로 되어 땅으로 젖어든다
영원한 향기의 순환
48. 사랑은
홍승숙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고
침묵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지겨울까 봐
떠나는 사람
붙잡지 못하고 보내고 말았습니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고 하기에
날개옷을 감추지 못하고
배웅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날개를 꺾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에
사랑은
그렇게 침묵하다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홀연히 떠나보낸 파랑새였습니다
49. 효는 인격이다
황토 / 임창철
공양미 삼 백석과 바꾼
소녀의 꿈이 퇴색되고
21세기 AI가
아비의 고민을 듣고
어미의 건강을 지킨다
MZ세대들아
孝는 사랑이다
孝는 인격이다
온 누리 피어서
향기로 채우는 꽃처럼
어둠 속에서도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별처럼
태초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
혈맥을 타고 흐르는 DNA
효는
향기로운 사랑
빛나는 인격이다
50. 봄의 향연
장규순
해가 중천인
아주 밝은 대낮
꿀벌 녀석들이
대담하게도 매화 짧은 치마 속으로
유유히 날아들어 가는구나.
그만 깜짝 놀란 야생화꽃들은
골짝을 쩡쩡이게 소리를 지르고
가뜩이나 눈이 큰 개구리 눈
호 동그라니 해지거늘
오호라!
부끄럼쟁이 사슴마저
봄바람과 정분나버리는구나.
긴 겨울 동안
굴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오소리는
굴 밖으로 나와 가슴을 쫙쫙 펴고
종달새 노랫소리가
마치 신호처럼 들려오더니
하늘이 자신의 파란 강을
대지에 살짝 엎누나.
【편집후기】
[축제의 노래] 편집을 하면서
-원성천 물길축제에 부치는 시인의 노래-
편집국장 / 김인희
계절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시인도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나목의 가지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하늘은 비를 내려 주었고
대지는 온 존재를 열어서 생명을 해산하고 있습니다.
덕향문학의 문우님들!
원성천 변 벚나무 가지도 해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름이 휘장을 두르고
뭇별들이 숨죽이며 지켜볼 벚꽃의 출산!
하늘과 땅의 거룩한 연합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원성 1동 주민자치위원회 이기성 회장님!
원성 2동 바르게살기협의회 윤창기 회장님!
벚꽃이 만개하는 원성천에 시향(詩香)을 피우셨습니다.
시집 [축제의 노래]에 두 분의 이름을 새기면서
원성동과 천안시에서 찬연하게 빛나는 이름이 되기를 빕니다.
원성동 주민 여러분, 천안시민 여러분!
사물인터넷 시대, 챗 GPT AI가 글을 쓰고 시평을 쓴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일은 AI가 넘보지 못할 우리의 고유영역으로 사수해야 합니다.
덕향문학에서 그 고유영역을 고수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024년 03월 편집국장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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