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셈법
가난한 이들이 꾸려가는 생활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방송물이 있다. 한국방송공사에서 목요일 밤에 내보내는 ‘동행’이라는 현장물이다. 50분짜리다. ‘대한민국 하위 1%의 삶과 현실에 밀착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 역시 더불어 살아야 할 동반자라는 것을 시청자들과 공감코자 한다.’고 방송을 만든 이가 뜻을 밝혔듯,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지지리도 못사는 이들만 용케 찾아내 매주 내보낸다. 2007년 11월 8일부터 지금까지 127회나 방송했다. 하나같이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아슬아슬한 사연인지라 보고 있으면 가슴 답답하고 슬프다. 지난 3월 4일 내가 본 것은 그 가운데 하나로, 제목이 ‘한 가지 소원’이었다.
현재 아동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12살 ‘승원이’와 11살 ‘가영이’ 남매는 소원이 오직 하나다.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피해 엄마가 집을 나간 사이 아빠가 아이들을 보호시설에 맡겨놓고 사라졌다. 뒤늦게 찾아온 엄마는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을 보호시설에 맡겨두고 가까운 곳에 일터를 잡았다. 아이들과 함께 살 방을 하루바삐 얻으려 엄마는 상점 계산대에서 하루 종일 일한다. 벌써 3년째다.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에 심각한 병이 생겼지만 치료비가 아까워 병원 진료 대신 파스로 버틴다. 쉬는 날 없이 노력하여 300여만 원을 모았는데 그 돈으로는 산꼭대기로 갈 수밖에 없다 한다. 게다가 아빠가 체납한 의료보험비 170만 원 때문에 엄마가 통장을 압류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은 엄마와 같이 잔다. 엄마가 기거하는 고시원 쪽방에서 셋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꽃도 피운다. 고시원 주인이 꼭 들른다. 옆방에 피해주지 않도록 조용히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들과 엄마는 행복하다. 엄마는 아이들을 결코 버릴 수 없기에 오늘도 계산대 앞에 선다. 언젠가 엄마가 자기들을 꼭 데려간다 생각하며 아이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런 내용이다.
우리 시대에 ‘결식아동’이라는 시사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풀면 ‘밥을 굶는 아이’일 텐데, 당장 굶어 죽지는 않더라도 주위에서 돕지 않으면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아이를 가리킨다. 이런 아동이 2009년 겨울 방학을 기준으로 47만 6,444명이다. 정보화 사회요, 월드컵을 주관했고,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올림픽을 주름 잡는 나라에서 밥을 굶는 아이가 50만 명을 헤아린다는 것이다. 이 숫자를 보면, 승원이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대한민국 ‘하위 1%’가 떠안은 특별한 경우로 여기는 것은 자칫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47만 6,444’는 2009년 여름방학 때 급식지원을 받던 결식아동 ‘54만 5,836명’에서 ‘6만 9,392명’이 줄어든 숫자다. 사는 형편이 나아져서 그만큼 급식대상이 준 것이 아니라, 급식 지원 대상을 뽑는 기준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란다. 어떤 잣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으되, 나라에서 어려운 아동들에게 베풀던 선심과 혜택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 틀림없으며, 결국 돈이 부족하여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사연들을 듣고 보고 할 때마다 몇몇 권력자와 일부 기업인이 저지르는 갖가지 부정부패가 머릿속에서 고개를 든다. 범죄자들이 정의를 해쳤느니, 공동체가 무엇이며 민주가 어떠니 하는 따위는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요 입에 올려봐야 목만 아프다. 다만, 아무개가 얼마 해 처먹었느냐 하는 액면가는 늘 흥미로우면서 속이 거슬린다.
이번에 한 현직군수가 공천을 따려고 2억 원을 가지고 애 좀 쓰다가 걸려들었다. 역시 현직 군수인 당진 군수는 비리 대가로 3억 원짜리 별장을 뇌물로 받고 비자금 10억을 매만지다가 발각되었는데 해외로 도피하려고 공항에서 설치고 한밤에 고속도로 위에서 추격전을 벌이다 결국 붙잡혔다. 그 자는 부패공직자가 보여줄 수 있는 반역을 블랙 코미디로 승화·연출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은 금액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잔챙이요 올챙이요 쫀쫀하다 못해 불쌍하여 동정이 갈 지경이다. 고거 해먹다 구치소로 떨어지다니… 재수에 옴 붙은 인사들이다. ‘보람상조’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상조회사 회장 부부가 100여억 원을 삼키다가 걸렸다. 아직 소박하지만 조금 감이 온다. ‘러시앤캐시’라는 대부업체 사장은 300억을 횡령하다 걸렸다. 이제 제법 쏠쏠하니 자극이 좀 온다.
그러나 이 자들 역시 어엿하게 대한민국 상위계층(?)이라 자타가 공인할 수준은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란 자는 2000년부터 6년간 계열사를 통해 약 1,034억 원 비자금을 조성하고 약 9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빠져나갔다. 두산그룹 일가는 회사 돈 수 백 억을 비자금으로 꼬불치고 320여 억을 횡령하면서 2800억 원을 분식회계했다. 그 가운데 800억 원대 외화를 해외로 빼돌린 전 두산회장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내가 좀 먹었지.’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톱클래스’ 가운데 역시 최고봉은 삼성이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인가로 봉직하며 이건희에게 충성을 바치던 김용철이 피리를 부는 통에 가까스로 드러났는데, 삼성이 벌여온 비리는 앞엣것들하고는 차원도 규모도 개념도 다르다.
삼성은 전현직 임원들이 소유한 계좌를 조작해 비자금을 관리해 왔고, 그 개수가 1천여 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안에 수 천 억에서 많게는 수 조 원이 잠겨 있었으리라 추정한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 삼성이 무기명 채권을 이용해 수백억 원을 관리하다 발각되었을 때도 그러했듯이, 이 사건도 유야무야로 끝나는 바람에 그 실 금액은 결국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작 소름 돋는 실체는 이들이 벌인 꼴값이다.
삼성은 이 비자금을 적절히 주물러가며 판사, 검사, 국회의원, 경찰, 언론인 따위 권력 기관 일체를 오랜 기간 관리해왔다. 검은 돈 몇 푼을 챙긴 정도가 아니라 나라 전체를 돈에 버무려 반죽해왔다는 것이다. 이러니 단연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며 최고로 알아 모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삼성 주인인 이건희는 이번에 세계에서 100위 부자로 뽑혔다. 가진 돈이 약 8조 7천억 원이란다.
이상 열거한 올챙이와 두꺼비들이 삼킨 돈만 일단 셈해보자면, 삼성 두꺼비가 삼킨 돈을 깎고 깎아 3천억 정도로 하여… 3,535억 원이라 해보자. 2009년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오면서 아이들이 중식 혜택에서 제외된 것은 국가 재정이 어려워서 그랬겠지만, 내 나름대로 대충 계산기를 다루어 보았다.
아이들 점심값을 하루 5천원으로 하고 방학기간을 90일로 잡아 거기에 7만 명을 곱했다. 약 300억 원이 답으로 나왔다. 큰 돈이다. 300억 원이 없어서 또는 아쉬워서 7만 명 아이들이 복지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승원이네가 함께 살 방을 얻는 데 드는 돈은 5백만 원이다. ‘3535억 원 대 315억 5백만 원’이다. 사회반역자들이 갖은 수법을 써서 어둠 속에 처박은 돈이 대략 3,535억 원인 반면, 오천 원이 없어 아이들이 점심을 거르고 오백만 원이 없이 가족이 생이별을 한다.
'어느 날 새벽을 기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국회를 해산하고 군대와 경찰을 완전 장악한다. 주도면밀한 작전에 따라 올챙이와 개구리 그리고 두꺼비를 모조리 포획한다. 세상이 민주사회로 되면서 없어진 옛 고문실을 잠시 다시 연다.
그러나 탈법과 비양심을 일삼던 족속들이다. 과거 독재자들이 애용했던 칠성판은 관두고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따위 모진 수단도 필요치 않을 듯하다. 목숨 버려 지켜야 할 신념이 있을 리 없고 남을 생각해 고통을 감내한다는 속성도 명분도 원래 눈물방울만큼도 없는 종이니 그저 몽둥이로 야무지게 몇 대만 두들기면, 어디에 얼마를 숨기고 누구와 어떻게 짜고 빼돌렸는지 따위를 곧바로 좔좔 쏟아놓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되찾은 돈으로 아이에게 점심은 물론 하루 세끼를 온전히 먹이고, 집 없고 방 없는 서민들에게 차차로 집과 방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약을 아무리 쳐도 해충은 늘 끓는 법, 고문실을 계속 열어만 놓으면 재원(財源)은 샘솟듯 하리라. 정의 어린 깃발이 나부끼고 서릿발 같은 몽둥이가 살아있는 한 삼성 같은 거대 집단도 끝내 맥을 못 추리라. 두꺼비는 물론 올챙이도 발바닥 아래에서 씨를 말리고 말리라.'
…고 하면 의적 홍길동과 한 가지일 테지만 이 또한 불법이요, 법 이전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니 그저 한갓 꿈이라 해두자.
만 원 짜리 한 장이 없어 바들거리는 사람들을 염려하기보다, 바른 세상을 불러오려고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던진 사람들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모든 이가 잘사는 세상을 열려고, 나라 전체를 자기 것인 양 권력과 금력을 발판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누릴 소박한 행복을 거머리가 피 빨 듯 하는 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그래서 상식과 원칙이 제 빛을 띠고 최소 정의가 바로 서는 모습을 보려고 스스로 배를 찌르거나 몸에 불을 붙이고 때로 경찰에게 맞아 죽어가며 역사가 흐르는 길목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바라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군부독재자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총칼이 어느 정도 꺾여 세상이 변하긴 변했으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그들과 배를 맞추는 기업가들을 보고 있자면 징그러우면서 생명이 질기기로 정평이 난 파충류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상은 아직 참되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공평하게 세금을 거둬 필요한 이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국가가 본질로 고유하게 지닌 의무와 기능이 툭하면 허물어지는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고양이가 관리하는 한판 어시장 같다. 고문기술자 운운이 되지도 않은 소리라면, 이번에는 독립군이 되어 뱀 혓바닥을 자르고 두꺼비 죽통을 부수면 어떨까. 이도 현실성이 없기는 앞에 늘어놓은 상상놀이와 마찬가지다. 어린이나 함직한 생각이다.
고백한다. 나는 모른다. 이 고질(痼疾)을 풀어낼 길을. 썩은 채 잘도 흘러가는 역사를 바로 잡을 길을 누가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