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는 순간 /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거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 한 것 ,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 ...... 그 모든게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다른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개이고, 멧새는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맷세이고, 아카시아 흰 꽃은 여러 날 찬밥을 푹 쪄서 흰 천에
쏟아놓은 아카시아 흰 꽃이고...... 그 모든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베러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이상하지, 오늘은 어머니가 이것들을 다 버무려서
서당골에서 내려오면서 개도 멧새도 아카시아 흰 꽃도 호미도 마당에 선 나도 한사발에 넣고 다 버무려서, 그 모든 시간들도 한꺼번에 다 버무려서
어머니가 옆구리에 산미나리를 쪄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세상이 다 어두워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