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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꼬리는 몇 개일까 (콩트)
김인희
태양이 화사한 빛으로 다가와 소리 없이 노크했다. 그녀는 어젯밤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면서 커튼을 꼼꼼하게 매만졌다. 창문과 커튼 사이 간격으로 아침 햇빛이 비치면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늦잠을 자고 싶어도 일단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 때까지 뒤척이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기 위한 몸짓으로 곤욕을 치르곤 했었다. 간밤에 그녀는 휴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호사를 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새색시가 옷깃을 여미듯 창과 커튼 사이 공간을 빈틈없이 꼼꼼하게 갈무리하고 잠이 들었다.
그녀의 야무진 꿈은 수포가 되었고 침대에 누운 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침대 바로 옆 커다란 창문에 드리운 커튼은 햇빛을 여과하여 잔잔하게 투영시키고 있었다. 커튼 양쪽 두 벌은 두꺼운 진분홍색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에 있는 두 벌은 레이스 천으로 된 상아색이었다. 커튼을 중앙에서 양쪽으로 밀면 상아색 레이스와 진분홍색 두꺼운 천이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는 두 가지 색깔이 자아내는 분위가 제법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다. 커튼을 볼 때마다 침실 분위기를 커튼이 좌우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녀는 느리게-아직 잠이 달아나지 않아 비몽사몽 중이었다- 눈을 돌려 맞은편 벽으로 시선을 던졌다. 천정까지 닿는 커다란 책장이 두 개 나란히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 똑같은 모양으로 된 책장은 사이좋은 쌍둥이라는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을 보고 푸~ 실소를 뱉었다.
커튼 사이로 직진하는 햇빛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이 영화가 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그녀의 자녀가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IMF 위기가 닥쳤고 남편의 월급이 줄었다. 그녀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거금을 들여 책을 사들였을 때가 IMF와 맞물렸다.
두 자녀가 말을 배우면서 동화책을 읽어주면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고 자녀들은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우선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교육적인 혜택을 주겠다고 결심하고 배포 좋게 거금을 주고 책을 샀다. 남편의 불호령이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시기마다 시시때때로 책을 샀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네 가족이 옹기종기 지내면서 한 방을 책으로 채우고 책을 읽으면서 자녀들과 보냈던 달콤한 시간은 천금을 준다 한들 바꾸고 싶지 않은 역사였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대학교에 진학하여 집을 떠나 독립하였다. 그녀가 지인들에게 책을 나누어주려고 했을 때 딸이 따로 챙겨서 꽂아둔 책이 지금 그녀를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에 탑승하게 하였다. 딸은 책더미에서 보물을 건져내듯 이런 추억이 있는 책이라서 줄 수 없다. 저런 사연이 깃든 책이라서 간직하겠다. 딸이 책마다 이유를 붙여가며 간택하여 꽂아두었던 책이었다.
그녀는 두 자녀를 양육할 때 계획표를 짜서 벽에 붙여두고 그대로 지켰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 되면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커다란 대접을 엎어서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24개의 점을 찍었다. 24개의 점은 하루 24시간이 되었다. 원의 중심점과 원의 둘레에 있는 점을 대나무 자로 연결하였다. 잠자는 시간은 가장 큰 부채꼴이었고 세 끼 식사 시간도 빠짐없이 표기했다. 방학 숙제하기, TV 시청하기, 일기 쓰기 등 할 일을 차곡차곡 써넣고 부채꼴마다 각각 다른 색깔로 칠했다. 가장 큰 부채꼴 잠자는 시간에는 허리가 잘록한 달을 그리고 그 언저리에는 별을 그렸다. 책상 옆에 붙여두고 계획표대로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그야말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었다.
그녀는 학생 때와 달리 계획표에 적힌 대로 오전에 동화책 읽어주고 집안일 하면서 자녀들과 놀아주었다. 오후에는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낮잠을 재우고 잠에서 깨면 산책했다. 집 근처에 국립부여박물관, 궁남지, 정림사지가 있었기 때문에 어린 자녀들의 산책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첫째는 걸리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워서 궁남지까지 걸어가는 동안 만나는 것이 모두 이야깃거리였고 교육 소재였다.
강아지풀이 길섶에 있으면 자녀들 손등을 강아지풀에 대고 간질이면서 감촉을 느끼게 했다. 어린 자녀들이 그 산책로에서 통통하게 익은 콩꼬투리를 만지면서 알이 들어있나 보라고 했을 때 상상력이 확장하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둘째 자녀도 성장하여 유모차가 필요 없게 되었을 때 주변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간판을 읽기 시작했다. 자녀들은 말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읽었다. 그때 어린이를 겨냥한 한글 배우기 학습지와 책이 범람할 때였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거액으로 책을 사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던 그녀는 한글 배우는 학습지 앞에서는 도리질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자녀들의 한글은 동화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활자로 된 틀에 박힌 몇 개의 단어를 초월하여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상상력을 팽창시키고 한글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녀의 선택은 탁월했다. 자녀들은 걸음마를 배우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한글을 줄줄 읽기 시작했다. 간판에 있는 상호는 물론 아파트에 주차한 자동차의 이름을 올망졸망한 고사리손으로 짚어가면서 읽었다. 자동차 이름이 대부분 지금처럼 영어로 되어 있었다. 자녀들이 영어 알파벳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SONATA 차 뒤에 서서 에스, 오, 엔, 에이, 티, 에이 하고 큰 소리로 읽으면 물개박수를 치면서 폭풍 칭찬을 했었다. 당시 자녀들의 한글 교과서는 도처에 있었다.
그 무렵 남편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던 식당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둘째 아들이 식당 벽에 있는 커다란 메뉴판을 줄줄 읽었다. 지인들의 자녀들이 우리 아이들과 비슷하여 한두 살 많거나 적었기 때문에 고만고만한 또래였다. 아들이 또박또박하게 글을 읽었을 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구동성으로 신동이다, 천재다, 영재라는 말이 오갈 때 남편의 얼굴빛이 어둡게 변했다.
그날 식당에서 돌아와서 남편이 화난 목소리로 밖에서 자녀들이 글씨를 읽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가족들이 불쾌할 수 있지 않겠냐면서 우리 자녀들이 유별나게 보이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 쓰자고 했을 때 그녀도 동의했다. 그날부터 자녀들이 글을 읽는 것 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동화책 ‘의좋은 형제’를 의도적으로 자주 읽어주면서 사이좋은 남매가 되라고 했다.
우리 속담에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고 깨우쳐 주는 점이 많았다. 자녀들과 속담 카드를 가지고 재미있게 노는 것이 학습이었고 그녀의 의도대로 자녀들에게 지혜가 스며들었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외가 논에서 벼가 익어갈 때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할아버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요? 사람이 많이 배우고 많이 알면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지요?”라고 해서 외할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첫째가 다섯 살 되던 해 둘째는 세 살이 되었다. 그녀는 공부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두 자녀를 안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원서를 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지만 24년 전 그녀가 공부할 때는 TV 방송 채널을 통해 공부했기 때문에 방송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달력에 적어두고 공부했다. 몇 과목은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공부했다.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과목은 수없이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두 자녀를 양쪽에 끼고 TV 방송으로 공부하는 과목은 놓치는 부분이 많아서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녹화하면서 공부했다. 가정사와 자녀들의 양육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그녀의 공부 시간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그녀의 의욕과는 달리 강의를 들을 때 분명 이해했는데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려서 실망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교재를 펴놓고 방송을 들으면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 그녀를 보고 자녀들도 동화책에 밑줄을 그었다. 여름에는 아파트에 있는 평상에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떨었고 어떤 날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그녀는 작은 책상에 박제된 채 영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몇 번씩 반복해서 듣고 읽어도 영어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이방인이었다.
학기마다 기말고사 시험을 보러 대전으로 갔다. 다행히 시험을 보는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아빠가 동행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부여에서 출발하여 그녀는 시험장으로 가고 저녁이 되어 땅거미가 운동장에 가득 내려올 때까지 아빠와 아이들은 따로 시간을 보냈다. 어두컴컴한 시간에 부여로 오는 자동차 안에는 과락을 염려하는 엄마의 한숨 소리와 얼굴과 손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자녀들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잔잔한 선율이 되었다가 육중한 선율이 되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마지막 기말고사를 본 날은 가족 모두 식당에서 고기를 먹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자녀들은 그때 먹었던 꽃등심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 말하고 있다.
그녀가 공부를 마쳤을 때 전업주부로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던 꿈이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작은 아파트에서 학교 근처에 있는 이층집으로 이사했다. 일 층에서 살림하고 이층에는 교육청 인가를 받아 공부방을 차린 후 학생들 학습지도를 하게 되었다. 주부 그녀가 선생님이 되었다.
아침에 자녀들이 등교하고 나면 오전에 집안일을 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저녁 식사 준비도 오전에 했다. 우렁각시가 되어 오전에 집안일을 끝내고 초등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가 되면 교사로 변신했다. 학생들이 공부방에 와서 수업하는 시간에는 일층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그녀의 자녀들은 이층 공부방 출입을 철저하게 금했다. 자녀들이 준비물을 사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용건을 쓴 쪽지를 내밀었다. 그녀가 수업 시간에 살림하는 공간에 내려가지 않았던 것과 학생과 자녀들을 함께 공부시키지 않은 건 그녀의 철학이었다. 그녀가 지독하리만치 스스로 가책을 멈추지 않은 것은 전문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더러 항변할 때가 있다. 자녀들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딸을 피아노학원에서 가장 피아노로 가르쳤다고 했다. 두 자녀가 언성을 높이면서 공부방에 얼씬 못하게 했던 그녀에게 지난날 서운했었다고 했을 때 그녀가 말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귀한 줄 안다는 말이 있듯이 공부방에 자녀들을 옆에 두고 다른 학생들을 지도할 때 남들 눈에는 고슴도치가 제 자식 싸고도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겠는가. 참외밭에서 신발 바꿔 신지 않는다고 했고, 배밭에서 갓끈을 다시 매지 않는다는 말을 있다고 했을 때 자녀들은 두손 두발 모두 들었다.
그녀는 공부방에서 학생들 학습지도를 하면서 하나의 꿈을 이룬 보람으로 행복한 날을 보냈다. 그녀의 학습지도는 학생의 성적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기에 자칫 학생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태산 같은 염려를 하면서 삼가 조심했다.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학습지도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문제집을 덮고 독서하는 날로 정했다.
공부방에서 독서에 방점을 찍게 된 계기는 학교 시험성적 위주로 문제집을 풀면서 한계를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수학에 논술을 접목한 서술형 문제를 풀 때 학생들의 어휘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서술형 문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해서 간단한 사칙연산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학생들 개개인에게 서술형 문제를 한 줄씩 읽으면서 이해하게 도와주었을 때 막힘없이 계산하는 것을 보고 독서하는 날을 정했다.
독서의 효과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우선 학생들이 문제집을 덮어버리고 책을 읽는 것을 휴식처럼 좋아했고 학부모들도 양손 들고 찬성했다. 그때 쓰나미급 독서의 효과로 주말 독서논술 수업을 개설했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시절이었다. 독서에 대한 위력은 그녀에게는 운명과 다름없었다. 스무 살부터 일찍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고 싶었던 갈망을 독서에 쏟아부었던 그녀였다. 그녀가 주부가 된 후 늦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독서에서 나왔다는 것을 전율하리만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서논술 수업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이거나 운동회가 있는 날은 으레 학원도 쉬는 날이었다. 물론 학생 못지않게 학원 교사도 휴가나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런 날에도 학생들은 쉬지 않고 공부방에 왔다. 공부방 양쪽 벽면에 책꽂이 가득 꽂혀있는 책이 학생들을 유혹했고 학부모들도 놀아도 공부방에 가서 놀면 안심하게 되었다. 하여 그녀는 다른 학원에서 누리는 휴가라는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애당초 누군가 그녀에게 쉬는 호사를 누릴 것인가 학생들하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 양자택일하라고 했더라면 그녀는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녀는 학생들과 아웅다웅 좌충우돌 티격태격 지내면서 대학원 과정 공부를 시작했다. 오전에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밤에는 인접한 논산시 건양대학교 대학원에 가서 사회복지 석사과정 공부를 했다. 그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일을 천칭 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한 수평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문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문학공간》에서 수필가 등단, 대전 《문학사랑》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녀에게 문학은 불가분이었다. 어떤 이유를 들이대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과도 다름없었다. 그녀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글을 썼다. 시(詩)가 무엇인지 모를 때부터 클로버 군락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듯 시제를 찾았으며 시답잖은 시일망정 썼다. 그때 싹튼 문학의 유전자는 꽃다운 스무 살 시절 독서에 심취하면서 왕성하게 성장했으리라. 이를테면 그녀가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나. 그녀의 변화무쌍한 변신의 서막이 문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녀는 안주하지 않으려고 재주 없는 굼벵이가 되어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등단 후 글쓰기에 박차를 가했다. 생활 속에서 시제가 될 만한 사연이 생기면 놓치지 않고 낚아채어 시를 썼고 수필을 썼다. 여행 중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시제나 표현이 있을 때는 따로 메모했다가 쓰기도 했다. 작가는 글로 대변한다고 되뇌면서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고단한 작업을 콧노래 부르면서 하고 있다.
언어는 인격이다. 그녀가 좌표로 삼은 경구였다. 시인은 삼라만상의 미묘한 움직임에도 귀를 기울이고 작은 변화를 알아채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여야 한다고 그녀는 말하곤 했다. 소위 문학 한다는 사람들의 참담한 언행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할 때마다 버릇처럼 뱉은 말이 언어는 인격이라는 말이었다.
그녀가 만나는 문학인 중 글 따로 말 따로 사는 이가 더러 있었다. 그녀는 처음 문학에 귀의할 때 가졌던 초심을 굳건하게 지켜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다. 이래저래 아연실색할 일이 많았지만 그럴수록 힘찬 강물을 역행하는 연어처럼 착하고 따뜻한 글을 쓰겠다던 다짐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운명처럼 목숨처럼 고수할 명분으로 더 깊게 자리하게 되었다.
무엇하나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였다. 글이면 글, 재능이면 재능 주목받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거푸집 같은 고치 안에 갇힌 애벌레가 되어 학생들 학습지도를 하고 글을 쓰고 공부를 계속했다. 어느 순간 학생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과도기에 놓였다.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의 결과로 학교마다 전교생 수가 반토막이 되었고 자연히 공부방에 오는 학생들도 반으로 줄었다. 그녀는 변신을 꿈꾸며 사회복지사 공부하기를 잘했다고 자위했다. 그녀가 공부방을 정리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었을 때 자녀들은 대학교에 진학하여 집을 떠났다. 드디어 그녀도 고치 안에서 밖으로 나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일했다. 수급자 어르신들 만나 상담하고 서류를 작성하여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는 업무, 요양보호사가 수급자 어르신 댁에서 일하는 시간에 방문하고 상담하는 업무 등 놓치면 안 되는 일이 많았다. 주간보호센터에서도 근무했었다. 수급자 어르신 댁으로 찾아가는 재가복지센터와 반대로 수급자 어르신들을 센터로 모시고 와서 돌보는 곳이 주간보호센터였다. 어르신들을 댁에서 센터로 모시고 오고, 끝나면 센터에서 댁으로 모셔다드리는 차량 업무도 막중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도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시낭송을 배우고 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고 정식으로 시 낭송가가 되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외우는 것을 좋아했다. 국어 시간에 배운 시를 외우는 수행평가가 아니더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 나온 시를 줄줄 외우는 것을 즐겼던 그녀였다. 더러 일부러 긴 시를 외우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에게 시낭송가는 반짝이는 날개를 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지역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 무대에 올라 배경음악에 시를 실어 감동을 선사했다.
학생들 학습지도를 할 때부터 강사가 되고 싶은 꿈을 꾸고 강의에 관한 책을 사서 독학했다. 공부방 한쪽 벽 구석에 당시 유명한 강사의 사진을 붙여두고 사진을 볼 때마다 좋은 강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강의하는 동영상을 보고 책의 내용을 녹취하면서 노력했다. 그런 그녀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충남신문에서 시민기자 양성 과정 프로그램에 강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두 시간의 강의를 위해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강의 PPT를 만들고 두 달 동안 날마다 연습했다.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의 갈채를 받았고 강사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녀가 B문학회 사무국장을 맡아 일하는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C문학회 사무국장, D문학회 편집국장, H문학회 사무국장으로도 일하게 되었다. 그녀가 단체에서 중책을 떠안게 된 데는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성품과 미련하리만치 신실한 책임감이 한몫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지독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직무를 수행했다. 문학회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온 힘을 기울였고 얽히고설키는 일이 없도록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가뭄에 콩나듯 동시에 처리할 일이 있을 때는 거실에 있는 컴퓨터와 책상에 있는 노트북으로 뚝딱 처리하는 능력자가 되었다.
그녀가 B문학회 사무국장이었기에 한국문인협회 전국대표자대회행사 때 식전 행사 사회를 맡았던 것도 행운이었다. 출연진 두 팀을 소개하는 간단한 사회를 보는 자리였다. 그녀는 행사의 격을 지키려는 충심으로 사회 시나리오를 작성했고 여러 번 읽으면서 연습했다. 행사가 있던 날에 넓은 홀에 가득 찬 전국에서 온 문학인들 앞에서 의연하게 진행했다. 부여 출신인 문학회 이사장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회를 잘 봤다고 추켜세운 바람에 C문학회 사무국장으로 발탁되었다.
C문학회 규모가 큰 단체였다. 따라서 사무국장의 역할이 중대했으며 일이 많았다. 2023년부터 시스템을 통하여 사업 신청은 물론 집행과 정산을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직장에서 업무를 대부분 컴퓨터로 보고 있었다지만 돈과 관련된 문학 행사 정산은 한 치 오차 없이 정확해야 했고 여러 절차에 걸쳐 진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손에 땀이 났다. 행사마다 정산을 마친 서류는 두툼한 책의 분량이었다. 연말에 관계기관에 정산 보고를 했어도 끝이 아니었다. 해가 바뀌더라도 새로운 담당자로부터 질문을 받고 더러 실적자료 보완 요청에 응대해야 했다. 그렇게 숨이 차게 오르고 또 올랐다.
그녀가 문학인으로 깊어지고 강사로 넓어지고 시낭송가로 클 수 있었던 비결은 책임감으로 업무를 수행해 낸 데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 문학회 일과 강의 요청을 수락하는 저력은 무엇일까. 그녀의 최대 무기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열정적인 자세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이맛살 찌푸리지 않고 엉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내듯 흐르는 물처럼 인연을 엮어가는 것도 그녀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별과 별 사이 지혜를 포착하고 뜻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그녀만의 어떠함이었다. 어쩌다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닥쳐도 모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을 읊조리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던 그녀였다.
그녀의 가방이 무기라는 별명을 갖게 된 사연도 여러 단체에서 맡은 임무 때문이었다. 무시로 어디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단체 통장과 직인을 소지하고 다녔다. 가방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주머니로 가득 차 있다. 통장 주머니, 직인 주머니, USB가 들어 있는 주머니들이다. USB가 들어 있는 주머니 안에는 단체 이름을 적은 지퍼백마다 단체의 USB가 들어있다. 물론 그중에는 그녀의 개인적인 강의와 시낭송 배경음악이 들어 있는 USB도 있다. 아, 논문 쓸 때 자료를 저장한 USB도 있다.
그녀의 가방은 그녀에게 외장하드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누가 그녀의 가방을 감추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자료가 그 안에 있다. 언젠가 딸과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딸이 가방을 들어준다며 받아 들었다가 가방을 들었던 어깨가 푹 기우는 통에 폭소를 터뜨린 일이 있었다. 그 후로 그녀의 딸은 그녀의 가방은 그녀를 지키는 무기라고 했다. 누군가 덤비기라도 하면 한 번 휙 두르면 해머와 같은 위력을 발휘할 거라고 했다.
그녀가 정한 별에 이르는 최종경지는 박사과정이었다. 그녀는 지천명 중턱에 다다랐음에도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의 수레바퀴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굴렀다.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좌표를 따라가고 있었고 남편이 옆에서 든든하게 외조해 준 덕에 문학박사 과정에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질 수 있었다.
박사과정 수업은 늦은 만큼 절실했고 절실한 만큼 매우 뜨거웠다. 주말마다 자동차를 운전하여 금산으로 달렸다. 대학원을 오가는 동안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녀 혼자만의 공간에서 오매불망 원하는 공부 하러 가는 길은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꽃이 양탄자가 되어 꽃길을 연출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행복했다. 자동차를 운전하여 오가는 시간은 기도하는 거룩한 시간이었으며 시낭송을 연습하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넘치는 감사와 축복을 주체하지 못했다.
대학원에서 외국인 원생들을 만난 건 축복의 덤이었다. 한류열풍의 기류를 타고 동남아에서 한국어를 배우러 온 이국의 별들을 새로운 인연으로 단단하게 묶어 두었다. 베트남에서 중국에서 미얀마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국의 별들. 대부분 그들의 나라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하다가 한국어를 배우러 왔으며 학위를 받은 후 본국으로 가서 한국어 교수로 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 이국의 별들에게 그녀는 동경의 별이었다. 그녀가 대학원 행사 때 시낭송을 하고 과제를 발표하면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찍어서 전달해 주었다. 그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마음으로 강의 시간에 쓴 노트와 과제를 공유했다. 외국어 시험과 종합시험 공부를 같이했다. 참으로 꿈같이 흐른 시절인연이 따로 없었다.
그 이국의 별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 선생님이 운영하는 어학원에 한국어 교수로 초빙하여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베트남에 진출하고,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 오고 있는 작금이다. 그녀가 베트남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강의하게 된 건 물 만난 물고기와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박경리 <土地>에 나타난 한국어문화문법』이었다. 그녀는 논문이 최종 통과되고 학위를 받게 되었을 때 문학과 문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도교수님이 역설하는 한국어문화문법에 대한 연구로 지도교수님께 인정받고 싶었던 야무진 꿈도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폭풍 속을 헤쳐오는 동안에 그녀는 내면으로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밖으로는 잔잔한 평온을 유지했다. 그녀에게 지독하다는 수식어가 제격이었다.
그녀는 박경리의 『土地』 열여섯 권을 안고 뒹굴었다. 박경리란 별 앞에서 전율하고 그의 필력에 까무러쳤다. 등장인물들과 동고동락했으며 그들과 행보를 같이했다. 4만 여장이 넘는 분량, 600여 명이 등장하는 『土地』를 샅샅이 뒤지면서 한국어문화문법을 찾았다.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종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저만치 떠나왔다가 책의 권, 쪽, 행을 표기하는 것을 놓쳐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서 일일이 표기하는 일이 더뎠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 없듯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공부를 마친 그녀가 휴지상태에 놓였다. 무엇하나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가슴에 단 훈장이 그녀를 짓누르는 멍에가 된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외로운 분투를 했던가. 수없이 스스로 묻고 답을 찾고 있다. 그녀는 고달프고 고독한 길을 홀로 걷고 있다. 애당초 혼자 걸었고 지금도 여전히 혼자 걷고 있다.
그녀는 구름을 베고 직진하는 양날의 검처럼 빛나는 햇빛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 가책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경지를 정하고 도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수직으로 경지를 정하고 위로 올랐던 것과 달리 수평을 향하여 경지를 정한 것이었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가없는 점에 도착점을 찍고 고독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다. 종의 높이만큼 넓은 횡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손에서 무언가 내려놓는 순간 다른 무언가 얻게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아연실색하게 했던 인연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을 두 배로 얻으리라 예감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가 시간을 분으로 쪼개면서 구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두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진리를 품고 하늘땅이 뿜어내는 온기를 전신으로 받으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시간이 시나브로 흐르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베일에 가린 밤하늘 둥근달이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가 바람의 손짓에 베일을 벗고 선명한 모습을 보일 때 그녀의 꼬리가 몇 개인지 폭로할 것이다. 변화를 멈추지 않는 그녀의 꼬리가 몇 개인지 사뭇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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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구요
타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자신에게는 소중한 역사입니다
남은 여생의 밑반찬 같은 기록입니다
수정하여 단편소설로 완성하고자합니다.
문우님들의 창작열에 점화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미완의 글을 탑재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