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홍천마을에서 마을버스 ‘오가는사이’ 운행하고 있는 살림길벗 동술입니다. 살림학연구소 첫돌잔치 살림꾼 주제발표 '마을살이 토대로 창업하기' 시간에 참여해 '그리는사이', '명동', '꿈꾸는 일터', '흙손', '해원', '덩기덕쿵떡'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가까이 지내더라도 각 창업체들이 어떤 뜻으로 세워졌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펼쳐가고 있는지 정리된 이야기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각 주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습니다.
첫 여는 이야기는 재우 님께서 시작해 주셨습니다. 마을살이를 토대로 하는 창업의 의미를 말 그대로 ‘마을살이’, ’토대로’, ‘한몸살이 창업’ 각각의 의미를 풀어주셨고, 그런 마을 창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특이성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마을 창업체의 특이성을 "① 마을의 필요를 살핀다, ② 주체가 새롭게 생성된다, ③ 생명살림 가치를 담는다, ④ 든든한 마을 관계망을 기반으로 한다, ⑤ 수련과 공부를 함께 하며 노동한다"로 정리해 주셨는데, 결국 이러한 특이성을 바탕으로 가치 순환, 생명 살림 순환, 자본 순환이 함께 일어나고, 서로 살리는 마을과 살림 생태계를 넓혀가는 실천의 장을 만들어간다는 얘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후 이어진 각각 창업체들의 사례들 속에서 이러한 특이성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지영 님이 소개해주신 마을멋지음 예술공방 '그리는사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계의 재구성’이 주목됐습니다.
대부분의 사업들은 상품을 제공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본을 중심으로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고, 서로 최대한 손해 보지 않고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눈치를 보며 힘겨루기 할 때가 많지요. 그러나 지영 님의 나눔처럼 마을을 토대로 하는 신뢰 관계 안에서는 상호 주체적 관계가 되어,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길을 모색하고, 결과를 함께 만드는 관계가 됩니다. 일, 상품, 거래가 아니라 서로의 삶과 상황, 가치와 뜻이 중심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토대 속에서 새로운 실험적인 도전들이 이루어지며 창조성이 발현되고, 줏대 있게 얼을 지켜가는 걸음들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많은 일손이 필요한 일을 할 때에도 단순히 인력 고용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함께하는 잔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결국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내는 진짜 살아있는 예술이 됩니다. 그동안 마을 곳곳 함께했던 갈무리잔치, 전시회, 이사울력, 밥상울력 등 다양한 풍경들 떠오르며, 가장 깊고 본질적인 예술이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말이 참 공감이 갔습니다.
다음으로 법률사무소 '명동'과 '해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을 토대로 한 창업에서는 ‘어디에 자리를 잡을 것인가’ 역시 중요한 특이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룡 님(법률사무소 '명동')께서는 창업을 하며 방향과 뜻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자리를 잡는 곳도 달라진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자본이 중심이 될 때는 당연히 사람들이 몰리는 곳, 교통이 편리한 곳, 관련 사업이 연계된 곳을 먼저 찾게 되지만, 마을을 토대로 한 창업은 일상의 삶터에 자리를 잡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 됩니다. 아름 님(법률사무소 '해원')은 홍천마을로 귀촌 후 삶터가 주는 힘 받아 법률사무소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삶터에 기반하였기에 정책으로 만들어진 이름뿐인 ‘마을변호사’가 아니라, 실제 함께 살아가며 이웃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며 과정을 함께 하는 변호사가 되고, 사무적 관계를 넘어 일상의 동선에서 만나는 이웃으로 만나는 관계가 됩니다. 하룡 님과 아름 님이 '명동'과 '해원'에서 해가고 있는 이야기들 들으며 마을을 토대로 한다는 의미를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창업을 떠올리면 보통 그럴듯한 장소를 구하거나, 필요한 장비들을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다들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있어야 창업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섭 님이 나눠준 '흙손'의 이야기처럼 마을창업은 바로 사업자를 등록하고 가게를 여는 걸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흙손은 창업을 처음부터 바로 하기보다 함께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고 같이 울력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고, 이 시간은 흙손 주체들이 역량을 쌓는 시간, 마을 구성원들은 생태건축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단순히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으로 시작한 것 아니라, 마을 관계망을 토대로 준비 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창업한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덩기덕쿵떡' 아름 님 역시 사업신고서를 낸 때가 첫 개시일이 아니라 처음 밝은누리움터 생활관에서 '반짝떡 파는 날'을 열었던 때가 첫날이라고, 그날이 더 의미 있는 날이라 얘기해 주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럴듯한 공간에 가게를 먼저 열고, 사업신고서 등록을 해야 창업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관계성 속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시작해 충분히 역량을 가늠하고 무르익어가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마을창업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제가 운행하고 있는 '오가는사이'는 마을에 있던 차량으로 시범운행을 하며 첫발을 떼었습니다. 사실 처음 준비 했을 때는 ‘마을버스를 하려면 일단 차부터 구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중고차 가격부터 알아보고는 금방 마음을 접고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완성된, 그럴듯한 모습으로 시작하려고 했던 생각에 계속 머물렀다면 아마 지금의 오가는사이는 없었겠지요.
마을장터 '해뜨락' 여는 과정에서 마을밥상, 소농, 흙손, 마을 벗들이 함께 했다는 재우 님의 이야기 들으며, 함께하는 이웃 관계가 창업 과정에 다 들어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관계망은 여는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후 운영해 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중심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해뜨락은 마을이 살아온 얼, 지기가 그려가는 뜻, 마을 사람들 저마다 품은 마음들이 아름답게 만나고 현실화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경영을 하고 수익을 얻고 있지만, 운동성을 가지고 일하고 그에 맞는 활동비를 받는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나눠주셨는데, 마을에 터한 창업의 특이성엔 바로 이 ‘운동성’도 있겠구나 주목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상품이 오가고 자본이 순환하는 걸 넘어서, 서로의 가치와 뜻이 공유되고 추동하며 확장되는 이 모든 과정이 일상 일터에서 이루어지기에, 마을에 터한 창업체뿐만 아니라, 자기 삶터에서 생명살림 일궈가는 모두가 운동가입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방향성을 놓치기 쉬운데, 나눠주신 이야기 들으며 다시 한번 그 정체성 잘 품고 가야겠다 다짐해 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을떡집 '덩기덕쿵떡' 이야기를 들으며 ‘시행착오’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창업을 하고 일을 꾸려가다 보면 처음 품었던 뜻을 잘 지켜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을에 토대하고 있다는 건 그럴 때마다 곁에서 일깨워주는 벗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런 말들을 수용하고 방향을 재설정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일깨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해오던 사업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고, 새 길을 모색했던 경험은 모두에게 정말 귀한 배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가는사이'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처음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몇 달 동안 사람들의 이용 횟수를 집계해서 가장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과 노선을 줄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오가는사이는 농촌에서 점점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줄어드는 대중교통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했던 마을버스인데, 이건 똑같은 논리로 운영하려 하는 거라는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지요. 서로를 살리고 지키는 관계가 든든히 있다는 건 모든 마을 창업체들의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는 이야기에서 “마을 창업은 처음부터 창업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운동의 맥락을 담아 펼치고, 품앗이 울력 등 여러 모양으로 성숙시키며 뿌리내리다가 좋은 때를 만나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재우 님께서 나눠주셨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그런 좋은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모든 한몸살이 창업의 공통된 특징은 마을의 필요와 주체가 새롭게 서는 과정이 만나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무조건 필요가 있다고, 하고 싶은 주체가 있다고, 창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때’라고 하는 것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요.
질문을 들으며, 마을을 토대로 한 창업은 단골이 확보된 창업이기에 무엇을 하든 안정적으로 운영해갈 수 있는 구조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언제든 할 수 있는 그 창업을 ‘시작’ 하는 것보다 가치와 뜻을 충분히 함께 공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삼일학림 '얼밝히기' 수업 때의 배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앞서 나눠주신 여러 창업 주체들의 이야기처럼, 마을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충분히 뿌리내리다 보면 재우 님 답변해 주신 것처럼 ‘지금이구나’ 하는 그때가 오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 오가는사이 운행 길에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추수를 앞두고 아름답게 펼쳐진 논길을 지나며 참 평화롭다 행복하다 느끼던 때가 있었습니다. 문득 이 평화와 행복이 유지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애쓰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치열하게 자기 삶터에서 생명살림 일구며 살아가고 있는 삶들이 모여 지금의 이 평화가 있는 것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각자의 좋은 때를 만나 다양한 모습으로 시작된 마을 창업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게 우리의 삶터를 일궈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 치열한 삶의 이야기 들려준 벗들에게 고마움 전하며, 저도 함께 그 살림길 일궈가야겠다 마음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