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성경"이 권위가 있고 그 성경을 통해 신약 교회가 구성될 뿐 아니라 교회의 치리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설교, 교제가 교회 멤버들에게 유익을 끼친다고 말했다. 내가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만큼 사랑하며 한글 성경을 양심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나의 최종권위인 성경"이라 고백하는 이유는 이것이 바울의 "사도적 전통"과 직접 상관되는 성경적 기독교의 전통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설교 때마다 멀미날 정도로 외국어 지식을 남용하고 타국 언어에서 인용해 오는 문구들로 설교의 대부분이 장식되는 그런 "유학파 고등 지식인 설교자"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외국어 지식과 성경 사이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 양자택일을 요구한다면 절대적으로 후자를 선택할 사람이다.
내가 너희 모두보다 더 많은 방언들을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일만 마디의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의 지각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나의 말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4:18-19).
고전 14장에서 바울이 "내가 너희 모두보다 더 많은 방언들을 말한다"고 했을 때 그 방언은 현대 은사주의자들이 되는 대로 뱉어내는 그 울랄랄라 방언이 아니다. 바울은 원래 학문을 많이 연구한 사람이고 유대교 학자들 가운데 최고 권위자인 가말리엘 수하에 있었던 영재였다. 그는 근동 지역에서 사용되는 몇몇 외국어들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게다가 바울이 방언들(외국어들)을 말하는 은사까지 받았다면 그의 외국어 능력은 탁월해서 보통 사람을 기죽이고 남았을 것이다. 지금도 유럽 사람들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가운데 최소 2개 이상은 구사해야 좀 깨인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 지역이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고 국경이 개방된 채 여러 나라들이 이웃 사촌으로 살기 때문에 주변 유럽 나라 외국어를 알아야 가서 쇼핑하기라도 편하고 해서 많이들 제2외국어를 배운다. 그런 유럽 나라들에서 딱 자국어 한 가지만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좀 꽉 막힌 사람처럼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 당시 지중해권의 분위기는 어땠었는가? 로마 제국은 수많은 이민족들이 로마라는 텐트 아래 모여 사는 거대 다민족 제국이었다. 로마가 그들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은 로마의 문화(목욕탕, 원형 경기장이 대표적), 로마의 포장도로(모든 길은 로마로..) 등이 있었지만 또 한 가지 도움을 준 것이 있다면 "코이네 헬라어"였다. 당시 "라틴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토박이 말이었지 다민족 소통 언어는 아니었다. 반면 헬라어는 알렉산더의 헬라 제국이 형성되었던 이래로 중근동 지역에서 유럽 일원까지 수많은 민족들에게 폭넓게 보급된 표준어 개념이 있었다. 로마도 헬라어를 제1외국어로 받아들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배워서 외국과 소통했다. 코이네 헬라어를 통해 가장 재미를 많이 본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근동과 지중해를 오고 가는 상인 집단이었다. 오늘날 코이네 헬라어가 "상인들의 언어"였다고 하는 것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당시 헬라어가 코이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위 "고전 헬라어"(클래식 헬라어)라 불리는 철학자들의 헬라어도 있었다. 마치 오늘날 지식인들이 세익스피어의 대사 몇 줄씩 고전 영어로 읽어내려가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우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듯이 고전 헬라어를 배운 지식인층은 소크라테스니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토 원전을 읽을 줄 알았다.
필자가 헬라어에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고 했으니 이 글 독자들은 그럼 성경은 왜 "고전 헬라어"로 기록되지 않고 코이네로 되었는가, 묻고 싶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 목적이 소위 "연구실에서 커피 한잔 하며 신학, 철학을 논하는 지식 귀족들의 양산"이 아닌 거칠고 투박하고 땀냄새 풍기지만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고 무식한 시골 농꾼들 앞에서 거침없이 설교하는 "발바닥 굳은 살 배긴 바울 같은 설교자"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하겠다.
즉, 성경은 "사람을 낚는 어부"를 길러내기 위한 교과서인데 이 점을 모르는 자들이 신학교에 가서 물고기 낚을 생각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그저 헬라어나 히브리어 같은 낯선 외국어에 푹 빠져서 외국어 지식 배워서 남들 앞에 콧대 세우는 일로 소일하고 있기에 필자는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니,(막 1:17).
주님께서 그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에게 주신 소명은 "사람들을 낚는 어부"였고 그 제자들은 주님께서 다른 바리새인들과 종교 교사들과는 다른 점을 즉시 인식했을 것이다. 어부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 자리 좋은 대목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물을 던져야 하는 사람이다. 어떤 날은 풍어를 기록할 수 있지만 어떤 날은 재수가 없어서 그물 던진 데마다 족족 쓰레기나 올라오고 물고기 구경도 못하는 날도 있다.
당신은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헬라어 교재를 펼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을 위한 "코이네 한국어"로 기록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펴야 한다. 바울 당시의 "고전 헬라어 지식"을 가진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 학자님들이 교수실과 강의실에서 바울을 비웃어대면서 "그 천하고 무식한 것들이 감히 우리를 무시해"라고 했을 것이 분명한데 같은 그림은 오늘날에도 그려진다.
이미 신약 성경을 기록한 그 코이네 헬라어는 죽은 언어, 즉 사어가 되었고 한국 사람을 포함해서 지구상의 어떤 인종, 민족도 일상 언어로 그 말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현대 그리스 사람들도 코이네 헬라어를 쓰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예수를 구주로 믿었고 이제 같은 한국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소명을 받아 목사가 된 사람들은 무슨 언어 성경을 그들의 "주된 성경"으로 삼아 주의 일을 해야 되겠는가? 이미 코이네가 아닌 죽은 말인 헬라어를 앞장세워야 하는가, 아니면 한국인의 코이네 말인 한국말 성경을 갖고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솔직한 대답을 회피하거나 "헬라어요"라고 하는 사람은 필자가 매우 강하게 단언컨데 그 자들은 구원을 받았건 못 받았건 목사이건 수십 년 교회 다닌 교인이건 하나님께서는 그 자들에게 어떤 일도 맡기실 일이 없다. 그들은 영적인 일을 수행할 자격이 없는 영적 실업자들로서 하나님의 일과 철저히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 10:8).
말씀은 "네게 가까워"야 하고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어야" 그 사람을 영적으로 세워주고 무장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롬 10:8을 읽는 "헬라어 열성 학도들" 가운데 이렇게 반박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신학교 4년, 대학원 3년, 그 후 박사 과정과 별도 개인 연구를 통해 헬라어를 10년 넘게 거의 일상 언어에 가깝다시피 쓰고 있습니다. 나 정도 되면 헬라어가 '내 입에 있고 마음에 있고 내게 가까이 있다'고 고백해도 위선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음직 하다.
그런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헬라어를 가지고 몇 사람이나 소통하고 있는가? 당신 같은 헬라어 박사님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토론하는 것 말고 일상적으로 만나는 한국 사람들 대상으로 그 언어로 소통하고 있냐고 묻는다. 택시 기사, 시장통 장사꾼들, 이웃집 아이들, 가족과 친척, 그 누구와 당신의 헬라어로 소통하고 있냐고 묻는다. 심지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당신이 진정한 헬라어 전문가라면 꿈꾸면서 잠꼬대도 "헬라어"로 할 정도가 되어야 진짜 그 언어의 모국어 사용자가 된 것이다. 당신은 그 수준인가?
고 피터 럭크만 박사가 구원을 받은 후 신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당시 근본주의 신학교들 가운데 최고 학교 중 하나인 "밥 존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때의 일화 하나를 인용하겠다.
럭크만에게 헬라어를 가르친 교수는 천재적인 헬라어 전문가였던 저 유명한 A.T.로버트슨의 직계 제자였다. 즉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로버트슨의 수제자였던 교수가 럭크만에게 헬라어를 가르쳤다. 물론 머리가 대단히 좋아서 헬라어를 곧잘 배우는 럭크만은 교수의 눈에도 한 자리 할 특별한 인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한 번은 그 헬라어 교수가 졸업 시즌이 되어 럭크만을 교수실로 불러 티 타임을 가졌는데 교수는 럭크만에게 "교수"가 되어 밥 존스 대학에 남을지 목회 일선으로 나갈지 물어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이런 자전적 독백을 했다고 한다. 그 교수는 원래 대학교에서 헬라어 강의하려고 신학 공부를 시작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유능한 구령자가 되고 싶었고 D.L. 무디, 찰스 피니처럼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최고의 학자인 A.T. 로버트슨으로부터 사사받은 헬라어 지식은 그를 구령자로 만드는 데 하등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럭크만에게 고백하기를 한번은 자기가 시골길을 산책하다 농부 한 명을 만났는데 그 농부는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교수가 그 농부에게 지옥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헬라어 지식들을 사용해 가며 장시간 동안 설득을 했더니 농부의 반응은 차갑고 냉정했다. 농부는 "선생, 당신의 문제가 뭔지 알아요? 당신은 쓸데 없는 걸 너무 많이 안다는 거요."라고 대답하고 가버렸다. 즉, 헬라어로 한 시간 떠들어대며 지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머저리였다는 것을 교수는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그는 "일만 마디의 알지 못하는 방언"을 사용하며 영어밖에 모르는 시골 농꾼 앞에서 소위 문자 쓰며 폼잡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비참하게 되어 물러난 것이다. 바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죄인들의 멸망하는 혼을 건지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지 외국어에 목숨을 건 사람이 아니다.
이 글 본연의 주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헬라어가 최초 신약 성경을 기록한 언어인 목적이 무엇인가, 정리하고 영어 부분으로 넘어가겠다. 이 글은 깊은, 심오한 외국어 지식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개요를 다루고 있기에 필자가 언급을 생략하는 부분들은 따로 생각해 보라.
헬라어는 "로마의 길"을 따라서 펼쳐진 지중해권 도시들에서 널리 사용되는 국제 언어였고 상인들의 말이었다. 바울의 복음 전파는 주로 헬라어를 사용해 이루어졌고 그가 쓴 열 세권의 신약 서신서들도 라틴어가 아닌 헬라어로 되어 있었다. 바울이 그렇게 한 목적은 지극히 실질적, 실용적인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이유였고 헬라어가 어떤 다른 언어보다 우수한 말이라고 믿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어떤 말이 현재 상용적으로 쓰이는 언어가 아니고 100년, 200년, 심지어 1000년 이전에 쓰다가 일반인들에게 맥이 끊기고 만 언어라고 한다면 "사전" 말고는 그 언어의 깊은 것을 알려줄 수단이 없다. 상용 언어라고 하면 현재 그 말을 쓰는 집단군에 들어가서 많은 것을 체득하겠지만 사전으로만 남아 있는 말이라면 우리가 그 언어에 대해 접근하는 범위는 굉장히 협소하다. 마치 현대 한국 사람들이 "용비어천가"나 세종 시대의 문헌들을 원전 그대로 읽는 것이 마치 외계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듯이 현대인들이 헬라어를 인식하는 범주가 그렇다는 말이다.
당신은 "용비어천가"나 "훈민정음 초례본"에 나오는 조선시대 초기 어투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꿈에서도 잠꼬대로 읊어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시대 사람과 "동시대 정신"을 갖췄다고 인정해 줄 만 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조선시대 말을 마치 어떤 고대 외국어처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한국 민족 말도 이런 상황인데 멀리 고대의 타국 언어인 코이네 헬라어를 자국어처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거의 정신나간 헛소리이다. 결국 당신의 헬라어 지식 척도는 어떤 "지도 교수"를 만났는가, 어떤 헬라어 교재를 쓰고 있는가, 어떤 사전을 표준 삼아 쓰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헬라어 학풍을 주도하는 몇몇 학파들이 있는데 이 언어가 죽은 사어이다보니 이 학파는 이런 식의 해석을 주장하고 저 학파는 아니다, 이 단어는 저 해석을 해야 맞다라고 옥신각신해도 누가 중재해 줄 수가 없다. 어떤 해석을 지지하는 세력이 강해지면 그것이 마치 기정 사실처럼 통용되는 것이다. 이런 베일 뒤의 진실에 대해 헬라어 전문가들은 대개 말하지 않고 입을 닦는다. 그들은 현대 헬라어 학자들 간에 아름다운 조화와 의견 일치가 있는 듯이 "아름다운 동화"를 써 가며 사람들을 속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들은 맨날 하는 짓이 이 단어는 이 구절에서 이렇게 해석해야 돼, 저렇게 해석해야 돼, 그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세월 보낸다.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인가? 당장 영적 전쟁에 필요한 사람들은 길거리에 성경을 들고 나가서 읽고 외치고 전파하는 실용적인 거리 설교자들인데 그 작자들은 연구실과 골방에서 헬라어 의미를 갖고 갑론을박하는 신선놀음이나 하고 있으니.
코이네 헬라어가 원래 모호성과 해석의 다양성이 지금처럼 엄청나게 많은 언어였던 것은 아니지만 천 수백 년 동안 실질적으로 사용자가 거의 없다 보니 죽은 말이 되어서 "사전에 의존하는" 고대어가 되고 말았고 그래서 모호성이 심히 늘어났다.
하나님께서는 헬라어 성경을 확실히 대체할 수 있도록 영어로 된 표준 성경을 주시고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셨다. 그 성경이 우리가 잘 아는 1611 킹제임스 성경이다. 영어의 우수성은 고어, 사어가 된 헬라어와 대조해 볼 때 극명히 드러난다. 영어는 현재 사용되는 언어이기도 하면서 또한 해석의 규칙이 헬라어만큼 복잡 다단, 모호하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마치 활과 조총의 차이처럼 그 차이는 명백하다. 국궁, 활은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들고 노하우가 쌓여야 명사수가 될 수 있는데 조총은 몇 번 잡아보고 장전 발사하는 법만 터득하면 적을 쓰러뜨릴 수가 있다. 그래서 활이라는 무기가 효용성이 조총보다 형편없는 것이 결코 아니었고 나름 장점이 많은 무기였음에도 조선은 조총을 운용하는 일본군 앞에 무너진 것이다.
일종의 "조총"과 같은 신무기 개념이 1611년 영어킹제임스 성경이었다. 헬라어 성경이 주류를 이루던 그 이전 시대에는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서 자국어가 아닌 헬라어나 라틴어를 공부해야만 했다. 그래야 신학자가 될 수 있었기에 마틴 루터, 칼빈 같은 사람들도 다 외국어를 자의반 타의반 공부해서 학자가 되었다. 물론 그 자들은 그 지식을 썩히지 않고 활용해서 자기 백성들의 코이네 말로 된 성경을 번역하는 데 썼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파급력과 효율성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고 이전 시대처럼 성경 전문가가 되기 위해 십 수년 동안 수도원 연구실에 있을 필요가 없이 쉽게 터득하고 배울 수 있는 소위 "성경 대중화"의 시대가 그때 열린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탄생하기 이전인 1600년대 이전의 영어, 특히 1500년대 이전 영어는 고대 영어로서 오늘날 영미권 사람들도 현대 한국인이 "훈민정음", "용비어천가"를 잘 모르듯이 외국어이다시피 인식하는 죽은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611년 영어 킹제임스를 탄생시키심으로써 그 이후 400년 넘게 영어는 "세대적 단절"을 극복하고 거의 일체성을 갖고 사용되어 왔다. 물론 20세기에 여러 가짜 영어 성경들이 튀어나오고 변개된 것들이 확산되면서 킹제임스는 고어라서 쓰기 힘들다는 그 자들의 거짓 루머도 확산되었다. 그러나 오늘날도 영어 킹제임스는 현대 영어를 쓰는 영미권 독자들에게 90%, 95% 이상 어떤 사전의 도움도 받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현용 성경"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갖고 있는 한국 민족에게 무슨 시사점을 주는가? 우리의 성경은 그런 성경이 되어야 마땅하고 또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세종대왕 시대 조선에 성경이 들어왔다면 그것이 조선말로 번역되었을테고 조선인들의 성경이 있었다면 우리는 500년 전 사람들과 언어 격차를 별로 느끼지 않고 그들의 말을 일상 언어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모국어 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그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 복음 전파를 하기 원하신다. 여러분은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해야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고대 언어 성경을 들고 세상에 나가 죄인들을 낚아 올리겠다고 생각하는가? 집어치우라. 영적인 일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첫댓글 한글 자모가 과학적이라는 것은 이해 되는데, 한국어가 과학적인지는 의문이다. 혼동하면 안된다고 본다.
시제, 수, 성 관사 등을 보아도 영어대비 덜 정교하다.
럭크만 목사님의 밥존스대 일화를 소개하셨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진짜성경말씀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언어와 일반신자들이 성경을 배우고 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성경의 언어를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일반 한국인에게 당연히 한글성경이 편하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모두 필요한 것이다. 혼동하면 안된다고 본다. 일반인에게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가 소용없다고,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가 필요 없는 것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