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知音 요한八章四七節 十章四, 五節
琴人知琴聲 詩人知詩聲. 鳴鶴在陰 其子和之, 同氣相應故 如是相知, 同氣故相應 同音故相知. 神人亦然. 爲神之人而後 知神之音也. 不知者 以爲戎狄 非但不知反相誹毁.
慈悲之主 或稱我爲友, 友知音. 古豫讓漆身爲癩 呑炭爲啞 無人知者. 其友智伯知之曰 何乃自苦如此? 吾爲神之友則 知神之音矣. 心中之音 無不通之神之音 無不知. 我勞神勞, 我辱神辱, 我榮神榮 辱共之. 今世与高人爲友則 其榮果頌 況爲神之友者 其榮不可言矣. 友者死生同苦也. 主爲我罪而死 我亦死於罪可矣. 主爲我復活於天國 我亦復活於天國, 同勞同王.
又或稱我爲新婦. 夫婦亦知音者, 夫不識婦之音 婦不識夫之音則 不合矣, 不可爲夫婦. 夜半郞到之時 知女備油迎郞 己識其聲矣. 沉睡無油者 雖有郞到之聲 不知不可迎郞矣. 郞以戀書送婦 婦當詳愛其意 而待之. 婦欲知其音 而晝夜硏究.
又或稱我爲羊. 羊知牧者之聲 而隨之. 他人之聲 不知故不隨矣. 善牧欲爲羊捨命故 獅狼之群來則 力推. 羊飢渴則 導之靑草之園溪之水矣. 羊知愛我爲誰隨愛者 而不隨不愛者矣. 羊雖動物 亦知善牧之音 況吾信徒 不知善牧之耶蘇乎? 吾等經路 不知之音而往則 死之在卽矣.
主曰 入死之路 廣闊, 入生之路 狹且窄. 知此音者 取生路而入, 不知者 取死路而入矣. 故信仰知旨爲貴. 入堂聽道 神不能入心者 何也? 我不欲護神旨而生矣. 願將此 軆殼獻于神壇 爲祭物殺之生者, 一任于主而順從可矣.
285. 친구[知音] / 요한복음 8:47, 10:4-5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거문고소리를 알고, 시인은 시의 소리를 압니다. ‘학이 깊은 데서 울면 그 새끼들이 화답 한다’고 하였습니다. 동기(同氣)가 서로 응답하는 고로 이와 같이 서로 알고, 동기인 까닭에 서로 응답하니 같은 소리인 까닭에 서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관계도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뒤에야 하나님의 음성을 압니다. 알지 못하는 자는 적(敵)이 됨으로서 비단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대하여 비방합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혹이 나를 친구라고 부르시니,친구는 서로를 알아 마음이 통하는 벗으로 지음(知音)입니다.옛날 예양(豫讓)은 몸에 옷 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하고 숯을 삼켜서 벙어리가 되었으니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친구 지백(智伯)은 그를 알아보고서 말했습니다, “어찌 스스로 이 같은 고생을 한단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압니다. 마음의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음성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나의 노력이 하나님의 노력이고 나의 치욕이 하나님의 치욕이며 나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니 욕(辱)도 함께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고상한 사람과 친구가 되면 그 영광을 정말 기리는데 더욱이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은 그 영광을 가히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친구는 삶과 죽음에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합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나 역시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주님이 날 위해 천국으로 부활하셨으니 나 역시 천국으로 부활할 것이며, 함께 일하고 함께 왕 노릇할 것입니다.
또는 나를 신부라고 부릅니다. 부부 역시 서로를 아는 벗이니, 남편이 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음성을 모른다면 합하지 못하니, 부부가 될 수 없습니다. 밤중에 신랑이 도착할 때 슬기로운 여자는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이하니 자신이 그 신랑의 소리를 인식합니다. 잠에 빠져 기름이 없는 자는 설사 신랑이 오는 소리가 있을지라도 알지를 못하여 신랑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신랑이 사랑의 편지를 신부에게 보내면 신부는 당연히 그 사랑의 뜻을 자세히 알고 기다려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의 목소리를 알고자하여 밤낮으로 연구를 합니다.
또는 나를 양이라고 부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릅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알지 못하는 까닭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 때문에 사자와 이리의 무리가 오면 힘써서 물리칩니다. 양이 주리고 목마르면 푸른 풀밭과 시냇가로 인도합니다. 양은 누가 나를 위하는 자인지를 알아서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는 따라가지 않습니다. 양이 비록 동물일지라도 역시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아는데 하물며 우리 신도들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모르겠습니까? 우리의 길에 그 음성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면 곧바로 죽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망의 길로 들어가는 길은 넓으나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다.” 이 음성을 아는 자는 생명의 길을 취하여 들어가고, 모르는 자는 사망의 길을 택하여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귀중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와 진리를 듣는데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시는 것은 왜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몸통과 껍질을 제물로 바치려 하면 산 것을 죽여서 드렸습니다, 한 번 주님께 바쳐지면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