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ailsender.nk.ac.kr%2Fupload%2Fmassmail%2FAE933B2CD22D1CB8F3184D9CBD97F9A81461052659135)
선거는 끝났고 승패는 갈렸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의심의 여지없는 최대패자라면,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는 그 최대승자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대통령제 헌정체제가 최대패자가 치러야 할 비용의 규모 및 최대승자가 누려야 할 편익의 규모를 매우 크게 축소하는 제도 효과를 갖는다는
점이다. 하나의 반사실적(反事實的) 사고 실험은 그 연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헌정체제를 행정수반의 신임이 의회선거의 결과에 의존하는
내각책임제 혹은 이원정부제라고 가정해 보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는 다음의 두 가지 매우 확실한 정치적 귀결을 가질 것이다. 첫째, 박근혜
내각은 붕괴한다. 비(非)대통령제 헌정체제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정권교체를 뜻한다는 말이다. 둘째, 안철수 대표가 신생 내각의 행정수반을 맡는다.
비대통령제 헌정체제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원내 제3당의 대표에게 수상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의 대통령제 헌정체제는,
이번 선거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지불해야 할 비용의 크기를 ‘정권교체’로부터 ‘분점정부’로, 안철수 대표가 향유해야 할 편익의 크기를 ‘내각의
추축(樞軸)’ 지위로부터 ‘의회의 추축’ 지위로, 각각 대폭 할인했다는 것이다.
비대통령제 헌정체제에서 이번 선거결과가 박근혜 내각의 붕괴와 안철수 내각의 형성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반사실적 사고 실험의 논리를 조금
부연하자. 우선 다수결을 결정규칙으로 하는 300석 정원의 국회에 진출한 정당들을 일차원 정책공간의 좌우로 배열해보자. 왼쪽부터 123석의
더불어민주당과 6석의 정의당 및 4석의 친야(親野)성향 무소속 의원들이 자리하고, 가운데를 38석의 국민의당이 차지하며, 오른쪽으로 122석의
새누리당과 7석의 친여(親與)성향 무소속 의원들이 위치한다. 국민의당은 좌로는 133석의 친야블록을, 우로는 129석의 친여블록을 둔
중위(中位)정당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최소인접(隣接)승리연합의 원리에 어긋나는 더불어민주당-새누리당 대연합정권의 경우를 논외로 한다면,
신생내각의 구성은 중위정당인 국민의당을 반드시 포함하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의 경로를 따를 것이다. 첫째,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다수연합정권(더민주+국민), 둘째, 새누리당-국민의당 다수연합정권(새누리+국민), 셋째, 국민의당 소수단독정권(국민)이 그것이다.
정권형성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의 선호순서는 {더민주+국민>국민>새누리+국민}이며, 새누리당의 그것은
{새누리+국민>국민>더민주+국민}이고, 국민의당의 그것은 {국민>더민주+국민=새누리+국민}이다. 우선 [더민주+국민]과
[국민]이 정권대안으로 겨룬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전자를,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후자를, 각각 지지하여 결국 [국민]이 신생내각으로 수립된다.
다음으로 [새누리+국민]과 [국민]이 정권대안으로 겨룬다면, 새누리당은 전자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후자를, 각각 지지하여 결국
[국민]이 신생내각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더민주+국민]과 [새누리+국민]이 정권대안으로 겨룬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전자를, 새누리당이
후자를, 각각 지지하여 결국 정책차원에서 두 정권대안에 무차별적인 국민의당의 결정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국민의당의 결정은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비(非)정책적 양보의 크기와 시점에 의존한다. 즉, 제1당과 제2당 가운데 어느 당이 비정책적 양보의 최대치인 행정수반의 지위를
경쟁하는 정당보다 빨리 국민의당에게 제안하여 합의를 이룰 것인가에 연합정권의 최종구성이 달려있는 것이다.
선호순서에 따라 투표할 경우 [국민]은 다른 어떤 정권대안과 일대일(一對一)로 맞붙어도 다수의 지지를 얻는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콩도르세
승자(Condorset winner)인 셈이다. 그러므로 신생내각의 세 가지 경우의 수 {더민주-국민, 새누리-국민, 국민} 가운데 어느 것이
현실화하여도 다음의 두 가지 정치적 귀결은 불변한다. 첫째, 박근혜 내각은 붕괴하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둘째, 정권교체의 결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신생내각을 이끄는 행정수반의 지위를 획득한다. 요컨대, 비대통령제 헌정체제는 선거 이후 정권형성협상과정에서 의석 규모에 비례하지
않는 월등한 교섭능력을 중위정당에게 부여하여 내각의 추축 역할을 맡긴다. 그 결과 선거 이전 구성한 정권의 종결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이번 선거의 패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이 치러야 할 비용의 최대치가 정권교체를 감수하는 것이고, 승자로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누려야 할 편익의
최대치가 신생정권의 행정수반직을 획득하는 것인 까닭이다.
이상의 반사실적 사고 실험은 승자와 패자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이해하는 하나의 규범적 준거(準據)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풀어서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제 헌정체제 덕택에 정치적 손실을 분점정부로 국한할 수 있었지만, 민심은 잠재적으로
정권교체를 소망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유권자 심판의 오독(誤讀)을 피할 길이 열린다. 마찬가지로, 안철수 대표는, 대통령제 헌정체제 때문에
정치적 이득을 의회 추축 지위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표심이 잠재적으로 부여한 지위가 행정수반의 역할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유권자
평결(評決)의 고고(呱呱)함을 이해할 눈이 열린다. 즉,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결과의 정치적 귀결이 정권교체에 해당할 수도 있었다는 잠재적 사실을
반추하면서 향후 반대당과의 법안흥정에 나서야 하고, 안철수 대표는 선거결과의 정치적 귀결이 내각통솔의 책무일 수도 있었다는 잠재적 사실을
상기하면서 향후 집권당과의 입법교섭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제 헌정체제는 이번 선거의 정치적 귀결을 행정부 수준의 정당간(間) 정권교체로부터 입법부 수준의 정당간 권력분점으로 축소하는
제도 효과를 발휘했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생존을 분리시킨 대통령제 헌정체제의 제도 효과로 말미암아 박근혜 정권의 붕괴와 안철수 정권의 수립이라는
결과만큼은 현재화(顯在化)하지 않은 것이다. 그 대가는 어느 정당도 국회의 의사(議事)를 일방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분점정부 혹은 입법권력의
분점체제라고 할 수 있다. 정당간 협상 없이는 의사진행이 불가능하고, 정당간 합의 없이는 법안통과가 불가능한 것이다. 정권형성과정과 마찬가지로
입법교섭과정에서도 추축 역할을 맡는 것은 중위정당이다.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가운데 어느 정당도 법안을 의결할 국회의
다수를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회 수준의 다수파 정당연합형성이 입법의제의 실현에서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회선진화법은 법안의결에 필요한 다수파 정당연합의 규모를 더욱 확대하는 제도 효과를 갖는다. 제20대 국회 개원 이전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에서 위헌 판결이 나지 않는 이상, 여권블록과 국민의당으로 이루어진 167석의 입법연합 혹은 야권블록과 국민의당으로
이루어진 171석의 입법연합 모두 국회 재적의원 3/5 혹은 180석에 미달한다. 어느 입법연합도 법안에 반대하는 정당 혹은 정당연합의
의사진행방해를 종결시킬 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선진화법은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및 국민의당 모두가 합의하지 않으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제도 효과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규모의 다수파 정당연합의 형성 없이는 법안통과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는 행정부 수준의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대신 원내 3당이 모두 합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실현할 수
없는 입법부 수준의 권력분점으로 귀결되었다. 대통령제 헌정체제에서 분점정부는 결국 정당지도자들이 얼마나 협상과 타협의 능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의존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책양보의 불가피성을 깨닫고 반대당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안철수 대표는 정책협력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집권당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표심이 희원(希願)한 바를 이룰 수 있다.
- 본 내용은 IFES의 공식의견이 아닌, 필자의
개인의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