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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할 일이 없는 겨울.
동토(凍土)의 겨울엔 땅 위의 모든 것들이 혼곤한 잠 속에서 꿈을 꿉니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올겨울은 더욱 혼곤했습니다. 서재에 틀어박혀 난로를 피우고 책을 읽거나 나무 판재에 글을 새기고는 했습니다. 양봉을 치는 이웃분에게 드린「큰골밀원」이란 현판을 새긴 뒤에는 「나래실아침농원」의 레이아웃(Layout)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판각(板刻)을 했습니다. 하루 두세 시간씩 글을 새기는 동안 내내 정원이란 무엇일까, 왜 정원을 가꾸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고는 했습니다. 그간에도 정원을 가꾸고 보살피는 일에 대한 글을 많이 썼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정원을 가꾸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에 나누어서 그들은 왜 정원을 가꾸는지. 또 어떻게 가꾸는지 따위에 대해서 마음 가는 대로 찾아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래실아침농원」의 레이아웃을 판각하면서는 두 문장의 글귀를 새겨 넣었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은 가장 먼저 정원을 가꿨다. 진정,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다(God Almighty first planted a garden. And indeed, it is the purest of human preasures).” ‘자연의 위대한 비서’(the great secretary of nature)라고 불릴 만큼 자연을 사랑하고 경외했던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정원에 대하여」(Of Gardens)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의 에세이는 “이것은 인간 영혼에 대한 가장 큰 안식이다(It is the greatest refreshment to the spirits of man).”라는 글로 이어집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마도 성경의 기록을 빌어서 이 글을 썼던 듯합니다.
구약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는 신이 태초에 하늘과 땅의 천지를 창조하면서 그 첫날 어둠 속 빛을 만들어 낮과 밤, 아침과 저녁이 생겨나게 합니다. 다음날 신은 하늘을 만들고 셋째 날에는 땅과 바다를 만들고 땅에서는 열매와 씨앗을 맺는 풀과 나무들이 자라도록 했습니다. 넷째 날 신은 별을 만들고, 다섯째 날에는 물과 바닷속의 생명체들, 하늘을 나는 새와 땅 위의 가축과 온갖 동물들이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신이 만든 정원인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드디어 인간(Mankind)을 창조했습니다. 또 자신의 모습과 같은 형상으로 만든 인간에게는 축복을 주고 그들의 풍요로운 삶과 번성을 축원하는 한편,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참고로 ‘Eden’이라는 말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낙원(paradise)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편 Eden은 수메르어의 ‘평원(plain)’ 또는 ‘스텝(steppe)’을 뜻하는 ‘edin’으로부터 왔으며, 이 말은 아람어의 ‘기름진(fruitful)’ 또는 ‘물이 풍부한(well-watered)’이란 뜻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4세기 말에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Vulgate) 성경에는 에덴동산을 ‘즐거움의 낙원(paradise of pleasure)’이란 의미의 라틴어 ‘paradisum voluptatis’로 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엿새 동안 천지의 모든 것들을 창조한 신은 하루를 쉰 뒤 비를 내리게 하여 땅을 적시고 이 땅의 정원에 온갖 풀과 나무가 돋아나서 자라게 했습니다. 한편 신은 흙의 먼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Man) 아담(Adam)을 만든 뒤 그로부터 갈비뼈 하나를 꺼내서 여자(Woman) 이브(Eve)를 만들어 그들이 함께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그 동산에는 보기에 즐겁고 먹기에도 좋은 것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들이 ‘정원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보살피고(to work it and to take care of it)’ ‘정원의 나무가 주는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하였습니다. 다만 선과 악을 분별케 해주는 ‘지혜의 나무(The Tree of Knowledge)’의 열매인 선악과는 먹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하지만 뱀의 유혹을 받는 이브는 아담과 함께 지혜의 나무에 달린 열매를 먹었습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지혜로우며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의 동쪽으로 추방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신은 이때부터 인간으로서 남자는 ‘일생의 삶 하루하루를 힘들여 일해야만 먹고살 수 있도록(through painful toil you will eat food from it all the days of your life)’ 하였습니다. 남자는 ‘죽어서 땅으로 되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게(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되었습니다. 또 신은 이브가 아이를 분만하는 데 있어서 극심한 고통을 겪도록 하는 한편 그녀가 남편의 지배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태초의 시간에 신이 만든 정원은 낙원과도 같았습니다. 물이 흘러 내리고 아름다운 풀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엔 하늘을 나는 새는 물론 땅 위의 소와 동물들, 물속의 물고기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곳의 모든 것들이 주는 풀과 열매를 일하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은 채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정원을 거닐며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의 수필에서 말한 정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정원은 인간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고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저주를 받아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쪽으로부터 추방된 이후부터는 그들이 지혜로워지기는 했지만 힘들여 일하고 자손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신이 만든 정원에서는 노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그것을 보살피면서 그곳을 즐기고 그곳으로부터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후에는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평생을 열심히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He who does not work, neither shall he eat)”라는 성경의 말씀이 이로 비롯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비록 끊임없이 땀을 흘려 일해야만 하지만, 그 정원에서 일하는 것으로부터 신이 태초에 인간에게 주었던 정원이 지녔던 아름다움과 은혜로움을 느끼고 그것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과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질병 때문에 2살의 아기로서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된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그녀가 장애를 갖기 전인 1살 때 자신에 관한 어머니의 말을 그녀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1903) 에서 이야기합니다. 야외의 마루에서 목욕을 한 뒤 엄마의 무릎에 안겨 있던 헬렌 켈러는 어머니가 모르는 사이에 무릎에서 미끄러져 나가 햇살을 받아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따라 달리듯 다가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인류가 태초로부터 경험한 인상과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초록색 지구와 재잘거리며 흐르는 물에 대한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다고도 믿었습니다. 그것은 눈이 멀었어도, 귀를 먹었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물려받게 되는 하나의 육감(六感)과도 같은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각별한 인상과 특별한 감정은 인간의 DNA에 각인 돼 있는듯합니다. 그래서 자연을 접하게 되면 인간이 태초에 그의 삶을 시작한 에덴동산에 있는듯한 안락함과 평온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신이 땅과 하늘을 만들고 낮과 밤을 만든 뒤 정원(Garden)을 만듭니다. 정원(庭園)은 ‘집안의 뜰이나 화단’, 오늘날 우리가 관상용 풀꽃이나 나무 따위를 가꾸는 공간을 뜻합니다. 먹거리를 가꾸어 돌보는 농원(農園 Farm)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에덴의 동쪽에 만든 정원(The Garden of Eden)은 ‘보기에 즐겁고 음식으로도 좋았습니다(pleasing to the eye and good for food)’. 태초의 정원은 옷도 입지 않은 인간의 보금자리가 되었음은 물론 정원이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기도 했습니다. 또 그들은 정원의 풀(herbs)과 나무(trees)가 주는 먹거리를 자유롭게 채취하며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신의 정원은 정원과 농장이 서로 다르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신이 뜻하는 정원은 우리가 농원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의 공간까지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그의 정원에서 무엇을 가꾸게 했을까요? 호기심에서 성경의 이런저런 부분을 살펴봤습니다. 신께서 이런 것을 가꾸거나 돌보라고 하는 등의 명시적인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것을 먹으라고 권고한 것들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기 직전 신은 그들에게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 쓴맛의 허브(bitter herbs)와 양고기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는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집트에서 그들이 먹었던 생선, 수박, 부추, 파, 마늘 따위를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는 벌꿀은 물론 대추야자, 포도, 무화과 등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신은 사람이 극심한 고난에 처해있을 때 먹으라는 계시를 준 음식이 있습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에 대하여 신의 계시를 받고 광야에서 그들을 대신한 형벌을 받고 있던 에스겔(Ezekiel)에게 신은 이것을 먹고 견뎌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밀, 보리, 콩, 팥, 조, 귀리를 이용해서 만든 빵이었습니다. 밀 등 다섯 가지의 곡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390일 동안 밧줄에 묶여 한쪽으로만 누워있던 에스겔은 물과 함께 이 빵을 먹으며 그 형벌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신은 천지를 창조하고 땅 위의 온갖 것들을 창조하여 정원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고 그 정원(에덴동산)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인류의 아버지인 아담과 어머니인 이브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뒤에는 그들은 먹거리를 위하여 땅을 경작하며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땀 흘려 일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고 안식을 찾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의 역사(歷事)는 크리스천이 아닌 나에게까지 전해진 듯합니다. 풀꽃을 가꾸고 나무를 보살피며, 또 텃밭을 경작하며 나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고 안식을 찾습니다. 내가 기거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나래실아침농원’은 에덴의 동쪽에 있던 아담과 이브의 정원과도 같은 곳입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큼은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여기에서 나의 안식을 찾습니다. (2025.3.22.)
첫댓글 판각이 조화롭고 아름답습니다. 한겨울 따뜻한 서재에서 독서하고 판각하는 모습이 그려지는군요. 자기가 하고싶은 걸 하는 게 가장 행복하고 파라다이스가 아닐까요. 자연과 어울리는 정원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