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군조선-령 평양 擅君朝鮮 (令 平壤)
擅君朝鮮 (令 平壤)
東国通鑑에 抱하는데 東方에 처음 君長이 없었는데 神人이 있어 太白山 檀木下에 내리니 세워 君을 삼아 이가 檀君이다.
国号를 朝鮮이라 하니 때는 곧 支那唐堯戊辰歳라. 三國遺事에 檀君이 平壊에 都하였다 하니라.
大同江水浸烟蕪
王儉春城似畵圖
萬里塗山來執玉
佳兒尙憶解扶婁
大同江水가 蕪烟를 浸하였으니
王儉春城이 画図와 같도다.
万里途山에 와서 玉을 執하였으니
佳兒는 오히려 解扶婁를 생각하더라.
大同江은 舆地勝覧(徐四佳居正先生의 撰한 글월)에 平壤府 東一里에 있으니 一名은 滔江이고, 一名은 王城江이다.
其源이 二가 있으니 일은 寧遠郡 加幕洞에서 나오고 一은 陽德郡 文音山에서 나오다가 江東郡에 이르러 合流하고 다시 西津江이 되어 平壤府 東까지 와서 大同江이 되고 竜岡郡 東에 이르러 急水門에 나와 海에 入하다.
王儉城은 곧 平壤을 부르는 말이니 三国史에 檀君의 諱는 王儉이라하니 平壤은 擅君의 도읍한 곳이므로 王儉城이라 称하였다. 舆地勝覧에도 平壤을 王儉城이라 하였으니 平壤이 곧 王儉城됨이 의심 없다.
塗山은 支辺의 땅 이름이니 東史에 支那夏禹十八 年에 諸侯를 塗山에 모아 擅君이 아들 扶婁를 보내었다 하고 文献備考에 擅君의 아들 扶婁가 扶余의 始祖가 되었다 하고 解扶婁의 解는 擅君後孫이 北으로 옮겨 解로 姓하였다 한다.
執玉은 예전 王들이 他國에 使節을 보낼 때 玉을 執하니 나 敬意를 表함이라. 烟蕪는 碧烟緑蕪이니 江色이 맑고 푸르러 碧烟緑蕪가 잠긴 듯하다 하였다.
<한글>
동국통감에 실려 있는데, 처음에 동방에는 임금이 없었다. 그런데 신인(神人)이 있어서 태백산 단목 아래에 내려왔는데, 그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 이 임금이 바로 단군이다.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는데, 그 때는 중국 요임금 때의 무진년이었다. 삼국유사에 단군이 평양에 도읍을 정했다고 했다.
대동강물이 초록빛 안개를 적셨으니,
왕검성(평양성)이 그림 같았다.
만리나 떨어진 두루산에 와서 옥을 받들었는데,
아리따운 아이는 오히려 해부루를 생각했다.
대동강은 舆地勝覓(서사가 거정선생이 지은 글)에 평양부 동쪽 1리에 있다고 했는데, 하나의 이름은 탕강이고 다른 이름은 왕성강이라고 했다.
그 근원이 두 곳에서 나오는데, 하나는 영원군 가막동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양덕군 문음산에서 나와 강동군에 이르러 합류한 후 서진강이 되어 평양부 동쪽까지 와서 대동강이 되고, 용강군 동쪽에 이르러 급수문으로 나가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왕검성은 평양을 부르는 말인데, 삼국사기에 단군의 휘가 왕검이라고 했으므로 평양은 단군의 도읍지였기에 왕검성이라 불렀다. 여지승람에서도 평양을 왕검성이라고 했으니 평양이 곧 왕검성임에 틀림없다.
두루산은 중국 땅 이름인데, 동사에 중국 하왕 때 18년에 제후들을 두루산에 모아 단군이 아들 해부루를 보냈다고 했고, 문헌비고에 단군의 아들 해부루가 부여의 시조가 되었다고 했으며, 해부루는 단군의 후손이 북쪽으로 옮겨가 해씨 성을 가졌다고 했다.
옥을 받드는 것은 예전 임금들이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공경의 의미로 옥을 받들었다는 뜻이다. 연무는 푸른 안개를 말하는데, 강물 색이 맑고 푸르러 푸른 안개가 강물에 잠긴 듯하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