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적 성향의 중년을 꿈꾸며
송언수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어려서도 그랬고, 지금도 키울 생각이 없다. 중학교 땐가 엄마가 새를 한 쌍 키운 적은 있다. 내가 밥을 주거나 건드린 적은 없다. 엄마의 소유였으니. 늘 집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새 종류는 모르겠으나 노란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녹색의 새 한 마리가 새장에 같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 말로는 어디선가 날아들었기에 같이 넣었단다.
그러고 며칠 후, 노란 새 한 마리가 죽었다. 엄마는 새로 온 새가 암컷이고, 기존의 수컷과 눈이 맞아 기존의 암컷을 죽였다는 결론을 내고 새장 째 처분했다. 어디로 어떻게 처분했는지까지는 듣지 못하였으나, 그 후로도 오래 그 막장드라마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분해했다. 첩에게 눈이 멀어 조강지처 죽인 못된 놈이라며.
아파트였던 시댁에도 동물은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하여 지인 집에서 이제 막 눈을 뜬 새끼 한 마리를 받아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강아지와 놀았다. 아이들이 없는 동안 강아지는 내 몫이었다. 곳곳에 지려놓은 오줌을 닦아내고 똥을 치우고 밥을 챙기는 일이 싫었다. 시부모님과 어린 아이 둘을 챙기는 일도 벅찬데 강아지 까지. 게다가 이놈은 남편이나 애들이 없을 때만 내게 왔다. 그들이 있을 때는 절대 내게 오지 않았다. 오후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쫓아다녔고, 남편이 퇴근하면 남편을 따라 다녔다. 남편이 자리에 앉으면 다리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강아지는 부쩍 자랐다.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해서 동물병원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거실 카펫에 자꾸 엉덩이를 문질렀다. 구충제를 먹어야 한단다. 털 날리는 것도 싫고, 애들과 남편만 오면 날 외면하는 것도 싫은데, 기생충까지……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동안 사서 쓰던 개 샴푸며 사료, 간식까지 전부 챙겨 박스에 넣어 지인에게 도로 갖다 주었다. 집에서 강아지 흔적을 지웠다.
아이들은 강아지가 안 되면 햄스터를 키우겠다고 했다. 햄스터는 자기 집에만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먹이도 똥도 자기네가 다 먹이고 치우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햄스터 한 쌍을 들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오자마자 햄스터 집에 둘러 앉아 한참을 놀곤 했다. 그러다 새끼를 낳고 그 꼬물거리는 새끼들이 자라 또 새끼를 낳을 때까지 길렀으나, 어느 날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 햄스터를 보고 자지러졌다. 또 다 챙겨서 마트에 갖다 주었다. 그 후론 금붕어를 작은 어항에 길렀으나, 그마저도 금세 죽었다.
식물은 한동안 봄마다 들였다. 잊지 않고 물을 주고, 잎의 먼지를 닦아주고, 바람이 통하게 하면 식물은 그럭저럭 산다. 게으른 주인을 원망도 없이 꽃을 피우고 키를 키우곤 했다. 그 아이들은 관심을 바라긴 했으나 그 자리에서 말없는 삶을 살았다. 제가 살겠다고 상대를 해치지 않았다. 옆에 삐죽 올라온 새잎을 시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화분 키우는 데도 재주가 없는지 싱싱한 놈을 데리고 와도 시들시들 죽었다. 풀죽은 이파리를 매번 무심히 지나치면 말라 죽었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끈끈하게 벌레가 꼬이며 죽기도 하였다. 벌레가 꼬이고 병이 든 화분을 매년 겨울에 치우면서 또 들이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집에 있는 몇 개 안 되는 화분도 처분을 하자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봄이면 봄기운에 활짝 핀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올해는 다육이가 눈에 들어왔다. 얘네들이라면 내가 게을러도 좀 더 오래 내 곁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개 사서 비어 있는 화분에 옮겨 심었다. 몇 안 남은 기린초와 제라늄 화분 옆에 다육이를 올리고 게으른 주인을 만난 푸른 잎들에게 사죄했다. 앞으로는 잘 지내자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같은 극끼리는 밀쳐내는 것이 이치다. 내가 동물과 안 맞는 것은 내가 동물적 성향을 지녀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식물과 잘 맞는 것도 아닌 걸 보면 내게 식물적 성향도 있는 모양이다. 동물적 성향이 더 강한 것이겠지. 남녀 모두 갱년기를 지난다. 여성도 남성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각자 가진 여성호르몬이나 남성호르몬보다 정반대의 호르몬 분비량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그렇게 호르몬의 분비량이 뒤바뀌는 과정이 갱년기란다. 호르몬의 양도 바뀌는데, 성향의 양도 바뀌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물고 뜯는 동물적 성향보다 수더분한 식물적 성향의 중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