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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인터라켄 간 길
오늘도 강행군이다. 아침 7시 호텔에서 나와 버스에 오른다. 밀라노에서 오늘의 목적지 인터라켄까지는 약 265km로 휴식시간을 감안하면 약 4시간 거리다. 밀라노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승용차보다는 화물차가 더 많이 보인다.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화물차 기사는 피곤한지 창문을 열어 놓고 담배를 피우며 운전을 한다. 유럽연합에서는 연속으로 4시간을 운전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루 최대 9시간 이상은 운전하지 못하며 휴식시간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런 규정을 어기면 엄청난 벌금을 운전자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속한 회사에도 부과해 사고발생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도로변에서 경찰이 버스나 화물차를 세우고 운행기록계를 점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경찰이 운전자에게 운행기록계 제출을 요구하면 즉시 제출해야하며 운행기록계를 토대로 운전 제한시간을 준수했는지 과속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하기 때문에 버스나 화물차 운전자가 규정시간이나 속도를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버스에서 본 꼬모호수
호텔을 출발한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꼬모 호수가 보인다. 호숫가를 끼고 산언덕에는 그림같이 예쁜 집들이 보인다.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50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꼬모는 스위스의 접경 지역으로 꼬모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로 알프스의 지맥에 따라 도시와 호수는 가파른 산으로 둘러쌓여 자주 물안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지난번 이탈리아 여행 때 가 본 곳이다. 꼬모는 도시가 그다지 크지 않아 두오모를 비롯하여 오래된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걸어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 호숫가 오른쪽 편에 위치한 케이블카(Funicolare)를 타고 브루나테(Brunate)까지 올라가 아름다운 호수의 전경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였으며 한 아울렛에 들렸더니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가이드에게 물으니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 쇼핑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꼬모 호수 근처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
스위스 국경 검문소에는 경찰이 나와 있긴 하지만 여권 검사도 없이 그냥 통과한다. 국경지대를 통과하는 절차는 운전기사가 버스의 시동을 끄고 혼자 내려서 (우리나라의 경우 톨게이트 사무실 직원을 잠시 만나는 정도인 5분 가량 ) 수속을 밟으면 그만이다. 총을 든 군인이나 바리케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관광객이 탄 버스는 세밀하게 검사를 한다고 한다. 한국 관광객이 탄 버스는 간혹 대충 검사를 할뿐 통과를 시킨다고 하는데 국가이미지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한다.
스위스 마을 풍경
스위스에 들어가서도 이태리와 비슷한 풍경이 한참 계속되더니 바야흐로 호수와 푸른 숲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들이 좌우로 나타나고 호수를 품에 안은 암청색 산봉우리와 산등성이에는 만년설이 쌓여있다. 그 산들 밑 나즈막하고 넓은 연두색 초원 위에는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호숫물은 맑아 유리알처럼 눈부시게 반짝이고 도로 양쪽에 우거진 숲에서는 푸른 정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며 숲을 배경으로 한 아담하고 예쁜 목재가옥들은 입구와 창문이 꽃으로 장식돼 있다.
루가노 호숫가에 자리잡은 집들
연초록빛의 루가노호수를 끼고 달리며 산중턱에 옹기종기 분포되어 있는 집들,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젖소와 양떼들. 푸른 초지, 치솟은 산봉우리들을 보노라면 한 폭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한데 불현듯 어디선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노래하며 나타날 것 같다.
벨린초나
루가노를 지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버스가 고풍스러워 보이는 도시 중심을 통과하기에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벨린초나(Bellinzona)라는 도시다. 가이드북에는 티치노 강변에 위치한 이 도시는 로마시대에 생긴 것으로 여겨지며 590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데 생고타르 고개, 루크마니에 고개, 산베르나르디노 고개로 가는 도로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전략적 위치 때문에 롬바르디아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적혀 있다.
벨린초나에서 루체른으로 가는 고속도로
벨린초나를 떠나 루체른으로 향한다. 고산지역으로 접어들자 길고 짧은 터널이 계속 나타난다. 1996년 알프스산맥을 넘어 다니는 물동량이 많아지자 이에 스위스 정부는 트럭이 내뿜는 매연이 온실가스와 소음이 알프스산맥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여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터널을 착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트하르트 스트라센 터널(GST) 입구에 있는 휴게소
고트하르트 스트라센 터널(GST) 입구 주의사항 표시판
고트하르트 스트라센 터널(GST) 입구
고트하르트 스트라센 터널(GST) 내부
우리가 통과하는 터널은 고트하르트 스트라센 터널(GST)로 길이가 무려 17km너 되는 긴 터널이다. 터널 입구에는 “승용차 차간거리 50m, 트럭은 100m 유지, 라디오를 켜고 비상사태를 연락 받을 수 있도록 하라.(라디오란 글자 밑에 주파수까지 표시되어 있다.)”등 진입 차량 주의사항이 표시되어 있고 특이한 것은 터널 내부에서 정체 방지를 위해 아예 입구에서 차량을 통제하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진입시킨다고 하는데 터널 속에 들어 선 차들이 서행이 시작되면, 급기야 오도 가도 못하는 난감한 경우를 예방하려는 나름의 지혜인 듯하다. 터널 내 제한속도는 시속 60km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알프스산맥을 넘는 또 다른 터널인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GBT, 철로 57km)이 있는데 이 터널이 길이 순으로는 세계 최장의 터널이며, 일본의 세이칸 터널(53.9km), 영국-프랑스 도버해협 터널(50.45km)에 이어 한국의 고속철도용 율현 터널은 4번째(50.32km)란다. 하지만 고속철도 규격으로는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이 첫째, 율현 터널이 두 번째. 또한 여객고속철도전용터널 및 300 km/h의 최고속도를 갖는 터널 길이로는 율현 터널이 으뜸이란다.
산 베르나르디노 고개(2065m)<펌>
참고로 1800년 5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 때 넘은 곳은 고타드 고개 동쪽에 있는 산 베르나르디노 고개(2065m)인데 이 고개 역시 터널(6.6km)이 뚫려 있어 이제 고개 길은 제천의 박달재처럼 관광용으로 전락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 원정대는 제네바에서 출발해 이곳을 넘어 밀라노에 이르렀다하여 나폴레옹의 말 탄 그림의 소재를 제공한 곳. 실제로는 당시 날씨가 좋아 원정에 큰 문제는 없었고, 또한 그 그림처럼 멋진 말이 아니라, 전투병이 다 넘어가고 4일 후에 당나귀를 탄 채 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알프스원정이 무리라고 말리는 장군들의 반대에, 2000년 전 한니발도 성공했다며,‘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란 말을 남겼다고 알려졌지만 이 말도 사실은 10년쯤 지난 후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에 앞서 기원전 219년에 로마원정에 나섰던 카르타고의 한니발장군은 보병 3만에 기병 1만과 코끼리까지 데리고 두 번의 전투를 치러 가면서 빙판과 눈을 헤쳐야 하는 초겨울 날씨 속에서 보름에 걸쳐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루체른으로 가는 고속도로 내리막길과 철도
포도밭이 고속도로 주변에 이어진다
숨바꼭질하듯 터널을 들락날락하며 달리던 버스는 이제 고개를 넘어 왔는지 서서히 평지가 나타나고 철로 위를 달리는 빨간색 스위스 기차도 보이며 양지바른 언덕엔 햇살을 받아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밭이 이어진다.
빈사의 사자상<2006년 여행시 사진>
루체른(Luzern) 이정표가 보인다. 루체른은 카펠교나 호수도 유명하지만 난 13년 전 유럽 여행 시 가 봤던 빙하공원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을 보며 스위스 사람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전사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위령비는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슬픈 사자의 운명이 타국에 용병으로 팔려가 목숨으로 용병 계약을 지키고 죽은 스위스 용병은 피의 역사를 나타낸다.
눈덮힌 산악에 둘러싸인 국토를 관광대국으로 만든 스위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나라가 스위스다. 정밀기계 공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세계의 검은 돈이 스위스은행에 몰리지만 이자 대신 수수료를 받는 게 취리히 은행, 인구 800萬명에 1人당 GDP 85.000$,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스위스가 이런 경제 선진국이 된 것이 오래前이 아니라 19세기 이후다. 중세의 가난한 농업국 스위스 자연환경은 겨울이면 쏟아지는 눈과 북풍이 지옥의 저주와 같았다. 지금 독일 북부에 거주한 켈트족의 일원인 헬 베티(Halberd)족이 BC5世紀경에 스위스로 옮겨 앉은 게 스위스 근원이다. 고산 지대의 낙농업에 생활은 안정됐으나 국토25%만 경작지고, 나머진 산악에 둘러싸여 본래 풍요완 거리가 멀었다. BC1세기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갈리아 전쟁서 패한 스위스는 자원과 부를 정복자에 약탈당하고, 인구의 상당수가 죽고 사내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국토는 황폐해져 겨울이면 알프스의 혹한에 저주 받은 땅이 됐다. 스위스 인들의 빈곤과 고통의 시작이었다. 마치 우리가 일제의 36년간 압제에 시달리다 세계 제2차 대전서 패한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거나 같았을 것이다. 스위스는 용병의 피로 세워진 나라다. 먹고 살 길이 없는 스위스 인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타국에 용병으로 팔려갔다. 스위스 독립운동의 전설, 월리 암 텔도 용병출신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1975~80년대 열사의 땅, 중동에 노동자로 돈 벌러 가듯 말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스위스 용병과 국민방위군의 전투 장면<펌>
스위스 용병이 이름을 떨친 건 프랑스혁명 당시이다. 1789년 루이 16세의 튈르리 궁전은 스위스 용병1.000명이 수비했다. 혁명군에게 함락당하기 직전, 루이 16세는“너희는 프랑스와 상관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용병계약을 철회해 줬으나 스위스 용병은 거부한다. 자발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포로 무장한 혁명군에 결사적인 항전 끝에 768名 전원이 옥사했다. 이후 스위스 용병의 몸값은 뛰었다. 돈을 위해 목숨을 담보한 계약이 용병이지만 스위스 용병은 충성의 가치를 피로서 보증했다. 신의와 충성이란 방식으로 조국을 사랑했다.
바티칸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
세계 최고 소득수준을 가진 스위스는 지금은 용병으로 팔리지 않아도 되나 단 한 곳만은 예외다. 로마 교황청을 지키는 수비대는 아직도 스위스 용병이 맡고 있는데는 죽음으로 충성한 스위스 용병의 역사가 있었다. 1527.5.6. 교황 클레멘트 7세 교황청이 신성로마제국의 공격을 받았다. 2만 명이 넘는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성벽을 넘어 교황청에 쳐들어 왔다. 스위스 용병 189명은 성 베드로 성당 가는 길목서 적군 2만을 맞아 147명이 전사했다. 이 같은 충성의 피로 쓴 역사는 5세기 지난 지금도 교황청 근위대는 스위스 용병으로만 구성된다. 약속하면 목숨으로 지킨다는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에 스위스 은행에는 세계의 검은 돈이 몰려들었다. 취리히 은행은 돈을 맡기면 이자 대신 수수료를 물린다. 세계의 명품브랜드 명성을 갖는 롤렉스 시계도, 스위스 용병정신의 밑바탕서 출발한 것이다. 용병의 피로서 세워진 나라가 스위스다. 인간관계는 믿음을 잃으면 다 끝나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에 약속을 끝까지 지킨 스위스 용병에 비해, 출세를 위해선 모든 걸 헌신짝 벗어내 던지듯 하는 한국인에게는 뭐가 필요할까? 해답을 아는 사람이 한국의 지도자가 돼야 대한민국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의 우리 조국은 위선자의 천국이다. 복수도 역사의 정리도 없는 위선자들이 사는 사회다.
브리엔츠 호수로 가는 고갯길
브리엔츠 호수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버스는 가파른 고갯길을 지그재그로 오르고 고갯길 정상에서 내려가니 브리엔츠 호수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는 호수 옆으로 난 도로를 타고 가는데 차창으로 본 브리엔츠 호수는 빙하 녹은 물이 모여 호수를 이룬 청록색의 물빛이 초여름 싱그러운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거리고 호숫가를 따라 푸른 초원 위에 살짝 내려앉은 듯한 주택과 축사가 잘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림이 따로 없어 보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란 남진의 노래가 딱 들어맞는 풍경이 펼쳐져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인터라켄 동역 근처에 있는 카지노 쿠르잘
인터라켄 외곽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 식당에서 육개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열차를 예약한 시간이 한 시간 쯤 남아 있어 역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인터라켄 동역 우측 바위산 아래에 있는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은 중앙에 교회처럼 생긴 건물은 쿠르잘이란 카지노인데 대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출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만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에 바쁘다.
인터라켄 동역 근처 공원에 착륙하는 패러글라이더
동역으로 가는 골목 좌우에는 커다란 면세점이 있는데 갖가지 명품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난 워낙 쇼핑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역 앞 광장 건너편에 있는 COOP 매장으로 가 맥주를 사들고 동역 좌측에 있는 공원으로 향한다. 푸른 잔디가 심겨진 넓은 공원에는 동역 뒷산에서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인터라켄 하늘을 즐기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무리지어 잔디밭에 착륙하고 있는데 멀리 알프스의 영봉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와이프와 함께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인터라켄 동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융푸라우요흐(Jungfraujoch)에 오를 시간이 다 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