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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세계화 현황, 그 문제점과 과제
권대근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한국PEN번역원 번역위원
Ⅰ. 로그인
유네스코가 지정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은 12개, 세계기록유산은 10개, 세계자연유산도 1개가 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세계적 문화국가임을 천명하게 되었다. 일찍이 ‘은자의 나라’로 칭해졌던 한국이 세계적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점차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스포츠 분야이다. 88올림픽 4위, 2002월드컵 4강, 2009 WBC 2위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LPGA는 한국여성이 너무 독식하는 분위기라 오히려 세계적인 관심을 떨어트린다는 불평을 들을 정도이다. 이외에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등은 스포츠분야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전체 분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에 있어서도 한국은 12번째로 OECD국가에 선정되었고, 삼성, 현대, 포항제철 등 한국기업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정치에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 등으로 세계적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예술에 있어서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강수연, 이덕화, 임권택, 조수미, 장한나, 정명훈, 강수진, 방판소년단 등이 각 분야의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상을 수상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각 분야에 있어서 한국의 세계성이 입증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문학은 아직 세계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한국 사람들이 자기 의사를 펼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자인 한글로 이루어진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노벨문학상’과 같은 세계적인 상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며, 세계인이 알아줄 만한 문학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 한국은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을까? 문학상 자체의 공정성 문제인가? 문학가의 수준문제인가? 아니면 ‘한글’을 심사위원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하는 번역가의 문제인가? 모든 문제들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기 마련이므로 위에서 제시한 모든 문제가 한국문학의 세계적 위상 정립의 걸림돌이었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위에서 제기한 문제 중에 특히 문학번역의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감으로써 문학번역의 세계화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문학이 영어권에 번역 소개된 역사는 1백 10년이 된다. 오랜 발아기와 60년대와 70년대의 출발기를 거쳐 이제는 발전기에 접어들어 있고, 머지않아 중흥기를 맞이하리라 본다. 올해초 국제펜한국본부는 한국번역원을 설립하였고, 에세이문예사는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번역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에 최초로 번역·소개된 작품집은 문헌상으로 보아 민담집인 『Korean tales』이며, 이는 1889년 Horace N. Allen에 의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따라서 1889년은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소개의 원년인 동시에 영어권 번역의 원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구비문학으로서 이야기 모음집에 불과할 뿐 본격적인 번역·소개는 훨씬 이후의 일이다. 1922년에 James S. Gale)에 의해 김만중의 『구운몽』이 『The Cloud Dream of nine』이란 제목으로 번역·소개된 해를 기준한다. 많은 논자들도 본격적인 영어권 번역작품의 효시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번역·소개의 시기를 영어권에서 보면 2019년 현재로 보아 약 100년에 달한다. 특히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는 1980년 이후부터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목표 아래 해당 기관과 여러 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차츰 본격화되면서 그 동안 그나마 괄목할 만한 실적을 쌓아 왔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본고에서는 국내 번역은 일단 열외로 하고 오직 해외의 영어권 국가에서 번역·출판된 작품집만을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따라서 해외에서 출판된 자료만을 통해 번역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고, 자료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도출해 보며 나아가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현황을 정확히 파악했을 때 미래의 방향 설정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황과 실태는 앞으로 번역에 직접 참여하려는 한국문학세게화위원회에 누구의 어떤 작품을 번역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그마한 참고가 될 것이다.
Ⅱ. 번역 현황과 문제점
한국문학의 영어권 번역·소개는 타 언어권에의 소개와 더불어 8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직접, 간접의 지원에 의해 획기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어권 번역 소개의 총체적 현황을 파악하려면 일차로 서지학적 조사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본다. 이런 본격적인 조사·정리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그나마 국내외를 막론하고 1998년 11월까지 번역·출간된 각 언어권별 번역서지 목록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과 한국문학 번역금고의 공동 노력으로 완성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통계’에 의하면 연속 간행물의 번역분을 빼고 한국문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어로 번역된 작품집 종 수는 총 247종이다. 장르혼합 8종, 현대시 89종, 고전시 24종, 현대시 혼합 9종, 현대소설 88종, 고전소설 6종, 고전·현대소설 혼합 1종, 현대희곡 2종, 고전희곡 2종, 고전수필 4종, 기타 14종으로 나와 있으며, 번역작품 총 수는 10,072편이다. 물론 이런 집대성된 서지 목록이 나오기까지에는 내국인에 의한 선행된 조사·정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고에서는 해외에서만 번역·출간된 현황파악을 위해 가장 최근의 조사자료인 곽효환의 논문 부록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한국문학 번역서지 목록』을 일차로 참고 자료로 삼았다. 두 목록 자료의 대조를 통해 각 자료에서 누락된 것을 추가 보완해 보았고, 또 두 목록에서 아예 누락된 것들도 조사하여 추가하였으며, 참고로 본고의 통계는 1999년 10월 현재까지 자료다. 그 결과 한국문학이 영어권에 번역·출판된 단행본은 총 169종으로 파악되었다.
연대별 출판현황을 감안하여 그 실적을 그 정도에 따라 정리해 보면, 1889년에서 1959년에 이르는 70년간을 일단 ‘발아기’라 할 수 있다. 번역된 총 수가 11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60년대와 70년대는 ‘출발기’에 해당된다. 20년간에 그나마 19종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대적 비교에서 80년대를 보면 ‘제1발전기’에 접어들었다 하겠으며, 90년대에는 ‘제2발전기’에 해당된다. 또 장르적으로 시대별 특징을 보면, 1889년에서 1969년까지는 ‘고전문학 번역시기’에 해당된다면, 그 이후는 ‘현대문학 번역시기’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60년대 이전이 ‘한국 민담집 번역시기’였다면 70년대 이후는 ‘한국 현대시와 소설의 본격적 번역시기’라 정의할 수 있다.
또한, 70년대에 12종에 불과하던 것이 80년대에는 76종으로 약 6배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또 90년대에는 58종으로 나타난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겨냥하면서 한국문예진흥원이 정책적으로 80년대에 20종과 90년대에 29종을 번역 및 출판지원을 했고,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에서는 80년대에 한국 단편소설선 11종 번역과 희곡선 1종을 번역 지원했으며, 한국문학 진흥재단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얻어 80년대에 12종과 90년대에 1종 번역을 지원한 결과다.
뿐만 아니라 비록 다른 지원 단체에 비하면 후발 지원 단체로 참여하긴 했지만 대산문화재단에서도 95년부터 4종의 번역 및 출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를 볼 때 80년대와 90년대에 번역 총수가 134종인데 4곳의 지원단체에 의해 총 78종 번역이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보아 자생적 번역은 56종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바꾸어 말해 번역 총수의 60%가 지원에 의한 결과며, 40%가 저자나 번역가들의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위의 조사·분류에서 장르상의 균형을 보면 수필 번역이 거의 전무한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점을 보아 앞으로 특히 현대수필의 번역이 있어야 하리라 본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통시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한국문학사 번역은 물론 공시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평론집의 번역도 있어야 하리라 본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미국의 하버드대학, 코넬대학,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하와이대학, 남가주대학 등 7개 대학과 영국의 런던대학, 캐나다의 토론토대학 등이 한국문학 정규 강좌를 개설해 놓고 있음을 보아 정규과정의 교재로서건 또 교양적인 입문서가 되었건 한마디로 한국문학사나 개론서 그리고 평론집의 발간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1. 자료분석에 나타난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
지금까지 우리는 번역현황과 실태를 다각도로 살펴보았고 자료분석을 통해 산발적으로 나타난 문제점들도 알아보았다. 이제는 그런 문제점들을 종합·정리해 보면서 그 해결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르상의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현대수필과 한국문학사나 한국문학 입문서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따라서 수필의 경우라면 개인수필선은 차후 문제로 남겨 두더라도 적어도 현대수필선 2, 3종은 번역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리고 한국문학사나 한국문학 입문서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학의 기반조성을 위해 넓게는 한국학의 기초자료가 될뿐 아니라 외국대학에서 한국문학 정규강좌가 개설되어 있고 앞으로 확산되리라 전망해 볼 때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합동소설선집과 개인작품집 연대별 번역현황’에서는 중편소설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단편소설선의 번역은 어느 만큼 이루어진 이상, 이제는 중편소설에 관심을 가질 때이므로 중편소설선이나 개인중편집이 마땅히 번역되어야 하리라 본다. 제7항 ‘개인별 시(선)집 번역현황’의 조사·분석에서는 장편시나 장편서사시가 전혀 번역 되지 않은 만큼 충분한 고려도 있어야 하리라 본다.
둘째, ‘연대별·국가별 출판현황’에서는 번역·소개가 너무 미국과 영국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소개의 다변화를 위해 앞으로는 호주, 캐나다 지역은 물론 ‘90년대 들어와 처음 소개되기 시작한 아일랜드에도 적정 장르의 적정 종 수의 번역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셋째, ‘주요 출판사 현황’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1, 2종의 형식적 출판에서 끝나는 출판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고 대학출판부의 출판도 가능하면 지양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동안 영어권의 여러 대학 출판부가 한국문학 번역에 참여하여 약간의 성과도 거두긴 했지만 유통과 판매의 한계가 있으니 만큼 무작정 타성에 젖은 소극적인 만족에만 끝나서는 안 되리라 본다. 외국 출판사가 자체 결정으로 능동적 출판이 가능토록 유도해야겠고 또 국내기관이나 단체의 출판지원에 의한 출판을 하더라도 더 좋은 출판사를 섭외해 보아야 할 것이고, 설사 규모가 작은 출판사라 할지라도 전문성이 있고 홍보나 판매에 열의 있는 출판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의 성공 사례를 이미 앞에서 언급해 두었기에 그런 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하겠다.
넷째, ‘합동 시선집과 개인 시(선)집 연대별 번역현황’과 ‘개인별 시(선)집 번역현황’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가 된다. 무엇보다도 앤솔로지 형태의 시선집 번역에서 이제는 완전히 탈피할 때다. 대신 개인 시(선)집이 더욱 많이 소개되어야 하리라 본다. 가령 종 수는 차치하고라도 개인 시(선)집이 나온 현존 시인이 15명이라는 사실은 매우 숫적으로 열세인 편이다. 앞으로 보다 많은 원로나 중진급의 시(선)집과 차세대 대표시인들도 새로이 소개되어야 함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전략적으로 소개의 가치가 있는 시인이라면 마치 서정주의 경우처럼 여러 종의 집중적 번역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번역가 Edward W. Poitras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러 작가의 선집을 출판하는 대신에 한 작가의 책을 더욱 더 많이 출판해야 한국문학이 제대로 소개될 것이다.’
다섯째, ‘합동 소설선집과 개인 작품집의 연대별 번역 현황’과 제9항 ‘소설가 개인별 번역현황’에서 도출된 문제점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설선 번역이 의외로 개인 소설선집이나 장편 번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현재까지 번역된 소설선이 총 31종이고 개인 소설선과 장편 번역이 33종인 점이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소설선이 현재로는 상대적으로 과부족이 없는 이상 앞으로는 개인 소설선집이나 장편 번역에 박차를 가해야 하리라 본다. 또 해외 경쟁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 있다면 마치 황순원의 경우처럼 집중적 번역도 긴요하다. 특히 장편 번역은 더욱 확대되어야 하고 개인 작가에 대한 집중적 번역도 수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장르면에서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는 Francisco Carranza Romero의 말과 1996년 유럽 일원의 주요 출판사를 방문하고 보니 편집인들이 한국시보다는 소설을 더 원했으며,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선호하더라는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팀장의 보고도 큰 참고가 되리라 본다.
2. 번역상의 주요 과제
앞에서 우리는 자료분석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그와는 별도로 번역에서 늘 주요 문제점으로 대두될 수 있는 번역가 문제와 작품 선정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 시나 소설 번역에 있어 장르별 전문 번역가가 많이 나오는 것이 번역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가장 바람직스런 일이라 하겠다. 내국인이건 원어민이건 여러 장르 번역에 힘을 쏟다 보면 그 전문성이 희박해 질 가능성은 자연히 높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시나 소설 두 장르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번역가 부족에서 비롯된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시의 호흡과 산문의 호흡이 서로 다르고 또 두 장르에 힘을 쏟다 보면 전문 이해도도 떨어지기 마련인 이상 반드시 장르별 전문 번역가가 많이 나와야 하리라 본다.
둘째, 장르별 전문 번역가의 출현도 물론 바람직스럽고 또 어느 만큼은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서 한 걸은 더 나간다면 한 시인이나 한 작가만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전담번역가’가 나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 한 번이 아니라 2번이나 3번을 번역하다 보면 한 시인이나 한 작가의 작품세계와는 비례적으로 더욱 친숙해 질 것이고 번역의 완성도도 더욱 높아지리라는 점은 췌언을 요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일찍이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주최의 제3회 국제 심포지엄(1996)에서 번역문학가 Brucs Fulton이 충고적으로 지적한 바도 있는데 충분히 경청할 만한 점이 있는 제안이라 여겨진다. 그는 소설 번역의 경우를 말하면서 다른 나라의 번역문학을 보면, 어떤 주요한 작가는 동일한 번역가가 짝이 되어 번역한 대여섯 작품으로 대표되어진다는 걸 종종 보게 된다며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기도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주니찌로 타니자키의 작품을 집중 번역한 에드워드 싸이덴스티커와 오에 겐자브로를 집중 번역한 죤 네이턴의 예를 들면서 현대 일본소설이 해외에 번역·소개된 성취의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볼 만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물론 현재까지의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에서 이와 같은 경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시 부문에서 Br. Anthony of Taize는 구상과 서정주 그리고 고은의 시에 지속적 관심을 보였고 또 David R. McCann이 서정주 시를 3종이나 번역한 예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인, 어느 소설가 하면 상표 같은 ‘전담 번역가’가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앞으로는 빛과 그림자 같은 ‘전담 번역가’가 많이 나와야 하리라 본다.
셋째, 번역가 선정 문제다. 번역가는 과연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하면 우선 3가지 방식이 있다. 자국인, 원어민, 자국인과 원어민 공동번역이다. 번역문학사의 발전 단계로 보면 처음에는 자국인에서 출발하다가 다음은 자국인과 원어민의 공동번역 그리고 최종단계가 원어민 단독번역이다. 현재 국내외를 막론한 전업 번역가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보아서는 공동번역이 가장 바람직스럽다.
오양열의 한 조사에 의하면 80~96년 사이에 번역지원을 받은 여러 언어권의 104명의 번역가 중 한국문학 번역에만 직업적으로 전념하는 전업 번역가는 5%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43%는 외국어 문학을 전공한 국내 대학의 한국인·외국인 교수이고, 31%는 한국어 문학을 전공한 외국 대학의 한국인·외국인 교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전업 번역가가 5%라는 비율만 보아 매년 나오는 번역 물량을 감안해 보아 단독 번역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따라서 공동번역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스런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엔 인적 자원의 부족도 부족이지만 자국인에게 맡기다 보면 문장 구사력의 한계가 있어 자연 문학작품으로서 번역 완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기도 하다. 반대로 원어민에게 맡기다 보면 한국적인 정서나 상황, 불문율, 풍습, 관습 또는 서양에는 없는 한국 고유의 물건이나 개념 같은 것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오역이 나기 쉽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억양, 사투리, 뉘앙스, 암시, 풍자나 아이러니, 관용적 표현 등을 간과하기도 쉽다. 좋은 번역이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Nida와 Taber는 그들의 공저에서 아래와 같이 번역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Translation consists in reproducing in the receptor language the closest natural equivalent of the source language message, first in terms of meaning and secondly in terms of style.
“번역은 수용언어에서 소스 언어 메시지와 가장 가깝고 자연스러운 등가물로 재현하는 것으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의미, 둘째는 스타일이다.”
‘가장 가깝고 자연스러운 등가로 재생산’하는 일은 자칫하면 이태리 속담처럼 번역이 반역일 수 있다. 출발언어와 도착언어를 좀 알고 두 나라의 문화를 좀 안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양 문화나 양 언어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원문의 훼손이나 실수를 범하기 십상이다. 이런 서로의 장단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공동번역이다. 이런 견해들은 그 동안 한국문학의 번역문제를 다루었던 학술회의나 세미나에서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본 경험이 있는 원어민 번역가의 주제 발표나 토론자에 의해서 제기된 바 있고 또 연구가에 의해서도 제기된 바 있다. 여기서 잠시 이런 공동번역과 관련된 국내상황을 알아보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나 대산문화재단과 같은 지원단체에서는 이를 현재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만약 어느 영어권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원어민이나 한국인 번역가에게 의뢰가 올 경우나 아니면 반대로 개인적으로 번역 계획을 외국 출판사에 섭외를 할 경우를 생각해 보아, 단독 번역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동번역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는 이야기다.
이제까지 한국의 문학번역지원이 작품지원과 번역가 양성으로 이루어졌음을 고찰하였고 최근에 특히 중점을 두는 번역가 양성사업의 문제점을 제기해 보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번역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절박한데 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최근 들어 가장 이상적인 번역방법으로 내세워지는 것은 문학적 소양이 있으면서 해당 국어를 잘 구사하고(작가인 경우가 최상이지만) 한국문학을 번역하고자 하는 외국인과 그 한국문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이 팀을 이룬 번역팀의 구성이다. 이 팀에서는 누가 주도적이어야 하는가? 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이런 번역팀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또한 이런 번역팀의 구성이 과연 최상인가? 당나라때 불경번역 양상을 보면 당대 번역을 주도했던 현장법사는 역주(譯主), 필수(筆受), 탁어(度語), 증범(證梵), 윤문(潤文), 증의(證義), 총감(總勘) 등의 직책을 두고 공동번역을 하게 하였다. 번역과정을 7단계로 나눈 셈이다. 여기에서 ‘역주’는 ‘주석 붙이는 사람’, ‘필수’는 ‘번역한 말 받아쓰는 사람’, ‘탁어’는 ‘번역’, ‘증범’은 ‘범어 원문과의 확인’, ‘윤문’은 ‘글다듬기’, ‘증의’는 ‘뜻의 확인’, ‘총감’은 ‘글의 일관성 확인’ 등으로 볼 수 있다.
국가 중심 번역 제도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의 이런 번역시스템의 현대적 적용에 대해서도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 한국 문학번역의 세계화를 위해서 문학작품 번역지원사업, 전문번역가 양성사업에 이어 번역시스템 구축사업을 지원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아울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문번역가 양성사업에서 한국어 및 해당외국어에 대한 최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육자료 등을 개발하는 일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끝으로, 국가지원에서 주의할 점을 한 가지 든다면, 지원을 하되 너무 국가의 입장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노이츠 국제문학상이나 노벨문학상처럼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문학상의 경우 수상작가의 삶 자체가 수상감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 인권과 환경 등 세계적 가치를 위해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작품은 공공연하게 국가의 이름으로 지원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조건의 작품을 제외하고 나면 세계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작품 지원 자체가 어렵게 된다. 필자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문학번역지원은 세계적 수준이 되지 못하는 한국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이 되는 한국문학을 모르는 세계 독자에게 한국문학이 세계적 수준임을 알리는데 목표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국가적 관점이 아닌 세계적 관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희망해 본다.
III. 로그아웃
지금까지 필자는 해외에 번역·소개된 우리 문학작품의 자료목록을 토대로 번역현황과 실태파악을 해보았으며, 자료분석에 나타난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은 물론 넓게는 번역상의 주요 문제점과 동시에 그 과제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그 성과와 해외 반응도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아주 낮은 평가다. 한국문예진흥원의 여러 언어권에 대한 조사자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영어권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한국문학이 해외의 여러 언어권 중에서 영어권에 가장 많이 소개되었지만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 반응이 미미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나마 1989년 The Seal Press사에서 나온 Fulton부처가 번역한 여성 3인 작가 소설선집 『Words of Farewell』과 영국 Kegan Paul사에서 1986년에 출판된 최양희 번역의 『Memoirs of a Korean Queen』이 판을 거듭했다 한다. 그리고 이문열의 장편 『The poet』이 1995년 런던의 Harvil Press에서 출판되자마자 TLS(타임즈 문예부록)에 긴 서평이 나고 다시 『London Review of Books』와 같은 유력지에 D. J. 엔라이트와 같은 이름 있는 문사의 서평을 통해 좋은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경자 역으로 M. E. Sharpe사에서 1993년에 나온 채만식의 『Peace Under Heaven』과 역시 같은 출판사와 같은 연도에 Bruce Fulton과 Marshall Pihl 공역으로 나온 단편선 『Land of Exile』 그리고 『Soho Press』에서 나온 안정효의 『White Badge』(1987)와 『Silver Stallion』(1989)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정도의 평가는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문학의 번역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반성이 요청되고 있다. 번역가 문제, 작품 선정문제, 출판사 선정과 홍보문제 등은 개인이건 단체의 지원이건 간에 많은 심사숙고와 보다 체계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앞에서 언급된 자료분석의 문제점이 속히 해결되어야 하겠고 또 번역상의 주요 과제도 만족할 정도로 추진·이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욕심을 부려 본다면 노벨상을 겨냥한 전략적 번역사업도 동시적으로 마땅히 수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후보감에 속할 만한 몇몇 작가나 시인에 대한 집중적 번역은 물론 예비 후보가 될 만한 차세대 작가나 시인들의 작품도 이제는 선별적으로 집중 소개가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2천년대의 전략적 번역사업이라면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한다.
■ 참고문헌
이유식, 「한국문학 영어권 번역·소개의 현황과 문제점」 2009. 7. 유심시조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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