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는〈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를 작곡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이 말은 지금부터 약75년 전,베버 사망100주년(1926년6월5일)을 기념하는 강연에서 독일 유명 작곡가였던 한스 피츠너(Hans Phitzner)가〈우리에게 베버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행한 강연의 소단락 제목이다.
오페라를 비롯한 그의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 ■ 왈츠(Waltz)의 연결형식 창안 카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는 매우 다재다능한 인물이며,생시에는 피아노의 비르투오소로서 명성을 날렸다.그의 피아노 작품의 대부분은 자신의 연주를 위해 작곡된 것이었는데,그중에서 일반에게 비교적 친숙한 곡은〈무도회의 권유〉일 것이다.이 작품은 그의 부인 카롤리네 브란트에게 헌정되었는데,이 곡에는 작곡가 자신의 상세한 프로그램이 전해지고 있다.그 내용은 무도회에서 한 젊은 신사가 숙녀에게 접근하여 말을 건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마디: 1~5).숙녀는 완곡하게 거절하다가(마디: 5~9),신사의 간청(마디: 9~13)에 응하게 된다(마디: 13~16).신사가 대화를 시작하고(마디: 17~19),숙녀가 대답한다(마디: 19~21).신사는 더욱더 진한 감정표현을 한다(마디: 21~13).숙녀가 온화하게 이에 응한다(마디: 23~25). 바야흐로 두 사람은 춤에 관심이 쏠리고,신사가 숙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춤을 청한다(마디25~27).두 사람이 무대에 등장한다(마디: 29~31).춤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마디: 31~35).두 사람은 화려하게 왈츠를 춘다.신사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숙녀가 이에 답례한다.두 사람이 퇴장하고 이윽고 정적이 흐른다(마지막). 남녀간의 스캔들을 야기할 수도 있는 왈츠는 1792년 이후 베를린의 무도회장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장르였는데, 베버는〈무도회의 권유〉의 성공으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베버가 이 곡에서 구사한 왈츠 곡의 연결형식은 후에 빈의 라네르(Joseph Lanner)와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의해 계승·발전된다. ■ 콘체르트슈티크(Konzertstük)라는 용어 최초 사용 베버의 또다른 주요 피아노 작품으로는 그의〈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트슈튀크〉(바단조, Op.79)를 들 수 있다.이 작품은 베버의 세번째 피아노 협주곡으로서 외형적으로 단일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내부적으로는 교향곡의 순환형식처럼 네 개의 악장(단락)으로 나뉘어지며 중단 없이 연주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당시에 통용되던 피아노 협주곡은‘소나타 형식-3부 가요형식-론도 형식’이라는 형식적 틀에 맞춰3악장 체계로 구성하는 것이 관습이었는데,베버는 이에 반해 자유로운 형식으로 구성된4개 악장을 연결시켜 곡을 만든 것이다.베버는 이러한 특징을 지닌 이 작품을 자신의 다른 작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콘체르트슈튀크’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으며,이후 이 용어는 단일악장으로 구성된 기악 협주곡을 일컫는 장르 용어로 정착된다. ■ 징슈필<마탄의 사수>은 독일 낭만 오페라의 효시 베버는 그의 일곱번째 오페라 작품인 징슈필〈마탄의 사수〉(1821)가 초연부터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된다.이 작품은 한 달 앞서 베를린에서 상연되어 좋은 평판을 얻고 있던 스폰티니의〈올림피아〉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면서,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독일 오페라의 승리를 예고했다. 장르사적으로 보자면,이 작품은 호프만의〈물의 요정(Undine)〉,슈포어의〈파우스트(Faust)〉와 더불어‘독일 낭만 오페라’의 효시로 꼽히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뿐만 아니라 이 오페라는 당시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독일 청소년들의 국가의식을 고양시키고,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에게 참된 예술적 표현을 부여하면서‘국민 오페라’로 추앙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멘델스존이“낭만주의 관현악의 무기고”라고 표현했듯이 매우 독창적인 관현악법이 선보여지고 있으며,이 오페라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달빛 어린‘늑대의 계곡’장면은 바그너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이 작품에 나오는 마술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는 낭만적 취향에 잘 어울리며,전원의 풍경은 사냥대회,춤(왈츠)추는 농민,사냥꾼과 신부들의 합창과 함께 울려 퍼진다. ■ 최초의 지휘봉 사용 베버는 최초로 지휘봉을 사용하여 근대 지휘법 발달에 기여한 지휘자로도 유명하다.즉,이전에 박자의 유지가 피아노(쳄발로)나 악장(바이올린 주자)에 이루어졌던 데 반해,베버는 악단 앞에 서서 지휘를 한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그는 팔을 흔들어 박자를 맞추었고,그의 손에는 오늘날의 지휘봉이 아닌,악보를 둘둘 말은 종이뭉치가 쥐어져 있었다. ■ 시민계급을 위한 공공 연주 계획 당시 일반 시민계급을 상대로 한 공공 연주를 계획하고 조직한 최초의 음악인 출신의 공연기획자이며,당대 최고의 명성을 날린 피아니스트,유능한 음악감독,그리고 무엇보다도(호프만과 더불어서)음악가,문학가 및 음악 저술인이라는1인3역을 담당하는 새로운 예술가 유형의 선구자였다는 점이다(1인3역 유형의 음악인의 전통은 그후 베를리오즈,슈만,리스트,바그너,리스트,드뷔시,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이어 최근에서 불레즈,리게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서양음악사100장면(2),pp.128~132>
◆ 감상 무도회의 권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