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이 축복
2011년 7월 27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용인에서 김포로 출근하는 중이었다. 서서울 톨게이트를 지나 서울외곽고속도로에 들어 설 무렵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는가 하더니 추적추적 내리던 가랑비가 돌연 굵은 빗방울로 변해 차창을 콩 볶듯 두드렸다.
유리창이며 길이며 천지 사방에 튀는 빗방울의 파편, 그 물보라로 지척도 분간키 어려워 가다 서다 반복하기를 얼마나 했는지 길에서 세 시간을 허비한 후 천신만고 끝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시간 반이면 충분했던 여느 날의 갑절이나 걸린 셈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강남이 물에 잠겼다 하고 우면산 일부에 산사태가 났다는 방송을 해도 뭐 별일일까,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하고 넘겼다. 차 지붕까지 찰랑 찰랑 물에 잠긴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서도 그랬다. 우수관이 일시적으로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그렇지 평상으로 회복 될 거라고 무덤덤했다. 아들이 연락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버지, 잘 도착하셨어요? 버스가 지금 양재 시민의 숲에서 꼼짝 못하고 있어요.”
일곱 시경에 집을 같이 나선 아들의 전화였다. 그제야 예사롭지 않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후가 되니 숨 가쁜 뉴스 속보가 이어졌다. 방송에서 춘천의 대학생 봉사단원 10여 명 매몰사건과 함께 우면산 산사태를 헛도는 테이프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엔 형촌마을이라더니 다음에는 전원마을, 그리고 예술의 전당, 더욱 놀라운 일은 우면산에서 8차선 도로 건너 우뚝한 고급 아파트까지 흙더미가 덮쳤다는 뉴스이다. 예술의 전당 방향으로 가던 어떤 차의 블랙박스에 산에서 아파트로 쏟아져 내리는 흙탕물의 영상이 찍혀 방영되었다. 차의 운전자는 급정거를 하여 다행히 생명을 건졌다고 했다.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 온 그 사람은 얼마나 아찔했을까.
우면산이 어떤 산인가. 영동 세브란스 병원 앞 매봉에서 출발하여 관악으로 흐르는 중간 맥에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한, 언덕 같은 동산이다. 산자락 어느 곳에서든 정상의 소망탑까지 오르는데 한 시간이면 넉넉한, 러브스토리의 올리버 집 정원에 두어도 어울릴 아담한 산이다.
요조숙녀처럼 음전한 그 산이 손톱에 할퀸 것처럼 초록 옷이 찢겨져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산사태라 하면 강원도 인제나 정선 같이 산세가 깊고 가파른 계곡에서나 발생하는 사건으로 알고 있던 터, 막상 지척에서 일어나고 보니 가장 먼저 떠 오른 단어가 ‘운명’이었다.
사 개월 전에는 내가 그 곳에 있었다. 예술의 전당 뒷길 대성사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 그 길가에 연못이 있다. 광장의 음악분수를 감상하다 솔잎 그늘로 난 계단에 올라서면 신우대 군락에 가려진 보일락 말락 하던 작은 못.
붓꽃, 굴참나무, 자작나무가 심심치 않게 그림자를 드리우던 그 연못이 그 날 무엇이 분하고 원통해서 배를 가르고 황톳물을 쏟았을까. 마치 한 사람의 두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내겐 부드럽고 온화하게 보였던 얼굴이 갑자기 표독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바뀐 것처럼.
내가 이랬다면, 아니면 누군가가 저랬다면 하는 부질없는 가정이 고개를 치켜든다. ‘운명’, ‘운명’을 반복하며 내지르는 매미소리 같은 이명이 들린다.
폭우를 헤치며 좁은 길을 올라가는 1800cc 은색 차. 갑자기 큰 충격음이 나면서 누런 황토물이 해일처럼 달려든다. 외마디 비명 지를 사이 없이 데굴데굴 구른 차는 사정없이 구겨진 채 8차선 대로로 떠밀려나서 불어난 물에 둥둥 떠 있다. 내 차에도 블랙박스가 있으니 일본에 쓰나미가 밀려들 때의 광경처럼 방영하고 또 방영할 것이다. ‘운전자는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라는 십 초도 안 되는 시간을 건조한 말로 전할 것이며, 유가족에겐 입수한 블랙박스를 얼마면 되겠느냐고 흥정할 것이다.
사고는 갑자기 닥친다. 인류가 생존해 있는 동안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크고 작은 사고는 어쩔 수 없다. 전쟁, 공사장 사고 같이 인재에 의하거나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에 의하거나 어쨌든 칼날 위에 목숨을 두었다는 처지로 보면 매 일반이다. 죽음 앞에 신분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원인이 무슨 소용 있을까.
통계에 우리나라 사람의 사망원인에서 여섯 명 중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한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 있음’ 자체가 행운이며 축복인 셈이다.
조심, 또 조심하지만 조물주의 손에 이미 결정된 운명의 길은 알지 못하기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위험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오늘도 나는 무릎까지 바짝 다가선 흉기(차량)를 스치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초록신호등을 믿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건너고 있다. 겁도 없이.
첫댓글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위험도는 점점 높아집니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살아 있슴이 감사지요!
이제 "수필가 조계환 칼럼"에 독자가 점점 늘어갑니다. 이 또한 감사드립니다.
매일 새벽에 감사의 묵주기도 5단을 20분씩 바칩니다. 제가 이렇게 건강한 몸이 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리고 제가 잊고 있는 중에도 저를 기억하고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화의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청원하는 기도도 빠뜨리지 않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