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任氏)의 본관(本貫)과 인구
우리나라의 임씨(任氏)는 지난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풍천임씨(105,38명), 나주임씨(30,134), 장흥임씨(28,342), 곡성임씨(6,976명), 진주임씨(2,626명), 안동임씨(2,056명), 관산임씨(1,866명), 광산임씨(1,792명), 풍산임씨(1,469명), 함풍임씨(1,312명), 순천임씨(986명), 홍천임씨(882명), 파평임씨(850명), 과천임씨(812명), 보령임씨(778명), 수원임씨(712), 해남임씨(696명), 청풍임씨(612), 부천임씨(532명), 대전임씨(508명), 춘천임씨(482명), 충내임씨(388명), 회덕임씨(268명), 현도임씨(248명), 아선임씨(232명), 서하임씨(168명), 백천임씨(94), 평택임씨(36명), 서해임씨(18명) 등 29본관으로 조사되었으며 임씨(任氏) 인구는 191,261명이다.
시조 임온(任溫)은 문헌에 의하면 중국 소홍부 자계현 사람으로 고려 때 건너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조 임온의 6世孫 임주(任澍)가 서기 1283년(충렬왕9)에 경상도 추동 안찰사(按察使)를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종3품)을 지냈다. 경주부윤록에 표기되어 있다. 임주(任澍)의 아들 대에서 충숙왕 때 삼사판사(三司判事) 임자송(任子松)과 민부전서(民部典書:정3품) 임자순(任子順) 대에서 백파와 중파로 나뉘면서 고루인물을 배출 번성하게 된다. 임주(任澍)의 묘는 풍천 전석산 아래에 있으며 음력 9월 13일에 향사한다.
임자송(任子松)은 시조 임온(任溫)의 7世孫으로 서기 1319년 복국장공주(福國長公主)의 죽음을 알리러 원나라에 다녀왔고 서기 1321년 밀직사동지사(密直司同知事), 1324년 익찬공신(翊贊功臣)의 호를 받고 첨의평리(僉議評理:종2품)가 되었다. 1327년 1등 공신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책록되었으며 1330년(충숙왕17)봄에 원나라에 가 있던 세자 정(禎:충혜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원나라 객성부사(客省副使) 칠십견(七十堅)이 와서 국인(國印,국왕인)을 가져갈 때 서하군 임자송과 만호 권겸 등이 국인을 가지고 원나라에 갔다 왔으며 임자송(任子松) 의 묘(墓)는 황해도 송화군 고을 북쪽 고암리(高巖里)에 있다.
출처-<고려사절요 제24권>
임씨(任氏)중 장흥임씨(長興任氏)의 경우 임호(任灝)를 시조로 임의(任懿), 임원후(任元厚), 임온(任溫)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고증은 없다. 풍천임씨(豐川任氏) 7세손 諱 덕생(德生)은 좌복야(左復射)를 지내고 진주군(晋州君)으로 책봉되어 진주임씨(晋州任氏)가 분관(分貫)되었다. 따라서 풍천임씨(豐川任氏)와 진주임씨(晋州任氏)는 정확한 고증이 되고 있지만 곡성임씨(谷城任氏)의 경우 4世孫인 풍해군(豐 海君) 諱 천유(天裕)의 아우인 천록(天錄)을 시조로 모시고 있지만 풍천임씨(豐川任氏)의 정유사보와 신유보에도 諱 천유(天裕)의 아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임씨(任氏)는 모두 같은 一家로 여기고 있는데 장흥임씨(長興任氏)에서는 다른 세계(世系)를 제시하고 있어 더욱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晋州任氏歷史硏究院長 任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