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정치시민넷 강연회
“익산 근대 물길 이야기”
- 이종진 선생(내고향 물 해설사)-
좋은정치시민넷은 지난 8월 21일(월) 저녁7시 사무실에서 “익산 근대 물길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종진 선생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이종진 선생은 농어촌공사 퇴직자이며, ‘만경강의 숨은 이야기’라는 책의 저자입니다.
이종진 선생은 ‘내고향 물 해설가’입니다. 물 해설가는 농어촌공사에서 물의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일정한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분들입니다. 현재 전북에는 4명이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44명의 물 해설가가 활동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선생은 강연회를 통해 물의 중요성, 익산의 근대 수리문화에 대해 사진자료 및 당시 지도를 보여주며 생동감 있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선생은 “마을(洞)은 물(水)과 함께(同)가 합쳐진 말로 사람들이 함께 물을 마시는 곳이 ‘마을’이라는 뜻의 한자이다. 마을의 물은 사람들의 사회적 접촉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매개물이었다.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은 1,276㎜ 세계평균의 1.6배이다. 하지만 1인당 사용 가능량은 1/6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물 부족국가라고 이야기 한다. 지구상의 물 분포를 보면 바닷물이 97%, 민물이 물이 3%이다. 하지만 민물 3% 중 2.5%는 빙하이고 나머지 0.5%만이 지하수, 호수, 저수지, 강에 있어 사람이 농업용수나 생활용수로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로 물을 보호하고 아껴서 사용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지하수는 오염이 심각한 상태이며, 각 종 가축전염병으로 매몰처분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는지, 지하수 오염이 가장 큰 걱정이다.
익산의 물길과 호수는 일제가 수리조합을 만들고 수리시설 공사를 하면서 많은 변화를 하였다. 일제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황등호 제방을 다시 쌓고, 천에 취수보와 갑문을 건설하였다.
황등호 사진(엽서)
황등호 나루터
쌀 수탈을 위해 호남평야 서쪽, 만경강 주변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22년 대아댐을 만들었고, 1935년 경천저수지를 만들면서 황등호를 간척하여 농지로 만들었다. 굽이굽이 흐르던 만경강을 직강화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강 모습을 바꿔 버렸다.
대아댐 건설 장면
황등호의 역사는 700년이 넘으며, 조선시대 국중3호로(고부 눌제, 김제벽골제, 황등호) 그 규모가 어머 어마 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 이야기 하면 삼기, 금마, 임상동, 어양동, 영등동, 신용동이 황등호 안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넓었다고 할 수 있다.”
어양동 예술의 전당 앞 지하수로(터질목 아래), 이 수로는 현재는 복개되어 어양동주민센터 앞을 지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일제는 1906년 수리조합 조례를 공포하였고, 1907년 국유미간지이용법을 공포하면서 수리조합을 만들고, 수리시설을 조성하여 쌀 수탈의 근거지를 확보하기 시작을 하였다. 수리역사를 보면 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 이전에 수탈의 근거지를 확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익산주변에는 물길에 따라 임익수리조합, 익옥수리조합, 전익수리조합 등 15개의 수리조합이 있었다. 수리조합들은 합병과정을 통해 전북수리조합, 전북토지개량조합, 전북농지개량조합, 농업기반공사 등으로 이름이 바뀌며, 지금은 한국농어촌공사로 부르고 있다.
만경강 취입구 공사 장면
1911년 만경강(지도)
2015년 만경강(항공촬영 지형도)
한강, 대동강 등 전국적으로 강들이 많이 있지만 일제는 만경강을 가장 먼저 개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만경강 개수공사는 1925년부터 실시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내무국 직할로 경성, 이리, 초량, 사리원, 평양에 토목출장소를 설치하고 수리시설 공사를 실시하였다. 토목출장소는 현재의 국토관리청 역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익산에 국토관리청이 있는 것은 이런 역사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