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각 장은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흔히 말하기를 초장은 시의(詩意)를 끌어내고 중장은 초장을 보완하거나 확장시킨다. 종장은 화자(작가)의 결의로 마감한다고 하지만 초심자에게 이는 매우 난감한 문제이다. 시의를 끌어낸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어떻게 끌어내는 것일까? 시의(詩意)란 말은 관념어이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시의란 시에 담긴 뜻이라는 말이지만 작품이 완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시의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끌어낸다’라는 말을 이해해야 초장을 잘 쓸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적 대상물을 보고 느끼는 첫인상, 즉 첫 감정이다.
이 감정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일뿐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제목을 놓고도 보는 시각이나 느끼는 정도에 따라 감정은 다르게 나타난다.
무궁화꽃을 보고 어떤 이는 ‘나라’를 떠올리고, 어떤 이는 ‘끝없음’를 떠올리고, 또 어떤 이는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낼 것이다.
어떻든 간에 우리나라 꽃이므로 ‘나라’를 떠올렸다면 어느 모습에서 ‘나라’를 발견했는지 그곳이 시작점이다.
필자가 창작한 <흙수저>라는 작품을 가지고 설명을 해보려 한다.
7월 장마가 시작되고 갑자기 폭우가 내려 시뻘건 도랑물이 거세게 흘러간 뒤에 점차 물이 약해져 바닥이 드러나면서 널브러진 잡초들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잡초들은 그야말로 초주검이 되어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필자는 잡초의 모습에서 약자의 눈물을 보았다. 첫인상이며 첫 감정으로 생긴 아픔이었다. 마치 우리 사회 약자들도 저렇게 짓밟히며 살아가겠구나, 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회적 갈등이 있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잡초’는 약자이고 ‘소낙비’는 강자이다. 이 두기지 현상을 형상화하여 지은 작품이 <흙수저>이다.
흙수저/김흥열
어젯밤 소낙비가 휩쓸고 간 도랑가에
오금을 펴지 못한 잡초가 엉겨붙어
피어린 설움을 모아 오색 꿈을 엮는다.
‘휩쓸고 가다’라는 서술형이므로 중장은 그 상황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
그래서 중장을 만들었다. 부러지고 찢어진 잡초 모습은 강자 앞에 오금 저리는 우리 모습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찢기고 부러진 아픔을 극복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꽃을 피워 대를 이어갈 것이고, 그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이런 여러 모습들을 의인화하여 종장에서 꿈을 엮는다고 했지만 꿈을 엮는 것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내이며 용기이다.
중장 앞에 (그래서)라는 접속어를 넣고 읽어보면 초장을 보충 설명하는 확장 구조이다.
단순히 하나의 식물 개체(個體)가 자기의 종족 보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흡사하지 않은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인내하고 극기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이처럼 시의(詩意)는 첫인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시조 형식에 맞추어 초장을 만들게 된다.
지금까지 손에 잡히지 않는 시의(詩意)를 끌어내는 방법에 대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그러면 과연 고시조나 현대시조는 어떤지 살펴본다.
초장 말미를 대략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면 중장은 초장의 이유가 되거나 확장이 된다. 초장 말미를 ’부정, 명령, 청원, 의문 등의 감정이 격(激)한 말로 마감하면 중장은 그 이유가 되도록 한다. 중장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넣어보면 초장이 생긴 이유가 된다.
고시조의 예를 들면
⓵원천석의 시조
눈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던고
(왜냐하면)굽을 절이면 눈속에 푸를쏘냐
초장 말미의 ‘굽다던고’는 의문형 마감이다. 즉 ‘누가 굽다고 하더냐’ 이다.
그래서 중장은 그 이유로 눈 속에 푸르다는 사실로 입증한다.
⓶작가 미상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왜냐하면)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올세라
이 역시 ‘가지마라’는 부정적 청유이다. 그러므로 중장에서는 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⓷황진이 작품은 좀 다르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이 작품의 초장 말미는 ‘넣었다가’는 ‘넣다’라는 긍정형 서슬이다.
이처럼 긍정적 서술형 문장으로 마감할 때는 중장 앞에(그래서, 그러니, 그러면) 같은 접속어를 넣고 읽어보면 소의 말하는 ‘보충 또는 확장’형이 된다.
긍정적 마감을 할 때 나타나는 문장 구조이다.
⓸왕방연 작품도 황진이의 작품과 같은 문장 구조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임 여의옵고
(그래서, 그러니)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그러면 실제 현대시조에서 명시조 또는 좋은 시조라 부르는 작품을 보고 그 연결고리를 찾아 보고자 한다. 고시조는 이미 살펴보았고 다음은 근대시조 몇 편과 현대시조 몇 편을 골라 문장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⓵
난초/이병기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초장 끝부분이 ‘선뜻 깨니’라는 긍적적 서술이다. 그래서 중장은 초장의 확장이 된다. 보충해 주는 문장 구조이다.
⓶
봉선화/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이 작품은 초장 끝이 ‘반만 벌어’라는 긍정적 서술이라 (그래서) 중장을 보충 설명하는 구조지만, 중장 끝은 의문형이다. 그래서 종장은 어떻게 하겠다는 작가의 각오로 짜져 있다.
다음은 현대시조 예문을 보기로 한다.
정완영 시인의 작품 <감을 따 내리며>와 김광수 시인의<동화(同化>를 본다
⓵
감을 따 내리며/정완영
저토록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 걸고
이토록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그워냈나
여든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를 나는 몰라.
초장 말미가 ‘가마 걸다’라는 긍정적 서술형 마감이다.
그래서 중장은 초장을 확장하는 형태로 짜여 있다.
종장은 화자의 심리적 상태(모른다)로 마감하였다. 작가의 의지가 들어 있다.
⓶
동화(同化)/김광수
뜨거운 눈짓 한 번 주고받은 일 없어도
연초록 바람을 타면 나비 되어 허공을 날아
살포시 풀숲에 들어 속절없이 꽃이 된다.
이 예문의 초장 말미는 ‘일 없어도’라는 부정적 서술이다.
따라서 중장은 초장이 왜 그런지를 밝히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연초록 바람을 타고 나비 되어 날기 때문이다’라는 이유(원인)를 밝히고 있다.
모든 시조가 이 틀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틀의 문장구조를 벗어나지 않았다 해서 명작이 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필자는 일반적인 문장 구조를 살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문장 구조를 지닌다면 시조 정체성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디까지나 참고해 볼만한 자료이다.
첫댓글 귀한 글
拜覽합니다
초ㆍ중ㆍ종장의
연결의
중요성
새기게습니다
많이많이 배우고ㅡ며
많이많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