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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https://youtu.be/V3tpyHyss9I?si=YjV8FD5rDZJs1D8a
“원수에게까지 복이 되는 하나님 나라”
성경 본문: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19:23 ~ 25
설교 목적: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라면, 그 나라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그 나라는 언제 오는 것일까? 누가 그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는 성경 전체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예수님의 메시지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나라를 물려받고 동참할 상속자요 대리인인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일깨워 그의 위대한 통치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 백성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굳어지거나 완악해지면 그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도 품을 수도 없고 동참할 수도 없다. 그래서 거듭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분별하고 늘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러르며 그 영광에 동참하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고 동참할 수 있는 길이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고난 중에 던져지며 그 가운데서 마침내 새로운 꿈을 담은 언약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마커스 보그의 책 ‘기독교의 심장’에서 제8장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마음을 여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꿈을 부어주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성경의 설명과 그 마음이 굳어지고 닫힐 때 나타나는 현상, 그리고 그 완악함이 깨어지는 순간과 그후에 변화된 모습을 그려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리인인 인간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설교 개요
1. 도입
2.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
3.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고 동참할 인간
4.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마음을 연단하시다
5. 굳은 마음 대신에 부드럽고 새로운 마음을
6. 하나님 나라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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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 시절 우리가 상상했던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는 찬양처럼, 사자도 어린 양과 뛰노는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을 꿈꿨을 것입니다. 혹은 1980년대의 유행처럼, 우리가 언젠가 모든 고난을 벗고 올라갈 저 높은 천상 세계, ‘아버지의 집’으로만 생각했던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주기도문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막연한 천상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바로 이 땅에서 실현되는 새로운 현실임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은 바로 이 세상을 향하고 있으며, 그 통치가 이 땅에 임하기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약속하고 계십니다.
자, 여기서 우리의 존재를 관통하는 질문이 시작됩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과연 누구를 통해 이 땅에 펼쳐지는가?
성경은 분명히 답합니다. 그 통치에 동참할 상속자요 대리인으로 창조된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맡기셨고, 우리를 통하여 이 땅을 복되게 하시려는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의 환경이나 세상의 죄악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두려움과 욕심으로 굳어지고 닫힐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화해와 회복의 비전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대신 우리는 분노와 증오, 절망만을 복사하여 스스로 사막과 같은 현실에 갇힙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오히려 그 나라의 문을 스스로 닫는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19장에서 이 비극을 넘어설 열쇠를 찾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애굽과 앗수르가 서로를 적대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의 복이 된다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화해의 비전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이 비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위대한 통치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소명을 힘 있게 붙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
“이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그 깊은 뜻을 붙들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 나라의 본질부터 다시 묻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깊이 남아있는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노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곳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막에 꽃이 피어 향기가 진동하며,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며, 독사굴에 어린 아이가 손을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그런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는 구절을 부르면서도 그런 세상이 어떻게 올지 어디로 올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경 ‘내가 본 천국’이란 책이 유행했는데, 그 저자 펄시 콜레 박사(Dr. Percy Collett)가 한국에 왔을 때 우리 교회의 교인들과 함께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자정이 되도록 기다렸다가 ‘1초’의 안수를 받고 귀가했습니다. 그렇게 휴거 열풍이 세차게 불어닥쳤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는 나에게 ‘저 높은 우주에 만들어진 내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휴거는 없으며 그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영국의 신학자 톰 라이트였습니다. 그의 책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Surprised by Hope)를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저 천상에 있는 세계가 아니며 우리에게 열리는 새로운 세상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이며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기도로 잘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밝혔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되는 것입니다(1:10). 그것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 실현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며, 그 세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과 만국의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 그 말은 모든 이가 주님을 경배하고 그 뜻을 즐거운 마음으로 따를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것은 바로 이 세상입니다(요 3:16).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말로 이 구절을 해석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노래하기를,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편 24: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복을 명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고 그것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그 나라는 인간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시편에 기록하기를,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시편 115:16)고 했고,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두시고 다스리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시편 8편). 그처럼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세계를 맡은 인간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 나라를 왕처럼 통치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의 세상에 복을 주시고 만물을 충만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부른 노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실 세상이며 그 백성과 함께 열어가시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언어입니다. 그처럼 평화롭고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성경이 그려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이 땅에 충만하게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며 자기 백성을 부르십니다.
3.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고 동참할 인간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정리하면 그 다음은 좀더 명확해집니다. 즉 인간이 누구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물려받아 관리하고 다스리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포도원을 맡아 관리하는 농부와 같고, 양떼를 돌보는 목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을 이런 이미지로 표현하는 곳이 많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동산이 주어졌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는 약속의 땅이 주어졌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주어졌고, 다윗과 솔로몬에게는 더 광활한 영토가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큰 무리가 어린 양의 통치를 환영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7:9). 이기는 자들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21:7). 이처럼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자기 나라를 물려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소개하는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을 맡아서 관리하고 다스리는 위임통치자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칠 대리인입니다. 그리고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모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힘입어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인간의 지위와 신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벧전 2:9).
성경 이야기의 길고 긴 줄거리는 단순하게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에 끌려 하나님을 배반하면 땅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 일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도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보편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상징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시고 강대국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찍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로 그들은 다시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다가 다시 수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의 종으로 전락한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게 짓밟히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제 황폐화되고 들짐승이 노니는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패망으로 끝이 납니다. 주 중에 이사야의 글을 읽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애굽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애굽의 패망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땅과 그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이 어그러진 땅을 바로잡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굽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의 끝에 이런 말씀이 덧붙여 집니다: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19:23 ~ 25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그 날에 애굽과 앗수르 사람들은 서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고 함께 하나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나라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인 나라들을 바로잡으셔서 마침내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이 애굽을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시며, 앗수르에 대해서는 자기 손으로 지은 백성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산업인 이스라엘과 더불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수많은 그림 중에 하나입니다. 이 그림은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불렀던 노래와 유사합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는 그 노래에 사막과 샘이 대조를 이루고 사자와 어린 양이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사막은 샘으로 바뀌고 사자는 더 이상 어린 양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그것은 치유와 회복을 말합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치유되고 회복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4.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마음을 연단하시다
성경을 보면 이처럼 수많은 약속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장차 하실 일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 번성, 충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일한 말씀을 노아와 그 가족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장차 큰 민족이 되고 천하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후에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나라들을 선도할 지도자가 되고 모델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왕위가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이 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실 것이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로 그 백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밭에 심겨진 겨자씨처럼 작을지라도 장차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그 약속을 굳게 붙들고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의 족속들을 정복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양을 치던 베들레헴을 떠나 이스라엘의 목자인 왕이 되는 길에 나섰습니다.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그 말씀을 전하고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저마다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붙들고 자기의 운명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것을 기대하면서 이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주어질 때 그 상황은 참 열악합니다. 아브라함은 불임부부였을 때 많은 자손의 약속을 받았고, 이스라엘은 종살이를 할 때 열국을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을 때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고, 예언자들은 폐허가 된 땅에서 모든 것이 회복되는 세상이 오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한주먹에 해당하는 작은 무리에게 세상을 가득 채울 복음의 말씀을 맡기셨고,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가운데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새로운 세상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여 만국이 경배하는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 이야기가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현실에 갇힌 꿈이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는 희망의 미래를 그려줍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그 이야기가 그 사람들에게는 그 사건을 통해서 마음에 심어졌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자기의 꿈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그것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이처럼 연단하셔서 새롭게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4~28
이 모습은 새롭게 지음을 받은 인간과 같습니다. 연단을 통해서 새롭게 된 이스라엘은 새로운 아담처럼, 새로운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출애굽 때에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그들 가운데 계시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들이 열어가는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이며,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5. 굳은 마음 대신에 부드럽고 새로운 마음을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천상에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이가 들어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이라고 이해한 것처럼,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깊어집니다. 위의 에스겔의 말씀도 사실은 먼 미래의 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개인의 삶에도 새 마음을 가지게 되고 굳은 마음 대신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면 두려움이나 욕심 때문에 현실을 바르게 볼 수 없으며 미래를 희망할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여유를 잃고 쉽게 조급하거나 분노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마치 사막과 같고 혼돈과 어둠으로 가득 찬 것과 같습니다.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서 밝은 마음은 사라지고 어둠기만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때가 자주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형을 두려워하여 집에서 달아나 멀리 있는 외삼촌 집을 향해서 광야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밤에 돌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야곱은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났고 마침내 거부가 되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므로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이 두려움 가운데서 캄캄한 밤에 하나님을 만나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새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도 살다 보면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굳은 마음을 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얻게 됩니다. 그때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 새로운 마음에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986년 겨울, 대입학력고사장에서 극도의 긴장 가운데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릴 때 저는 이상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친구들도 이 시간에 각자의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를 것이라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리는 그 순간, 무언가 제 마음을 덮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밤에 내리는 이슬처럼 제 마음에 임하는 평안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하고 떨었는데 그때부터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정말 지금 여기 계시는군요. 이런 평안이라면,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다면, 제가 빵점을 받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마음으로 시험을 보고 나니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 전에 모의고사를 여러 번 치렀는데 그때보다도 더 평안하게 시험을 치르고 나니 교회로 달려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시험 후에 자취방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고 먼저 시내버스를 타고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정말 계시는군요!’ 그 경험은 저에게 잊지 못할 감사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저는 점차 저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이후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걱정의 밤을 보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울산에 있는 누나를 찾아 모친과 동생 등 다섯명이 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그때 여주휴게소를 약 500미터 앞두고 차가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자동차가 낡아 뒷바퀴 로암이 끊어져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의 사고 시에는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를 연 다음 도로 밖으로 나가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하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일명 ‘비트밖스’입니다.
고속도로 사고가 나면 일어나는 2차 사고가 생각나서 차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치를 옮길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보험회사도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명절에 귀성 차량이 많아 차들의 저속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 수신호를 보내고 도로공사와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무사히 견인을 했습니다. 저는 우선 가족을 여주휴게소에 있게 하고 견인차량을 따라 용인에 있는 정비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차량을 수리하고 저녁 늦게 가족을 태우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저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견인차량을 기다리는 내내 그리고 차량 수리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내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자동차가 무사히 수리되어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소서!’ 모친과 가족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졸였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저 자신을 보면서 문득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간절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 건데 하는 반성을 해 보았습니다.
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순간을 ‘얇은 곳’(Thin Place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굳은 마음에 틈이 생겨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자라게 됩니다.
6. 하나님 나라의 비전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려고 마련하신 작고 얇은 곳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곳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받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은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모든 시간이 바로 그 얇은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우리가 읽는 말씀, 그리고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설교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고 그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은혜의 틈은 우리가 정성껏 준비하는 절기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암송하는 주기도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우리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를 가리고 있는 휘장이 열리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사도 바울을 만난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만난 루디아는 그 감동 때문에 사도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사람도 때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현재의 고난과 혼돈에 굴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들고 일어서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현실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닫힌 마음과 굳은 마음으로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는 절망 가운데 최악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최선으로 만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그토록 많은 약속이 있는 이유이며, 그 약속이 그토록 다양한 이유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전쟁과 재난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병들기도 하고 실직하기도 하며 삶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누구나 인생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많은 세월을 살았다 해도 인생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저는 이사야 19장에 있는 약속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 약속은 애굽과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함께 세상의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애굽이나 앗수르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그 둘은 모두 이스라엘에게 원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날에는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되고 동역자가 되며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꾼들이 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한 가족이 됩니다. 사도 바울도 아마 이와 동일한 비전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처럼 적대적인 국가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면 미워지고 답답한 마음에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집니다. 그런데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은 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새로운 일이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그 계획은 오늘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이 꿈을 마음에 받아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우리가 됩시다. 오늘 우리의 분노와 증오를 내려 놓고, 우리의 깨어져 열린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입시다.
최근에 저는 교회를 사임하고 나서 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지난 해 있었던 비상계엄의 여파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우리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평화와 연대를 위한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께서 하신 말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는 말씀은 우리에게 새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라는 초청이자 촉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열리는 새로운 세상,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받으며, 들어가며, 이루어 갑시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