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특별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이 주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 의분과 슬픔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어떤 모습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음 깊이 탄식하게 만들었을까?
1. 힐난하며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왔기 때문입니다.(11上)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왔지만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님을 힐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 구속사역을 방해하고자 하는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또한 많은 무리들이 따랐습니다. 그 목적을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권능있는 말씀을 듣고, 병고침을 받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구경하러 온 사람도 있고 이적을 보고 싶어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바라보면서 목자 잃은 양처럼 느껴져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구원의 은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할 목적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행동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한 악한 마음이었습니다.
2.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기 때문입니다.(11下)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예언자요, 메시야라는 것을 증명하는 어떤 표적을 요구한 것입니다. 저들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니까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매도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막 2:22) 한 마디로 저들은 불신자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기적을 나타내신 바를 목격하기도 하고 소문으로 듣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또 기적을 바란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불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괴롭히려 하는 저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시며 배를 타고 급히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6:1-4에 의하면 예수님은 저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3일 만에 나온 선지자이고 이 사건은 장차 예수님의 죽으심과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의 이 죽음과 부활 사건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겠는가?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소망을 준 사건을 믿으면서 표적을 바라는 불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표적은 우리에게 믿음을 불러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
1.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께 나왔습니까? 2. 바리새인들은 어떤 목적이 있었습니까? 3. 바리새인들의 악한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4.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습니까? 왜입니까? 5. 병행구절(마16:1-4)은 저들에게 보여줄 표적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6.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7. 요나의 표적에 대해서 설명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