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보크 장관의 내일을 위한 포석에서 배우는 외교 한 수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소장)
외교는 지금 당장 직면한 국가 간의 문제,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중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그것을 넘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염두에 두고 사전 포석을 놓은 일이며 사전 정지작업을 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교에서도 양국 관계에 대한 미래의 실질적인 변화와 변화시키고자 하는 관계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외교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 중심에는 쌍방의 실리가 숨어 있다. ‘외교가의 슈퍼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외교무대인 유엔 총회가 9월에 열렸다. 여기서 세계 193개 회원국의 외교관들이 참석하여 양자 간 혹은 다자간의 회담을 열며 각기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에 간 각국 외교부 장관이 만나고자 하는 주요 대상은 바이든 대통령과 국무장관 등일 것이며 이들을 만나기 위한 열띤 경쟁도 벌였다. 그리고 그 경쟁은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들에 의하면, 베어보크 독일 외교부 장관의 행보는 달랐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나 그 측근과의 만남이 아니라 공화당의 주요 인사와의 만남이 중심이 되었다. 그는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 들르기 전에 텍사스주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를 먼저 만났다. 그는 공화당이며 텍사스주는 공화당의 주요 텃밭이었다. 그가 워싱턴에서도 상원의 공화당 1 인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리시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를 먼저 만났다. 그리고 내년 미 대선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낸시 메이스 의원도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 등 주요 인사나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는 것보다 야당인 공화당의 핵심 인사를 만난 것이다. 이는 외교상의 이례적인 일이라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 베어보크 장관은 미국 현 정부와 집권당 인사들의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왜 이런 행보를 한 것일까? 미국은 내년에 대선이 치러진다. 그런데 현재의 바이든은 그 지지율이 그리 신통치 않다. 반면에 온갖 사법 리스크와 의혹을 안고 있는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 당연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기 가능성을 열어둔 사전 포석일 수 있다. 지금 미국 외교가에서는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트럼프 2기 정부는 트럼프에 대한 더욱 강한 충성파들이 총집결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면 트럼프 그룹의 폭주를 견제할 그룹이 발을 붙이기 어렵다는 분석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우방과 서방은 트럼프의 재집권을 우려한다. 그러나 미국의 분위기는 다르며 점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1기 집권을 경험한 트럼프가 더 강한 미국 중심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을 것이란 선한 낙관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여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공은 점치기가 어렵다. 트럼프는 그 공약과 정치 철학에서 철저한 미국 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상당한 보수주의자들은 트럼프의 이러한 기조에 찬성하고 있다. 그런 트럼프는 지난 집권기에 나토 탈퇴를 위협하며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 왔다. 한궁에도 방위비 증액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의 이러한 위협은 미국의 나토 탈퇴가 아니라 유럽에 주둔한 미국의 방위비를 증액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미국의 그런 기조가 살아나면 나토를 통한 서방의 결집과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 공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방이 바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계속되어야 하며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한 희망이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과 지지가 흔들리는 순간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며 유럽의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가지 미래의 변수가 현재 미국 정치에서는 존재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외교무대의 양상이 상당이 예측불허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막말까지 해가며 비난전을 벌이던 북한의 김정은과도 갑자기 정상회담을 하고 또한 하노이에서는 회담 도중 한순간에 김정은을 보이콧하고 귀국해 버리는 것과 같은 트럼프의 외교 방향을 누구도 정확하게 점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점치는 것은 1기 때처럼 강력한 미국 중심주의를 표방할 것이며 그의 말대로 나토군을 축소하고 그 병력을 이용하며 멕시코 국경을 수비하는 병력으로 대체할 것이란 추측도 있다. 그러면 나토를 비롯한 해외 미군 주둔 국가들의 결속과 힘을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는 이번 유엔 총회에 참석한 베어보크 장관의 행보는 현재가 아닌 내일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맞는 말일 것이다. 만약에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때 트럼프의 정치적 방향에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때 나토의 미군 주둔과 미군의 유럽 방위 문제에 대하여 현재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다. 이는 맞는 말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국은 세계에서 미군이 일본 오키나와 나토를 이어 3번째로 많이 주둔하는 나라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하여 지난 정권 때처럼 방위비 증액을 과다하게 요구하면 지금 단단하게 구축되어가는 한미 공조가 균열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균열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지금의 양상은 트럼프 1기 때와 양상이 다르다. 지금은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고 북러가 탄탄한 공조를 구축해가는 시기인지라 한반도의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대미 외교도 지금에만 안주하지 말고 내일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그에 맞는 외교 전선을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리라 본다. 그리고 한미 공조만 의지할 일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의 자주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 베어보크 장관의 내일을 위한 포석에서 한 수를 배우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