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입교 50년을 회고하며
교번 5528 박정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것이 벌써 50년 전의 일이 되었다. 눈덮인 화랑연병장과 태릉사격장 등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사관생도가 되기위해 입교식을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아른거린다. 그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뒤돌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젊은 날들의 기억들을 회상해보고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적어본다.
나는 1952년 5월 2일 충남 홍성에서 2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1960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위치한 용호초등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까지 다니다가 경기도 평택에 있는 성동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성동초등학교, 평택중학교, 평택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72년에 청운의 꿈을 품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학년을 마친 뒤 독일사관학교에 파견되어 교육수료 후 1975년 4월 1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귀국하였다. 1976년 육군 제12보병사단 37연대에서 소대장 보직을 받아 군 생활을 시작하여 수도기계화사단에서 중대장, 제28보병사단에서 대대장, 제22보병사단에서 연대장 보직을 수행하였다.
장군으로 진급한 후에는 특전사 제13공수특전여단장,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합참 작전부장,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전력발전본부장, 천안함 피격사건 민군합동조사단장, 제1야전군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군 생활 40여 년을 회고해 보건대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장교는 임관시 ‘대한민국의 장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부여된 직책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다’는 복무선서를 한다. 장교단 정신은 위국헌신(爲國獻身)이다. 「위국헌신」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안중근 의사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유훈을 남겼다. 군인, 특히 장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직업이다. 장교는 군에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무하는 것이다.
현재는 사관학교에서 여러 나라에 교육파견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에는 유일하게 독일 사관학교에만 매년 1명씩 유학을 보냈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학년 생활을 마치고 2학년 때 파견되어 3년간 수학하고 소위로 임관한 후 귀국하였다. 그후 독일 지휘참모대학에 유학을 다녀오게 되었으며, 많은 독일군 교리와 제도들을 군에 접목할 수 있었다. 1997년에 출간한 『임무형 지휘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자(2011년 증보판 출간)를 통해 우리 군에 독일군의 지휘철학이자 전술개념인 ‘임무형지휘’ 개념을 전파한 바 있다.
군 생활을 통해 기억에 남는 일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연대장 재직시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침투작전에 참가했던 일과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시 민군합동조사단장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교훈을 많이 얻었던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연대장 재임시 1996년 9월 18일부터 강릉 무장공비 대침투작전에 약 한달 반가량 전 연대 병력과 함께 참가하여 군 생활의 소중한 바탕이 되었던 대침투작전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1996년 5월 강원도 간성에 위치한 제22보병사단 55연대장으로 보직된지 몇 개월이 지난 9월 18일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였다. 무장공비가 상어급 잠수함으로 침투하다가 동해안 강릉 인근 안인진리 해안에서 좌초된 것을 택시기사가 발견하여 신고함으로써 소탕작전이 개시되었다.
연대는 전방 철책경계(GOP)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 3천 여명의 연대 병력이 총출동하여 무장공비들의 북상도주 차단작전에 투입되었었다. 장기간 야외에서 배치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무엇보다도 기도비닉을 유지한 가운데 장병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작전 자체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전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합참 전력발전본부장 재임시에는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 민군합동조사단장으로 임명되어 명확한 사건 원인규명을 통해 국내외에서 제기된 온갖 의혹을 해소하고 국민 안보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3월 26일은 천안합 피격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매년 3월이 되면 산화한 천안함 46용사들과 그당시 사건조사를 실시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백령도 서남방 해역에서 정상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전투함정이 침몰된 사건이었다. 미군 콜(Cole) 함정이 2001년 중동 아덴만에서 알카이다의 자살폭탄테러로 침몰환 사례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생한 사건이었다.
명확한 사건조사를 위해 민군합동조사단이 3월 30일부터 6월 30일 간 운용되었는데, 군측 단장을 내가 맡았다. 국내 12개 민간기관 전문가 25명, 군 전문가 22명, 국회 추천위원 3명과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전문가 24명 등이 동참했으며, 조사활동은 과학수사, 함정구조 및 관리, 폭발유형분석, 정보분석 등 4개 분과로 나눠져 실시되었다. 침몰요인 분석은 폭발/비폭발, 내부폭발/외부폭발 등 모든 가능 요인을 나열하고 귀납적인 방법으로 규명해 나갔는데, 그 결과는 국제해사기구의 분석틀을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조사결과 발표는 2010년 5월 20일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국내외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조사결과는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운용중인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되었으며, 사용된 무기체계는 CHT-02D로 직경 21인치(53.4cm), 길이 7.35m, 무게 1.7톤, 폭약 250kg, 음향항적·음향수동 추적방식 어뢰”로 발표되었다.
결정적 증거물을 수거하기위해 특수자석, 준설선 수중펌프, 형망어선, 쌍끌이어선 등의 다양한 방법들을 검토하였으나, 공군 전투기 추락사고시 2006년 6월 7일 동해안 수심 372m에서 F-15 전투기 잔해 90%를 수거하였고, 2007년 7월 20일 서해상 수심 45m에서 F-16전투기 잔해 90%를 수거한 대평수산 쌍끌이어선 활용 사례를 참고하여 쌍끌이어선(대평11호﹘12호)과 특수제작 그물망(가로 60m, 폭 25m, 높이 15m, 무게 5톤)을 투입하여 5월 10일부터 폭발원점 가로·세로 500야드 25개 격자(20×20야드)로 세분하여 정밀탐색을 실시하였다. 결정적 증거물은 5월 15일 09시 25분경 프로펠러가 달려있는 조종장치(112cm, 71.1kg)와 09시 38분경 추진모터(33.3cm, 81.85kg)를 수거하였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2020년 3월 26일 거행된 제10주기 천안함 피격사건 추모식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한국형 호위함 한 척을 천안함으로 명명을 검토한다”고 밝힘으로써 천안함 46용사 해양수호 의지 계승을 천명하였다. 천안함 46용사와 고(故) 한주호 준위가 영원히 기억되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명예롭게 할 수 있게 되어 늦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산화하신 천안함 46용사와 고(故) 한주호 준위의 명복을 빈다.
2011년 10월 전역 후 합참에서 2015년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여 합동참모본부의 전구작전수행능력 구비와 태세 확립 필요성이 제기되어 합참의 요청에 의거 연간 4회 실시하는 국가급 연습 및 훈련(키리졸브연습, 태극연습, 을지연습, 호국훈련)의 관찰 및 평가를 주관하는 ‘전구사후검토조정관’으로 위촉되어 2012년부터 5년 동안 군의 합동작전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활동하였다.
2013년 8월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3년간 국방정책론, 현대전쟁론 등을 강의하였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3년간 북한의 대남정책론, 북한 군사론 등을 강의하면서 국방관련 우수인재 육성과 안보역량 강화에 힘써왔다. 아울러 자유민주/시장경제 포럼, 호국불교포럼 활동을 통해 안보/국방정책 세미나 및 토론회 등을 주도하고 각종 안보강연을 통해 국민의 안보의식 강화에 기여하였다.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회에서 국방분과 위원장직과 여의도연구원 외교안보분과 정책자문위원, 자유한국당 국책자문위원장직을 맡아 각종 국방 및 안보현안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인 자문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대 대선시에는 자유한국당 상임중앙선대위원장 겸 국가안보위원장(공동)으로 임명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국가안보위원장으로서 각종 안보 및 보수단체들의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선언(약 120만 여명)을 유도함으로써 자유한국당 후보가 24% 득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현역시 ‘국군불교총신도회장’과 전역후 ‘국군예비역불자연합회장’ 등을 수행하면서 군을 지휘하고 통솔할 때 부처님의 가르침과 사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군 지휘관으로서 생각해본 것은 불교적 리더십 만큼 훌륭한 리더십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신세대에 맞는 인간중시리더십, 서번트리더십, 디지털리더십 등이 강조되고 있으나 불교적 리더십에 이런 내용들이 다 담겨져 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하심(下心)과 모든 것을 내려놓는 방하착(放下着)은 군 지휘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다.
특히, 부하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배려하며 조건없이 베푸는 보시(布施)는 부하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고객감동의 첩경이다. 다원화된 지식정보화시대의 군에서도 권위 보다는 마음을 열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베풀면서 솔선수범하는 하심과 방하착, 그리고 보시의 불교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른바 불교적 리더십이야 말로 군에서 필요한 가장 인간중심적인 리더십인 것이다.
지난 50년을 돌이켜 보건대 군과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으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군 생활은 내 자신 성찰의 수신(修身)과 부대를 위한 솔선수범(率先垂範),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위국헌신(爲國獻身) 그 자체였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확고한 국가관을 확립한 가운데 군인으로서 필요한 소양과 체력, 그리고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었고, 야전부대 생활을 통해서는 고급 장교로서 군사적 혜안과 위기대응력을 체득할 수 있었으며 국가안보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신념화시켜 주었다.
앞으로도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새로운 전쟁개념의 대두, 전장환경의 변화, 안보정세 급변, 북핵 위협 고도화, 국방자원 제약 등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포괄적 국방혁신을 추진하고, 미·중 패권경쟁 및 동북아 신냉전체제에 대응 가능한 국가안보전략을 발전시켜나가야 하겠다.
포괄안보시대를 맞이하여 북한의 비대칭 전략인 분란전 전략과 하이브리드 전쟁수행전략에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을 적극 강구하고, 북핵위협 대비 한·미 핵공유체계 발전 등 확장억제전략 구체화 및 한국형 3축체계를 조기에 구축해야 하겠다.
연합훈련 강화, 적정 방위비 분담,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동참, 한·미·일 안보태세 강화 등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하겠으며,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로 와해된 군사대비태세를 복원해야 하겠다.
자유민주/시장경제체제 지원세력 확대를 위해 각종 포럼과 정책세미나 및 토론회 활성화로 자유민주 기본질서에 대한 공감대와 지지기반을 확산시키고, 이념﹘계층﹘지역﹘세대간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활동을 강화하며, 각종 안보 및 보수단체와의 소통 및 유대를 돈독히 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자유통일을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안보환경 조성과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국 상고사/고대사 역사 바로세우기와 국혼 되살리기를 적극 추진하고, 고대 역사 및 전쟁을 연구하여 한국적 군사사상과 독자적인 군사전략을 발전시키며, 남북통일을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자강 기반의 동맹능력을 확충해나가야 하겠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박정이 동기의 군 생활을 한꺼번에 알 수 있게 설명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긴 박동기의 노력과 포부에 대하여 존경을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짜 독일 병정이
독일 병정처럼 독하게 열심히 사셨네요.
글도 애써서 잘 쓰셨구요.우리의 역사네요.
한번에 다 못 읽고 몇번에 걸쳐서 나누어 읽었네요.
수방사령관때 한번 초대받아가서 신세진 기억이 잊혀지지 않네요.
앞으로도 계속 발전,건승하시고, 테레비 화면에서도 더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박장군님, 정말 군생활 알차게 하셨습니다. 전역하고 나서도 군 발전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을 위하여 그동안 쌓은 지식을 계속 전수해 주길 바랍니다. 한번 군인이면 영원히 군인이라고 할만 합니다.
언젠가 우리 새얼 동기회 회원들께 한말씀 하는 기회를 갖길 바랍니다.
멋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